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등급심사, 원점에서 재검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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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등급심사, 원점에서 재검토하라
  • 편집부
  • 승인 2011.02.24 00:00
  • 수정 2013-01-25 16: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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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대한재활의학회가 내놓은 ‘뇌병변장애등급판정기준 개선 연구용역 결과보고서’가 공개되면서 장애계가 뿔이 났다. 보건복지부가 4월 시행을 목표로 뇌병변장애등급판정기준을 개정한다면서 용역을 맡겨 내놓은 결과보고서를 보면 당초 전면개정 약속과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공개된 연구용역 결과보고서는 기존 수정바델지수를 그대로 사용한 채 등급별 항목 점수만 조정하고 편마비 장애인 관련 기준만 수정해 내놓은 것이다. 장애계가 불안해하고 분노하는 까닭은 당연하다. 작금의 복지부 행태를 볼 때 앞으로 뇌병변장애등급판정기준이 대한재활의학회 연구용역 결과대로 추진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해가 바뀌자마자 벌써 작년에 말썽을 빚었던 장애등급심사 사태를 잊은 듯하다. 지난해 장애인들은 개악된 장애등급심사기준 때문에 심사를 받은 장애인 중 37%가 등급이 하락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그 결과 이들은 각종 사회복지서비스 대상에서 탈락하면서 심각한 생활고를 겪어야 했다. 장애등급이 사회복지서비스와 연계되어 등급판정 결과에 따라서 서비스를 받지 못하거나 축소되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던 것이다. 현재 활동보조서비스나 장애인연금과 같은 대표적인 장애인복지서비스의 대상 선정기준이 장애등급에 따라 정해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 장애인들은 노숙농성과 단식농성을 벌이며 장애등급심사를 폐지하라고 요구했고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여야 국회의원들이 한 목소리로 현행 장애등급심사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했었다.

그 결과 복지부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2011년도 예산심의 자리에서 부대결의를 통해 가장 문제가 심각했던 뇌병변장애인 등급판정기준의 평가도구인 수정바델지수에 대해 전면수정을 약속한 바 있다. 여기서 전면수정이란 의학적 기준 외에 복지서비스 욕구 및 근로능력 상실률 등을 고려해 등급판정제도를 개선한다는 의미였다. 현재 보행 및 일상생활 동작의 수행능력을 기초로 전체 장애기능 정도를 판정하는 평가도구인 수정바델지수는 장애인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행정편의적인 평가방법이라는 비판을 수용한 것이다.

그래놓고 복지부는 이제 와서 태도를 바꾸어 사실상 수정바델지수 고수 입장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지난해 국회에서 한 약속은 위기모면용이었다는 말인가. 게다가 이번 연구 결과는 이미 지난 11월에 대한재활의학회에서 내놓은 결과를 다소 수정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박은수 의원의 주장이다. 박 의원은 오히려 당시 연구 보고서가 수정바델지수의 측정지표 중 계속 논란이 돼왔던 배변?배뇨 지표를 삭제하는 것으로 최종수정안을 내놓은 데 반해, 최근 연구안은 배변?배뇨를 제외한 판정안의 경우 과상향의 우려가 있다며 배변?배뇨 지표를 존치하는 것으로 수정됐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연구과정에 복지부의 입김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한 대목이라고 박 의원은 주장한다.

만약에 이것이 사실이라면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연구결과를 조작, 왜곡해 공무원 입맛대로 정책을 바꾸고 이미 짜진 각본대로 밀어붙이면서 혈세는 혈세대로 쏟아부어가며 연구를 맡기고 대안을 내놓는 시늉만 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장애계의 반발로 공청회조차 무산된 이번 ‘연구용역 결과보고서’는 어느 모로 보아도 개선안이라고 보기엔 미흡하다. 장애계가 수정바델지수 자체를 신뢰하지 못하는 마당에 숫자 변경만으로 장애등급판정의 잣대로 쓴다는 것은 웃음거리일 수밖에 없다. 이미 객관성과 신뢰성을 잃은 보고서는 폐기돼야 마땅하다. 장애계는 장애등급제 폐지를 촉구하고 있음을 정부는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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