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휴가, ‘여행’인가 ‘고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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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휴가, ‘여행’인가 ‘고행’인가?
  • 한고은 기자
  • 승인 2017.07.21 09:45
  • 수정 2017-07-21 09: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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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도 국민여행실태조사, 2016 장애인고용패널조사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은 지난 1년간 74%가 1박 이상의 여행을 경험했다고 한다. 그런데, 장애인은 1박 이상의 여행을 얼마나 했을까? 겨우 36%로 비장애인의 절반 정도에 그친다. 장애인에게 여행은 여행이 아니라 ‘고행’이라는 말이 나오는 만큼, 장애인의 여행은 고되고 힘들다. 여름휴가철을 앞두고, 장애인 여행에 어떤 저해 요소가 있는지를 알아보고 해결 방법을 논의했다.

5년간 ‘여행경험 없다’ 80%…이동수단-편의시설 미비 등 이유

지난 7월 13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는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등이 ‘제2회 장애인 아고라’를 열고 장애인 여행에 대한 토론을 열었다. 이에 앞서 두 달간 아고라 공동주최 4개 기관들이 185명의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SNS 설문조사를 열었다. 그 결과, 지난 5년간 여행을 간 경험이 없다는 응답이 80%였다.

그 이유에 대한 주관적인 답변들을 보면, 갈 수 있는 여행지가 없어서, 장거리 이동수단이 없어서, 장애인편의시설 미비, 장애인이 즐길만한 오락시설 전무, 물놀이 불가능, 정보접근이 어려움(편의시설, 숙소 등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거나 안내가 없는 경우) 또 금전적인 여건이 충족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여행할 용기가 나지 않거나(경험이 없고 정보가 부재), 사람이 많으면 차별당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는 응답도 있었다.

차별경험 여부 및 사례에 대해서는 조사 결과 43%가 차별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시설 접근이 어렵거나, 수십만 원의 요금을 선불로 지불하고 예약을 마쳤는데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숙소 주인이 제대로 응대하지 않는다거나, 관광명소에 진입이 불가능하거나,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거나, ‘집 안에 있지, 왜 밖에 나와서 피해를 주냐’는 식의 혐오 발언을 듣는 경우도 있었다.

사전 정보안내 미비·편의시설 부족…
‘맨땅에 헤딩’하는 수밖에 없는 현실

곰두리여행 박윤구 대표는 장애인여행 사업을 25년째 하고 있다. 패키지와 개인 맞춤형 프로그램 위주로 진행하고 있다. 가장 어려운 점은 역시 이동권이 확립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패키지가 단체로 하기 때문에 비용은 싸지만 다수의 장애인이 함께 이동해야 하므로 어려운 점이 많다. 그러므로 장애인들이 정보를 잘 알아봐야 한다. 섣불리 알아낸 정보로 쉽게 선택하지 말고 가급적이면 많이 알아보고 자기 입장에 맞춰서 선택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 전윤선 대표는 일단 가서 부딪쳐보는 방법에 대해 설명했다. 여행정보를 찾을 때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에 정보는 많으나 장애인들에게 가공돼 알려진 것은 잘 없기 때문에 일단 가서 부딪쳐 본다. 방송사 등에 직접 문의를 하거나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파악한다. 해당 지자체에 문의를 해도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턱은 없는데 계단은 있다’ 이런 식의 답변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휠체어 이용인들은 본인이 직접 가서 경험하는 수밖에 없다. 장애인콜택시 같은 제도가 있지만 여행지에서 연계가 되는지 알아봐야 하는 경우도 많고,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경험해보고, 다녀와서 장애인 여행 커뮤니티 등에 다른 장애인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식으로 현재 장애인 여행정보 공유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온라인에서 보면 업소의 실내까지 다 볼 수 있다. 훑어보면서 장애인 이동이 가능하구나 해도, 실제로 가서 보면 다른 경우가 있다 사진이랑은 다른 경우. 하다보면 노하우가 생기지만 어떤 식으로 극복했는지, 팁을 가늠할 수 있는지.

한국척수장애인협회 이찬우 총장은 여행을 좋아한다. 다치기 전에도, 다친 후에도 여행을 거리낌 없이 다닌다. 장애인이 되고 나서 경험한 첫 여행은 겁은 났지만 부딪쳐 보자는 생각으로 떠났다. 현재 이찬우 총장은 에이블뉴스에 칼럼리스트로 활동하는데 그중 ‘100개의 변기를 만나자’라는 칼럼이 있다. 왜냐면 여행을 하다 보면 화장실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 화장실 크기나 시설이 다 다른데 그런 다양한 환경을 접하게 되면 여행이 즐거워진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가 어렵긴 하지만 시도를 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고서는 정보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지역마다 저상버스가 얼마나 자주 오는지, 저상버스 이동경로, 장애인콜택시 등 운영 방식이 달라 이동 동선을 계획하는 것도 어렵다. 배를 이용할 경우 배가 선착장에 제대로 붙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 배에서 내리지 못한 경우도 있다.

정보가 제공돼 있다 한들, 비장애인들이 알려주는 내용이나 숙박시설이 제공해주는 정보는 휠체어 이용인에게는 안 맞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어느 정도 숙련이 된 사람들은 따지지 않고 가는 경우가 많다. 지난주에는 일본 홋카이도에 다녀왔는데 화장실이 무척 좁았다. 화장실에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었다. 부인과 함께 기지를 발휘해 휠체어바퀴를 빼서 들어갔다. 그런 식으로 대처를 하는 능력이 생기려면 여행을 일단 많이 다니면서 쌓인 노하우가 필요한 것이다.

여행을 하면 무언가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많다. 결정하면 후회할 때도 만족할 때도 있으나 잘못된 결정이라도 그걸 수용하고, 다음번 여행에 반복하지 않고 고민하거나 느꼈던 것들은 인터넷 등에 장애인과 같이 공유하게 되면 여행을 시도하는 장애인들이 늘어나고, 점점 더 장애인 여행 편의가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를 알아야 여행할 수 있다
경험 통해 ‘자기만의 여행법’ 찾아야

장애인여행문화연구소 홍서윤 소장은 정보를 제공하는 입장이자 비판하는 입장, 객관적인 입장에 있다. 홍 소장이 생각하는 여행은 단순히 경관만 보고 체험하는 것만은 아니다. 누구는 리조트 휴양, 누구는 레저, 누구는 자연 체험이 여행일 수 있다. 그러므로 자신이 어떤 여행을 좋아하는지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만 맞는 정보를 찾기 쉽다. 누구나 다 자연을 좋아하지 않으며, 누군가는 도시여행을 좋아할 수 있다. 카페에 가서 책을 보는 것도 여행이고 리조트에 가서 물놀이하는 게 좋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보에 대해 얘기하기 전에, 본인이 어떤 관광을 선호하는지 파악하는 게 우선이고, 그 다음에 정보를 찾아야 한다.

지난달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비장애인이든 장애인이든 여행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는 곳은 인터넷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입소문을 통해 가기보다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정보를 얻는다. 그걸 보면서 추가적인 정보를 파악하는 것이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여행 장면을 보면 누구나 다 ‘나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럴 때, 비장애인은 그냥 간다. 장애인들은 우선은 접근성, 편의시설 문제로 고민을 많이 한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라, 지역, 장소마다 다 다르지만 일률적으로 기본 정보를 탐색할 수 있는 방법은 (국내여행의 경우) 한국관광공사 홈페이지 참고다.

관광공사에는 기본적인 정보가 마련돼 있다. 편의시설 있는지 없는지 여부 정도는 파악할 수 있다. 그 이후에 그곳에 편의시설이나 접근성이 나에게 맞게 잘 되어 있는지를 확인해야 하는 것이다.

국외 같은 경우는 구글 번역기를 쓰면 웬만한 정보에 대해 다 번역이 가능하다. 그러면 장애인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는 얻을 수 있다. 그 이후에 여행사, 현지 코디네이터, 해당 언어를 구사하는 지인 등을 통해 도움을 얻을 수 있다. 그런 식의 단계를 거치는 작업이 필요하나, 이것은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 이렇게 단계를 파악하고 체계화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며, 홍 소장의 경우에는 10년 가까운 세월이 필요했다.

여행이란 경치 좋은 곳에 가서 하루 즐기고, 숙박을 하고 돌아오면 되는 경험이 아니다. 여행에 대해 얘기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관광을 얘기하는 것이다. 관광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그걸 먼저 파악해야 한다.

장애인 당사자도 도전의식 가져야

한국척수장애인협회 이찬우 총장은 한국관광공사에서 편의시설에 대해 정보를 다 제공해야 하고, 그걸 보고 장애인 당사자가 갈지 안 갈지 취사선택하면 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찬우 총장은 최근 여행지에서 어느 식당에 들른 경험을 얘기했다. 장애인주차장도 마련된 식당이었는데, 막상 가보니 경사로가 없고 내부에 테이블이 없이 다 좌식이었던 것이다. 그걸 보면서 이 식당은 단골손님을 한명 잃었구나, 생각하고 도로 나왔다.

장애인들이 소비자의 역할을 하게 되면 여러 시설에도 변화가 찾아올 수 있고, 그런 면에서 장애인들이 많이 돌아다니고 인식개선을 시켜주는 게 중요하다는 것. 그래야 아직 여행에 못 가본 80%의 장애인들도 용기를 내서 여행을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자폐인사랑협회 김이경 위원은 장애인 당사자에게 시선을 견뎌라, 아닌 것 같으면 포기해라라는 말도 있으나 발달장애인에게는 미묘한 차이가 있음을 밝혔다. 발달장애인 당사자였으면 쉽게 이용되고 수긍됐을 것이나, 당사자가 아니라 주변에서 후견인 등이 그 결정을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 시선을 직접 겪어서 견디는 것과 누군가를 대신해서 그 시선을 견뎌주는 것은 차이가 있다. “나는 안 가면 그만, 매상 못 올린 당신이 손해”라는 생각은 당사자가 아니라 부모의 입장에서는 맞지 않는 얘기다. 포기하는 것, 시선을 견디는 것이 과연 맞는지도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판단하기 힘들다.

한 아고라 참가자는 ‘장애인과 여행’은 생소한 얘기라고 말문을 열었다. 장애인들은 어릴 때부터 소풍이나 여행에 배제된 경험이 있어서 여행에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다. 자존감을 떨어트린 데 한몫했던 단어가 바로 ‘여행’이라는 것.

기혼인 참가자는, 결혼 후 낳은 아이가 강을 보고 ‘이게 바다냐’고 묻는 것을 듣고는 큰마음을 먹고 여행을 하기로 마음먹고 바다에 갔고, 그 후로 매년 여행을 떠나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 장애인에게 여행은 차라리 장애당사자들이랑 가는 게 더 편하다는 생각이다. 눈높이에 맞는 여행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장애인과 움직여야 할 때는 굉장히 낯선 곳에서 눈을 감고 거리를 걷는 느낌이 든다. 장애를 ‘이해’하는 사람들과 떠나더라도 그들이 잘 알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과 배려를 요구하는 것은 힘든 부분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홍서윤 소장은 한 번의 나쁜 경험은 좋은 경험으로 상쇄될 수 있으니,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내가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찾는 게 급선무라고 조언했다.

중증장애인에 필요한 ‘동행’…지원체계 필요

전윤선 대표는 중증장애인 여행에 필요한 ‘동행’에 대해 언급했다. 활동보조인과의 여행은 일단 별도의 지원책이 없어 여행을 가는 장애인 당사자에게 2배의 경비가 든다. 자원봉사자도 찾기가 힘들 뿐더러, 자원봉사자와 활동보조인은 전혀 다르다. 활동보조인은 일이기 때문에, 장애인이 원하는 것을 요구하면 즉각적으로 해결해주려고 하지만, 자원봉사자들에게는 그렇게 요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즉, 화장실에 두 번 가야 하는 경우인데도 참고 한번만 가는 상황인 것이다. 또한 자원봉사자를 실질적으로 현지에 가서 구하기는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전 대표는 한국관광공사나 정부에서, 여행지를 안내하고 보조할 수 있는 도우미, 여행 프렌드 같은 인력지원을 정책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시각장애인들의 경우 활동보조인을 여행에 데려가면 경비 부담이 커서, 현지에서 운전하고 가이드해주고 도와줄 수 있는 분들이 교대로 있으면 좋겠다는 제의가 있었다. 그러나 아직 그런 제도가 한국에는 없다. 외국은 활동보조인까지 여행경비를 정부에서 대주는 경우도 있다.

홍서윤 소장은 문화관광 바우처를 지원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정책적인 접근으로 따진다면 더 빠르다고 조언했다. 보건복지부는 예산이 부족하다는 답변이 돌아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문화체육관광부에 문화지원 차원에서 관광바우처 지원을 요청하는 것이 더욱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이에 대해 전윤선 대표는 실질적으로 주어지는 바우처 금액이 크지 않고, 단 한 번이라고 해도 여행 목적의 경비를 정부에서 지원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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