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전국장애인문학공모전' 수상작 소개 - 3
상태바
'제8회 전국장애인문학공모전' 수상작 소개 - 3
  • 편집부
  • 승인 2016.05.12 09:20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산문 부문 은상 수상작

  인천광역시중구장애인종합복지관은 매년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전국장애인문학공모전'을 개최하고 있다.  

 제8회를 맞은 올해 공모전은 지난 4월 19일 치러졌으며, 운문과 산문으로 나눠 대상, 금, 은, 동상, 가작, 장려상 등  총 17명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에 본지는 부문별로 주요 수상작을 5회에 걸쳐 소개한다. 세 번째는 산문 부문 은상 수상 작품이다. 
 
 
 
<은상>
 
 
 
개그맨을 지켜라! 

조경서(지체장애 3급, 경기도)
 
 
  우리 아빠는 개그맨이다. 내가 태어나던 해에 그 어렵다는 방송국 개그맨 시험에 합격하셨다. 당시만 해도 주위사람들은 아빠가 대한민국 대표 개그맨이 될 거라고 기대했었단다. 하지만 아빠의 영광은 딱 거기까지였다. 내가 열두 살이 된 지금 아빠의 TV출연은 말 그대로 가뭄에 콩 나듯 하는 정도다. 그것도 누워 있는 환자, 줄줄이 서 있는 포졸, 밥만 먹는 손님 등 대사도 거의 없고 얼굴도 잘 보이지 않는다.  
  잘은 모르지만 우리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은 아빠가 아니라 쌀국수집을 하는 엄마일 거다. 그래서일까. 언제부턴가 엄마는 아빠를 노골적으로 무시하기 일쑤였다.
  “오늘 늦을 거야. 밤에 촬영 있거든.”
  “웬일이래? 이번엔 또 뭐야? 거지? 도둑놈?” 
  “행인2.”
  “행인2? 1도 아니고 2? 그러지 말고 차라리 가게 일이나 돕는 게 어때?”
  나 같았으면 버럭 화부터 냈을 소리에 아빠는 쭈글쭈글한 하회탈 미소를 지어보이셨다. 언젠가 유명 개그맨으로부터 일품 코미디라고 칭찬 받은 바로 그 표정이었다. 하지만 내 눈엔 웃기다기보다는 왠지 서글퍼 보였다. 엄마는 왜 저렇게 밖에 말씀 못하시는 걸까. 가족이라면 아무리 못났어도 일단 감싸고부터 봐야 하는 건데 말이다. 
  꼬맹이 땐 아빠가 TV에 나오는 사람이라고 여기저기 자랑하고 다녔었다. 하지만 아빠의 보잘 것 없는 위치를 알게 된 요즘엔 그러지 못한다. 가장 친한 민서에게까지 아빠가 평범한 회사원이라고 거짓말했다. 그런데 저번에 민서가 집에 놀러왔을 때 그만 거실에 놓인 아빠 사진을 들키고 말았다. 
  “어? 아빠야?”
  순간 난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정... 정말?”
  “아빠가 혹시 무슨 박사님이셔? TV에서 본 거 같단 말이야.”
  “박... 박사님? 아냐. 회사원이라니까. 우리 아빠, 흔한 얼굴이어서 그런 소리 많이 들어.”
  다행히 민서는 아빠를 기억해내지 못했다. 역시 아빠는 한번쯤 본 듯 만 듯, 딱 그 정도의 연예인인 거였다. 하지만 민서가 언젠가는 알아보지 않을까? 그렇다면 미리 털어놓는 게 좋겠지만 그럴 용기가 생길지는 모르겠다. 
 
  아빠가 웬일인지 싱글벙글 들어오셨다. 
  “현동아, 아빠가 드디어…….”
  “드디어 뭐?”
  “드디어 개파에 나간다!”
  개파? 개그 파티! 개파라면 코미디 프로 중에서 가장 시청률이 높은 프로다. 또 거기 나오는 개그맨들은 주연은 물론이고 조연들까지도 웬만큼 다 유명한 사람들 아닌가. 그런데 아빠가 나온다고? 
  “진짜예요, 아빠?”
  “그렇다니까. 자 여기 대본도 있잖아. 읽어 볼래?”
  아빠는 자랑하고 싶으신 듯 얼른 대본을 내미셨다.  
  “좀비학교?”
  “거기서 좀비3이 아빠다.”
  내용도 재미있었지만 무엇보다 반가웠던 건 좀비3의 대사가 많다는 사실이었다. 
  “이게 아빠라고? 진짜?”
  “그렇다니까.”
 
  개파가 방송되는 날. 우리 가족은 TV앞에 모였다. 몇 개의 코너가 끝난 뒤 드디어 좀비 학교가 시작되었다. 아빠가 맡은 좀비3은 자신을 인간이라고 착각하는 바보 좀비였다. 그런데 너무 긴장하고 봐서 그런지 대본을 읽을 때하고는 다르게 별 재미가 없었다. 특히 아빠가 대사를 할 때마다 이상하게 얼굴이 화끈거렸다. 마치 내가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하는 기분이었다. 슬쩍 엄마의 표정을 엿봤다. 미소를 짓고 있긴 해도 입 꼬리가 씰룩거리는 게 엄청 긴장하신 것 같았다. 좀비학교가 끝나자마자 아빠는 떨리는 음성으로 물으셨다. 
  “어때?”
  이런 상황에서 세상 어떤 아들이 솔직하게 대답할 수 있을까? 
  “웃겼어요.”
  “근데 왜 안 웃었어?”
  아차! 억지로라도 웃었어야 하는 거였는데! 아빠는 곧바로 엄마한테 물으셨다. 
  “당신은 어땠어?”
  “그런대로 괜찮았어.”
  “자세하게 얘기 좀 해봐. 뭐가 좋고 뭐가 나빴는지.”
  그러자 엄마는 팔짱을 끼며 창밖을 내다보셨다. 큰일이었다. 저 포즈는 바로 엄마가 독설가로 변신할 때 취하는 특유의 행동이었다. 난 침을 꼴깍 삼키며 엄마의 입에 시선을 고정했다.    
  “괜찮았다니까. 진짜 재밌었어.”
  다행히 엄마는 팔짱을 풀며 그렇게만 말씀하셨다. 아빠의 입가에 보일 듯 말 듯 미소가 스쳐갔다. 
  그날 밤 난 떨리는 마음으로 개파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이미 많은 글들이 올라와 있었다. 좀비학교에 대해서는 대개 재미없다는 반응들이었다. 
  ‘역시 재미없었구나.’
  실망한 채 나오려는데 충격적인 댓글 하나가 눈에 띄었다.
  - 김호철 씨 좀 빼주세요. 개파에 어울리지 않아요. 
  눈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이었다. 난 그 댓글을 단 ‘투덜이’라는 닉네임을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앞에 있었다면 물불 안 가리고 당장 달려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다시 보니 ‘투덜이’뿐만이 아니었다. 
  - 개파 질이 언제부터 이랬죠. 그 늙은 개그맨 정말 가관이더군요. 
  - 김호철 씨 때문에 못 보겠습니다. 
  - 김 아무개만 뺐어도 좀비학교 그럭저럭 볼만 했을 듯.
  아빠를 향한 악플들은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다. 아니다! 이 정도로 형편없진 않았다! 아빠의 숨은 팬도 몇 명 있을 텐데 험악한 분위기에 눌려 입 다물고 있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난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떨리는 손끝으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 왜들 이러시죠? 오늘 개파에서 김호철 씨가 가장 웃기던데요? 그 분한테 뭐라 그러는 사람들 정말 이해가 안 되네요. 전 그동안 개파 잘 안 봤는데 앞으론 김호철 씨 때문에 꼬박꼬박 챙겨볼 것 같네요. 김호철 씨! 힘내세요! 당신이 오늘 최고의 개그맨입니다!
  그렇게 댓글 하나를 달아놓고 보니 뭔가 후련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내가 김호철 씨의 아들임을 밝히지 않은 것에 떳떳치 못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조금 덜 웃겼다는 이유로 한 사람을 짓밟아대는 그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게 분위기를 바꿀 수 있을까? 달랑 이거 하난데?
  다음 날 난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개파 홈페이지부터 들어갔다. 어쩌면 어제하고는 다른 댓글들이 달리지 않았을까? 하지만 상황은 똑같았다. 사람들은 여전히 아빠를 늙고 재미없는 개그맨이라고 놀려대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댓글에까지 악플 몇 개가 달려 있었다. 
  - 파수꾼님! 안경 좀 쓰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니면 수준을 좀 높이시든가!
  - 김호철이 웃겼다구요? 안드로메다에서 오셨음? 
  - 파수꾼님 혹시 김호철 아들? ㅋㅋㅋ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지만 정말 내가 아들인 걸 알고 단 댓글은 아닐 것이다. 이왕 시작된 싸움인데 이대로 물러설 수만은 없었다. 난 다시 댓글을 달았다. 
  - 저 시력 좋습니다. 당신보다 수준도 훨씬 높구요. 왜 남의 취향에까지 시비를 걸죠? 전 정말로 김호철 씨가 가장 웃겼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당신들, 만약에 김호철 씨가 이곳의 악플을 보면 기분이 어떨 거란 생각은 좀 해보셨나요? 
  갑자기 아빠가 걱정됐다. 늘 속없는 사람처럼 허허거리는 아빠라고 해도 이곳의 글들을 읽게 된다면 상처를 받을 게 뻔했다. 난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 아들이 웬일이야?”
  “어디야, 아빠?”
  “방송국에서 연습 중이지. 이번엔 대사가 더 많아! 하하!”
  혹시라도 악플 때문에 아빠가 쫓겨나는 건 아닐까 걱정했었는데 일단 다행이었다.
  “아빠 근데.”
  “아들, 뭐? 아빠 바쁘니까 얼른 얘기해.”
  “혹시 댓글 봤어?”
  그러자 귀가 따가울 정도의 웃음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아빠 걱정한 거야? 염려 마! 아빤 그런 거 봐도 아무렇지도 않아!”
  “진짜?”
  “그럼! 아빠는 좀비잖아! 바보 좀비! 하하하!”
  아빠의 유쾌한 목소리를 듣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다시는 이곳에 오지 말아야지 하며 인터넷을 닫으려는 순간이었다. 뜻밖의 댓글 하나가 번쩍 눈에 띄었다. 
  - 저도 김호철 씨가 가장 웃기던데! 완전 팬이 돼 버렸다니까요!
  닉네임은 돈벌레였다. 역시 아빠에게도 숨은 팬이 있었던 거다. 그 짧은 문장을 난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거기에 다시 댓글 하나를 달아놓았다. 
  - 돈벌레님! 반갑습니다. 이제야 개그 좀 아시는 분을 만났네요.^^
 
  한 주가 지나고 다시 좀비학교 시간이 돌아왔다. 우리 가족은 회의라도 여는 모습으로 TV앞에 모였다. 아빠의 좀비 연기는 지난번보다 많이 자연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웃기지 않는다는 게 역시 문제였다. 억지로라도 한번 웃어야지 하며 기회를 엿보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엄마가 깔깔거리는 게 아닌가. 한번 터진 엄마의 웃음보는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아이고! 배야!”
 아빠의 얼굴에 반가운 빛이 가득했다. 
 
  그날 밤 난 개파 홈페이지에 접속하고 싶은 걸 억지로 참았다. 이번에는 분위기가 다를 것 같긴 했지만 혹시라도 또 악플들만 가득하다면 진짜 울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냥 모르는 게 낫겠어.’ 
 
 그렇지만 홈페이지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다음 날 학교에서 친구들이 좀비학교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소리를 듣고만 것이다.          
  “그 바보좀비 완전 유치해!”
  슬프게도 민서의 말이었다. 우리 아빤 줄 모르고 하는 소리였겠지만 손이 다 떨릴 정도로 서운하고 분했다. 영영 우리 아빠가 김호철이라는 얘긴 하지 못할 것이다. 
  ‘개그가 뭔지도 모르는 것들이…….’
  어젯밤 배꼽이 빠질 지경으로 웃어대던 엄마가 떠올랐다. 당장 개파 홈페이지에 들어가 어떤 댓글들이 달렸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분명 지난번 같지는 않을 것이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가게에 계실 줄 알았던 엄마가 컴퓨터 앞에 앉아 계신 게 아닌가.
  “어? 엄마, 안 나갔어?”
  “시간 나서 잠깐 들렀어. 빵 좀 줄까?”
  엄마는 간식을 챙겨주신다고 주방으로 가셨다. 난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런데도 엄마가 미처 닫지 않은 화면이 그대로 열려 있었다. 뜻밖에도 개콘 홈페이지였다. 그리고 엄마가, 아니 돈벌레가 쓰다 만 댓글 몇 줄이 보였다. 
  - 역시나 김호철 씨의 좀비 개그는 압권이더군요. 재미없다는 글들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사람 보는 눈이 이렇게도 제각각이라니! 전 앞으로 김호철씨 팬 카페라도 만들어야…….
  엄마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난 얼른 컴퓨터에서 멀찍이 떨어져 앉았다. 엄마는 빵과 우유가 놓인 쟁반을 내 앞에 내려놓으신 후 아차 싶은 표정으로 황급히 컴퓨터를 끄셨다. 난 아무 것도 못 본 것처럼 태연스럽게 빵 한입을 먹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