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차별금지법에 앞서 ‘아윱의 마음’을...
상태바
장애인차별금지법에 앞서 ‘아윱의 마음’을...
  • 편집부
  • 승인 2009.01.14 00:00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철환/부평장애인종합복지관 사회복지사

 장애인, 장애우, 장애자는 신체장애와 정신장애를 비롯해 여러 이유로 일상적인 활동에 제약을 받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이른다. 크게 태어났을 때부터 장애를 가지고 있는 선천적 장애인과 사고 등으로 나중에 장애를 갖게 된 후천적 장애인으로 나눌 수 있다. 영어권에서는 장애인을 Handicapped(핸디캡트)라고 쓰자고 했으나, 모욕적인 용어라 생각하여 현재는 Disability(디세이블리티) 또는 Disabled(디세이벌드)로 쓰이고 있다. 또한 장애유형별 특성에는 신체장애로 지체장애, 뇌병변장애, 시각장애, 청각장애, 언어장애, 안면장애가 있으며, 정신장애별로는 지적장애, 자폐성장애, 정신장애가 있다. 내부장애로는 신장장애, 심장장애, 호흡기장애, 간장애, 장루·요루장애, 간질장애가 있다. 우리나라 전국 장애인 수는 210만4천8백명이며(2007년 12월 말기준, 보건복지부 통계자료) 2005년 177만7천4명에 비하여 장애인수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2008년 4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되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추진연대, 장애인이동권연대등 여러 장애인권익단체들의 끝임 없는 노력의 결실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되었지만 정말 장애인의 차별이 없어질까? 라는 물음표가 내 머릿속에 오랜 잔상이 되어 남아 있다. 그리고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완전하게 정착하기 위해서는 오랜 기다림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란 제도적 잣대로는 이 사회가 쉽게 변할 거라고 난 생각하지 않는다. 정말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없는 세상을 만들려면 난 아윱(Ayoub)과 같은 마음이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몇 년 전에 본 영화 중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이란 영화가 있다. 그 영화 장면 중 동생 아윱은 중증장애인 형 마디가 수술을 받지 않으면 얼마 살지 못 한다는 의사의 얘기를 듣는다. 아윱은 형을 위해 어린 나이에 목숨을 걸고 이란과 이라크의 국경을 넘어 밀수하는 사람들의 심부름꾼이 된다. 그리고 살인적인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노새들에게 술을 먹인다. 그리고 국경을 넘어가는 순간 무장강도들이 나타나고 노새들에게 술을 너무 많이 먹인 탓에 취해버린 노새들은 위급상황에서 달아나지 못하고 쓰러져버린다. 다른 밀수꾼들은 노새들과 밀수품을 버리고 도망치지만 마디의 생명을 구해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인 노새를 버려두고 도망칠 수 없는 아윱! 아윱은 쓰러져 있는 노새에게 일어나라고 울부짖으며 애원하지만 술에 취한 노새는 꼼짝도 않고 무장강도들의 총소리는 점점 가까워진다. 그러면서 이 영화는 끝이 난다. 장애인차별법을 논하기 전에 우리 모두가 먼저 아윱 같은 마음을 먼저 소유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그 영화를 보면 형 마디는 중중장애인이다. 혼자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며 걸을 수조차 없어 매일 마다 동생 아윱과 누나 로진이 업고 다녀야만 했다. 그래도 세 형제들은 어두운 내색 없이 서로 아끼며 사랑한다. 그리고 장애를 가진 형을 위해 동생 아윱은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는다. 이 영화를 보면서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생각해 보았다. 장애인을 이용하여 물질에 눈이 멀어 온갖 더러운 행위를 일삼는 시설들과 장애인 가족이 있다고, 장애인 친구가 있다고 장애인을 멀리하고 죄악시하는 사회풍경들을 보면서 ‘아윱의 마음’이 그리워진다. 올 해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되었다고 하지만 ‘아윱의 마음’이 없는 이 사회가 정말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떨칠 수 있을까 하는 깊은 물음표가 내 머릿속에 붙는다. ‘아윱의 마음’ 그건 사랑이다. 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아니고 생각이 아니며 실천이 아니다. 마음으로 안아주는 사랑인 것이다. 그것이 선행되지 않은 이상 제도적인 장치가 완벽하게 이 사회에 구축이 되었다고 해서 차별을 넘어 설 수 없다.


 끝으로 난 비장애인이란 없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다 장애인이다. 사람들이 장애에 범주를 만들고 그 안에 가두어 장애란 개념이 생겼을 뿐이며 누구나 다 장애를 가지고 있다. (비장애인은 오직 하나님 한분만이 아닐까?) 단지 이기적인 우리가 우리보다 약한 장애인에게 기득권을 얻기 위해 장애인에 대한 범주를 만들고 또한 그걸 제도화 했을 뿐이다. 우린 모두 장애인이다. 그러니 장애인차별금지법에 앞서 우린 모두 장애인이란 인식이 먼저란 생각이다.
‘나란히 나란히 가지 않아도 우리는 함께 가는 거지요~~~’ 라는 가수 손병휘의 노래가사처럼 우리는 함께 이 세상을 걸어가야 할 사람들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