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없으면 들어도 귀에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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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없으면 들어도 귀에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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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1.09 15:23
  • 수정 2014-02-20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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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선영 / 청각장애인 칼럼리스트

발행일 2013-12-09

▲ 노선영 / 청각장애인 칼럼리스트
2002년 월드컵 시즌일 때 일이다. 사춘기였던 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세상의 모든 것을 경계했다. 다가오는 친구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책상만 부여잡기 바빴다. 교실안의 그들이 내는 시끄러운 말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보청기를 빼놓는 날이 많았다. 구석에서 혼자 공부하면서 누군가에게 잊힌 존재로 기억된다는 것은 참 슬픈 일이었다. 수업시간도 늘 고행이었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보고 ‘숲속’에 가보라고 했다. 아름다운 숲속에 가면 들리지 않는 너이기에 느낄 수 있는 ‘무언가의 언어’가 있다고 했다.

나는 어머니의 말만 믿고 혼자 그곳에 가기로 했다. 내가 간 곳은 동두천 근처에 있는 소요산이었다. 비록 산세가 웅장하지는 않으나 작은 품으로 돌아가기엔 적합한 곳이었다. 입구에 들어가니 나처럼 외지에서 온 등산객들이 왁자지껄하면서 서로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곳에서도 나는 쓸쓸한 외톨이었다. 무시하고 혼자 걸어갔다. 시간은 무심하게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몇 시간을 걸었을까 어느새 혼자 숲속에 있는 나를 발견했다.

혼자 있는 숲속의 풍경은 전과 달리 내게 더욱 가까이 와 있었다. 소요산은 그날도 눈부셨다. 두려웠지만, 가슴 한 켠에 따스함을 가지고 숲속에 있었다. 가슴에 손을 대고 눈을 감았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숲속 이었다. 눈을 뜨고 오랫동안 그렇게 서 있었다. 내게 위안을 주는 더없이 고요한 바람과 잔잔한 햇빛 한 줄기가 따스함을 전했다. 비록 모양새는 작지만 화사하게 웃으며 반가워하는 꽃. 나는 그제야 느낄 수 있었다. 들리지 않는 나도 들을 수 있는 마음의 언어가 있다는 것을. 자연의 움직임 속에서 느껴지는 숭고한 언어 그것은 친절, 사랑, 미소와 같은 언어와 같았다.

마음의 언어가 없으면 들어도 귀에 들리지 않는다. 들린다 해도 마음이 없으면 아마도 그것은 허울 좋은 껍데기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친절과 사랑 미소의 언어가 있다면 나는 들을 수 있다.

산을 내려오면서 어머니가 왜 숲속에 가보라고 하신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나는 자연의 움직임과 닮은 수화를 통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그날 얻은 살아 있는 언어가 삶이라는 토양의 거름이 되어줄 것이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비료가 되어줄 것이다. 내가 어떤 삶을 살아도 그날 내게 준 교훈은 내 인생 가장 큰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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