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연금, 그리고 기초법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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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연금, 그리고 기초법의 변화
  • 편집부
  • 승인 2010.01.27 00:00
  • 수정 2013-02-05 14: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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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의선 / 빈곤사회연대 전 사무국장

 삼순구식(三旬九食). 서른날에 아홉 끼니밖에 먹지 못한다는 말이다. ‘1인 국민소득 2만불을 넘어서고 있는 지금에 가당키나 한 말인갗라는 생각이 들겠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2009년 최저생계비는 1인 가구 49만원인데, 서울의 경우 평균 월세인 29만원을 빼고 나면 20만원으로 한 달을 살아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최소한의 교통·통신비 10만원과 공과금 5만원 정도를 제한다고 하면 남는 금액은 5만원. 의료비나 생활용품 구입비를 빼더라도 한 끼에 5천원짜리 식사를 한 달에 열 번 할 수 있는 금액 정도가 남는 것이다. 이것이 삼순구식(三旬九食)이다.


 삼순구식을 벗어나면 빈곤을 벗어났다고 할 수 있을까. 최저생계비의 정의가 의미하는 것은 빈곤층이어도 ‘최소한의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빈곤기준이 되는 최저생계비는 수급자에게 극도의 내핍생활을 강요하고 있다. 최저생계비로는 빈곤을 벗어날 꿈도 꿀 수 없다. 최소한의 건강과 문화도 꿈꿀 수 없다. 죽을 수도 살 수도 없는 그 경계의 최저생계비가 수급자에게 더욱더 궁핍하게 사는 법을 찾게 할 뿐이다.


 현재 장애계는 장애연금 문제로 뜨겁다. 그러나 장애계는 장애연금을 통한 소득보장의 문제는 심각하게 받아들이면서 모멸스러운 최저생계비에는 그다지 문제를 삼지 않고 있는 듯 보인다. 현재 장애연금이 도입되면 장애수당이 사라지는 것은 물론 수급자의 경우 기초법의 소득인정액과 연결할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음에도 말이다.


 물론 기초법과 장애연금은 분명히 다르다. 기초법은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으로 빈곤층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고, 장애연금은 장애인 전체의 기초소득보장을 의미한다. 그러나 지금 정부에서 제시하고 있는 것을 보면 무엇이 다른지 알기 힘들지 않은가.


 2009년 빈곤사회연대 등이 조사한 실태조사에서 수급자 가구의 장애여부를 살펴본 결과 일반수급가구의 경우 약 52%에 달하는 가구의 가구주가, 조건부과수급가구의 경우 약 20%에 달하는 가구주가 장애가 있음이 밝혀졌다. 정부의 근로연계복지 정책에 의해 노동능력이 있다고 정부가 판단하는 이들에게는 현금형태의 복지를 줄 수 없으며, 중증장애인 등 노동능력이 없다고 정부가 판단하는 이들에게는 최소한의 생존비만을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장애연금의 금액과 대상이 어이없이 축소된 것 역시 정부의 이러한 원칙하에서는 당연한 것일 지도 모른다.

 
 인간다운 삶이란 가까스로 목숨을 유지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생명은 육체적 생명도 있으나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생명도 있다. 어떠한 사회생활도 할 수 없고, 사회로 진출할 수 있는 통로조차 봉쇄된 삶을 원하는 사람은 누구도 없을 것이다.


 기초법은 ‘복지’의 문제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가 요구하는 복지는 혜택이 아니라 우리의 권리를 찾는 것이어야 한다. 국민의 기본권(인간답게 살 권리)으로서의 복지는 삶의 보장을 책임지는데 있는 것이며, 이는 무조건적인 것이다. 이러한 권리는 다른 것의 조건으로 혹은 전제로 제공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노동하거나 노동하지 않거나 기본적인 생계를 보장받을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시작은 기초법의 전면개정에 있으며, 기초법 개정투쟁은 ‘권리로서의 요구’를 표출할 수 있는 장을 만들기 위한 계획과 실천 속에 존재해야 할 것이다.


 2009년 10월로 기초법 제정 10년을 맞이했다. 변한 것도 있지만 소득보장의 측면에서 변한 것은 거의 없다. 현실과 아무런 관계없이 사문(死文)으로만 존재했던 ‘권리로서의 최저생계 보장’을 수급자의 당당한 권리로 제기했던 것처럼, 이제 기초법의 진정한 변화는 수급자의 권리 요구로부터만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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