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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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 편집부
  • 승인 2016.02.25 09:58
  • 수정 2016-02-25 17: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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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준 / 한빛맹학교 수학교사
 어릴 적 아버지와 목욕탕을 가면 꼭 듣는 말이 있다. “으아! 시원하다 얼른 들어와 봐!”
 의미 모를 거짓말에 친구 녀석 중 하나는 아버지가 친부가 맞는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었다.
 나 역시도 아버지께서 진국임을 강조하시며 권해주시던 각종 찌개의 찌꺼기들과 돼지비계들을 받아먹으며 이게 아버지 입맛에는 정녕 맛있기는 한 걸까를 꽤 오랜 시간 의심했었다.
 어머니가 사다 주시는 장난감과 옷들도 그것들이 뽐내고 있는 화려한 장식이나 유명브랜드의 상표와는 관계없이 나의 취향과는 맞지 않았던 적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아버지의 비계 양보가 얼마나 큰 배려와 희생이었는지, 또 내가 가진 옷들이 어머니의 가계부에서 얼마나 큰 부담을 감수한 것들이었는지 알게 되긴 했지만 다시 돌아간다 해도 아버지를 향한 의심과 어머니를 향한 배부른 투정은 그대로일 것 같다.
 지금 생각해도 내게 있어 가장 맛난 음식은 학교 앞 불량식품들과 300원어치의 떡볶이였고, 도둑이 오면 제일 먼저 보호해야 할 보물은 스트리트파이터 캐릭터 딱지들이었다.
 요즘 방송이나 강연들 덕분으로 과분한 유명세를 타고 있는 덕으로 일주일에도 몇 번씩 학교를 방문하는 손님들을 만나곤 한다. 목적의 대부분은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뭔가 만들어보고 싶다는 것인데 수학교구부터 첨단 보조기기까지 스펙트럼도 정말 넓어지고 있다.
 그런데 안타까운 건 가지고 오시는 제품들이 시각장애인들에게 별 도움이 안 되거나 무용지물인 경우가 너무도 많다는 것이다.
 초음파나 레이저를 활용해서 만든 첨단지팡이는 열려있는 맨홀뚜껑이나 내려가는 계단조차도 감지하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복잡한 도시생활 속에서 사람과 장애물을 구별할 수도 없어서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는 쉴 새 없이 장애물 감지센서가 울려서 켜 둘 수도 없다.
 야심차게 만들어온 디지털 녹음기는 모든 상황에서 음성으로 안내를 해주지만 터치스크린 속의 아이콘을 눈으로 보지 않고는 찾아낼 수가 없다.
 설계단계에서만이라도 찾아오셨다면 조금의 조언으로도 훌륭한 제품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완성품을 들고 실망한 채로 돌아가시는 분들을 보면 너무도 가슴이 아프다.
 사실 시각장애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기술은 특별히 하이테크가 아닌 경우가 많다. 전화기의 5번 버튼이나 컴퓨터 키보드의 F, J키의 도드라짐 표시처럼 조금의 수정으로 상상 이상의 편리함을 가져다주는 경우가 많다.
 멈추지 않고 돌아가는 회전식 번호 키는 숫자 하나만 뚫어놓으면 모든 숫자의 배열을 알 수 있고 우리 집 전기장판 온도조절기는 볼록한 스티커 두 개를 붙이는 것만으로도 나 혼자도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리모컨이 되었다.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온전히 그들의 입장에서 고민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사실 잠시 눈을 감는 것이나 안대를 하루정도 써 본다고 그것이 가능한 일은 아니다.
 꽤 오래전 케이블 방송국과 자동차 회사에서 찾아온 적이 있었다.
 방송국 사람들은 질 높은 화면해설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서 찾아왔는데 그 이전에 시각장애인들은 아무리 훌륭한 영상물이 있다 해도 읽어주지 않는 메뉴 때문에 VOD 서비스에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 그들은 특별한 리모컨 디자인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그것보다는 리모컨을 찾는 것이 더 어렵다는 사실도 간과하고 있었다.
 자동차 회사 사람들은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자동차 놀이시설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안전에 대한 불안함이 큰 것 같았다. 고민 끝에 어느 지점에서는 운전하고 싶은 시각장애인의 욕구는 없어지고 어느 놀이동산 어린이용 자동차나 다름없는 안전한 형태를 갖춰가고 있었다. 그들도 특별한 핸들 다양한 안내방송들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너무 많은 장치들과 안내들이 오히려 혼란을 준다는 사실은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얼마 전 방송국에서 거의 완성된 제품의 시연회를 개최하였다. 자동차회사 사람들도 설계가 거의 끝난 계획을 가지고 방문하였다.
 처음의 계획과는 많이도 달라져 있었지만 설명을 듣는 내내 너무도 뿌듯하고 기대가 되었다.
 특별한 기술이 더해진 것도 아니고 더 많은 돈을 쓴 것은 더더욱 아니었지만 그 분들의 공통점은 제품을 사용하게 될 당사자의 의견을 꾸준히 청취하고 모든 단계에서 반영하려고 노력하였던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 대부분의 시각장애인들은 어느 외국 회사의 스마트폰을 사용한다. 선택의 고민 없이 한 회사의 제품만을 사용하는 것은 특별한 기능이나 월등한 기술력 때문이 아니다.
 국내제품이나 그 밖의 것들도 기술력이나 디자인 어느 면에서도 그것과 견주어 뒤떨어지지 않는다. 심지어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기능도 탑재되어 있다. 그런데 실제로 써 보면 시각장애인들이 사용하기엔 너무나 불편하다.
 이유는 단 하나! 당사자의 입장에서 고민한 것이 아니라 기술을 가진 사람의 입장에서 고민한 산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아이들을 향한 부모님들의 사랑도 어느 기업의 훌륭한 제품들도 평가절하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가 원하는 것을 물어보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을까? 에 대한 아쉬움은 감출 수 없다.
 이번 주에도 세 팀의 손님과 만남을 가졌다. 부푼 꿈을 안고 자랑스럽게 계획을 설명하던 그들은 하나같이 축 처진 어깨로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돌아갔다.
 처음부터 다시 고민해야 할지도 모를 그들에게 설계단계에서부터 찾아와 줘서 정말 고맙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돌아가는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한마디씩을 건네주었다.
 “당신들의 결과가 기대되는 건 상대방의 입장에서 고민하려고 하는 마인드와 들으려고 하는 귀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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