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은 용감한 이기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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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은 용감한 이기주의자
  • 편집부
  • 승인 2015.12.14 09:31
  • 수정 2015-12-14 09: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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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준 / 한빛맹학교 수학교사
▲ 안승준 / 한빛맹학교 수학교사
 ‘못 다한 이야기’라는 영화를 보았다. 극 중 주인공은 지인을 찾아가 “당신의 예비며느리의 식구 중에 유전적 요인의 장애가 있는 사람이 있다면 허락하시겠습니까?”라는 물음을 던진다. 선하게 보이는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매우 곤란해 하시지만 나름의 단호한 어조로 허락할 수 없다는 답변을 꺼내 놓으셨다.
 ‘2세의 문제도 있고’라는 나름의 점잖은 핑계를 생각해 내시기는 했지만 결론은 허락불가였다. 내가 감히 핑계라는 단어를 쓴 것은 그 어른들의 속내가 보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장애를 가진 나의 친구들이나 선배들이 사랑하는 연인과 하나가 되는 과정에서 상대방의 부모님을 설득하는 과정은 몇 가지 단어로는 설명되지 않는 의례적 스펙터클이다.
 커플의 야반도주나 부모님의 단식투쟁은 흔하디흔해서 얘깃거리도 되지 않겠거니와 수백 년 전 종교탄압 때나 봄직한 모욕적인 장면들이나 목숨을 담보로 하는 반대투쟁도 21세기에도 이따금 벌어지는 평범한 이야기들이다.
 이쯤 되면 아직도 그런 사람들이 있나 하는 생각들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분들도 그런 상황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어디선가 장애인식 교육도 받으시고 주말엔 각자의 전지전능하신 신께 장애를 가진 이들을 위한 기도도 드리고 때때로 봉사활동도 다니시는 인자하신 어른들이셨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나를 낳아주신 두 분마저도 아들의 배필감 제1번 조건은 장애 없는 건강한 여성이다. 시각장애인인 아들을 가졌는데도 말이다.
 이 땅의 대부분의 어머니 아버지들은 공통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욕구를 가지고 계신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으니 그냥 평범한 여자이면 적당히 데려와 보라고 하시지만 난 아직 이 세상에서는 우리 어머니 맘에 드는 그 평범한 여자는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 젊은 나이에 얼른 나가서 연애하러 가야지라고 말씀하시는 아버지는 아들과의 대화의 시간도 자주 가지고 싶어 하신다.
 수학전공자인 나조차도 어떤 논리로도 증명할 수 없는 부모님의 모순된 욕구는 이왕이면이라는 단어와 함께 극으로 치달아 간다.
 ‘이왕이면 우리 아들하고 어울릴 정도는 되어야지’ 하면서 풀어놓으시는 조금의 학력과 조금의 집안과 조금의 외모는 어느 순간 전설 속의 여신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 글을 보시는 순간 손사래를 치시면서 아니라고 하시겠지만 두 분의 맘속에 존재하는 나의 존재는 슈퍼맨인 것만은 분명하다. 슈퍼맨의 배필에 대한 조건을 찾으시려니 그 정도 조건과 욕구는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그분들이 바라시는 것들은 과학적이지도 않고 윤리적이지도 않다. 다만 그것을 뭐라고 할 수 없는 것은 아들을 향한 끝없는 사랑에서 기인한 것임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어머니 아버지는 내가 어릴 적부터 아들 앞에서는 용감한 이기주의자가 되셨다. 내게 사 주고 싶은 물건은 장사꾼의 에누리도 없애버리셨고 얕은 지식으로도 박사학위 가진 의사선생님과도 싸워서 이기셔서 가망 없던 나를 살려내시기도 했다.
 두 분은 언제나 내 편이셨고 나와 관련된 일에서는 언제나 용감하셨고 많이도 이기적이셨다. 그렇듯 사랑으로 지켜낸 왕자님을 평범한 민초들에게 짝 지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사실 우리도 어릴 적 거짓 아닌 거짓을 말하곤 했었다. 세상의 모든 딸들은 아빠랑 결혼하기로 약속했었고 여자를 알기 전의 모든 남자들은 세상에서 엄마가 가장 아름답다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가족 안에서의 사랑의 역사는 말도 안 되는 거짓의 역사였지만 숭고하게 만들어져 왔다. 현실적이지도 이해 가능하지도 않지만 서로 간의 사랑에 기인한 기이함을 시시한 과학논리나 시시콜콜한 윤리로 설명하려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그렇게 보면 세상의 모든 이들은 각자의 역사를 가진 슈퍼맨이고 왕자님일 것이다. ‘네 아버지가 태권브이이면 내 아버지는 그랜다이져’라고 싸우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우리 아들이 엄친아이면 그 누군가는 엄친딸인 것이다. 용감한 이기주의자로 살아가시는 모든 부모님들께 정중하게 부탁하고 싶다. 
 “사랑의 열매는 어떤 조건으로 결정지어지지 않습니다.”
 “지금 작은 이유로 반대하고 있는 그 사람이 어르신의 왕자님과 가장 잘 어울리는 공주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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