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식개선사업, 장애체험에 대한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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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식개선사업, 장애체험에 대한 고민
  • 편집부
  • 승인 2012.10.22 00:00
  • 수정 2013-01-21 1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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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희(인천광역시장애인종합복지관 기획팀장/사회복지사)

연재기고

- 성년후견사업

- 소식지 '해내기'

- 나눔의 손길

- 장애인선수단(위너스F/C, 좌식배구 헤라)

- 사회복지현장실습

 

 

 

몇 년 전, 장애인식개선사업의 일환으로 ‘비장애인의 장애인 생활체험’(이하 ‘장애체험’)이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었다. 비장애인이 장애인의 보장구를 착용하고 일시적으로 장애인이 되어 활동해 보는 프로그램이다. 장애로 인한 사회적 불편과 고통을 느껴봄으로써 장애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교육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은 수년이 지난 지금도 장애관련 복지기관에서 계속 진행되고 있다.

평소 알고지내던 지인이 얼마 전에 학교에서 장애체험을 하고 온 딸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다. 이야기는 이러하다. 중학교에서 전교생을 대상으로 장애인식개선을 위한 구족화가의 예술 활동 시연을 감상하고 학생들이 모두 그 화가처럼 붓을 입에 물고 그림을 그리는 장애체험을 하고 이에 대한 감상문을 쓰는 것으로 프로그램을 마쳤다. 다음 날 감상문의 내용으로 딸은 선생님한테 불려가 혼이 났다. 그 내용인즉슨 “왜 내가 입에 붓을 물고 그림을 그려야 하는지 모르겠다. 만약 내가 두 팔이 없다면 발이나 입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릴 것이다. 그건 대단한 것도 이상한 것도 불쌍하고 힘든 것도 아닌, 당연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난 두 팔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그림을 그려야 하는 것일까?”가 주 내용이다. 아마도 “장애인을 잘 도와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혹은, “장애체험을 통해 장애인들이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 알게 되었다” 등의 장애체험 목적에 걸맞은 내용을 선생님은 기대했었나보다. 그 분은 딸아이가 자신이 잘못한 것이냐고 묻는데 뭐라 답해야 할지 난감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 상황을 통해 장애체험 프로그램에 대해 고민해보았다. 장애체험 프로그램의 본질이 신체적 불편만을 강조하여 장애인을 불쌍하고 반드시 도와야만 하는 존재로 인식하도록 하는 수준에 머문다면, 게다가 감상문마저 모범답안으로 장애인을 도와주는 착한 사람 만들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된다면,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은 미래에도 불쌍하고 배려해야 하는 특수 계층이나 또는 대단한 인간승리의 표상으로 기억되길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사실 그런 경우를 종종 초등학생 장애체험 프로그램 이후 소감문을 통해서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장애인의 상황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고 평소에 장애문제에 전혀 관심 없던 이들에게 장애인들이 어려움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 무엇이 문제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장애가 살아가는데 있어 불편하고 힘든 것은 맞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다양한 방법과 도구로 비장애인처럼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진정한 장애인식 개선이며 장애체험 프로그램이라 생각되는데 현재의 대부분의 장애체험프로그램은 장애인의 불편함만을 체험하는 것으로 채워져 있다. 인위적으로 걷지 못하게 하고, 보지 못하게 하고, 듣고 말하지 못하게 하고…….

장애인들의 신체적 장애로 인한 활동이나 기능상의 장애를 체험을 넘어 장애인들이 겪는 사회적 억압이나 차별을 공감함으로써 같은 이웃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변화를 추구할 수 있는 새로움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장애인을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인식개선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장애체험 외에 무얼 해볼 수 있을까? 내가 고민하는 것들을 본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는 동료와 나누는 시간을 가졌고 마침 그 동료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기획하고 외부의 지원으로 우리 복지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날개를 달다’라는 프로그램인데 이는 우리사회가 장애인이기 때문에 못하는 것보다는 할 수 있고 잘하는 것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비장애인으로 구성된 대학생과 청소년들이 기자단이 되어 각자의 분야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장애인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고 이를 기사로 작성하여 책을 발간하고 이를 배포하는 사업이다. 올해 초 현대자동차의 지원을 받아 진행된 이 사업은 현재 피아니스트 이희아, 아나운서 이창훈을 비롯해 배드민턴 선수 심재열, 우쿨렐레 강사 양준호, 바리스타 강수진 등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되 못 걷는 다리보다는 잘 보는 눈을 주목하게 하고 못 보는 눈보다는 잘 걷는 다리를 주목하게 하는 활동들이다.

그 뿐이 아니다. 분기별로 발행되고 있는 소식지 ‘해내기’를 통해서 장애인들이 해낸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다. ‘해내기’란 뜻은 “무엇이든 해 낼 수 있다”는 의지와 희망을 담은 우리복지관의 장애인에 대한 또 다른 호칭으로 이를 제목으로 하는 소식지에는 시각장애인분의 자작시가 담겨져 있고 돌아오는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 4강을 목표로 열심히 훈련하고 있는 뇌성마비축구단 위너스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4박5일의 여행일정을 스스로 계획하고 결정한 장애청소년의 이야기도 담겨져 있다.

구족화가 체험 프로그램에 대한 한 중학생의 솔직한 반응처럼, 그냥 장애인의 삶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삶의 방식의 하나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된 일들이다.

적어도 장애체험이 일회성 이벤트가 되거나 기존의 좋지 않은 것들로 채워진 장애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계속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우리들의 고민이 필요하며 이에 대한 대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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