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인은 해주지만 비행기는 탈 수 없어요
상태바
할인은 해주지만 비행기는 탈 수 없어요
  • 편집부
  • 승인 2016.03.25 09:57
  • 수정 2016-03-25 09: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승준 / 한빛맹학교 수학교사
▲ 안승준 / 한빛맹학교 수학교사
 살다 보면 장애로 인해 많은 배려와 혜택을 누릴 때가 많다. 무언가를 기다리느라 길게 늘어선 줄에서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 의해 맨 앞쪽으로 순간 이동이 되어 있고 지하철이나 버스에 지팡이를 들고 탄 어느 날인가는 서로 내게 양보를 하려다가 한 줄이 통째로 빈자리가 되기도 했다. 어른들과 함께하는 어려운 자리에서도 메인 요리는 내 앞으로 놓이고 식사도 제일 먼저 내 앞부터 채워진다.
 배려는 정말 감사하지만 내게 필요한 도움과는 거리가 많이도 멀다. 난 남들보다 편히 쉬면서 가야 할 만큼 다리가 불편한 사람도 아니고 어른들보다 유난히 빨리 배고픈 사람도 아니다.
 반복된 경험으로 민망한 상황들이 예상되면 요즘은 배부른 척 뒤로 물러나기도 하고 지하철에선 아예 의자 앞에는 서지도 않고 문 앞에 서서 지팡이는 가방에 숨겨 놓는다.
 며칠 전 제자들과 함께 놀이동산에 다녀왔다. 대부분의 놀이동산이 그러하듯 그곳도 장애인 우선탑승 제도를 시행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인솔이라는 핑계 아래 누구보다 신나게 놀이기구를 즐기고 있을 때쯤 다른 학교에서 놀러온 비슷한 또래 학생의 푸념을 들었다. 우선탑승을 위해 출구 쪽으로 들어가는 한 무리의 우리 아이들을 보고 그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줄이 왜 안 줄어드나 했더니! 나도 복지카드나 만들어야겠다.”
 함께한 아이들 때문에 티는 내지 못했지만 순간 민망한 마음은 감출 수가 없었다. 우선탑승이라 하더라도 매우 적은 비율로만 태워주고 있어서 우리 아이들도 나름의 기다림은 감수하고 있었지만 일반적인 줄과 비교해서는 반의반도 안 되는 초고속 탑승라인이었다.
 잘 생각해보면 눈이 불편한 우리 아이들이나 다른 또래 아이들이나 기다리는 시간을 싫어하는 것은 마찬가지이고 특별히 더 불편한 것도 아니다. 혼자 이동이 불편하기 때문에 안내인을 배치해 준다거나 동반인을 할인해 주는 혜택이라면 모를까 이건 뭔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우선탑승은 일정연령 이하의 어린아이들에게 어울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내 앞에 먼저 놓이던 음식들처럼 주시니 먹기는 하지만 어딘가 눈치가 보이는 묘한 상황이었다. 복지카드가 있으면 전기도 가스도 휴대전화요금까지 할인을 받고 국립공원 입장료나 지하철 요금은 아예 내지도 않는다.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내가 경제적으로 그런 도움을 받을 만큼 어렵지는 않다. 오히려 내가 불편한 건 읽을 수 없는 고지서나 계량기 그리고 접근성이 엉망인 모바일 환경이다.
 별 고민과 생각의 여과 없이 받고 있는 복지혜택들이 나에게도 다른 이들에게도 손해가 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놀이동산 안내를 받는 대신 우선탑승을 받아들인 나 때문에 누군가는 몇 초라도 더 기다려야 했을 것이고 고지서와 모바일 환경의 접근성을 요구하지 않는 대가로 받아낸 할인은 다른 누군가의 요금에 덧씌워졌을 것이다. 
 며칠 전 공항에서는 이런 상황의 극을 보여주는 듯한 황당한 상황을 겪었다. 제주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마지막 비행기를 기다리다 시각장애인 안내를 부탁하면서 항공사의 요청대로 복지카드를 제시하고 장애1급임을 밝혔다.
 직원은 몇 천원의 할인을 받을 수 있음을 알려주면서 곤란한 목소리로 동행자가 없으면 1~3급의 장애인은 비행기 탑승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굳어지는 내 표정을 본 다른 직원의 대처로 큰 사건 없이 서울로 돌아오긴 했지만 그것도 서울에 나를 마중 나올 보호자가 있다는 수치스러운 확인을 받아낸 뒤였다.
 병원 수술실에서나 보던 보호자 동의각서까지 요구하던 그 항공사에서는 무슨 의미로 탑승 할인을 제공하는 것일까? 
 서울의 스케줄 때문에 마지막 비행기를 놓칠 수 없다는 핑계 아래 수치스러운 땜질조치를 받아들인 나 때문에 누군가는 나와 같은 피해를 또 겪을지도 모른다.
 복지나 배려는 받는 이의 입장에서 생각되어야 한다. 제대로 된 서비스 대신에 쥐어주는 선심성 할인혜택은 21세기 대한민국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합리적인 요구와 상식적인 복지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바로 그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