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는 사법부의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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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가는 사법부의 시계
  • 편집부
  • 승인 2012.01.06 00:00
  • 수정 2013-01-25 11: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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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막바지에 법원으로부터 날아든 한통의 뉴스가 진정되어 가는 장애인들의 가슴을 또 한 차례 후벼 팠다. 대전 지적장애여중생 집단성폭행 가해자 16명에게 고작 '소년보호처분' 판결을 내려 사실상 면죄부를 준 것이다. 지난해 ‘도가니’ 사건을 계기로, 미성년자 및 장애인 대상 성폭행 사건 관련 양형기준을 대폭 강화했다던 대법원이 아니던가. 그런 대법원의 발표와는 달리 막상 재판장에서는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었다. 광주 인화학교 지적장애여성 성폭행 사건이 불거지자 3부(입법부, 사법부, 행정부)가 나서서 야단법석을 떨며 뒷북 대책을 내놓을 땐 언제고. 미흡하나마 관련법 개정과 제도 보완으로 2011년 한해가 마무리 되는가 싶더니 그게 아니었다. 판사들의 법 감정이 국민들의 법 감정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듯하다. 시민사회단체들이 강력 반발하고 나선 것은 당연하다.

오죽했으면 장애인 아이를 둔 부모로서 법원에 불이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시민사회단체가 법과 사회정의를 무너뜨린 유전무죄 판결이라며 분노하고 있다. 사건은 2010년 5월 대전지역 4개 학교의 고교생 16명이 채팅으로 만난 지적장애3급 여중생(15)을 약 한 달에 걸쳐 집단 성폭행한 사실이 피해자 상담을 통해 밝혀지면서 법정에까지 이르게 됐다. 그런데 지난 27일 대전지방법원 가정지원 소년1단독 재판부는 어이없게도 가해자 16명에게 소년보호처분을 내린 것이다. 이번 판결로 가해자들은 보호자와 함께 생활하면서 40시간의 성폭력 방지 프로그램을 수강하고 1년 동안 매달 1회씩 보호관찰소에 나가 면담만 하면 면죄부를 받게 된다. 그뿐인가. 경찰의 불구속 수사,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 형사법원의 소년원 송치, 수능시험을 위한 선고 연기 등으로 국정감사에서 가해자 봐주기가 아니냐는 질타까지 받았었다.

도가니법을 만든다며 입법부가 나서고, 대법원이 장애인을 상대로 한 성범죄를 비장애인 상대 성범죄보다 훨씬 무겁게 처벌하겠다며 강화된 양형기준까지 발표하지 않았는가. 장애인 성폭행범에 대한 가중 처벌을 징역 8~12년으로 높이고, 미성년자나 장애인 상대 성폭행에 대해 집행유예가 아닌 실형을 선고하도록 권고해 놓고도, 법원은 이를 헌신짝처럼 취급해버린 것이다. 사건 주도자와 강압에 못 이겨 가담한 가해자를 구분하지 않고 똑같은 양형을 적용한 것도 상식에 어긋난다. 사건을 주도한 가해자들은 최소한 형사법원으로 재송치하거나 소년법정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처벌을 했어야 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가해 학생들에게 지금까지 아무런 처벌도 내리지 않은 교육청도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법원이 스스로 법을 무력화시킨 판결을 해놓고도 법의 권위를 내세워 사회정의를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사법부의 이 같은 이중적 태도에 피해를 보는 것은 힘없는 서민들이다. 지난해 아슬아슬하게 국회를 턱걸이로 통과한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에 장애계가 그렇게 목매달았던 대가가 이런 것이라면, 무엇인지 한참 잘못 된 듯싶다. 제2의 도가니가 없도록 하겠다며, 시설 내 인권학대 등을 비롯한 법인 비리를 막겠다며, 그토록 사력을 다해 법까지 바꾸지 않았는가. 이번 판결로 사법부의 시계가 10년 전으로 되돌려졌다는 말까지 나왔다. 법의 여신 디케는 오른손에 칼, 왼손에 저울을 들고 있다. 칼은 법의 엄정함을, 저울은 만인을 평등하게 대한다는 법의 공정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정작 약자들이 보는 이 땅에서의 디케의 저울은 고장이 난 것일까,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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