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이 죄송하지 않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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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이 죄송하지 않는 삶
  • 오유정 기자
  • 승인 2017.02.1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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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는 지난 2014년 2월, 서울 송파구 한 단독주택 지하 1층에 살던 세 모녀가 가난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기 전 집주인에게 남긴 메모다. 
 이 사건 이후 정부는 일명 ‘송파세모녀법’이라며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개정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개정안을 적용해도 본 사건 당사자인 세 모녀는 여전히 복지 사각지대에 머물 뿐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자는 되지 못한다.
 지난 1월 26일 ‘부양의무자기준폐지공동행동(아래 공동행동)’이 서울역 앞에서 발족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빈곤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제시했다. 
 공동행동은 “‘송파세모녀법’으로 개정한 박근혜 정부의 기초생활보장법이 빈곤 사각지대를 해결하기 위한 진짜 대책은 외면했다.”며, “제대로 된 빈곤정책을 만들고자 한다면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부양의무자는 수급권자의 1촌의 직계혈족을 말하며, 배우자, 자녀, 며느리, 사위, 부모까지다. 기초수급자로 생계급여를 지급받기 위해서는 이들 부양의무자의 부양능력이 없거나, 미약한 상태여야 한다.  
 부양의무자 기준이 완화됐음에도 이 부양의무자 기준은 가난한 이들에게 족쇄로 작용한다. 수급자 12명 중 1명은 가족과 연락이 끊겨 있다. 수급자에게 부양의무자 기준을 대며 수급을 막는 것은 부양의무는 장애인한테 노인을 부양하라고 하고 노인한테 장애인을 부양하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또한, 부양의무자 기준은 빈곤 사각지대를 양산하고 있다. 가난한 이들의 가족들을 가난에 빠뜨린다. 수급가구에서 자란 청년이 부양의무자가 되고 있다. 중산층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부양비’를 가난한 이들의 가족들에게 매기고 있다. 
 부양의무자 기준은 가난을 가족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린다. 노인빈곤율 50%의 시대, 부족한 사회안전망, 낮은 임금, 높은 생활비의 나라에서 가난은 보편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 더 이상 개인과 가족에게 그 책임을 돌려서는 안 된다.
 복지는 시혜가 아니다. 근로능력이 있는 신청자에게도 기초생활수급권을 선보장하고 본인의 의사와 환경에 따른 일자리 선택 기간을 보장해야 한다. 또한, 기계적인 취업 강요, 근로 능력평가는 철회돼야 한다.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고 기초생활보장제도 선정기준을 대폭 완화해 가난한 자들이 가난을 죄송해 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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