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양의무자 기준의 법적 논리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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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양의무자 기준의 법적 논리에 관하여
  • 편집부
  • 승인 2015.10.12 09:46
  • 수정 2015-10-12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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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아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 박영아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하 “기초생활보장법”) 제3조는 급여의 기본원칙이라는 제목 하에 두 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하나는 수급자가 자신의 생활의 유지·향상을 위하여 그의 소득, 재산, 근로능력 등을 활용하여 최대한 노력하는 것을 전제로 이를 보충·발전시키는 것을 기본원칙으로 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부양의무자의 부양과 다른 법령에 따른 보호는 이 법에 따른 급여에 우선하여 행하여지는 것으로 한다는 원칙이다. 
 그 중 두 번째 원칙은 부양의무자에 의한 부양 우선의 원칙이라 불리기도 하지만, 이 조항이 직접적으로 100만명에 달하는 복지사각지대 형성의 주범인 부양의무자 기준을 규정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부양의무자 기준은 부양의무자와 관련된 요건이 급여의 수급자격 요건이 되는 것을 말한다. 현행 기초생활보장법의 대표적인 예는 생계급여에 관한 제8조 제2항이다. 제8조 제2항은 “생계급여 수급권자는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부양의무자가 있어도 부양능력이 없거나 부양을 받을 수 없는 사람으로서 그 소득인정액이 ...생계급여 선정기준... 이하인 사람으로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부양의무자가 있어도 부양능력이 없거나 부양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일 것을 생계급여 수급요건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말을 바꾸면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부양의무자가 있어도 부양능력이 없거나 부양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수급자로 선정될 수 있다. 그러나 신청인의 입장에서 부양의무자가 협조해주지 않는다면 본인도 아닌 부양의무자의 소득과 재산을 입증하기란 불가능하다. 부양의무자가 협조하지 않으면 그 불이익은 신청인에게 돌아간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8조에 따르면 수급권자 또는 부양의무자가 조사 또는 자료제출 요구를 2회 이상 거부ㆍ방해 또는 기피하는 경우 급여신청을 각하할 수 있다.
 부양의무자가 조사 또는 자료제출 요구에 응했는데 부양능력이 있는 것으로 판정되기라도 하면 “부양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부양을 받고 있지 않음이 분명한데, “부양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은 또 뭘까? 기초생활보장법 제8조의2 제2항은 8가지 사유를 열거하고 있다. 그 중 제1호부터 제6호까지는 부양의무자가 병역의무를 이행하거나, 수형 중이거나, 실종선고 절차가 진행 중인 경우로서 상대적으로 명확한 사유들이다. 문제는 제7호의 “부양의무자가 부양을 거부 또는 기피하는 경우”와 “그밖에 부양을 받을 수 없는 것으로 보건복지부장관이 정하는 경우”에 부양을 받을 수 없다고 인정하겠다는 제7호와 제8호 사유다. 
 보건복지부 지침인 「2015 국민기초생활보장사업안내」는 “부양의무 거부 또는 기피”에 해당하는 경우를 다음과 같이 분류하고 있다.
(1)부양의무자로부터 부양을 받지 못하여 기준 중위소득 43%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다고 소명하여 시장ㆍ군수ㆍ구청장이 확인하는 경우로서, ①보호조치를 받고 있는 아동, ②전배우자 또는 친생부(모)가 아동의 부양을 거부ㆍ기피하는 이혼한 한부모가구 또는 미혼모(부)가구, ③장애인ㆍ아동ㆍ한부모시설 등 시설퇴소 수급(권)자로서 부양의무자가 부양을 거부ㆍ기피하는 경우.
(2)부양의무자와 가족관계 해체상태로 정상적인 가족기능을 상실하여 정서적ㆍ경제적 부양을 받을 수 없다고 수급(권)자가 소명하여 시장ㆍ군수ㆍ구청장이 인정하는 경우로서, ①부 또는 모가 이혼 후 재혼하여 전 배우자와의 자녀에 대해 실질적으로 부양하지 않고 있는 경우 ②과거 가족 간의 관계해체 사유(이혼, 폭력, 상해, 방임, 유기, 가출, 학대, 약물중독 등)를 이유로 가족관계가 해체되어 부양의무자로부터 실질적인 부양을 받을 수 없는 경우 ③수급(권)자 가구가 미혼모부 및 한부모가 되는 과정에서 부양의무자인 직계존속과 갈등(자녀입양 강요, 임신중절 강요 등)으로 가족관계가 해체되어 실질적인 부양을 받을 수 없는 경우.
(3)양자, 양부모 등 혈연관계가 아님을 이유로 부양을 거부하거나 기피하는 경우
 위 지침은 나아가 “부양의무자가 있어도 부양을 받을 수 없는 경우의 확인(인정)은 수급(권)자와 부양의무자와의 관계에 대한 가족기능 작동여부 등의 판단이라는 보장기관의 재량행위”라고 안내하고 있다. 입증은 신청인의 몫이지만, 판단은 재량이라는 것이다. “그밖에 부양을 받을 수 없는 것으로 보건복지부장관이 정하는 경우”(법 제8조의2 제2항 제8호)와 관련 보건복지부 지침은 부양의무자 가구에 자연재해 및 이에 준하는 사고 등이 발생한 경우 등 10가지 사유를 나열하고 있다. 대부분 부양의무자의 사정에 해당하는 사유들로서, 매우 구체적이면서도 제한적이다. 
 위 사유에 해당한다고 “인정”받지 못한 수급신청자가 “부양을 받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은 과연 무슨 의미일까? “가족관계가 해체되지 않았으므로” 부양의무자에게 부양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는 의미일까? 그런데 부양의무자가 요청에 응하지 않으면? 법원에 최저생계비에 상응하는 부양에 관한 처분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일까? 최저생활도 유지하지 못하는 수급신청자에게 법원에 청구를 해서 부양료를 받아내라는 의미라면 그것으로도 문제지만, 그것 말고도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기초생활보장법에서 말하는 “부양능력”은 보건복지부 지침으로 정해지지만, 법원에 이행을 청구할 수 있는 “부양의무”는 민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 민법 제977조에 따르면 부양의 정도 또는 방법에 관하여 당사자 사이에 협정이 없는 때에는 가정법원이 당사자의 청구에 의하여 부양을 받을 자의 생활정도와 부양의무자의 자력, 그밖에 여러 가지 사정을 참작하여 이를 정한다. 여기서 부양의무자의 자력이 주된 고려사항이긴 하겠으나, 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부양능력” 기준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부양의무자 기준과 민법에 따른 부양의무가 연동되지 않아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대법원은 최근 부부간 부양의무를 “부양을 받을 자의 생활을 부양의무자의 생활과 같은 정도로 보장하여 부부 공동생활의 유지를 가능하게 하는 것”을 1차적 부양의무로 보는 반면, 부모와 성년자녀 간의 부양의무를 2차적 부양의무로 보고 “부양의무자가 자기의 사회적 지위에 상응하는 생활을 하면서 생활에 여유가 있음을 전제로 하여 부양을 받을 자가 그 자력 또는 근로에 의하여 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경우에 한하여 그의 생활을 지원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고 판시하여 1차적 부양의무와 2차적 부양의무를 구분하고 있지 않는 기초생활보장법과의 괴리를 잘 나타내고 있다. 
 요약하면, 현행의 부양의무자 기준은 “부양을 받고 있지 않음”을 넘어 “부양을 받을 수 없음”을 수급조건으로 삼으며 의미마저 모호한 “부양을 받을 수 있음”이 실제 부양과 동일하게 평가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기본적인 문제가 있다. 광범위한 사각지대의 형성은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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