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휠체어 러닝머신 ‘휠리엑스’ 만든 캥스터즈_“배리어프리 피트니스가 실현되는 그날까지 무모한 도전 계속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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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휠체어 러닝머신 ‘휠리엑스’ 만든 캥스터즈_“배리어프리 피트니스가 실현되는 그날까지 무모한 도전 계속할 터”
  • 정은경 기자
  • 승인 2024.03.07 14:00
  • 수정 2024-03-07 2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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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장애인은 어떻게 운동을 할까. 휠체어 농구 선수나 휠체어 육상 선수의 이야기가 아니다. 보통의 휠체어 장애인들이 생활 속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은 무엇일까. 그들은 어디에서 운동을 할 수 있을까. 이런 궁금증을 해소하는 답을 지난해 제1회 전국장애인e스포츠대회에서 찾았다. 휠체어 레이싱 부문에 등장한 낯선 운동기구, 바로 휠체어 러닝머신이었다. 비장애인이 실내에서 러닝머신을 타듯, 휠체어 장애인도 러닝머신을 타고 운동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현실로 구현해 낸 휠체어 러닝머신 ‘휠리엑스’을 만든 청년 기업 ‘캥스터즈’를 알아본다. _정은경 기자

지난해 11월 25일과 26일 양일간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장애인e스포츠대회가 열렸다. 이스포츠가 2021년 정식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자연스럽게 패럴림픽에서도 정식 종목이 되었다. 이런 배경하에 열린 ‘2023년 전국장애인e스포츠대회’의 종목은 모두 7개로, FC온라인, 리그오브레전드, 카트라이더:드리프트, 닌텐도 테니스, 볼링, 휠체어 레이싱, 인도어 로잉이다. 이들 종목 중 특히 눈길을 끈 종목이 휠체어 레이싱. 다른 종목들이 컴퓨터 앞에서 모니터와 키보드, 마우스 혹은 콘솔을 갖고 경기를 치르는 것과 달리 휠체어 레이싱은 휠체어용 트레드밀(러닝머신) 위에 휠체어를 탄 선수가 열심히 손으로 휠체어를 굴려 그 기록으로 우승 여부를 다툰다. 한마디로 말 그대로 몸을 움직이는 ‘스포츠’인 셈.

이날 대회에서 휠체어 러닝에 동원된 기구가 캥스터즈의 ‘휠리엑스’다. 휠리엑스는 쉽게 말하면 휠체어용 ‘러닝머신’이다. 휠체어 사용 장애인이 자신의 수동 휠체어를 타고 이 기구에 올라 두 팔로 휠체어의 두 바퀴를 밀면서 유산소 운동을 하게 하는 운동기구다.

▲ 캥스터즈 사람들. 30대 초반 동갑내기 김강 대표(뒷줄 중간)와 조정흠 부대표(뒷줄 왼쪽)를 비롯해 모두가 패기만만한 청년들이다.

 

창업 이야기: ‘맨땅에 헤딩하기’

휠리엑스를 개발하고 판매하는 캥스터즈의 조정흠 부대표는 휠체어 사용자들이 운동을 할 만한 기구도, 장소도 없는 상황에 주목했다고 한다. 물론 이 같은 주목은 그의 경험과 필요에서 촉발됐다.

“4년 전에 아버지가 갑자기 하반신을 못 쓰는 척수장애인이 되신 거예요. 상상도 못 한 일이었죠. 그런데 중도장애인이 되신 아버지가 퇴원을 했는데, 운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없는 거예요. 동네 헬스클럽들에서는 모두 위험하다며 받아주질 않았죠.”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없을까, 아버지와 같은 휠체어 사용 장애인들이 효과적으로 유산소 운동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고민은 모색으로 이어졌다. 그때 지인의 소개로 만난 사람이 현재 캥스터즈의 김강 대표였다.

갑자기 만난 아버지의 장애 때문에 혼란스러워하던 조정흠 부대표에게 김강 대표는 가이드 역할을 해 주었다. 당시 토도웍스 해외 업무를 담당하고 있던 김강 대표는 부모님이 소아마비였다. 장애인 가족으로서 김강 대표는 이제 막 장애인 가족이 된 조정흠 부대표에게 휠체어 구매처부터 장애인 복지 혜택, 장애인 차량 등록 방법까지 구체적이고 자세한 사항들을 일러주었다.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곧 의기투합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우리 둘 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거였어요. 장애인도 운동을 해야 한다. 그런데 마땅한 기구가 없다. 장애인이 운동할 수 있는 운동기구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장애인을 위한 운동기구’라는 아이템으로 창업을 고려 중이었던 김강 대표와, 이미 화장품 제조유통업을 하고 있던 조정흠 부대표는 저지르기로 했다. “아무것도 없었어요. 자본은 물론 사무실도 없었습니다. 있다면 절실한 필요뿐이었습니다.” 조정흠, 김강, 두 젊은이에겐 내 가족을 위한 절실한 필요, ‘내가 해야겠다’는 사명감, ‘머릿속 아이디어를 구현만 해낸다면 성공하리라’는 자신감, 이 세 가지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들의 도전은 무모한 도전이었다.

머릿속에 있는 아이디어를 사업계획서로 옮겼다. 정부 지원사업인 예비창업패키지 지원을 위해.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했던가. 그들이 제출한 사업계획서가 예비창업패키지 사업의 최우수 기업으로 선정됐다. 지원금으로 7천만 원이 나왔다.

“처음부터 휠리엑스를 만든 건 아닙니다. 우선 생활에서 정말 필요한 작은 아이템부터 만들기로 했죠. 현실적인 조건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한 겁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휴대용 휠 클리너 ‘휠스터미니’였다. “휠체어를 탄 아버지와 산책이라도 하고 집에 들어올라치면 가장 큰 일이 휠체어 바퀴를 닦는 일이었어요. 밖에서 타던 휠체어 그대로 집안에 들어올 수는 없잖아요. 휠체어 바퀴를 닦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외출도 쉬운 일이 아니었죠.”

생활의 필요에서 나온 휠스터미니는 길이 24cm를 조금 넘는, 롤링 플랫폼과 브러시 두 개, 물휴지 등을 끼울 수 있는 미니스틱으로 구성된 제품이다. 휠체어에 탄 채 롤링 플랫폼 위에 올라가 바퀴를 구르면서 브러시로 흙먼지를 털고, 물휴지로 바퀴를 닦아내는 것.

▲ 캥스터즈의 제품들, 휠스터미니(왼쪽)와 휠리엑스(오른쪽).

 

제품 이야기: 불편함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인다

휠스터미니는 작은 제품이지만 캥스터즈에게는 소중한 제품이다. 이 제품을 개발하면서 휠리엑스를 구현할 기술을 터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휠스터미니를 통해 롤러에 대한 기술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각기 다른 휠체어 바퀴들이 롤러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등에 대한 데이터를 휠스터미니를 통해 얻으면서, 이 롤러 시스템을 좀 더 크고, 운동성을 강화하면 굳이 밖에 나가지 않아도 휠체어를 맘껏 밀 수 있는 기구를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은 거죠.”

휠리엑스가 출시된 것은 2022년 1월이었다. 제품 출시와 함께 이들이 한 일은 한양대학교 연구팀과의 임상실험이었다.

“임상실험은 우리 제품의 효과를 객관적으로 인증하기 위해서도, 그리고 보다 나은 제품의 진화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조정흠 부대표의 말이다.

실험군으로 척수장애인 16명을 모집했다. 실험군은 6주간 주 3회 휠리엑스를 이용한 운동을 했다. 그리고 운동 전후의 몸의 변화를 측정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실험군 모두 몸의 변화가 있었다. 평균 4.3kg 감량, 관절 가동 범위 58% 향상. 더 놀라운 것은 이런 신체적인 지표 향상이 아니었다. 실험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한 가장 큰 효과는 “독립성이 높아졌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집 앞 경사로가 너무 높아서 누군가 밀어주지 않으면 못 들어갔었는데, 이제는 스스로의 힘으로 휠체어를 밀고 혼자 힘으로 집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는 사람도 있었고, 사고로 목을 다쳐 손조차 움직이기 쉽지 않았는데, 6주간의 운동 후 혼자 슈퍼마켓에서 쇼핑을 할 수 있게 되었다(물론 휠체어에 앉아서)는 사용자도 있었다.

효과가 입증되면서 출시 첫해 초도 물량으로 제작한 100대가 완판됐다. 그러나 국내 시장은 너무 협소했다. 해외시장을 노렸다. 2022년 9월, 휠리엑스를 들고 세계 최대의 재활복지전시회인 ‘레하케어 박람회’를 찾았다. 그리고 박람회가 끝나고는 바로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에서 그들은 픽업트럭에 휠리엑스 몇 대를 싣고 ‘장애인’이란 단어가 들어간 기관들을 모두 찾아다녔다. 목적은 판매가 아니었다. 미국은 어떤 시스템으로 장애인 관련 용품(기구)을 구입하고, 어떤 혜택들이 있나를 알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 데이터를 갖고 한국으로 돌아와 미국시장을 분석했다.

결론은 미국 법인 설립이었다. ‘여기 우리가 있다!’는 선언적인 의미와 믿을 만한 회사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서는 필수였다. 미국시장에 휠리엑스를 첫선을 보인 지 8개월 만인 2023년 5월 미국지사를 법인 형태로 설립했다. 현재 미국시장 판매 실적은 대략 20대. 장애인재활시설 등에서 휠리엑스를 써본 개인들이 입에서 입으로 ‘좋다’는 소문을 낸 성과다. 강력한 바이럴 마케팅의 효과는 플래닛 피트니스와의 연결로 입증됐다. 플래닛 피트니스는 미국 전역에 2500개 정도의 가맹점을 갖고 있는 헬스클럽 체인이다.

▲ 지난해 11월 열린 제1회 전국장애인e스포츠대회 휠체어 레이싱 부문 경기 모습

 

내일 이야기: 우리의 제품은 진화한다

캥스터즈는 시장 확대와 함께 소비자의 요구를 반영한 제품을 만드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비장애인들이 러닝머신을 탈 때 느끼는 무료함은 휠체어 장애인들이 휠리엑스를 탈 때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무료함을 없애고 재미있게 운동을 하게 하자, 이런 생각에서 나온 것이 콘텐츠다.

캥스터즈가 휠리엑스에 더한 콘텐츠는 두 형태로 나뉜다. 그 하나는 휠리엑스를 타면서 할 수 있는 필라테스, 요가, 스피닝, 인터벌 트레이닝 등 피트니스 영상 콘텐츠를 담은 휠리엑스 데이터라 불리는 앱 플랫폼이다. 휠리엑스 데이터는 다양한 피트니스 콘텐츠뿐만 아니라 개별 운동 및 기간별 운동기록을 체계적으로 기록해 사용자의 운동 성과를 추적 관리할 수도 있다. 물론 휠리엑스 트레인(트레드밀)과 함께 제공된다.

다른 하나는 휠리엑스 플레이다. 휠리엑스 데이터에 추가할 수 있는 기능으로 키오스크 게이밍 시스템이다. 휠체어 레이싱은 물론 로드바이크(좌우 균형이 중요한 밸런스 레이싱 게임), 캐릭터를 이용한 일종의 방 탈출 게임인 ‘개미의 모험’이 탑재돼 있다. 탑재 게임의 수는 계속 늘릴 예정이다.

“스타트업들의 창업 3~4년 차를 흔히 데스밸리라고 하지만 우리는 다릅니다. 매출은 해마다 배가되고 있고, 우리의 가능성을 바탕으로 투자 유치에도 성공했습니다. 우리에겐 이제 더 큰 성장만이 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전국 헬스클럽 어디에서나 휠리엑스를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애인들도 당당하게 운동을 할 수 있는, 진정한 배리어프리 피트니스 클럽을 만드는 거죠.”

캥스터즈에게는 사업 확대보다 더 큰 비전이 있다. 바로 자신들이 성공사례가 되어 후배 기업을 양성하는 것이다. 장애인들을 위한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후배 기업이 많이 생길수록 세상은 살기 좋은 곳이 될 수 있고, 그것이 곧 ‘자신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일’이라는 생각에서다.

캥스터즈라는 다소 낯선 회사 이름에도 이런 그들의 생각이 반영돼 있다. 미국 신조어 사전에 ‘캥스터(KANGSTER)’는 ‘기꺼이 무엇이든 시도하고 소중한 사람을 절대 포기하는 않는 사람’이라고 풀이돼 있다. 이름 그대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무모한 도전을 계속하고 있는 이 젊은 기업을 통해 장애 관련 산업의 미래와 장애인도 피트니스 클럽에 장벽 없이 출입할 수 있는 그 날을 그려본다.

“일주일에 12km씩 탔더니 삶이 달라졌습니다”

  김현준/휠리엑스 1호 고객  

▲ 제1회 전국장애인이스포츠대회에서 경기를 하고 있는 김현준 씨.

제1회 전국장애인e스포츠대회 휠체어 레이싱 부문 3위에 오른 키 작은 사람, 그의 이름은 김현준이다. 대구에서 ‘커피 맛을 조금 아는 남자’라는 꽤 유명한 커피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는 휠체어 장애인. 경쟁자들 대부분이 중도장애인이라 자신보다 피지컬과 힘이 좋아서 예선만 통과해도 다행이다 싶었는데, 3위에 올랐다. 그는 그 비결은 “일주일에 두 번, 한 번에 6km씩 꾸준히 타온 휠리엑스 덕분”이라고 말했다. 그의 휠리엑스 총 주행 거리는 890km. 휠리엑스가 출시되자마자 구매한 1호 고객으로 지난 2년간의 기록이다.

“저는 골형성부전증을 앓고 있는 선천적인 장애인입니다. 그런데 지난 2022년 초에 뇌경색이 왔어요. 거의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죠. 퇴원을 하고 유산소 운동이 좋다고 해서 방법을 찾다가 휠리엑스를 만났습니다. ‘장애인 러닝머신’이라고 구글에서 검색했더니 뜨더라고요.” 망설임 없이 구매했다. 휠체어를 운동장에서 빠르게 밀면 운동이 되니까. 이것도 운동이 되겠다는 믿음이 있었다.

“처음에는 100m를 타는 데 47초가 걸리더라고요. 힘도 들고요. 그런데 몸이 달라지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운동을 하기 전에는 혈액순환이 잘 안 돼 다리가 늘 차가웠어요. 그런데 휠리엑스를 하면서 다리가 따뜻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일주일에 12km를 주기적으로 달렸죠. 1년쯤 지나니 100m 23초, 6km 주파기록이 50분에서 35분으로 기록이 단축됐어요.”

기록 단축은 곧 생활의 활력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휠리엑스를 만나기 전에는 가족들과 소풍이라도 갈라치면 누군가 자신의 휠체어를 밀어주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웬만한 거리는 직접 휠체어를 밀 수 있게 됐다. “얼마 전에 경주에 여행을 간 적이 있습니다. 황리단길이라고 있죠? 그 긴 길을 제가 직접 휠체어를 밀면서 다녔어요. 덕분에 즐겁게 여행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사업에도 도움이 됐다고 한다. 아무래도 체력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약해 초저녁쯤이면 피곤했는데, 이제는 끄떡없다고.

1호 고객으로 가장 오래 휠리엑스를 사용한 그에게 휠리엑스를 평가해 달라고 했다. 그는 “이런 운동기구를 만들어 주어서 캥스터즈에 고맙습니다. 그런데 욕심이 좀 생기네요. 디자인도 좀 예뼈지고, 지루하지 않게 운동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도 더 다양하게 개발되면 좋겠어요.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휠리엑스를 통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많이 많이 보급되기를 바랍니다.”라는 답을 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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