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사 합법화의 문제점은?
상태바
존엄사 합법화의 문제점은?
  • 이재상 기자
  • 승인 2016.01.27 09:21
  • 수정 2016-01-27 09: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회는 지난 1월 8일 본회의를 열고 연명의료 중단 결정 요건 등을 주요내용으로 한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제정안’(일명 존엄사법)을 통과시켰다. 이에 앞서 한국장애학회는 지난 11월 ‘장애학과 생명윤리’란 주제의 추계학술대회를 갖고 고민의 시간을 가졌다. 이를 토대로 제정된 ‘존엄사법’의 문제점과 보완해야 할 점들을 알아본다.  

존엄사 합법화,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이란 이름으로 악용 소지
“장애인 조력자살, 차별의 가장 치명적인 형태로 작용할 것”     
 
연명의료 중단 합법화, 장애가족에게
강압과 비자의적 안락사로 이어질 것
 
 존엄사 합법화의 찬반 입장
 지난 2015년 11월 20일 열린 ‘장애학과 생명윤리-출생에서 죽음까지’란 주제의 ‘2015 한국장애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대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조한선 교수는 ‘안락사, 존엄사, 연명의료 중단, 그리고 장애인’이란 제목의 제4 발제를 통해 존엄사의 합법화가 장애인의 자기결정권 행사란 이름으로 악용될 수 있음을 경고하며 지난 수십 년 동안 서구에서 논쟁 중인 ‘장애인 안락사와 장애권리 운동’의 대립에 대해 설명했다.
 장애인 권리가 시민권과 낙인화의 저항이라면 존엄사는 프라이버시권과 생명의 신성함을 이슈로 내세운다.
 존엄사를 요청하는 중증장애인들은 “중증장애를 가진 삶은 존엄성이 결핍돼 있거나 그들에게 케어나 원조를 제공하는 가족 등에게 과도한 부담이 된다는 믿음이 그 동기로 작용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장애옹호주의자들은 “칸트의 윤리가 정확하다면 장애를 가진 어떤 삶이 존엄성이 결핍된 것이라는 믿음은 잘못된 것”이라며 “예를 들어 배변에 대한 완전한 통제가 결핍돼 있거나 휠체어 도움으로 이동하는 사람의 삶은 품위가 없는 것이라며 존엄사를 선택한 사람은 인간 존엄성에 대한 잘못된 신념을 가진 자”라는 주장이다.
 안락사에 의한 장애인 희생의 예는 네덜란드로 매년 사망사건의 6건 중 1건은 적극적 안락사의 결과며 이중 30%의 사망은 작위 또는 부작위에 의해 앞당겨지고 있으며 이런 환경에서 사회나 가족의 부담으로 여겨지는 장애인은 다른 사람에 의하거나 스스로 그들의 존엄사의 권리를 행사할 것을 자기결정권이란 이름으로 강요당하고 있다.
 이에 미국에서는 장애옹호세력들은 ‘NDY’(Not Dead Yet, 아직 죽지 않았다)를 결성하고 “존엄사가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불편함과 반감의 전형”이라며 “사회가 장애인들이 장애를 갖고도 독립적, 생산적 삶을 살도록 돕기보다는 자살을 강요하고 있는 것 아니냐?”며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또한 NDY는 존엄사의 이용이 차별적이고 미국장애인법(ADA)을 위반한다며 “중증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사회에 만연한 상황에서 조력자살은 그러한 차별의 가장 치명적인 형태로 작용할 것”이라며 반대했다.   
 조 교수는 “네덜란드의 사례에서 보듯 연명의료 중단의 합법화는 장애인 가족의 경우 그 개인과 가족에게 강한 압력으로 작용해 강압과 비자의적 안락사로 이어질 것”임을 경고했다.
 
1997년 말기환자 퇴원 허용한 의사에
법원이 ‘살인방조죄’ 유죄판결해 논란
 
 19년 전의 ‘웰다잉’ 논란
 이날 통과된 ‘웰다잉’, 이른바 ‘존엄사법’은 지난 1997년 말기환자 퇴원을 허용한 서울 보라매병원 의사가 살인방조죄 처벌을 받으면서 논란이 시작된 지 19년 만에 법제화된 것.
 보라매병원 사건은 혈종 제거수술 후 상태가 조금씩 호전 중에 있었고 계속 치료 받으면 회복될 가능성이 있었으나 뇌수술에 따른 뇌부종으로 자가호흡이 어려워 인공호흡기를 부착한 채 치료를 이어가던 중 환자의 부인이 치료비를 부담할 능력이 없다며 퇴원을 요구하자 의료진이 의학적 반한 퇴원이라는 각서를 받고 퇴원시켰다가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환자가 집에 도착한 후 호흡곤란으로 사망한 사건이다.
 제2심 법원은 보호자의 요구에 따라 퇴원조치를 한 의사의 행위를 작위에 의한 살인의 방조를 인정해 유죄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을 통해 퇴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의학적 권고에도 불구하고 퇴원함으로써 환자가 사망할 경우 의료진에게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환자 및 가족들로부터 받아왔던 의료계의 오랜 관행은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됐다.
 또 하나의 사례인 김 할머니 사건은 지속적 식물인간 상태로 혼자서는 거의 숨을 쉴 수 없어 인공호흡기를 부착한 상태로 중환자실에서 항생제, 수액 투여, 인공영양 공급 등으로 치료를 이어가던 환자의 가족이 평소 환자가 무의미한 생명연장을 거부하고 자연스럽게 죽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며 인공호흡기 제거를 요청하는 ‘무의미한 연명의료 행위중지 등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기했다. 
 이에 대법원은 환자의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라는 판결을 내렸고 이 판결은 우리나라 최초의 연명의료 중단에 대한 판결로 기록됐다.
 
‘안락사’ ‘존엄사’ 용어 대신 
대볍원은 ‘연명의료 중단’ 지칭
 
 안락사의 유형
 안락사의 유형으로는 순수한 의미의 안락사, 직접적 안락사, 간접적 안락사, 소극적 안락사 이상 4가지로 구분된다.
 순수한 의미의 안락사= 예컨대 임종의 고통을 제거하기 위해 적당량의 진정제와 마취제를 투여함으로써 생명의 단축을 수반하지 않고 자연히 사망하게 하는 방법이다. 생명의 단축을 초래하지 않는 안락사로서 고통을 완화하는 치료행위와 사망 사이의 직접적 인과관계가 없는 경우로 진정한 의미의 안락사로 지칭된다.
 직접적 안락사= 환자의 혈관에 공기를 주입해 공기전색을 일으켜 사망케 하는 방법 등 통상 적극적 작위의 형태로 의도적으로 살인하여 환자의 생명을 끊는 방법으로 살해형 안락사라고도 불린다.
 간접적 안락사= 불치의 암환자가 생명이 끝나는 시기에서 극도로 심한 통증으로 고통 받고 있을 때 그 고통을 감소하기 위해 환자의 의사에 따라 생명을 단축시키는 등 조건부 고의를 갖고 모르핀을 계속 증량 투입해 고통완화를 위한 치료적 처치가 환자를 사망까지 이르게 하는 것으로 치료적 안락사, 협의의 안락사라고도 불린다.
 소극적 안락사= 예컨대 중증의 기형아를 수술하지 않고 방치해 사망하게 하는 경우처럼 의사가 연명치료를 중단해 생명의 단축을 초래하는 것으로 의료현장뿐만 아니라 이론적으로도 가장 복잡하고 논란이 많다.
 소극적 안락사는 존엄사와 동의어로 이해되기도 한다. 미국에서 존엄사로 불리는 이른바 ‘의사조력자살’은 환자의 진지한 요청에 근거해 치사량의 약물을 처방, 투입함으로써 생명을 단축시키는 것이다.
 미국 오리건, 워싱턴 주의 경우 ‘의사조력자살법’을 ‘존엄사법’이라는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법원은 인간의 생명이 끝나는 시기를 인위적으로 앞당기는 것을 허용할 것인지를 놓고 주로 언급돼왔던 안락사나 존엄사라는 용어 대신 ‘연명의료 중단’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연명치료 결정, 환자보다 가족과 
의사가 행사할 가능성 매우 높다”
 
 ‘연명의료 결정법’ 명명과 자기결정권
 이어진 토론에서 한국장애인인권포럼 윤삼호 정책위원은 “법 제정이 논의되고 있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안’의 경우 그동안 논의돼왔던 안락사 반대 논거를 회피하기 위해 그 명칭부터가 장황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2009년 서울대병원이 안락사를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이라고 표현한 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이를 공식용어로 채택했다. 김 할머니 사건 초기 언론들은 ‘안락사’, ‘존엄사’ 표현을 썼던 것이 ‘연명치료 중단’으로 바뀌었으며 법안 또한 ‘연명치료’ 대신 ‘연명의료’를 사용해 ‘연명치료’가 치료의 일종이라는 인식을 지우려했다.
 윤 의원은 “연명치료 중단에 앞서 완화치료 지원방안부터 마련할 것과 환자 본인의 자기결정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등이었으며 그것을 무마하기 위해 환자의 ‘연명의료 중단법’이 아니라 ‘연명의료 결정법’으로 명명했으며 법안대로라면 연명치료 결정권을 환자 본인보다 그 가족과 의사가 행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법 제정에 대해 반대의 뜻을 밝혔다.
 환자 본인이 작성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병원에 따라 연명치료포기요청서, 심폐소생술포기요청서, 말기 환자의 심폐소생술 및 연명치료 거부에 대한 사전의료지시서 등으로 불린다.) 가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서류를 작성하는 말기 환자는 거의 없으며 의향서를 작성했더라도 환자 본인의 자기결정권이 온전히 보장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윤 위원은 “환자 본인의 자발적 의지를 전제로 한다지만 실제로 환자들은 의료정보를 독점한 의사들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고, 또 가족들의 경제적, 심리적 부담을 염려해 자신의 의사를 충분하게 피력하기 어려울 수 있다.”며 “사회적 배경을 살피지 않고 죽음을 오로지 개인의 선택과 결정의 문제로 환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또한 법안 제15조 제3항에 따르면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없는 대다수 환자의 경우 ‘환자 가족 2명 이상의 일치된 진술이 있고 담당 의사 등의 확인을 거친 경우 이를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환자의 의사로 간주’토록 규정하고 있어 결국 대부분의 경우 환자 본인의 뜻보다는 가족들의 ‘추정적 의사’와 의사의 ‘기술적 판단’에 의해 연명치료 중단이 결정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윤 의원은 “더 오래 살고 싶은 욕망과 가족들에게 부담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람, 존엄사를 ‘사회적 살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며 “장애운동은 이 사람들의 목소리에 더 크게 귀를 열어야 할 것”임을 주장했다.
 끝으로 윤 의원은 루게릭병에 걸려 전신마비 상태인 중증 근육장애인 원창연 씨의 얘기를 전했다.
 원창연 씨는 “전신마비 상태로 살고 있으며 언제까지 오늘처럼 말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며칠 후 호흡마저 기계에 의지해서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나는 겉으론 ‘빨리 죽어야 하는 것 아닌가’란 말을 하지만 깊은 곳에서는 ‘나는 분명코 죽고 싶지 않다. 살고 싶다.’고 말하는 또 하나의 내가 존재함을 부인할 수 없다.”고 전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