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이 어떻게 수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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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이 어떻게 수학을?
  • 편집부
  • 승인 2015.11.06 09:39
  • 수정 2015-11-06 09: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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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준 / 한빛맹학교 수학교사
▲ 안승준 / 한빛맹학교 수학교사
강연장이나 인터뷰장을 다니다보면 나의 별것 아닌 이력들 중에 빠지지 않고 주목 받는 한 지점이 있다. “시각장애인인데 어떻게 수학을 공부하셨어요?” 아니면 “시각장애인들이 하는 수학은 좀 다르거나 특별한 방법이 있나요?” 같은 질문들을 받고는 한다. 그냥 좋아서 하다 보니 교사가 되었다는 답변이 궁색하기도 하고 나보다 훨씬 훌륭하신 시각장애 선생님들을 놔두고 뭔가 대단한 것을 해낸 것처럼 말하는 것이 민망하기도 해서 처음엔 좀 당황스럽고 곤란하기도 했지만 요즘은 뭔가 있어 보이는 것 같아서 주저리주저리 말하면서 어깨에 힘이 들어갈 때도 종종 있다.
 난 어릴 때부터 수학을 좋아했다. 누구나 왕년에 잘하는 거 하나씩은 다 있겠지만 나에게 수학은 공부 안 해도 점수 잘 나오는 그냥 시험기간의 잠깐의 휴식 같은 거였다. 학구열 높으신 부모님 덕에 학교에 입학하기도 훨씬 전부터 주산이며 암산을 배운 덕도 있겠지만 여기에는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게으른 성격이 크게 한 몫 한 것도 분명하다. 차분하게 필기하고 정리하는 건 영 잘하지도 못하고 귀찮아했던 내겐 수학시간에도 필산이라곤 어렸을 적부터 없었던 것 같다. 꼼꼼하게 적어가면서 하지 않는다고 선생님들께 부단히도 혼났지만 역설적으로 그 덕에 내 암산 실력은 날이 갈수록 늘어갔던 것 같다.
 시각장애인들은 수학문제를 대부분 암산으로 해결하는데 중도에 실명한 친구들은 그런 면에서 수학학습에 어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다행이라고 말하긴 좀 그렇지만 눈이 보일 때부터 필산과는 거리가 멀었던 나에게 그런 것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중도에 실명한 시각장애인들은 점자를 빠르게 읽는 데도 한계가 있는데 수학만큼은 읽어내는 것보다 머릿속으로 계산하는 것이 훨씬 많기 때문에 읽는 속도가 문제가 되지도 않았다.
 다만 행렬같이 관계성이 없는 숫자의 나열을 외우고 풀어내는 데는 적지 못하는 것이 큰 부담이 되기도 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미적분이나 인수분해 같은 복잡한 계산을 하기 힘들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것들은 풀이과정의 연계성이나 연속적인 관계성들이 있기 때문에 암산으로 풀어낸다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는 않다. 도형이나 함수의 그래프도 직접 손으로 그리지 못할 뿐이지 기본적인 계형을 알고 나면 식만 봐도 좌표가 문제를 풀어낼 정도로는 연상되기 때문에 어떨 때는 종이에 그리는 사람들보다 빠를 때도 있다. 대학 다닐 때도 친구들이 어려워하는 과목과 내가 어려워하는 과목들이 극단적으로 다르긴 했지만 중요한 건 세부전공으로 들어갈수록 시각장애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분야들이 꽤 많다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수학을 싫어하거나 어려워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지만 난 이게 시각장애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대학동기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다보면 일반학교에서도 수학은 그다지 인기 있는 과목은 아닌데다가 진정으로 수학이 좋아서 하는 아이들은 더더욱 극소수란 결론을 내리곤 한다. 우리 학교의 아이들도 그 또래의 친구들과 같은 마음으로 수학을 어려워하는 것이지 시각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초등학교 때부터 암산으로 공부한 친구들은 계산하는 데 특별히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사물에 대한 관찰력이 있는 친구들은 도형이나 그래프를 연상하는 데도 훌륭한 성취도를 보인다. 초기에 암산법을 가르치거나 그래프나 도형의 기본형을 가르쳐 주는 데는 여러 가지 교구를 쓰기도 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하지만 그 시간만 견뎌내면 그 이후의 수업상황은 특별할 것도 없다. 몇 년에 한번이긴 하지만 수학을 너무나 좋아하는 제자들이 나타나기도 하고 우리나라에도 시각장애를 가진 카이스트 수학박사님까지 계신 걸 보면 수학과 시각과는 특별히 안 좋은 관계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단지 모집단의 개체가 적기 때문에 조금은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이란 생각을 한다.
 내게 수학교사라는 꿈을 꾸게 해준 건 교생 때 만난 모교의 후배들이다. 선생님은 뭔가 특별한 교수방법을 가지고 있다는 아이들의 말은 내 꿈마저 바꾸게 만들었다. 사실 특별한 교수방법이었다기보다는 시각장애인들이 느끼는 조금은 다른 어려움을 내 방식대로 해결해줬을 뿐인데 아이들에겐 신선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같은 어려움을 느꼈기 때문에 따로 고민하지 않아도 짐작되는 공감대 그런 것들이 내가 있어야 할 곳을 정해준 계기가 되었다.
 살다보면 수학보다 몇 백배 몇 천배 어려운 일들을 접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가장 약한 부분이 뜨끔거리고 신경쓰이지만 모든 문제의 기원이 거기라고 생각하는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수학에서 같은 문제라도 다양한 해법이 존재하는 것처럼 살면서 느끼는 모든 어려움도 각자에 맞는 무한히 많은 돌파구가 있다고 생각한다. 단지 모양은 다르겠지만 그것은 어느 것도 불가능으로 몰아갈 수는 없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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