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엄마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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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엄마들을 위해
  • 편집부
  • 승인 2015.03.20 11:23
  • 수정 2015-03-20 11: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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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준 / 한빛맹학교 수학교사
▲ 안승준 / 한빛맹학교 수학교사

며칠 전 영아반 담임선생님의 부탁으로 어머니들과의 자리에 초대되었다. 개정된 특수교육법 덕분에 교육기회 확대와 조기재활 등의 혜택을 받게 된 두 돌쯤 된 꼬마 녀석들이 있는 반이었다. 여기저기서 울고 기어 다니고 어르고 달래고 하는 풍경이 교실이라기보다는 어린이집이나 보육시설에 가까워 보였다.

갑작스레 문을 열고 들어온 커다란 남자어른의 등장에 아빠인지 아저씨인지 형인지 온갖 혼란스러운 호칭들을 내뱉는 녀석들의 여리디 여린 손과 악수를 나누고 인사를 나누면서부터 나는 뭔지 모르게 울컥하고 올라오는 무언가를 억지로 참아야만 했다. 천진난만함이란 단어조차 부족할 정도로 순수한 아이들의 웃음과 너무 예쁜 옹알이들이 그 녀석들의 기운 빠진 눈과 함께하고 있다는 것이 같은 입장인 나에게 조차도 쉬운 받아들임은 아니었던 것 같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본다는 것과 그것을 누군가의 설명으로만 상상해야 하는 것이 무슨 차이인지조차 모르는 조막손들이 호기심 어린 손으로 나를 더듬어 갈 때 내 표정근들은 웃고 있었지만 감정을 감추라는 강력한 뇌의 지시가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음도 분명했다.

책상과 의자 대신 카펫이 깔린 교실에서 그 녀석들의 어머니들과 마주 앉아서 내 얘기를 시작했다. 처음 시력을 잃고 특수학교에 입학하고 대학을 가고 교사로 서기까지 별것 아닌 스토리에도 눈물지을 그분들의 뻔한 반응을 막고 싶은 어설픈 내 유머들은 별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많이 힘들지는 않았냐?” “죽고 싶은 때는 없었냐?” “공부는 어떻게 했냐?” “선생님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라고 쉴 새 없이 아이들을 대신해서 묻고 있었지만 원하는 대답은 미리 정해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단지 20여 년간 먼저 겪은 나의 입을 통해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었으리라.

장애가 일상이 되어 이제는 힘들거나 불편하거나를 느끼는 것은 남들의 것과 조금 다를 뿐이지 특별하지는 않다는 대답을 했다. 자취를 하고 여러 여자 친구도 만나고 외국에도 자주 간다는 말을 묻지도 않았는데도 무용담처럼 늘어놓았다.

쉴 새 없이 젖어가는 손수건과 휴지들을 느끼면서 난 언젠가의 나의 어머니를 느끼고 내 어머니를 위로하려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굳게 닫혀버린 아들의 두 눈에 바늘구멍만큼의 빛이라도 넣어줄 수 있다면 손발이 부르트고 온 몸이 녹아내리는 줄도 모르던 내 어머니가 보였다. 어스름한 새벽부터 땅거미 진 늦은 밤까지 선배 어머니 집이며 복지관을 뛰어다니시면서 아들의 교재를 구하는 일에 자존심의 바닥까지 내려놓으시던 우리 어머니가 보였다. 남부럽지 않게 성장한 지금의 나에게까지 반찬을 입에 넣어주시고 가랑비라도 내릴 기미가 보이면 새벽부터 우산 들고 아들의 출근길로 달려오시는 울 어머니에게 이제는 괜찮다고 말하는 중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찬물이나 뜨거운 물이라도 죽을 정도만 아니라면 들어가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견딜만해진다. 장애도 경중의 차이는 있더라도 당사자는 살다보면 잊고 지내는 시간이 대부분일 것이다. 장애인을 위한 제도도 서비스도 기술력도 이제는 살만하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개선되었다. 부족한 부분이 물론 있지만 나아지리란 기대 정도는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들이 그렇게 되기까지 곁에서 그들 못지않게 힘들어 하고 있는 가족들에 대한 지원은 너무도 부족한 것 같다. 적절한 도움이든 동정이든 간에 나는 많은 혜택을 누리고 지금까지 왔고 이제는 불편함은 있어도 상처는 없다. 그럼에도 내 동생은 나를 향한 불특정 다수의 댓글에도 눈물짓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오늘도 아들의 미래를 걱정하시며 불판을 갈고 계신다.

내게는 아직도 세상을 다시 볼 수 있다는 희망이 있고 그렇게 되고 싶다는 간절함도 있다. 단지 하나 두려운 것이 있다면 나로 인해 20년 동안 몇 배는 더 변해 있을 어머니 아버지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이다.

영아반 어머니들에게 너무 아이들만 생각하지 마시고 즐겁게 사시라고 부탁드렸다. 모임도 가시고 여행도 가시고 취미활동도 꼭 해야 한다고 몇 번씩 강조해서 얘기했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 강백수의 노래처럼 어느 날 타임머신이 발명된다면 20년 전으로 날아가 내 어머니에게 꼭 해드리고 싶었던 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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