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케시 조약 비준, 더 이상 미룰 이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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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케시 조약 비준, 더 이상 미룰 이유 없다
  • 편집부
  • 승인 2014.06.20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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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6월 27일은 시각장애인(기타 신체 또는 정신장애로 인해 독서능력이 저하된 자 포함)이 각종 저작물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저작권 제한과 예외에 관한 국제조약인 ‘시각장애인의 저작물 접근권 개선을 위한 마라케시 조약’이 체결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듣기에도 생소한 이 조약은 지난해 한국을 포함한 세계지식재산기구(WIPO) 160개 회원국과 50여 개 엔지오(NGO)에서 6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채택됐다. 한마디로 시각장애인이 전 세계의 저작물 접근에 있어 저작권법의 제한을 받지 않도록 하는 국제조약이다. 특히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저작권자의 권리를 일부 제한하기로 한 최초의 국제조약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니 조약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미온적 태도 때문에 서명은 물론 비준 동의안조차 아직 국회에 제출되지 않았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전 세계 시각장애인은 3억1400만 명에 이르고 그 중 90%가 개발도상국에 살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인쇄본 등을 제공할 수 있는 저작권법상 예외 규정이 있는 나라는 54개국에 불과하고 문서화된 전체 정보 가운데 약 5%만이 시각장애인이 접근할 수 있는 자료이며, 국내 현존 출판물 5천만종의 대체자료 보급률은 고작 0.36%(1만8천여종)라고 하니 정보격차 문제가 심각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마라케시 조약은 약자보호라는 차원에서 진일보한 조치라고 할 만하다. 우선 접근이 가능한 저작물이라도 최대한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그나마 정보격차가 줄어들 것이다. 이 조약은 정부가 예산을 들여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복지 구현인 셈이다.

마라케시 조약에 담겨 있는 내용의 골자는 저작권자의 배타적 권리에 대한 제한과 회원국 간의 저작물 상호제공에 관한 내용이다. 시각장애인 등이 정보에 접근하는 데 있어 가장 바람직한 대안은 저작권자 스스로가 독서장애인이 접근할 수 있는 점자, 보이스아이(Voice eye) 등의 형태로 저작물을 공급해주는 것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따라서 저작권 제한제도를 통해 문제를 극복하고자 한 것이 마라케시 조약인 것이다. 이 조약은 조약규정들에서 정한 저작권 제한을 도입할 것을 회원국의 의무로 규정함으로써 법적으로 야기될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간과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제3자로부터 지적재산권이 침해받는 문제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재 미국, EU, 중국 등 67개국이 서명했다지만 조약을 비준한 국가가 아직까지 없어 얼마나 참여할지도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라케시 조약은 장애인의 정보접근권을 보장하려는 장애인권리협약과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제정목적에 부합하는 하나의 대안이 될 것임에 틀림이 없다. 정보접근권 차별은 사회 참여 과정에서 기회 불평등으로 이어지고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킨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가 더 이상 묵과해서는 안 된다. 정보접근권에 대한 장애물 제거야말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불평등을 없애기 위한 첫 번째 과제이다. 그런 점에서 마라케시 조약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의 의사소통을 늘리고 다양한 영역에서 장애인의 정보접근을 수월하게 할 것으로 본다. 이제 정부는 더 이상 주변국의 눈치를 볼 게 아니라 조약 비준을 주도함으로써 복지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려야 한다. 특히 국회와 정부는 마라케시 조약과 별개로 장애인을 위한 공공정보물은 물론 신문, 잡지 등의 저작권 제한과 함께 이용편의를 도모하는 방안 등 장애인의 정보접근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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