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와 시각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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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와 시각장애인
  • 편집부
  • 승인 2015.06.08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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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준 / 한빛맹학교 수학교사

내가 특수학교 입학을 결정했던 오래 전 그날! 부모님께서는 또 다른 걱정을 시작하셨다. 단호한 태도로 기숙사 입소를 주장하던 아들을 설득하는 것이었는데 내 고집이 얼마나 셌던지 결국 며칠도 가지 않아서 고집꺾기 작전은 포기하시는 쪽으로 가닥을 잡으셔야만 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들을 떠나보내는 부모님의 심정! 게다가 그 아들은 두 눈까지 보이지 않았으니 그 걱정의 크기는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였을 것이다.

그리하여 어머니께서 생각해내신 방법이 아들에게 휴대전화를 사 주시는 것이었다. 언제든지 문제라도 생길 것 같으면 전화를 걸으라는 것이었는데 걱정을 덜어드리는 대가치고는 20년 전 150만원이라는 가격은 너무도 큰 부담이었다. 어찌 되었든지 나의 첫 번째 휴대전화는 그렇게 내 허리춤에 매달리게 되었다.

사실 그 녀석은 어머니의 의도와는 다르게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였는데 거는 것뿐만 아니라 받을 때도 몇 백 원씩 내야 하는 요금 부담 때문에 맘 편히 걸 수도 받을 수도 없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진동기능이 없어서 웬만하면 꺼두어야 하고 배터리도 두 시간을 못 견디고 방전소식을 알려왔던 걸 생각해보면 차라리 기숙사에 유선전화를 놓는 게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어쨌든 그 녀석은 100년이 넘는 국립 서울맹학교의 역사 속에서 교직원과 학생을 통틀어 최초로 휴대전화를 소유했던 사람이라는 훈장만 내게 남긴 채 그리 긴 인연을 이어가지는 못했다.

두 번째로 내 허리에 채워졌던 친구는 말하는 삐삐였다. 숫자밖에는 전달할 수 없었지만 점자의 점형번호를 이용하면 시각장애인들은 간단한 대화 정도는 주고받을 수도 있었다.

음성메시지라도 오면 공중전화를 찾아가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었지만 맘에 드는 여학생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설렘은 그 정도는 아무 문제도 아닌 것으로 만들곤 했다. 그리고 그 번거로움조차도 사촌 여동생의 감동적인 라디오 사연으로 얼마 가지 않아 해결되었는데 DJ가 보내준 씨티폰이라는 선물은 공중전화보다도 저렴한 통화료로 휴대전화의 역할을 수행해주었다.

가뭄에 콩 나듯이 있던 기지국 문제는 PCS라는 단말기가 나오면서 말끔하게 해결되었다. 파격적으로 저렴해진 통화료와 단말기 가격도 매력적이었지만 장애인들에겐 요금할인까지 해주었기 때문에 학생들 주머니에는 급속하게 휴대전화가 들어가기 시작했다.

진동모드도 생기고 벨소리도 다운받을 수 있다는 재미난 기능들은 신세계에 가까웠지만 문자메시지를 맘대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게 나에겐 작지 않은 불편함이었다.

보내는 거야 자판을 외워서 어찌어찌 보내면 되었지만 수신메시지를 확인하려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방금 사귄 여자친구와의 대화에서까지도 닭살멘트는 어쩔 수 없이 생략해야만 했다.

90년대를 마감하면서 급속하게 늘어난 차들과 휴대전화기는 생각하지 못한 쪽에서 나에게 문자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회로 이어졌다.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이 위험하다는 연구들이 속속 발표되면서 핸즈프리라는 기능으로 문자를 읽어주는 전화기들이 발표되기 시작했다. 긴 메시지는 여전히 접근불가였지만 40자 정도면 어떤 대화도 가능했다.

휴대전화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발전하고 있다. 화면은 올컬러를 지나 고급사진기보다도 더 선명한 화질로 진화하였고 벨소리는 몇 화음이 아니라 어떤 소리도 가능해졌다.

통화나 문자만을 보내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뉴스를 보고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스마트폰이 되었다. 나같이 눈이 불편한 사람들에게는 옷의 색깔도 알려주고 길을 안내해 주기도 한다.

길을 안내해주고 각종 일정과 정보들을 때마다 푸시알림으로 보내주는 이 친구는 시각장애인들에겐 필수품 그 이상이 되어버렸다. 나는 아침이면 폰의 알람소리를 듣고 일어나서 오늘의 날씨를 확인한다.

출근하러 갈 때는 지하철이나 버스의 패스로 사용하고 카카오톡으로 부서회의 내용을 점검한다. 업무시간에도 중요한 내용을 녹음하거나 메모하고 쉬는 시간에는 영화를 볼 수도 있다.

예전에는 특수한 회사에서 장애인용으로 만들어 준 보조기기들이 하던 일을 이제는 스마트폰 하나면 모두 해결할 수 있다.

터치스크린이지만 간단한 동작들만 익히면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게 사용할 수 있다. 스마트폰은 내가 세상을 향해 좀 더 편하게 소통할 수 있는 도우미 역할을 해주고 있다.

어릴 적 어머니의 걱정으로 시작된 이 녀석들과의 인연은 그들이 발전해오면서 내 삶도 덜 불편해지고 윤택해지게 되는 공감대를 형성해주고 있다.

앞으로는 교과서도 스마트 기기에 맞춰서 제작한다고 하고 자동차도 스스로 움직이는 쪽으로 출시될 거라고 한다.

내가 이 친구들의 발전을 기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말 많이도 도와준 전화 친구들에게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리고 내가 스마트폰을 편히 사용할 수 있도록 세심하고 완벽한 디자인을 만들어준 스티브 잡스 아저씨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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