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전국장애인문학공모전' 수상작 소개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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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전국장애인문학공모전' 수상작 소개 - 5
  • 편집부
  • 승인 2016.05.16 09:23
  • 수정 2016-05-16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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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 부문 동상 수상작

   인천광역시중구장애인종합복지관은 매년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전국장애인문학공모전'을 개최하고 있다.  

 제8회를 맞은 올해 공모전은 지난 4월 19일 치러졌으며, 운문과 산문으로 나눠 대상, 금, 은, 동상, 가작, 장려상 등  총 17명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에 본지는 부문별로 주요 수상작을 5회에 걸쳐 소개한다. 다섯 번째는 산문 부문 동상 수상 작품이다. 
 
 
 
 
아버지의 희생
 
김재훈(정신,시각장애 1급, 경북)
 
 
 
 초등학교 시절, 학교를 마치고 동네 어귀에 들어설 때면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아버지의 구성진 소몰이 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곤 했다. 하지만 그 소리의 진원지를 정확히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방이 병풍 모양의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은 소리를 내지르면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오곤 했기 때문에 위치를 단박에 알아내기 어려웠던 점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흙 한 삽 떠올 땅조차도 가지질 못했던 아버지가 오늘은 누구네 논밭을 갈고 있는지 모른 탓이 더 컸을 것이다. 우리 땅에서 소몰이를 하면 쉬이 찾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타고난 성실함과 능숙한 쟁기질 솜씨 덕에 동네 논밭갈이의 상당 부분이 아버지께 맡겨졌다. 그 많은 논밭에 제때 씨를 뿌리도록 시일을 맞추기 위해서 아버지는 찬바람이 채 누그러지지도 않은 이른 봄부터 쟁기를 지게에 얹고 들판을 나섰다. 새벽녘에 소를 끌고 나간 아버지는 짙은 어둠이 고살마다 내려앉을 때서야 거친 숨을 몰아쉬며 집으로 들어섰다.
 어린 시절을 회상해 보면 서릿발이 남아있는 늦겨울과 이른 봄 사이 소 울음소리에 매일같이 달짝지근한 새벽 단잠을 설쳐대곤 했다. 그 소리는 처음에는 쩌렁쩌렁하게 들리다가 아버지의 발자국이 집에서 멀어질수록 점점 몽롱한 기억 저편으로 어슴푸레하게 스러져갔다. 소 울음소리는 성난 것처럼 때론 고달픈 생의 비애가 서린 것처럼 서글프게 들려왔다. 해가 지고도 한참 후에야 돌아와 몸뚱이의 노곤함이 채 풀리기도 전, 새벽 서릿발을 맞으며 발바닥 시린 논을 밟으려 들로 향하는 제처지가 울분과 비애 사이를 오락가락하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방과 후면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아버지의 소몰이 소리를 좇는 것을 더 좋아했다. 군것질거리를 찾다보면 구성지게 들려오는 아버지의 소몰이 소리에 저절로 신명이 일곤 했다. 아버지의 쟁기질 모습을 보고 소와 사람간의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에 사뭇 경이로움을 느꼈다. 아버지와 소의 소통 수단은 단 세 마디의 말 뿐이었다. 아버지가 외치는 “이랴, 이랴!” 소리에 앞으로 나가고, “자라, 자라!” 하면 왼쪽으로 방향을 틀고, “워어~ 워!” 소리에는 어김없이 제자리에 멈췄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을 때에는 고삐만 건듯 당겨도 소통은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외침에 강약을 조절하고, 리듬을 넣고, 반복법을 구사하면 판소리의 추임새 못지않게 주위 사람들의 어깨춤을 자아내곤 했다. 힘든 모내기철이면 동네 어른들 입에서 노동요보다 아버지의 소몰이 소리가 더 흥겹다는 말이 심심찮게 나올 정도였으며, 혹자는 아버지의 소몰이 소리에 혼이 서렸다는 평까지 내놓았다.
 어린 마음에서였을까, 어른들의 칭찬에 치기어린 욕심이 발동한 나는 소몰이 소리를 흉내 내다가 아버지에게 호되게 혼쭐난 일이 있었다. 무의식중에 자칫 소몰이 소리가 흘러나올까 두려워 한동안 입도 제대로 열 수가 없었다. 그날 어린 자식에게 험한 욕까지 내뱉으며 소몰이에 대한 함구령을 내린 것을 보면 남들에게 신명을 불러 일으켰던 아버지의 소몰이 소리는 어쩌면 추위가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 몽롱한 기억 저편으로 어슴푸레 하게 스러져가던 소의 서글픈 울음소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논에 벼를 심고, 밭에 씨가 뿌려질 즈음이면 아버지의 소몰이 소리도 잠시 주춤거리다가 그루갈이 논갈이 시절 부족한 식량을 보충하기 위해 보리를 수확한 후 다시 벼를 심는 이모작이 성행하던 때에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다. 동네 사람들 대부분이 소농으로 자작을 해도 생활이 버거웠던지 소작논은 구경조차 하기 힘들었으며, 설령 가뭄에 콩 나듯 몇 뙈기 나온다 해도 집성촌에 흘러들어온 타성의 아버지에게 차례가 돌아올 리는 만무했다. 아버지가 일찌감치 쟁기를 짊어진 까닭도 그런 것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동네 구석구석에 울려 퍼지던 아버지의 소몰이 소리도 그루갈이 논갈이가 끝나는 초여름이면 들판에서 서서히 자취를 잃어갔다. 그리고 그 공백을 자발없는 매미소리가 야금야금 차지하고 들었다. 
 소멸된 아버지의 소몰이 소리는 북새통 시장에서 어머니의 손을 놓쳐 버린 듯 어두컴컴한 방에 덩그러니 혼자 남은 듯 이상야릇한 당혹감과 두려움으로 엄습해 오곤 했다. 그리고 돛대 꺾인 돛단배처럼 방향 잃은 채 또래 악동들과 들판을 들쑤시다 어둠을 등지고 고샅을 내려올 때면 언제나 허기진 앙가슴뿐이었다. 아버지의 소몰이 소리의 소멸이 왜 나에게 그런 감정의 동요를 가져왔을까? 작은 몸뚱이를 부풀려 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아버지의 건재함을 확인하여 의구심을 떨쳐 내려는 심산에서였을까? 소몰이 소리의 소멸은 곧 아버지의 부재나 다름없었다.
 계절의 추이에 따라 자연스레 소멸과 생성을 반복했던 아버지의 소몰이 소리는 동네에 처음 들어온 경운기라는 기이한 기계음과 갑작스레 맞닥뜨리면서 차츰 소리의 울림이 잦아들었다. 생긴 것부터가 예사롭지 않아 동네 남자들은 물론 아낙과 아이들까지도 구경삼아 기계의 주인집으로 떼를 지어 몰려가면 주인은 기계의 다기능과 우수성을 마치 자식 자랑이라도 하듯 입에 거품을 물어댔다. 기계의 주인 말이 결코 허황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그해 봄 온 동네 사람들 눈앞에서 증명이 됐다. 쟁기와는 달라 소몰이 소리 대신 양손을 이용하여 좌우로 이동하고 멈췄다 출발하는 것부터가 판이하게 달랐으며, 기어장치를 이용하여 속도의 완급을 조절하는 기능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몫으로 배정된 논밭의 쟁기질을 야금야금 잠식하며 아버지를 옥죄고 든 진짜 괴력은 따로 있었다. 한나절을 질척대는 논에서 굴러다녀도 지칠 줄 모르는 완력에다 논을 가는 속도는 쟁기질에 비해 곱절은 빨랐다. 게다가 장기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소 대여섯 마리는 족히 소요되는 짐 실은 소달구지를 끌고 경사진 언덕배기조차 거뜬히 올라섰으며, 곡물에 섞인 먼지와 쭉정이 따위를 날려 보내는 풍구의 동력으로 활용되기도 하고, 때론 빠른 속도를 이용하여 사람의 교통수단으로까지 활용 되었으니 기계의 이기를 목격한 사람들은 너나없이 기계구입에 열을 올렸다.
 해를 거듭할수록 두세 집 건너 마당마다 기계음이 넘쳐났으며, 급기야는 경운기를 능가하는 트랙터가 동네에 파고들더니 아버지의 소몰이 소리는 기계가 들어가기 어려운 산비탈의 논밭으로 내쫓기면서 서서히 쇠잔의 길로 접어들었다. 동네에는 사시사철 귓속을 어지럽히는 기계음이 그칠 줄 모르고 기계 연료 타는 역한 냄새만 진동할 뿐 산비탈로 내쫓긴 아버지의 소몰이 소리는 동네 어귀에서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아버지의 소몰이 소리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갔지만. 아버지는 쟁기를 경운기로 갈아치우는 일은 하지 않았다. 쟁기를 얹고 고샅을 나설 때면 동네사람들은 아버지의 등을 향해 변화의 둔함을 질책하기도 했다. 농이 과한 사람은 “왜, 상투까지 틀지.”하며 비아냥대기도 했지만 아버지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나 또한 말을 못 꺼냈을 뿐 쟁기만 고집하는 아버지가 못마땅한 것은 동네사람들과 다를 바 없었다.
 그때 아버지의 존재로 여겨왔던 소몰이 소리에 들을 돌리고 기계를 택한 저의가 무엇이었을까? 소몰이 소리는 곧 아버지의 굳건한 존재의 확인이었다. 영생불변으로 이어질 것 같았던 그 소리가 지리멸렬해 가면서 아버지의 굳건함이 흔들릴 수 있다는 두려움과 그로 인해 내가 의지할 곳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얄팍한 두려움이 꿈틀거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생계유지의 절대적인 수단이었던 쟁기질 거리를 거의 잃은 후 살길이 막막하던 중 급속한 도시화와 산업화의 여파로 이동현상이 시작되면서 예전 같으면 어림없을 중급의 논까지 소작지로 내몰리는 형세가 되었다. 하지만 동네에 연고 한 명 없는 아버지가 소작지를 움켜쥐기는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었다. 아버진 도시로 떠나는 농가와 동네 어른집의 문지방을 쉼 없이 넘나들었다. 그 결과 어렵사리 동네 언저리에 위치한 몇 마지기의 소작지를 차지하는 운수를 잡았다.
 산비탈 논밭에서 성글게 맴돌며 끊어질 듯하던 아버지의 소몰이 소리가 질긴 생명력으로 다시 동네 언저리에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비록 소출의 반을 땅 주인에게 내주어야 하는 소작지이지만 온 정성과 억척을 쏟아 부었다. 아버지의 소몰이 소리의 신명이 최고조에 이른 것도 이때였을 것으로 기억된다.
 쟁기질이 숙명이라도 되는 듯 문명의 혜택조차 가난에 눌린 채 주름살이 깊게 패이고, 듬성듬성한 머리가 반백으로 변하고, 두툼하던 팔목이 삭정이가 되어 소매로 휑하니 비어져 나오면서 신명을 잃어갔다. 그리고 쇠한 일흔 노구의 운신조차도 힘겨워하던 어느 날 소몰이 소리와 영원한 결별을 선언하듯 소를 처분했다. 그날 아버지의 눈길은 떠나보내는 늙은 소도, 장성해 버린 자식도 아니었다. 그것은 더없이 청정하고 담담한 하늘 품에서 자유로이 비상하는 한 마리의 새였다. 늘 고난과 역경으로 쫓기고 시름겹던 아버지의 얼굴빛이 그날처럼 한가롭고 평화로워 보일 때가 또 있었던가? 아버진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다가 평화로운 모습을 찾은 것일까? 철부지 다섯 자식을 자신의 키보다 한 뼘씩은 더 자라게 키워놓았다. 이제 칠십 평생 씌워진 멍에를 훌훌 벗어던지고 저 포근한 하늘 품에서 비상하는 새처럼 자유로워지는 꿈을 꾸었던 것일까?
 가을밤이 그윽이 깊어 가는데도 아버지는 쉬이 잠을 못 이루시는 것 같다. 양 어깨에 숙명인양 모질게도 달라붙었던 멍에를 털털 털어버리시고도 무슨 근심이 남아 저리도 잠을 못 이루시는 것일까? 육덕이 좋을 때는 철부지 자식 몸 부풀리느라 새벽잠 못 이루시더니 삭정이 된 지금은 고생으로 응어리진 삭신의 독 풀어내시느라 잠 못 이루시는 것일까?
 감기철도 아니건만 숨넘어갈 듯 쿨럭 대는 아버지의 기침소리가 고적한 달빛 속을 애처로이 헤매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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