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우? 난 둘리가 아니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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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우? 난 둘리가 아니라고요!
  • 편집부
  • 승인 2016.03.11 10:04
  • 수정 2016-03-11 1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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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준 / 한빛맹학교 수학교사
▲ 안승준 / 한빛맹학교 수학교사
 요즘 상점들을 돌아다니다 보면 너무나도 친절한 점원들의 말투에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두 톤이나 세 톤 쯤은 힘주어 올린 듯한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과자는 1000원이시고요. 아이스크림은 500원이십니다. 카드는 여기 있으십니다.” 하는 요상한 극존칭들을 듣고 있노라면 한글의 높임법 체계가 변했나 하는 순간적인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화장실은 저쪽에 계십니다.”라는 말에 참지 못하고 피식 웃고 있노라면 한쪽에선 어린 친구들은 서로에 대한 격렬한 친근함을 표현하는 방법이 그것밖에는 없는지 서로를 개나 돼지로 부르면서 뭐가 좋은지 활짝 웃으면서 지나간다.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을 받은 교양 있는 사람들에게 정확한 높임말이나 예의 바른 호칭은 중요한 덕목이긴 하겠으나 점원들을 교육한 어느 회사의 경영 방식이나 누군가의 의사소통 방식까지 간섭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그게 나를 향한 것일 때는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언제 누가 만들어 놓은 명칭인지는 모르겠으나 사람들은 나처럼 약간의 불편함이 있는 사람들을 ‘장애우’라고 부르곤 한다.
 대한민국에서 덕망 있기로 유명한 교수님들이나 한글교육 제대로 받은 아나운서들도 심심치 않게 이런 표현을 쓰는 걸 보면 꽤나 영향력 있는 저명인사께서 고심해서 만드시고 배포하였을지도 모르겠다.
 ‘장애우’라는 말을 그대로 풀어서 옮기면 장애가 있는 친구라는 뜻이 되는데 난 어린 아이들부터 연세 지긋하신 어르신들까지 친구 맺을 정도로 관계의 스펙트럼이 관대하지는 못하다.
 그나마 난 아직 젊디젊고 극강의 동안이라 그런가 보다 하는 주관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해석 능력이라도 있지만 이따금씩 듣다 보면 거북한 상황들도 왕왕 있다.
 “장애우 여러분…” 하면서 연설하는 정치인들을 보면 결국 “이봐요! 장애 가진 친구분들!” 하고 부르는 것인데 도대체 장애인 친구들만 왜 그리 종류별로 많은지 언제 다 친구 삼기로 한 건지 내 상식으로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벗 우(友)자가 그리 좋은 표현이면 ‘판우’, ‘변호우’, ‘의우’라고도 쓰고 가족끼리도 ‘부우’, ‘모우’라고는 왜 안 부르는가?
 물론 어릴 적부터 2억 살 넘게 차이 나는 둘리 어르신에게도 친구라고 바락바락 우기면서 노래하고 자란 탓도 있겠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그 할아버지가 기분 나빠하지 않으니까 괜찮았던 거다.
 나도 물론 친구들이나 가까운 관계 속에서는 애칭도 부르고 거친 별명도 부르면서 지내지만 그런 것들은 상호 간의 암묵적인 동의를 확인한 수많은 역사적 근거가 있었음에 가능한 것들이다.
 길을 가다 보면 아직도 친절한 목소리로 맹인이나 봉사라고 나를 호칭하는 분들도 여전히 많고 성경책엔 시각장애인이라고 하면 실로암의 기적이 일어나지 않기라도 하는 것처럼 ‘소경’이란 단어가 여전히 존재한다.
 ‘장애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그에 비하면 교양 있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봉사는 조선시대 관직이고 소경이란 표현은 문학적 효과를 위한 필연적 단어 선택이라고 핑계 아닌 변명들을 늘어놓겠지만 호칭이라는 건 언제나 듣는 사람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편한 사이에서야 어떤 호칭도 어떤 표현들도 친근함을 느끼게 하겠으나 낯선 이나 불특정 다수를 향한 호칭은 그 사람의 얼굴이자 이미지라고 생각한다.
 잔뜩 예의를 차려야 하는 낯선 만남 자리에서는 서로를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조심스럽게 묻곤 한다. 잘 모르면 그렇게 물어보면 되는 것이다.
 난 불특정 다수에게 ‘장애자’라는 표현을 쓰는 것도 불쾌하지만 엄청 배려하듯이 ‘장애우’라고 오버하는 건 더욱 거북하다. 나 같은 경우에는 그렇게 물어오면 ‘시각장애인’이라는 표현이 가장 일반적이라고 답변하곤 한다.
 난 우리 친구 둘리도 아니고 백화점 한쪽 구석에 계시는 화장실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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