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마 한 번 받아 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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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마 한 번 받아 보실래요?
  • 편집부
  • 승인 2016.01.27 09:31
  • 수정 2016-01-27 09: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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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준 / 한빛맹학교 수학교사
▲ 안승준 / 한빛맹학교 수학교사
 맹학교에서는 어떤 수업을 받을까? 시간표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을까? 하는 질문들을 종종 받곤 한다.
 우리나라에는 전국적으로 12개 정도의 맹학교가 있는데 대부분 유치원부터 초, 중, 고등학교를 거쳐 전공과라는 대학과정까지 한 울타리 안에서 함께 공부한다. 요즘엔 학급정원이 10명도 안 되기 때문에 전교생을 합쳐 봐야 200명을 넘는 곳이 거의 없다.
 전교생이 서로 이름을 외우고 있을 정도의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이루어지는 수업은 중학교 과정까지는 여느 일반학교들과 거의 차이가 없다. 
 교과서의 모양이 점자나 확대 교과서이고 칠판이나 눈을 마주치는 대신 서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가끔씩 손을 잡고 설명해주는 것 말고는 시간표도 교육과정도 진도도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시간표에는 조금의 차이가 생기기 시작한다. 남들 다 하는 국어, 영어, 수학 같은 과목들은 당연히 배우긴 하지만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시간표의 영역은 세계지도의 한반도만큼이나 적게 느껴진다. 대신 시간표의 절반 정도를 메우고 있는 과목들은 이름도 살벌한 해부, 전기치료, 한방, 진단, 병리, 임상 같은 이론과목과 침, 안마 등 실기과목이다.
 대부분의 맹학교 학생들은 고등학교 3년 동안 일주일에 10시간 정도는 머리 좋다는 의대생이나 한의대생들이 배우는 의학과목들과 씨름해야 하고 10시간 정도는 손가락이 부러지도록 안마를 배우거나 피부가 너덜너덜 헤어지도록 서로의 몸을 침으로 찔러야 한다. 
 최근엔 인문계 교육을 실시하는 학급들이 생겨서 이런 과목들을 배우지 않는 맹학생들도 있긴 하지만 전국에서 겨우 두 학급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거의 모든 학생들은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이료라 불리는 이런 과목을 이수해야만 한다.
 어릴 적엔 진학공부 할 시간도 부족한데 이런 과목들을 배워야만 하는 나의 상황이 억울하기도 하고 벗어나고 싶어서 선생님들을 찾아가서 항의도 투정도 아닌 난동을 부려보기도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늘 한결같기만 했다.
 “이 땅에서 시각장애인으로 살기 위해서는 안마는 꼭 필요한 것이다. 너희들은 태어나면서 세 번 손이 부러지도록 아파야 비로소 제대로 재활한 시각장애인이 되는데 하나는 점자를 배울 때, 하나는 지팡이 보행을 배울 때, 나머지 하나가 안마이다.”라는 대답이었다.
 점자나 보행은 공부할 때나 생활할 때 도움이 된다는 것은 이해가 되었지만 나머지 하나는 당시에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으므로 소득 없는 나의 불평도 꽤 오랜 시간 선생님들을 괴롭히고 있었던 것 같다.
 정규 수업시간에 하는 진학공부로는 일반학교 아이들과의 경쟁이 도저히 불가능했기 때문에 입시공부는 방과 후와 늦은 밤 시간을 이용해야만 했지만 이마저도 하루 온종일을 책과 씨름하는 또래 아이들과 비교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밤새 국영수나 공부하고 이료과목은 포기해버릴까 하는 생각도 수백 번 했지만 시간표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그것들을 버린다는 건 내신의 포기를 넘어 낙제의 지름길이기도 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하루에 몇 시간씩 뼈의 이름과 근육의 작용을 외우고 경혈의 위치를 짚고 또 짚었다. 엄지손가락에 온 힘을 모아 사람을 주무른다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나름 힘 좀 쓴다는 아이들이 온 힘을 모아서 눌러도 선생님께서는 힘 좀 주라는 주문을 계속하실 뿐이었다.
 심지어는 힘을 기르기 위해 엄지손가락만으로 팔굽혀펴기를 하라는 과제까지 내려졌는데 기인열전도 아니고 차력사 양성소도 아니고 이건 뭔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사실 사람의 몸을 공부하고 치료하는 방법을 배운다는 것은 매우 매력적인 학문이라는 건 어느 순간부터 알게 되었고 실제로 재미를 느끼기도 했다.
 다만 진학공부에 방해가 된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눈이 안 보이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배워야 한다는 게 이유 없는 거부를 이끌어낸 원인이었던 것 같다.
 대학을 입학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때 배운 특별한 기술과 지식은 내 삶에 있어서 때때로 매우 큰 긍정적 효과를 나타내기도 했다. 사장님과 손님의 얼굴은 물론 똥인지 된장인지 구별할 수도 없는 내 시력을 받아줄 아르바이트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지만 안마는 나의 용돈과 등록금의 많은 부분을 해결해 준 복덩이가 되었다.
 모임을 하다보면 체하거나 발목이 접질리는 정도의 사고는 나의 침 실력으로 금세 해결이 되기도 하고 간단한 손 안마만으로도 여자친구에게 점수 따는 데도 그만이었다.
 무엇보다 세상을 살면서 다시금 고등학교 때 선생님들의 말씀을 되새기게 된 것은 사회는 장애인들에겐 아직 그리 녹록치 않았다는 것이다.
 일간지나 뉴스에서는 판사가 되거나 국회의원도 되고 가수도 되기도 하고 훌륭한 음악가도 된 시각장애인들이 나오지만 그것이 언론에 나온다는 건 다시 말하면 몇 명 되지 않는 희귀한 사례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교육여건은 좋아져서 시각장애인 박사도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그들은 능력과 관계없이 보이지 않는 사회적 장벽으로 진로의 선택 폭은 너무나 좁기만 하다.
 아이들의 적성과 관계없이 취업 가능성이 높은 특수교육과나 사회복지과를 강요하는 것이 맹학교의 안타까운 진로지도 현실이고 그나마도 상대적으로 용이한 것이지 모두를 수용할 수 없는 것도 아픈 현재이다.
 누구나 선구자일 수 없고 누구나 개척자일 수는 없는 것을 선생님들은 걱정하고 계셨던 것이다. 보다 많은 제자들이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싶었던 은사님들의 가르침을 깨닫는 데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회를 일찍 깨달은 현명한 선배들과 친구들은 훌륭한 안마사나 침사가 되었다. 그들은 예민한 감각에 각고의 노력을 더해 사람들의 피로를 풀어주고 병을 치료해 준다. 몸에 손을 대기만 해도 불편하고 아픈 부위를 알아내고 치료하는 시각장애인들의 특성을 인정하여 수십 년 전부터 나라에서도 안마업을 유보업으로 지정하고 보호해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안마유사업은 시각장애인이 아니면 모두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로 시장은 그렇지가 못하다. 직업의 선택권이 보장되지 못한 대다수의 시각장애인들에게 안마는 선택이 아닌 유일한 직업수단이다. 공정경쟁이나 시장경제 논리로는 설명하기 미안한 어쩔 수 없는 미봉의 복지정책이다. 
 우리 학교 직업선생님들은 오늘도 몸을 마루타 삼아 아이들에게 안마와 침을 가르친다. 무작정 힘을 쓰는 신입생들 통에 근육이나 관절을 다치기도 하고 가끔은 침이 몸에 박히는 사고가 나기도 하지만 어린 학생들의 미래를 위해 주저 없이 몸을 내어놓는 살신성인의 교육을 하신다. 아이들도 세상의 건강을 책임지겠다는 사명감으로 하루하루를 손가락이 부러지는 줄 모르고 안쓰러운 연습과 공부의 시간을 이어간다.
  “우리 아이들 얼마나 노력했는지 시원하게 안마 한 번 받아보시지 않으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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