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만난 사람] “우리의 작은 실험 통해 뇌전증 이해가 높아졌으면…”_ 장누리/뇌전증 생활실험실 ‘번쩍번쩍 에필랩’ 참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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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만난 사람] “우리의 작은 실험 통해 뇌전증 이해가 높아졌으면…”_ 장누리/뇌전증 생활실험실 ‘번쩍번쩍 에필랩’ 참가자
  • 정은경 기자
  • 승인 2024.03.21 13:20
  • 수정 2024-03-26 10: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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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3월 26일은 ‘퍼플데이’다. 퍼플데이는 2008년 뇌전증을 갖고 있는 캐나다의 캐시디 메건이라는 소녀가 뇌전증 증상 억제에 도움을 주는 라벤더의 색인 ‘보라색’ 옷을 매년 3월 26일 입자고 제안한 데서 비롯되었다. 국내에서는 (사)한국뇌전증협회가 2016년부터 이날을 기념해 캠페인 행사를 시작한 이후 매년 이날을 전후로 뇌전증 인식개선 캠페인이 벌어지곤 한다. 그럼에도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뇌전증에 대한 인식은 오해와 편견으로 가득하다. 이런 분위기 속에 뇌전증 아이(뇌전증은 소아와 노인에게서 발병률이 높다)를 키우고 있는 엄마들은 외롭고 고단하다. 더구나 아이가 지적장애까지 갖고 있다면…. 하지만 그런 자신의 딸이 ‘빛나는 너’라서 ‘느려도 괜찮다’며, 뇌전증 인식개선 활동과 부모 교육에 열심인 한 엄마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장누리. 그녀를 이제 막 봄기운을 품기 시작한 햇살이 반짝이는 날, 그녀의 집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그녀와의 일문일답을 통해 뇌전증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바람을 들어보았다. _정은경 기자

간단한 본인 소개를 부탁한다.

“온유를 낳은 이후에는 발달장애아 이온유의 엄마가 가장 앞에 나오는 정체성이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는 온유의 엄마로만 살아왔다. 그러다 온유를 통해 다시 찾은 나의 정체성이 미술치료사이고, 통합교육을 위한 부모 자조모임 와이낫의 회원이다. 여기까지가 현재의 나다. 아! 장애아이를 둔 엄마로서 경험을 나누는 부모 교육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현재 중점을 두고 있는 활동은?

“어느 날 나를 돌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지 않을까. 엄마가 힘들면 말 한마디라도 좋게 안 나간다. 그래서 요즘은 엄마들을 위한 수업을 대면, 비대면으로 진행하고 있다. 아무래도 부모 교육은 비대면 수업이 많다. 줌을 통해 수업을 한다. 복지관 등에서 부모 교육을 마련해주면 그림책 등을 갖고 엄마들이랑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수업도 하고 있다. 이전에는 아이들 대상의 미술치료 수업을 많이 했다.”

 

부모교육 강의는 어떻게 들을 수 있나?

“장애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의 모임에 초대를 받아서 하는 경우도 있고, 비대면 강의의 경우 에스앤에스(SNS)나 부모 자조모임 등을 통해 신청을 받아 줌으로 진행을 한다. 실시간으로 참여가 어려운 사람들은 내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jjangnul)나 와이낫 홈페이지에 링크를 올려놓기도 한다. 물론 소정의 교육비을 받는다(기자가 확인한 결과 강의비는 1만 원이었다).”

 

온유가 늘 엄마 옆에 있을 텐데, 이런 활동이 가능한가?

“물론 도움의 손길들이 있다. 온유 이모, 그러니까 친정 언니가 활동지원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정규직으로 나가서 일할 수는 없고, 집에서 줌을 통해 강의도 하고, 일을 나갈 때는 온유 이모가 온유를 돌봐주기도 하고(지금도 이모랑 있다), 데리고 다니기도 한다.”

 

생후 18개월 첫 발작, 아무도 뇌전증인 줄 몰랐다

뇌전증장애, 등록장애인의 0.3%에 불과한 이유는?

 

온유가 장애가 있다는 것을 인지한 것은 언제였나?

“처음에는 장애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지만. 생후 18개월쯤 됐을 때, 밤에 아이가 경련을 일으켰다. 응급실에 가니 열성 경련이라고 하더라. 그리고 두세 번 더 그런 일이 있었는데, 병원 의사 누구도 뇌전증이라고 일러주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들도 몰랐을 수 있을 것 같다. 세 살 때인가, 다시 경련이 와서 병원을 가니 비로소 입원해서 검사를 받아보라고 하는 거다. 그렇게 온유가 뇌전증이란 것을 알았다.

사실 뇌전증으로 장애진단을 받기는 어렵다. 워낙에 증상이 다양하고, 뇌전증으로 장애진단을 받으려면 아주 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온유는 자라면서 발달이 현저하게 늦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입학 전에 검사를 받았고, 지적장애란 판정을 받았다.”

 

뇌전증 장애인이 적은 이유가 장애진단 받기가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 뇌전증의 다양한 증상은 어떤 것들이 있나?

“우리가 흔히 뇌전증이라고 하면 거품 물고 쓰러진다고 잘못 알고 있다. 뇌전증을 갖고 있다고 누구나, 언제나 대발작을 하는 것은 아니다. 여러 양상의 소발작들이 나타난다. 밥을 먹다 숟가락을 떨어뜨리거나 입을 쩝쩝거리는 등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멍하게 응시하는 증상, 경련 등 다양한 증상이 있다. 우리가 얼른 알아채지 못할 뿐, 이런 것들이 모두 소발작이다.  자기 아이가 밥 먹다 졸아서 야단을 쳤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소발작이더라는, 그래서 너무 미안했다는 엄마들도 많다. 그러다 그런 증상이 계속되면서 비로소 이상하다고 느끼고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 기본적으로 뇌전증에 대한 정보가 너무 적다.”

 

통계를 보면 2023년 현재 전체 등록장애인 265만2960명 중 뇌전증장애인은 7076명으로 약 0.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렇듯 뇌전증장애인이 적은 이유가 비단 장애진단을 받기 어려워서인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뇌전증장애인이 적은 데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뇌전증에 대한 편견뿐만 아니라 뇌전증을 갖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다른 장애도 있는 중복장애가 많아 다른 장애로 등록을 하는 것도 큰 이유로 작용한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 뇌전증 환자에 대한 편견이 심하다. 뇌전증이란 용어가 간질 대신 사용된 것도 불과 10년에 불과하다. 편견이 심한 만큼 당사자이든 부모이든 굳이 자신이 뇌전증을 갖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고, 약으로 잘 조절되는 사람은 장애진단을 받기 어렵다. 약으로 조절이 안 되는 심한 경우에만 뇌전증장애로 진단된다. 그리고 온유처럼 다른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도 많아 다른 장애로 등록을 해 뇌전증이 세상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게 아닐까 싶다. 그러다 보니 정작 내 아이가 뇌전증인데도 도움을 받을 만한 곳이 적다. 내 아이가 자주 경련을 하는데, 혹은 가끔 멍 하는 상태가 자주 반복되는데 이게 뇌전증 증상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다는 부모들이 많다. 온유 같은 경우 대발작으로 경련을 해서 병원을 갔는데도 아무도 ‘뇌전증’의 ‘뇌’자도 알려주지 않았다.”

▲ 지난 2월17일 대구에서 열린 에필랩 성과공유회에서. 와이낫 팀은 소아뇌전증 환자 가족들에게 실질적인 정보를 담은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말한 바와 같이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뇌전증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만연돼 있다. 그런데도 온유의 이야기를 『느려도 괜찮아 빛나는 너니까』라는 제목의 책으로 펴낸 이유는 무엇인가?

“온유가 뇌전증 진단을 받았는데, 도대체 이 병이 어떤 것인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누구도 자세히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인터넷을 뒤져도 한의원 같은 병원 광고만 뜨지, 공신력 있는 정보가 없었다. 온유 낳기 전, 미술치료사로 활동하면서 머리로만 알았던 소아뇌전증·발달장애아 부모의 삶은, 막상 내가 당사자가 되니까 많이 달랐다. 나와 같은 이들이 있을 것이란 생각을 했고, 그래서 블로그에 온유와 함께하는 날들을 일기 형식으로 솔직담백하게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됐다는 격려와 지지를 받았고, 그리고 때로는 서로의 경험을 나누며 위로를 받았다. 나의 경험을 통해 소아뇌전증·발달장애아 부모들이 좀 더 힘을 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책을 엮었다.”

 

뇌전증 대처 가이드북 <에피튜드> 널리 보급되길

“뇌전증 발작 시 심폐소생술 하지 마세요!”

 

책 출간 이후 활동 폭이 넓어진 것 같다. 뇌전증과 관련한 활동으로 최근에 ‘에필랩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에필랩 프로젝트가 어떤 것인지 소개 부탁한다.

“정확한 명칭은 ‘뇌전증 생활실험실 <번쩍번쩍 에필랩>’이다. 대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내마음은콩밭협동조합’(대표 심재신)과 ‘한국에자이’가 주최 및 주관하고 한국뇌전증협회가 협력해 진행한 활동이다. 쉽게 말하면 뇌전증 당사자 및 부모들이 팀을 짜서 일상에서 겪는 불편함을 발견하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생활 속에서 실험해 보고 구체적인 해결책(또는 제안)을 구현해 보는 활동이다. 작년 10월 말경 사전 모임을 시작해 올 2월 19일 성과공유회를 가졌다. 서울(와이낫 팀), 대구(이펙션 팀), 칠곡(유후 팀), 창원(파인 팀), 제주(한걸음더 팀) 각 지역에서 한 팀씩 다섯 팀이 실험에 참여했고, 결과물을 공유했다. 성과공유회를 통해 각 팀들의 실험 성과를 나누었는데, 정말 꼭 필요한 정보들을 실질적인 방법으로 전달하려고 한 노력들이 보였다.

우선 대구 어펙션 팀은 뇌전증의 다양한 발작 양상과 원인, 대처법을 소개하는 릴스를 만들었고, 칠곡 유후 팀은 뇌전증 환자 가족이 경험하는 편견과 오해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지역 내 뇌전증 인식개선 캠페인과 자조모임을 운영했다. 창원의 파인 팀은 뇌전증 병력이 있는 아이가 학교에서 안전하고 즐겁게 생활할 수 있도록 교사를 중심으로 숙지할 수 있는 가이드 매뉴얼을 만들었고, 제주 한걸음더 팀은 제주도 내의 열악한 뇌전증 치료·지원 환경을 파악하고 그 상황을 알릴 수 있는 보고서를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속한 서울 와이낫 팀은(사실 제주도 팀에도 와이낫 회원들이 속해 있어 서울 와이낫 팀이라고 하기가…(웃음)) 일상생활에서 뇌전증을 좀 더 많이 알리자는 것을 목표로 뇌전증에 대한 정보를 함축해서 알려주는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텍스트보다는 부모들이 직접 찍은 영상을 중심으로 꾸며 보려 했는데, 모인 영상이 그리 많진 않다. 뇌전증 아이 부모들이 어렵겠지만 아이들의 영상을 많이 기증(?)해 주면 더 유익한 사이트가 되지 않을까 싶다. 뇌전증 발작 여부 확인법, 초기에 어떤 병원에 가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도움을 받을 만한 협회나 센터에 대한 정보 등을 담았다. 성과공유회 이후 사이트 정비를 위해 잠시 막아 놨지만 곧 보다 잘 정비된 모습으로 재오픈할 예정이다. 소아뇌전증 환자 가족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에필랩을 통해 만들어진 뇌전증 대처 학교용 가이드북 <에피튜드> 표지

굉장히 의미 있는 실험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런 프로젝트를 어떻게 알게 되었나?

“뇌전증에 대한 정보에 목말라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다 뇌전증 환자 자조모임 ‘따뜻한 시선’을 알게 되었고, 그 모임의 대표인 심재신 대표와 연락이 닿아 『느려도 괜찮아 빛나는 너니까』 북토크를 대구에서 하기도 했다. 그 후에도 계속 정보를 주고 받았다. 그렇게 네트워크를 형성하다 보니 이렇게 좋은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에필랩에서 가장 인상적인 성과물을 추천한다면 어떤 것인가?

“대구 팀이 만든 <뇌전증과 함께하는 안전하고 즐거운 생활 태도 가이드 에피튜드-학교편>이다. 뇌전증 병력이 있는 학생의 입장에서 서술했다. 당사자들의 고민들을 긴 줄글보다는 구어체와 그림으로 설명했다.  정보와 지식보다는 이 학생과 학교 구성원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대화하면 좋을지 담았다. 뇌전증이 무엇인지, 친구들은 뇌전증이 있는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뇌전증을 숨기고 싶은 이유, 학교에서 발작이 일어났을 때, 자칫 차별이 될 수 있는 대처보다 발작이 없을 경우엔 똑같이 대해주면 좋다는 내용을 담았다. 책의 이름은 뇌전증을 뜻하는 Epilepsy와 태도를 뜻하는 Attitude의 합성어다, 많은 학교에 보급되어 뇌전증 학생들이 제대로 된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단 생각이다. 대구 팀의 심재신 대표 블로그(http://alturl.com/mv22r)에 피디에프 파일이 올려 있으니 많은 교사들이 활용하길 바란다.”

 

장누리 씨를 통합교육 모임 와이낫을 통해 알게 됐다. 그 후 와이낫이 개최하는 대면 강의에도 가 보고 그의 도움으로 발달장애 양육자들의 생생한 경험담과 의견도 많이 들었다. 그러다 에필랩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비로소 ‘아, 온유가 뇌전증도 있는 아이였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인터뷰 후 그의 책도 꼼꼼히 다시 읽었다. 책 속에는 “온유가 경련을 안 한 지 백십일 째” 식의 표현이 종종 등장한다. 그만큼 뇌전증 아이를 기르는 엄마들은 마음을 졸이며 생활한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한 시간이 넘는 인터뷰 동안 온유가 외할머니의 손을 잡고 카페에 들어와 낯선 이와 이야기를 하는 엄마를 한참 쳐다보다 의젓하게 돌아갔다. 그래도 엄마의 마음은 바빠질 수밖에 없을 것 같아 덩달아 기자의 마음도 조급해졌다. 마지막으로 뇌전증 자녀를 기르는 엄마로서 세상에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를 물었다.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온유는 약을 복용하고부터는 발작을 거의 하지 않았다. 뇌전증 병력이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약으로 증상을 조절하며 잘 살고 있다. 그냥 평범하게, 우리 이웃, 우리 친구로 대해 주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일상에서 뇌전증 발작을 만났을 때 응급수칙 정도는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뇌전증으로 발작이 일어났을 때 심폐소생술을 하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길 바란다.”

장누리 씨의 마지막 바람이 이루어지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뇌전증 발작 시의 응급수칙 SSS를 함께 게재한다. 이 응급수칙 이미지는 한국뇌전증협회 공지사항에 공개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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