농학생 교육현장 ‘아비규환’…수어학급 신설-농인교사 배치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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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학생 교육현장 ‘아비규환’…수어학급 신설-농인교사 배치 필요
  • 차미경 기자
  • 승인 2019.06.18 17:03
  • 수정 2021-10-01 11: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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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의 읽기 쓰기 중심…수어는 보조수단으로 전락

일본농학교, 청각장애인과 중복장애학생 그룹 별도 운영

의사소통 가능 교사 양성해야…

 
#초등학교 4학년 때 선생님이 종례시간 때마다 준비물을 가져오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칠판에 적어두지 않는 경우도 있어서 저는 짝꿍이 쓴 알림장을 보고 베껴 쓰는 게 허다했고, 선생님도 짝꿍 꺼 보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짝꿍은 악의적으로 글씨를 엉망으로 써서 제가 알아보지 못하게 했고, 다음 날 저 혼자 준비물을 챙겨오지 못하였습니다.
 
#특수학교에 한반 학생들의 수준이 달라서 중2 수준처럼 쉽게 배우다가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니 진도를 따라가기 힘들었어요.
 
 #고등학교 때 영어듣기 평가를 하는데, 제 특성상 마이크나 스피커처럼 낮고 울리는 소리를 잘 인지 못 해요. 영어듣기 문제를 풀기 위해선 전 영어지문이 필요했고 선생님께 듣기 지문 지원을 부탁했더니 절 방송실에 데려다 주시는 거예요. 스피커랑 가까우니까 크게 들릴 테니 문제 풀면 된다고…. 그래서 제가 직접 알아보고 영어선생님께 지문을 받아서 문제를 풀고 싶다고 말씀드리니 선생님께서 그건 오히려 ‘역차별’이라고 얘기하셨어요. 제가 교육청에 지원 요청을 하면 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하니 아무 말씀을 안 하셨고, 그 뒤부터 저는 영어지문을 받아 문제를 풀 수 있었어요.
 

위 사례들은 모두 청각장애인이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재학하면서 경험했던 사례들이다. 이러한 사례를 들며, 청각장애 교육현장에 몸담고 있는 교사와 전문가들은 현재 청각장애 교육현장은 ‘아비규환’이라고 표현했다.

최근 진행된 장애인 교육의 현황 및 발전방안 토론회에서는 ‘청각장애인 교육 현황과 개선방안’에 대한 주제로 진행됐으며, 청각장애인의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해 한국수어 학급을 신설하고, 교원자격이 있는 농인교사 배치 등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왔다.

 
수어로 배울 권리보장해야
일본, 농인학교 제1언어 
일본어 아닌 ‘일본수어’
 
강남대학교 특수교육재활연구소 곽정란 연구원은 “한국의 교육시스템은 농인의 학습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않고 있다. 농학교에 속한 교사의 수화구사능력 문제는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으며, 학습권을 제대로 보장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교육방향 자체가 농인의 제1언어가 아닌 한국어의 읽기 쓰기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농아인들의 언어인 수어는 보조수단으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곽 연구원은 이 같은 의견을 전달하며, 일본의 농학교에 대해 소개했다. 우선 일본의 경우 청각특별지원학교(한국의 농학교), 난청학급, 통급지도교실 세 가지 형태로 농인교육을 지원한다. 2018년도 일본 문부과학성 자료에 따르면 청각특별지원학교가 5546개소로 가장 많고 통급지도교실 2196개소, 난청학급 1122학급 순으로 집계됐다.
 
그 하나의 예로 메이세이학원은 독자적인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으며, 일본수어를 제1언어로 하며, 일본어의 읽기·쓰기를 제2언어로 하는 이중 언어·이중문화 농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2019년 현재 이 학교는 유치부 21명, 초등부 33명, 중등부 14명 등 총 68명이 재학 중이며, 교직원수 역시 농인 교직원·비상근교사 22명, 청인 교직원·비상근교사 20명이 근무하고 있으며, 교장인 카야 요코 씨 역시 농인이다.
 
메이세이학원 이중언어 농교육은 국어 대신 수어와 일본어라는 교과를 운영하고 있으며, ‘수어’ 교과는 일반 학교의 ‘국어’ 교과에 해당된다. 또 ‘일본어’ 교과는 농아동에게 제2언어로서 일본어를 가르치는 교과, 제2언어로 일본어를 학습하는 사람들을 위한 교수법에 기반하고 있다.
 
또 다른 사례를 살펴보면 공립 농학교인 홋카이도 삿포로농학교는 아동, 보호자의 교육적 요구와 학생의 개개인의 의사소통 방법에 따라 3가지 학습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먼저 일본수어그룹은 일본수어에 최적화된 그룹으로 모든 수업이 일본수어로 이뤄진다. 삿포로학교는 인공와우 수술을 받았거나 보청기를 사용해 구화 및 수지 일본어를 사용하는 청각장애인, 청각장애에 다른 장애를 가진 학생을 위한 그룹을 별도로 운영한다.
 
곽 연구원은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의 농인의 수어로 배울 권리를 보장해야 하며, 이를 위해 △통합교육에서 수어를 배울 권리보장 △한국수어를 교육언어로 하는 농학교 △농인교사의 확대 △농학교 한국수어 학급 신설 등을 제언했다.
 
“한국의 농학교는 한국수어를 생활언어로 사용하는 농인과 인공와우 수술을 하거나 보청기를 사용하는 학생이 함께 있다.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해 수어로 배우고하 하는 농학생을 위한 한국수어 학급을 신설해야 한다. 또한 농학교 교사의 수어능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농인교사를 배치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학습권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농학교 감소, 교육질 때문
의사소통하고 교육 가능한
교사 양성‧배치돼야
 
이어진 토론에서 한국복지대학교 한국수어교원과 허일 교수는 “한국의 농학교 감소의 원인을 농학교가 품질이 떨어지는 상품을 팔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허 교수는 “통합교육이나 일반학교 교육이 농학교 교육보다 더 효과가 있기 때문에 내려진 선택이 아니라, 농학교 교육이 너무 형편없어서 버림을 받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농학교 교사들은 수어장애인들이다. 수어장애 교사가 입으로 한국어를 말하면서 수지한국어를 하니, 농학생들은 수업내용을 이해 못하고 학교생활에 지루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 한국복지대학교 한국수어교원과 허일 교수는 “한국의 농학교 감소의 원인을 농학교가 품질이 떨어지는 상품을 팔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왜 미국과 일본에는 농인의사, 농인변호사, 농인치과의사가 있는데, 한국은 없을까? 미국과 일본 농인이 한국 농인보다 청력이 좋거나 말을 잘해서는 아닐 거다. 농인의 무능력, 일상생활의 한계와 함께 농인의 사회 참여에 가해지고 있는 억압과 차별을 해소해야 가능한 일이다. 대부분의 청인들이 사용하는 A라는 방법이 아니라 B 방법으로 더 잘 공부하고, 의사소통하고, 일상생활 하고,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B 방법을 허락하고 B방법으로 유능하게 가르치고 의사소통하고 지원할 수 있는 교육 전문가가 필요하면 우리에게도 먼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허 교수는 “청각장애 교육전문 특수교사가 아니라 ‘청각장애학생’ 교육전문 특수교사, 더 나아가 ‘볼 수 있는 학생’ 교육전문 교사, 농학생이 더 잘 공부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의사소통하고 교육할 수 있는 교사가 양성되고 배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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