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전국장애인문학공모전' 수상작 소개 - 2
상태바
'제8회 전국장애인문학공모전' 수상작 소개 - 2
  • 편집부
  • 승인 2016.05.11 10:13
  • 수정 2016-05-11 10: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산문 부문 금상 수상작
 인천광역시중구장애인종합복지관은 매년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전국장애인문학공모전'을 개최하고 있다.  
 제8회를 맞은 올해 공모전은 지난 4월 19일 치러졌으며, 운문과 산문으로 나눠 대상, 금, 은, 동상, 가작, 장려상 등  총 17명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에 본지는 부문별로 주요 수상작을 5회에 걸쳐 소개한다. 두 번째는 산문 부문 금상 수상 작품이다. 
 
자유를 위한 성전
조재훈(지체장애 1급, 경남)
 
무미건조한 알림음이 들린다. 지루하던 강의가 끝났음을 선고하는 동시에, 그나마 즐거운 시간이 돌아왔음을 알리는 것이다! 지금 배울 수업은 옛 현대 역사학인데, 뻔한 내용만 나오겠지만 어쨌든 과거의 시간을 탐험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었다.
하지만 이 강의에서 배울 수 있는 건 오직 실패한 과거의 목록들뿐이었는데, 옛 사람들이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 그들이 즐기던 문화와 놀이는 어떤 것들이었는지는 전혀 배울 수 없었다. 그럴 만도 한 게, 삶의 만족도나 경제적, 문화적 수준에서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성공을 거둔 게 현 세대이다 보니, 이 위업을 이룬 지금의 인류는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단순한 오만이 아니었는데, 위에서 언급한 삶의 지표들은 불과 이백년 전만 해도 국가, 지역별로 크게 차이가 났고, 같은 국가 내에서도 양극화가 심각했는가 하면, 심지어는 굶어죽는 사람들이 수백만 명에 이르기도 했다하니 오늘날 이룩한 업적은 결코 과소평가할 것이 아니었다.    
그렇긴 하지만, 정규 수업에서 다루는 주제의 폭이 너무나도 좁은데다가 과거 역사에 대해 부정적인 서술이 주류를 이루는 만큼, 과거의 많은 것을 알고 싶어 하는 나로서는 만족할 수 없는 건 당연했다.
 
모니터 안으로 수많은 물건들이 보였다. 모양으로 용도를 추측해보건대, 필시 이동과 관련이 있는 물품일 것이다.
교수는 해당 물건들을 하나하나 가리키면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ㅡ 이 물건은 ‘휠체어’라 불렸습니다. 바퀴가 있는 의자란 말인데, 뭐 몇 십 년 전만 해도 건강한 사람들도 바퀴 달린 의자를 썼었죠. 여러분은 아마 잘 모르실 겁니다. 
 
휠체어란 물건의 사용 영상을 보니 ‘장애인’이 바퀴 옆에 달린 손잡이를 밀어 이동했다. 저 시대의 ‘지체장애인’들은 상당히 불편한 삶을 살았을 것 같다.
 
ㅡ 여러분은 지금까지 21세기의 장애인들이 사용하던 물건들을 보셨을 겁니다. 다음으로 보실 건 여러분이 싫어하는 <글>입니다. 그것도 장문의 글이라 더 안 좋아하시겠군요. 다만 편의를 봐드려 여러 번에 걸쳐 나눠서 볼 테니, 너무 싫어하진 마세요. 미시 역사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상당히 흥미로운 글이니 말입니다.
 
❝4년이다. 자그마치 4년이란 말이다. 내 동기들은 이 긴 시간동안 대충 공부하고 놀면서 지냈음에도 직업을 구한 마당에, 가장 열심히 한 내게는 공허만이 남았다.
나는 심리학도로서, 심리상담사라는 직업에 필요한 역량을 갖추기 위해 4년 내내 무던히 노력했다. 이는 단순한 노력으로만 끝나지는 않았고, 높은 등급의 학점을 받음으로써 내가 이 분야에 유능함을, 아니 최소한 자격은 있음을 입증했다.
물론, 실제 직업 생활과 이론이나 지식은 때로 괴리가 있다는 걸 나 역시 잘 알고 있다. 다만 위에서 언급한 학점은 내가 이 분야에서 활동하기 위해 얼마나 정성을 들이고 있는 가를 증명하기 위한 자료로서 예를 들었다.
그러나 졸업을 앞두고, 그 동안의 고생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심리 상담을 진행할 자격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대학에서 배운 공부 외에 별도로 2년간의 수련 기간이 필요한데, 이를테면 전문가 밑에서 상담 진행 과정을 배워야 한다는 절차를 말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나름대로 꽤 합당한 이유를 가졌는데,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작업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만큼 예비 상담사를 준비시키기 위한 필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비장애인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나 역시 내 두 다리가 마비만 되지 않았더라면 지금 쯤 수련을 거쳐 상담사로 활동하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 비극적이게도, 그러한 기적은 내게 찾아오지 않았고, 거주지, 생활비 등의 문제로 수련 활동은 머나먼 환상에 불과했다.❞
 
ㅡ 이 글은 아까 보셨던 물건들이 사용된 시기에 작성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책의 저자, 국적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읽어보셨으니 아시겠지만, 이런 우울한 내용이 가득 담긴 글을 남겼던 건 당시엔 장애인들이 활동하기 쉬운 시기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시기에도 특정 국가들에서는 몸이 불편한 이들도 노력 여부에 걸맞은 보상을 얻는 경우가 있긴 했는데 이는 나라마다 달랐던 복지제도나, 사회의 지원, 국가 구성원의 인식에 따라 달라진 결과죠. 계속해서 보실까요.
 
❝비단 심리상담사 뿐이랴? 한 때, 나는 날로 위험해지는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NGO 활동가를 목표로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 단체들은 대도시를 비롯한 인구밀집 구역에 주로 위치했고, 당연하게도 이 촌구석에는 활동에 참여할 기회조차 없었다. 이 시대에는 NGO 활동가의 직업 활동 보상과 복지가 열악해서, 지원자가 턱없이 부족했었는데도 말이다!
내가 처한 상황은 한편의 비극과도 같다. 사고로 장애를 얻고, 경제적 공황의 여파로 농촌으로 거주지를 옮길 수밖에 없었으며, 그 결과 새로운 직업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차단되는 상황에 이르렀으니 감동 없는 싸구려 비극 작품에 충실한 전개가 아닌가? 거기다가 열심히 노력하는 주인공에, 노력으로 바뀔 수 없는 현실이라니! 이쯤 되면 차라리 희극이라고 믿는 게 나을 듯하다.❞
 
나는 그에게 연민을 느꼈다. 만약 그가 이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저 같은 고통은 겪지 않았을 텐데. 사람의 신체 중 일부가 손상되는 것이 사회적으로 수많은 기회를 잃는 것과 동일하지 않다는 사실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현대시대의 구성원이었다면 그는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다. 그 때보다는 말이다.
어쩌면, 이 글이야 말로 내가 찾던 잃어버린 유산의 지도 역할을 해줄 지도 모르겠다. 과거 사람들이 겪었다던 좌절과 공허와 같은 감정을 그를 통해 실마리를 찾게 될 지도.
 
ㅡ 네, 음울한 이야기지요. 단지 다리가 마비되었다고 4년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다니, 슬프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이 시대에 태어난 것을 감사해야 해요. 혁명이 진행되는 와중인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지금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미신과 편견이…….
 
지겹도록 들은 현대 예찬론이 또다시 나올 모양인가 보다. 뭐, 교수 말처럼 확실히 그가 살았던 시대보다는 나을 것은 분명하겠으나, 어디 완벽한 시기가 있겠나? 나는 교수의 말은 들은 체도 않고 그의 글을 읽어나갔다.  
 
❝그렇다고 장애인이 된 현실을 비관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부정할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동할 수 있는 자유로움을 잃어버리긴 했으나 얻은 것 또한 많았다. 다치기 전에는 몰랐던 소중한 가치들, 예컨대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소중한 사람은 누구인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깨달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던 것이다. 이를테면, 외면적인 가치에 신경 쓰기 힘들어진 만큼 내면적 가치에 몰두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마냥 희망적으로 낙관하지는 않는다. 내 앞에 닥친 상황은 분명히 현실이고, 4년은 비교도 안 될 만큼 긴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는 지금의 선택에 크게 좌우될 텐데, 유감스럽게도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그리 많지가 않다.❞
 
우리에게는 수많은 선택지가 펼쳐져 있다. 정규 교육과정에서부터 직업교육까지, 대공정은 우리에게 충분한 사전 정보를 제공한 뒤, 스스로에게 맞는 직업을 선택하도록 도와준다. 어쩔 수 없이 특정 직업을 선택하는 사람은 정말로 드물며, 그마저도 대공정의 끊임없는 재교육 덕택에 사실상 우리 공동체에서 낙오자가 되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그가 겪었던 것처럼 4년 동안의 공부가 물거품이 되는 일은 비현실적인 것으로 치부되겠지.
 
ㅡ 오늘 본 것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지켜낸 유산들은 인간을 해방시켰습니다. 만약 이 글의 저자가 우리 시대를 살았다면, 이처럼 절망적인 글을 썼을까요? 정녕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해야 했을까요? 잘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기술은 인간을 해방시켰다. 내가 어찌 그 ‘은혜’를 모르겠는가? 내가 이렇게 글을 손으로 쓸 수 있는 것도 다 과학의 유산 덕분임을 모르진 않는다. 또한 그와 나 같은 사람들이 더 이상 ‘장애인’이라 불리지 않게 만들어주었으니, 가히 구원자로 추앙해도 결코 과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우리가 잃어버린 유산에 대해서는 생각지도 않으니 과연 이것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이로써 오늘의 정규 교육과정은 끝났다. 내 생각에, 앞에서 적었던 글들을 정정해야 하지 싶다. 이번 강의는 전혀 뻔한 내용이 아니었고, 나는 특별한 과거의 단편을 발견했다. 물론 아직 전부 읽어본 것은 아니므로, 그가 날 실망시킬지도 모르겠으나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담은 글인 만큼 희귀한 자료임에는 틀림없다. 비록 교수는 그의 표면적인 감정과 처지만을 이해하고, 이를 과거를 비판하는 내용으로만 활용했으나 더 탐구할 가치는 충분하다.
 
❝내 선택지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취업이 힘든 다른 학생들처럼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것. 두 번째는 장애인 전형을 통해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취직하는 것. 세 번째는 관공서에 계약직으로 취직하는 것. 네 번째는 심리상담사가 되기 위해 자원을 투자하는 것. 다섯 번째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는 일.
한 때, 설계했던 미래가 있었다. 내가 장애를 가지고 늙어 죽음을 맞이한다는 가정 하에, ‘무엇을 위하여 삶을 살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을 위주로 계획한 미래였다. 나는 결혼을 할 생각도, 후손을 낳을 의지도 없었으니 결국 누군가를 위하여 헌신하진 않을 테고, 그저 나 자신을 위한 행동만이 남았을 뿐인데 과연 이러한 길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물론, 난 이상주의자가 아니다. 돈을 번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님을 잘 알고, 특히나 나 같은 경우에는 더더욱 불리함을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한 평생 그저 돈을 벌기 위해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러니까, 나는 돌봐야할 자식도 없고, 그들을 위해 살지 않아도 될 자유가 주어진 마당에 타인 소유의 기업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여 그토록 원하던 영광을 얻는 것은 고사하고, 자신이 쫓던 신기루가 무엇인지 알기나 할까 이 말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다 죽는 건 꿈이나 신기루 같은 허상을 쫓는 게 아니다. 나 같은 사람들에겐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할 숙명이다.❞
 
이 당시에는 대기업과 공기업에 종사하는 것이 일종의 영광이라고 인식되던 시절이었나 보다. 그만큼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하니, 불안정한 삶을 살았던 시기에는 오히려 합당한 생각일지도.
동료들은 나를 보며 나사가 하나 빠진 것 같다는 말을 했다. 물론 그들의 말은 정확했다. 나는 대공정의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행했고, 내가 선택하게 될 직업과 미래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는 무언가 공허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정말로 공허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의 글에서 나온 바로는 그동안의 노력이 무의미해짐에 따라 공허감이 밀려왔다는데, 내 노력은 무의미하진 않으니 말이다.
어쨌든, 이 감정이 어떤 이름이든 간에 나는 요즘 새로운 느낌을 받고 있다. 이것이 잃어버린 유산 중의 하나이겠지. 
 
❝그런 의미에서,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선택지는 적어도 내 삶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앞서 언급했듯이 먹고 사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음은 충분히 경험해봐서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내가 했던 결정들과 이로 인해 얻게 된 가치관과 신념들, 직업이 삶의 수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까지 고려한다면, 비록 고단하더라도 내 신념에 따르는 것이 후회하지 않는 삶이라는 데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나를 포함한 현대인들은 그와 같은 고민을 해본 적이 별로 없을 것 같다. 기껏해야 유아 시절에 우주를 보며 탐험가가 되고 싶다는 상상을 해볼 뿐, 전문교육 과정에 진입하면 강의를 통해 스스로 흥미로운 분야를 탐색하게 된다. 그리고 직업교육 과정을 선택하기 전에, 공정화 체계를 통해 자신이 선택하려는 직업이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지식과 기술이 필요한지를 알게 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인력이 꽉 채워진 직업들은 추천 목록에서 제외되는데 불필요한 인력의 과잉공급을 막고자 설계했다고 한다.  
 
❝내가 살던 시대는 자연 상태에서의 투쟁은 뺨 칠 정도로 생존을 위한 경쟁이 심한 시기였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엄연한 사실은 다음과 같은 전제가 붙어야만 참인 될 정도였으니 말이다. 예컨대, 돈을 많이 벌고, 덜 힘들고, 불안정한 고용 상태가 아니어야 한다는 조건이다. 당연하게도 여기에서 제외되는 작업인 노가다나 알바, 계약직 등은 직업에 귀천을 적용할 대상이 되어 버렸고 사람들은 이를 당연하게 여기며 대기업, 공기업, 공무원에 목을 매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이 지속되자, 본래는 자신의 소유인 기업에서 일을 할 사람을 애타게 구해야하는 기업주들은 오히려 가만히 앉아서 능력 있는 인재들을 맞이할 수 있었고, 종국에는 그 많은 인재들조차도 “가려” 받게 되었다. 이에 직업 수행과는 무관한 스펙 쌓기가 만연해지고, 급기야 이런 미친 현상은 편의점 알바생에게도 토익 점수를 요구하는 통탄할 상황을 만들어버렸다. 그렇다고 능력에 따라 보수를 더 많이 주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단지 사람을 걸러낼 수단으로 썼을 뿐이다.
문제는 어디서 출발했는가? 그다지 멀지 않은 과거에, 한 사상가는 기업이 노동자들을 착취할 시대가 올 것이라 예언했다. 이는 근거 없는 종말론 같은 예측이 아니라, 날로 강해져만 가는 기업을 일개 노동자가 감당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주장한 것인데, 예언은 그대로 적중했으니 실로 씁쓸하다.❞
 
생소한 용어가 많아 읽기가 힘들다. 그는 자신의 글을 다른 사람이 읽어줄 거라 생각하지 않은 모양인지 그 흔한 설명조차 붙이지 않았다. ‘스펙, 알바생, 토익’ 같은 단어가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으나 최소한 스펙이나 토익은 사람의 능력 중 일부라는 것은 분명하다.
구글에서 검색해보니 ‘자연 상태에서의 투쟁’이란 용어는 17세기의 철학자 홉스라는 사람이 쓴 책에서 인용한 것 같다. 간단히 요약하면, 서로를 못 믿는 사람들이 모든 수단을 동원해 타인과 싸운다는 것인데 이런 처절한 상황이랑 비교한 걸 보면 꽤 험난한 시대에 살았던 모양이다.
그보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사실 운운하는 문장이 더 신경 쓰인다. 현재는 저 문장이 다른 전제도 필요 없이 옳다는 것은 누구나가 다 아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의 글에 나온, ‘편의점 알바’라는 상점의 제품을 관리하는 작업 역시 지금은 전문적으로 교육받은 사람만이 가능한 일인데 어떻게 차별을 할 수 있는지가 궁금하다는 말이다. 이해하기 힘들다.
 
❝대기업에 취직한 능력 있는 인재들이 어떤 결말을 맞이하고 있는가? 그들은 나이가 들면, 자신보다 더 나이가 많은 경영진들로부터 퇴직 압박을 받는다. 퇴직할 나이가 됐으니 이제 그만 나가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직장에 반평생을 매진했던 직장인들로서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는데, 자신에게는 아직 뒷바라지를 해야 할 자녀가 있고, 집을 사느라 대출받은 빚도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눈앞이 깜깜해지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더군다나 이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지식만을 습득했던 터라 다른 직업을 구할 능력도, 여유도 없으니 그들에게 남은 유일한 길은, 한 때 그렇게도 싫어했던 “천한” 직업 외엔 없었다. 그들은 어딘가의 경비원이 되고, 많은 경우 인격모독을 받으면서도 참고 일한다. 이것이 진정 수많은 사람들이 바랐던 꿈의 직장이란 말인가? 스스로의 능력을 모두 바쳤음에도 기업인의 눈치를 보며, 자유를 제약당하는 일을 바라며 경쟁을 했다고? 먼 훗날, 나의 글을 읽는 누군가가 있다면 필시 우리를 미개하다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알아주었으면 한다. 이런 모욕을 겪는 사람들이라고 자신의 미래를 예측하지 못 했기 때문에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 게 아니라, 이런 결말을 겪을 수밖에 없도록 복합적인 사회 체제가 유도했기 때문이다. 바로 경제 정책이나, 사회적 분위기, 거대 자본의 흐름과 같은 압력 말이다. 이 거대한 기만자는 우리를 억압하며, 등장인물만 다를 뿐 전개는 똑같은 이야기를 재생산하는 쓰레기 같은 작가다.❞
 
ㅡ 새로운 소식 : MS사와 교류협정 체결
 
드디어 MS사에 아무런 비용도 들지 않고 놀러갈 수 있게 되었다. 협정이 진즉에 체결되었더라면 방학 때 가족 모두랑 같이 갈 수 있었을 텐데.
그러고 보니, 그가 살던 시대의 기업은 지금과는 상당히 달랐나보다. 비록 우리 회사의 구성원들을 가족이라 부를 수는 없겠으나, 적어도 이웃이나 친구 같은 사이를 유지하고 있는 우리와는 다르게, 과거의 사람들은 상당히 경직된 분위기에서 근무했던 것 같다. 수십 년을 넘게 함께 일했던 동료에게 나가라는 압박을 받는다니, 정말 끔찍한 일이다.
뭐, 회사가 제공해주는 마을에서 함께 힘을 모아 직업 생활을 하는 우리와는 다를 수 있긴 하겠다. 그의 말마따나 자연 상태에서의 투쟁보다 훨씬 경쟁적인 사회였다는 데, 어떻게 친구 같은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겠는가? 
 
❝내게 자유가 있는가? 관점을 아무리 달리한다 하더라도, 스스로 걸어 다닐 수 없는 상황은 자유의 측면에서 심각한 상실로 보인다. 단지 원하는 곳에 이동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이 사회에서 직장을 구하는 것, 여가활동을 하는 것, 친구나 친척의 기념일에 참여하는 것, 할머니의 장례식에 참여하는 것 등등 정말로 많은 일을 수행하는 데서 엄청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고, 위에 언급한 것들은 전부 내가 경험한 사례들이다. 즉, 일반인에겐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도, 내게는 힘든 일로 다가온다는 말이다.
이처럼 가장 기본적인 자유조차 누리지 못 하는 내가 자유로운 사람이라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나는 뭐라고 답해야 할지 난감해진다.
반대로, 내게 자유가 없는가? 이렇게 질문한다면 대답은 달라진다. 나는 스스로 생각할 자유를 지녔으며, 어떤 직업을 선택하고, 결혼은 준비할 것인지 말 것인지, 나를 계승할 이를 찾는 것과 같은 많은 선택들을,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결정했다는 엄연한 사실이 있기 때문에, 자유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아, 물론 결혼과 출산을 자유를 억압하는 존재로 보는 것엔 어느 정도 논란이 있다는 것을 안다. 만약 자신과 배우자가 자발적으로 원해서 이룩한 것이라면 이 역시 자유로운 선택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스로가 원하지 않는데도 결혼과 출산을 직간접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명백히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행위이며, 이러한 경우에 그 누구의 말도 따르지 않는 행위는 합당하다는 의미이다. 오랜 과거에, 수많은 사람들이 부모나 국가의 강요에 의해 혼인하여 비참한 삶을 살았던 사실들을 벌써 잊은 것인가?❞
 
이 질문을 내게 한다면, 나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분명히 우리는 과거와 비교할 때 더할 나위 없는 표면적 자유를 누리고는 있다. 머리를 제외한 여타의 신체장애는 기계의 힘을 빌려 자연 상태 그대로의 인간과 똑같이 행동할 수 있으며, 직업 선택 또한 표준화된 공정의 일환을 충실히 이행할 시엔, 적성에 맞는 일을 하면서 ‘노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어떤 시대에 살든 무제한적인 자유를 누릴 수는 없으니, 이 정도의 타협된 자유라면 가히 충분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다른 이의 자유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얼마 없다.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킬 힘도, 권한도 없고 그렇다고 뜻을 함께 하는 이들을 결집할 만한 명분도, 의지도 없으니 말이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의미 있는 일은 나 스스로 자유를 얻는 것뿐인데, 이 역시 쉬운 일은 결코 아니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친구, 지인, 가족들이 바라보는 나를 인식하고도 영향을 받지 않고 스스로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가?
대중적인 가치에 연연하지 않고, 정말로 중요한 것을 스스로 설정할 수 있는가?
이 많은 질문들에 과연 내가 긍정의 대답을 할 수 있을지 장담하긴 힘들다. 나는 아직도 합당한 이유도 없는 채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어떤 직업을 목표로 하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주위 사람들이 어찌 생각할까를 연상하니 말이다.❞
 
나는 다른 이의 자유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없다. 변명거리를 찾자면, 내가 사는 시대에는 자유를 침해받는 사례가 그다지 없기 때문이다. 기계화된 교육과정과 직업교육은 실업자의 수를 대폭 줄여주었고, 이에 따라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는 상황이 극도로 드물었다. 게다가 인간의 성적 욕망과 같은 원초적 본능들은, 자극 활성화 시스템에 의해 다른 사람을 통하지 않고서도 해결할 수 있게 되어 범죄율 역시 상당히 낮아졌는데, 이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오는 즐거움보다 오히려 더 큰 쾌감을 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담으로, 이 기술에 대한 과학자들의 설명으론 뇌의 특정 부위에 온전한 자극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지만, 나로서는 어떻게 사람과의 관계보다 더 좋을 수가 있는지는 의문스럽다. 그렇다고 이 쾌락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들은 전혀 없기에 실험을 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저 믿을 수밖에. 
하여튼, 누군가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는 먼 옛날 원시인들의 행동처럼 여겨졌으며, 지금은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는 유물로 남아있을 만큼 인간의 공격성이 억제된 덕분에 오히려 현대인이 누릴 수 있는 자유는 더 커졌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개인의 자유는 더욱 증진되어서,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등의 중대한 사유가 없는 한 거의 무제한적으로 활동하는 것이 가능해짐에 따라 삶에 불만을 가지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말하자면, 인류의 주된 적이었던 가난, 욕망, 아집, 경제적, 문화적 양극화와 같은 문제들이 해결되어 불만을 갖는 것 자체가 특이한 현상이 되어버린 시대로 변했다는 의미다.
 
❝이를 테면, 자유를 위한 성전인 셈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성전사들은 자신이 성전을 완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성전을 위한 과정이 중요함을 여기고, 자신이 쓰러지면 누군가가 계승하여 성전을 이을 것이라고 믿는다. 부득이하게 자신을 이을 자가 없다하더라도 그들은 개의치 않을 것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한은 성전을 완수하기 위해 과정을 충실히 이행했으니 말이다.’
멋지지 아니한가? 내가 생각하는 자유를 위한 성전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비록 나는 어느 정도 자유를 누리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나, 유감스럽게도, 이 시대를 사는 자유를 잃어버린 다른 이들은 돕지 못할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성역의 성전사들처럼, 나 역시 할 수 있는 만큼은 최선을 다해 자유를 다 하려고 한다. 비록 나 자신 외에는 영향을 주지 못 할지라도, 스스로 중요한 것을 설정하고 실천하는 과정 그 자체가 중요하니 말이다.
이제는 나도 지난날의 내 생각에 다소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한다. 젊을 적엔 이 글을 쓴다한들 아무도 읽어줄 이가 없다고 생각했고, 단지 글을 쓰는 이유는 내 울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한 것으로만 여겼다. 
하지만 이젠 나도 믿는다. 내가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한, 자유를 위한 성전은 지속될 것임을. 
하나 덧붙이자면, 누군가가 내 글을 읽어줬으면 한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거나, 혹은 같은 생각을 가진 이가 있다면, 스스로에게 자유를 누리고 있는지 질문해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만약 당신이 긍정의 대답을 할 수 없다면, 자유를 위한 성전에 참여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다.❞
 
그가 언급한 성전사들을 찾아보니, 아마 블리자드 사가 200년 전에 개발한 ‘디아블로’라는 작품으로부터 나온 대사 같다. 내용을 요약하면, ‘압둘 알 하지르’라는 역사학자가 ‘성전사’ 집단을 만나 그들의 삶을 기록한 것인데, 그들은 한 평생을 악과 맞서는 성전을 지속하지만, 자신이 악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것임을 바라진 않는다고 한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악과 맞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그 과정 자체일 뿐, 결과는 크게 중요하지 않으며, 자신의 이름과 사명을 계승하는 제자에 의해 성전은 계속 될 터이니 자신이 무엇을 남기는가 하는 문제는 신경 쓸 일이 아니라고 한다.
왜 하필 자유를 위한 성전이라고 표현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그는 자신의 상황이 끝없는 악을 상대하는 성전사처럼 결코 나아질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도 그가 겪었던 장애는 한 120년 전에야 기계의 힘으로 극복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는 당시로서도 크게 환영받지 않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맞섰을 테니, 처지가 비슷하다고 여겼던 것 같다. 내가 보기엔 그의 삶이 훨씬 더 절망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 문장을 끝으로 그의 글은 마무리되었다. 그가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았는지, 또한 그의 신념처럼 성전을 계속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가 남긴 글은 내게 몇 가지 생각할 거리를 주었음은 분명하다.
 
ㅡ 새로운 소식 : 자유를 위한 협정, 모든 지역에 공정화 논의 시작
 
이제 그가 던진 질문에 답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나는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있는가?
 
내 대답은, 그렇지 않다. 나는 비록 그 무엇도 부족하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으나, 오래 전 인류가 누렸던 수많은 자유를 잃어버린 채 공허의 영역에 머무르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섬세한 감정을 드러내는 일을 꺼리며,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그러할까?
우리는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자동화된 세계가 길을 잃지 않도록 늘 빛을 비춰주고, 넘어지면 일으켜 세워주고, 다치면 치료해줘서 목적지에 도착하도록 친절하게 안내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자동화된 세계가 안내를 해줘서 길을 잃지 않는 게 아니다. 애초에 길은 하나뿐이었으며, 이런 상황에서 목적지까지 도착하지 못 할 수가 없는 세계에 살고 있다. 인류의 사회는 더 정교해지고, 복잡해진 듯 보이나, 실은 매우 단순한 삶을 반복하는 기계적인 삶일 뿐이다. 왜 내가 기계화된 세계의 일부가 되어야 하는가? 정녕 수많은 톱니바퀴의 일원으로, 더 거대한 운명을 향해 가는 게 내 숙명이란 말인가? 그걸 정해주는 것이 자동화된 세계라면, 이 전지전능하신 신을 향해 거역하는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나는 이 사회를 바꾸고 싶은 생각은 없다. 어쩌면, 교수의 말처럼 인류가 도달할 수 있는 최상의 사회 형태에 이르렀다는 주장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실로 내가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없다는 이 사실만으로도, 스스로를 바꿀 근거는 충분하다. 단지 나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니 말이다. 느껴보지 못한 수많은 감정을 찾기 위해, 나 역시 자유를 위한 성전에 발을 디디려 한다.
 
아, 그 전에 한 가지 남길 것이 있다. 그는 비록 나를 제자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겠으나, 자유를 위한 성전을 그를 통해 알게 되었으니 사실상 내가 계승자인 셈이다. 그러니 스승에게 경의를 표하는 한편, 훗날 나를 계승할 자가 이 글을 보게 될 수도 있으니 이 긴 글을 마무리 하면서 쓴다.
 
❝내 생각에, 자유를 위한 성전은 그렇게 거창한 것은 아니다. 그의 시대에서는 자신의 취미가 무엇인지 당당하게 생각하는 것과, 독신으로 남은 채 홀로 외로움을 느낄 수 있는 용기가 자유를 위한 투쟁에 해당했다.
내가 살던 시대에서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삶을 부정하지만은 않고, 그들이 느꼈던 수많은 감정들과 비이성적인 행동들을 보고, 듣고, 행동해보는 것. 스스로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해보는 행위야말로 자유를 위한 성전의 시작이자 끝이다.
자유는 가장 암울한 시기에서만 빛나는 것이 아니다. 오늘과 같은 역사상 가장 찬란한 시기에도, 그 빛에 의해 생긴 어둠의 영역에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릴 수 있는 법이니, 우리는 언제나 투쟁해야 한다.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의 삶을 위해서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