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의 걸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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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살의 걸음마
  • 편집부
  • 승인 2015.11.23 09:25
  • 수정 2015-11-23 09: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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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준 / 한빛맹학교 수학교사
▲ 안승준 / 한빛맹학교 수학교사

내가 가고 싶은 곳을 언제든 마음대로 갈 수 있다는 자유에 감사해 본 적이 있는가? 거창한 우주여행이나 해외여행이 아니다. 단지 내가 살고 있는 도시 아니면 우리 동네만이라도 마음대로 다니고 싶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처음 실명하고 집에만 있던 내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재활과 적응이 안 된 문제도 있었겠지만 이유가 불분명한 두려움은 나를 극도의 자신감 결여로 몰아갔고 주변의 과도한 걱정은 내 존재를 마치 물가에 내어놓은 아기 같은 걱정덩어리로 만들고 있었다.

이상한 건 그럴수록 궁금한 건 점점 더 많아져서 주변의 냄새며, 시간이며, 날씨를 하루에도 수백 번씩 물어대는 내 옆엔 늘 어머니가 붙어 계셔야 했다.

가족들은 하루 종일 커다란 덩치를 가진 큰아기의 쓸 데 없는 호기심에 답을 해주느라 극도의 귀찮음을 느꼈겠지만 아무것도 혼자 할 수 없는 실명프리미엄 때문에 짜증도 못 내고 하루 종일 친절함으로 쓸데없는 질문들에 답을 해주고 있었다.

특수학교에 입학했다. 무모한 용기 덕분에 기숙사 입소를 결정한 내가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건 내 주변엔 하루 종일 나를 도와줄 어떤 누구도 없다는 것이었다.

당장 중요한 문제는 식당과 화장실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몇 걸음 복도를 걸어가거나 한 층만 내려가면 있는 목적지였지만 의지하는 것이 모든 문제해법의 전부였던 내겐 에베레스트 등반보다 더 무섭고 힘든 일이었다.

주변의 모든 지형지물을 수십 수백 번 더듬다보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지만 급한 용변이나 시간이 정해진 식사시간엔 여전히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이동이 가능했다. 아침 체조시간엔 둘레가 50m 정도밖에 안 되는 운동장에서 길을 잃어서 아침밥을 거른 적도 있었다.

학교 수업 시간엔 일주일에 한두 번 보행이라는 교과가 있었다. 보이는 것처럼 뛰어다니는 친구들보다 몇 배는 둔한 내게 주어진 첫 과제는 지팡이를 들고 강당 끝에서 끝까지 직선으로 걸어가는 것이었다.

눈을 감고 걸어보면 알겠지만 이 과제는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앞에는 있지도 않은 큰 기둥 같은 게 있다는 느낌도 들고 똑바로 간다고 생각하고 간 곳은 완전 반대쪽이기도 했다.

어쨌든 보행 수업시간은 나를 조금씩 바꿔놓고 있었다. 어느 날부터는 화장실도 식당도 교실도 누구의 도움 없이 다닐 수 있었고 급하면 계단에서 뛰어 내려갈 수도 있게 되었다. 이마랑 무릎이 몇 차례 터지고 깨지고 난 뒤의 일이기는 했지만 학교 내에서는 어디에서도 길을 잃지는 않게 되었다.

15살 중학생이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혼자 힘으로 화장실을 아무 때나 갈 수 있다는 건 생각보다 엄청난 사건이었고 하느님의 자유의지가 이런 것이구나 하고 감사기도마저 올리게 하는 혁명이었다.

내가 학교를 벗어난 세상으로 본격적으로 걸음을 내딛기 시작한 건 그로부터도 몇 년이 지난 20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

첫 여자친구의 존재는 나에게 필요 이상의 자부심과 함께 감당 못할 부담감을 함께 선물해 주고 있었다. 그 친구는 다른 커플과는 다르게 만날 때마다 남자친구 집 앞까지 데려다 줘야 하는 수고로움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내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며칠의 고민 끝에 크게 심호흡을 하고 그 친구에게 단호한 결심을 전달했다. 몇 번씩 괜찮다고 사양했지만 꺾일 기미도 안 보이는 남자의 마지막 자존심을 그 친구도 존중해주었다.

이른 저녁을 먹고 친구를 바래다주고 집에 들어온 시간은 해가 다시 떠오르려고 하는 이른 새벽이었다.

늘 다니던 집이나 학교에서는 날쌘 돌이가 되어가고 있었지만 아직 세상은 20살 나에겐 너무나 넓고 복잡한 곳이었던 것이다. 그나마도 어느 경찰아저씨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내 귀갓길은 몇 박 며칠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비슷한 과정을 몇 번 더 거치고 나서야 나는 다른 남자친구들과 별 다르지 않은 시간에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많이 어렵기도 했고 힘들기도 했고 다치기도 다쳤다. 그렇지만 내가 얻은 성취감은 그에 비할 것이 못 되었다. 나의 아주 어린 시절 걸음마 하던 때는 기억나지 않지만 20살에 다시 완성한 걸음마가 준 느낌보다는 강렬하지 않았을 것 같다.

나의 인생 터닝포인트가 된 걸음마 사건 덕분에 나는 대학도 대학원도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 지금은 지팡이 하나만 있으면 지하철이나 버스는 물론이고 비행기까지 잘 타고 다닌다.

가끔씩 우리 학교 학부모님들께서 독립보행 훈련은 어느 때 하는 게 좋냐고 묻곤 하신다. 매우 안쓰러운 표정과 말투는 ‘좀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라는 답변을 기대하시지만 내 대답은 언제나 확고하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을 혼자 다닐 수 있는가? 아닌가는 삶의 범위와 모양을 획기적으로 바꿔놓는 기준이 된다.

두 다리로 걷느냐 지팡이를 짚었는가의 약간 다른 모습은 잠시의 부끄러움은 있을지언정 아무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여러 가지 이유로 후천적 장애를 가지게 된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세상을 향해 새로운 걸음마를 시작하십시오. 당신의 삶은 바뀔 것입니다. 단언컨대 스스로 이동할 수 있다는 건 축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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