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사는 것이 당연한 세상을 꿈꿉니다.”_한국장애인인권상 인권실천 부문을 수상한 ‘EBS 딩동댕 유치원’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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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사는 것이 당연한 세상을 꿈꿉니다.”_한국장애인인권상 인권실천 부문을 수상한 ‘EBS 딩동댕 유치원’ 팀
  • 정은경 기자
  • 승인 2023.12.14 13:00
  • 수정 2023-12-15 14: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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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 첫날,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장애인인권 증진을 위해 헌신한 이들을 발굴·포상하고 공적을 널리 알리는 한국장애인인권상 시상식이 열렸다. 올해 한국장애인인권상 대상에 해당하는 인천실천 부문상은 장애인 이동권 운동에 헌신해온 배융호 이사와 EBS의 유아 프로그램인 ‘딩동댕 유치원’이 수상했다. 특히, '딩동댕 유치원‘은 유아 프로그램으로는 이례적으로 장애, 다문화, 조손가정 등 다양한 사회적약자 층의 어린이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사회적 감수성 콘텐츠를 제작했으며, 발달장애 어린이 캐릭터 별이를 통해 장애인식 개선에 기여한 공으로 대상을 수상했다. '딩동댕 유치원‘을 만든 사람들을 시상식 현장에서 만났다.
▲ 시상식 현장에서 만난 <딩동댕 유치원>팀. 왼쪽 두 번째가 이지현 피디, 세 번째가 정명 작가다.

2023년 한국장애인인권상 인권실천 부문은 한 사람과 한 콘텐츠가 수상했다. 그 한 사람은 장애인 이동권 향상을 위해 오랫동안 헌신해온 배융호 이사(한국환경건축연구원)이고, 한 콘텐츠는 한국교육방송(EBS)의 유아 프로그램 <딩동댕 유치원>이다. <딩동댕 유치원>이 상을 수상하게 된 이유를 시상식에서 배포된 리플릿을 통해 살펴보면 이렇다.

“EBS 딩동댕 유치원은 2022년 5월 개편 이후 신체장애, 발달장애, 다문화 등 다양성을 대표하는 인형 캐릭터와 아역들을 고정 출연시킴으로써 장애아동에 대한 인식개선과 참여 환경 조성에 이바지하고 있다. 사회적 감수성, 예술통합교육 등 다양한 아이템들로 현재까지 약 350편 이상 방송을 제작·송출해 다양성과 공존의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와 함께 농청각장애인 문화예술단체 ‘핸드스피크’와 협업하여 동요를 수어로 소개하는 ‘수어로 노래해요!’ 고정 코너를 제작하여, 아이들에게 친숙한 동요를 수어로 율동을 배우듯이 접할 수 있게 노력하고 있다. 특히, 올해 8월부터는 국내 최초 자폐스펙트럼 장애(ASD) 인형 캐릭터 ‘별이’가 등장하는 <안녕, 별아?> 편을 방송하여 발달장애 아동의 특성을 왜곡과 미화 없이 그려내려고 노력하는 등 장애인 인권증진에 크게 기여하였다.”

2019년 9월에 주요 채널에서 방영된 드라마 등장인물 2713명 중 장애인은 0.7%정도다. 이처럼 미디어에서 장애인을 좀처럼 만날 수 없는 우리 현실에서, 국내 최장수 유아 프로그램에서 장애인 캐릭터를 과감하게 등장시켰다는 것부터 센세이셔널한 일이 아닐 수 없는데, 심지어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편의 특집을 만들었다고 한다. 펭수, 뿡뿡이, 번개맨, 호빵맨 등등 꿈과 환상으로 가득한 비인간 캐릭터가 주인공을 맡아온 유아 프로그램에 인간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사회적 감수성을 이야기했다. 용기 있는 시도가 아닐 수 없는데, 의외로 사회적으로 선한 영향력을, 그것도 강하게 미쳤다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딩동댕 유치원>의 캐릭터들. 앞쪽 왼쪽부터 휠체어를 타는 지체장애 소년 하늘, 하늘의 이란성 쌍둥이 씩씩한 소녀 하리, 멕시코인 엄마를 둔 다문화 가정 소녀 마리,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상상력 보이 조아 그리고 발달장애가 있는 별이. 뒷줄 왼쪽부터 유기견 출신 댕구, 딩동댕 유치원의 원장선생님 딩동샘, 춤과 노래를 좋아하는 고양이 샤샤캣.

 

사회적 가치 투영한 비인간 캐릭터 론칭

시상식에서 만난 <딩동댕 유치원>의 이지현 피디는 프로그램에 사회적 가치를 담은 캐릭터를 출연시킨 이후 이미 여러 매체에 인터뷰를 많이 해 마냥 똑같은 말이 될 거라며, 별이 탄생의 또 다른 주역인 정명 작가와 함께 인터뷰에 응했다. 정명 작가는 <지식채널 e> 등 교양 다큐멘터리를 주로 집필해온 작가다. 이지현 피디는 작년 5월 프로그램 개편 때부터, 정명 작가는 작년 8월 <딩동댕 유치원> 안에 <딩동, 고민이 있어요>란 코너를 만들기 위해 합류했다.

“작년, 2022년은 어린이날 제정 100주년이 되는 해였어요. 이에 맞춰 보다 혁신적인 개편을 하자는 의견이 사내에서 나왔죠, 근데 나라는 사람이 이 세상에 없는 어떤 형태를 만들어내는 것에는 소질이 없더라고요. 상상력이 좀 떨어진다고나 할까요. 차라리 현실적인 캐릭터에 더 많은 아이디어나 영감이 떠오르는 편이지요. 나 자신이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다 보니 현실에 기반을 둔 아이템이나 에피소드에 대한 아이디어가 많았습니다.” 이지현 피디가 말하는 비인간 캐릭터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꿈과 환상이 아닌 현실에 발붙인 캐릭터가 탄생했지만, 그렇다고 장애, 다문화, 조손가정, 유기견 등의 캐릭터를 설정하는 것은 유아 프로그램에서는 상상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이지현 피디의 생각은 달랐다.

“새 캐릭터를 론칭하면서 이왕 현실에 발붙인 캐릭터를 쓸 거면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층위의 사람들을 대표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사회적 약자를 대표하는 캐릭터요.”

이지현 피디의 이 같은 생각은 유아 프로그램의 고전이자 명작이라고 할 수 있는 영국 BBC의 <세서미 스트리트>를 보면서 생겨났다. 다양한 캐릭터가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세서미 스트리트처럼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마을을 그리고 싶었던 것이다.

▲'사회적 감수성'을 다룬 코너 <딩동, 고민있어요>이 첫 편 "싫으면 싫다고 말해" 편의 한 장면. 조아와 마리의 갈등을 통해 신체의 자기결정권 문제를 다뤘다. 

 

사회적 감수성 다룬 <딩동, 고민있어요> 탄생기

여기에서 한 발 더 나가 사회적 감수성을 다뤄보자는 생각도 했다. 다소 낯설고 위험하지만, 의미 있는 이 시도가 현실화된 것은 정명 작가가 합류한 8월부터다. 사회적 감수성 이슈를 다루는 <딩동, 고민있어요> 코너의 첫 편(‘싫으면 싫다고 해도 돼’)은 8월 31일 방송됐다. 신체의 자기결정권을 다뤘다.

다큐멘터리 작가로 오랫동안 일을 해오던 정명 작가로서는 유아 프로그램으로 옮겨 오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이지현 피디의 삼고초려 끝에 <딩동댕 유치원>의 사회적 감수성 코너를 맡기로 결심했지만 찬찬히 돌아보면 자신의 의지도 강했던 것 같다고 정 작가는 말한다.

“학습 콘텐츠를 주문했으면 절대 오지 않았을 것에요. 이 피디가 나한테 요청했던 것은 사회적 감수성에 대한 이야기였고, 그 부분이라면 그동안에도 쭉 해왔던 것이라 용기를 냈죠. 특히 ‘지금 여기’가 요청하는 시대정신이 ‘환대’와 ‘돌봄’이란 생각을 갖고 있었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제 가슴 속에 도사리고 있던, 특히 장애에 대해서 당사자성을 삭제한 채 내보내지는 미디어 콘텐츠들에 대한 불만, 당사자성을 담아내고 싶다는 욕망(사실 당사자의 입장에서 말하는 탈시설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해보고 싶었다.), 이런 것들이 이 피디의 프로포즈를 수락하게 만든 것 같아요.”

정 작가가 <딩동댕 유치원>의 작가로 데뷔하는 ‘싫으면 싫다고 말해’의 대본이 완성됐을 때, 두 사람은 다시 고생의 길을 접어들었다. 빨간펜 선생님이 따로 없었다. 둘이 함께 빨간펜 선생님이 돼 대본 한 줄 한 줄을 고쳐가야 했다. ‘준석사급 공부’에도 어른의 문법과 아이들의 문법이 달랐으므로.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성인의 문법으로 말할 순 없었습니다. 유아 콘텐츠를 쓴다는 것은 곧 ‘드라마타이즈’하는 거였어요. 예를 들어 구르님 김지우 씨가 우리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성인 대상 프로였다면 ‘김지우 씨를 모셨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죠.’ 하며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되겠지만 우리 프로그램에서는 지우 씨가 딩동댕 마을에 사는 우리 이웃이 되는 거죠. 그래서 ‘애들아 나도 이러이러했어.’라며 경험을 나누어야 합니다.” 정명 작가의 말이다.

유아 프로그램에서 사회적 감수성을 이야기하자 반향은 생각보다 컸다. 휠체어를 탄 자체장애 캐릭터가 나오고, 심지어 장애 당사자가 나와 아이들과 어울리며, 일상에서 바라봤던 편견을 걷은 ‘(장애여도) 혼자 할 수 있다’ 혹은 ‘(장애이니까) 이런 건 좀 다른 방식으로 하면 돼’를 이야기하자 언론들이 주목을 했고, 장애아를 둔 부모는 물론 비장애아들의 부모들까지 ‘유익했다’ ‘새로운 것을 배웠다’며 호평을 쏟아냈다. 그런 반응을 동력으로 삼아 “(사회적)가치 지향”의 <딩동댕 유치원>은 올 8월 또 다른 주목할 만한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 <안녕, 별아?>를 통해 딩동댕마을의 일원이 된 별이는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가진, 자동차 박사다. 딩동댕마을의 친구들은 소리는 더 크게, 냄새는 더 짙게, 빛은 더 밝게 느껴지는 별이의 세상을 이해하면서 좋은 친구가 된다.

 

자폐스펙트럼장애 가진 ‘별’이의 등장

2023년 8월 18일 아침 8시 EBS에는 아주 낯선 아이 하나가 등장했다. <딩동댕 유치원-안녕, 별아?> 편의 ‘별’이었다. 별이는 자동차를 좋아하는 예닐곱 살 정도의 아이다. 그런데 친구들이 옆에 와서 말을 걸어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자폐스펙트럼을 갖고 있는 아이이기 때문이다. 이런 별이가 어떻게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가는지, 딩동댕마을의 친구들이 별이를 어떻게 알고 이해해 가는지를 아이들의 눈으로 그려냈다.

자폐스펙트럼을 아이들의 시선에서 표현해내는 일은 사실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 소재를 다룬 데는 제작팀의 사명감이 작용했다.

“언젠가는 다뤄야 할 이야기였어요. 연출팀이나 작가팀이나 모두 망설였죠. 긴 시간을 두고 ‘우리 이거 해야 돼’ 하며, 이슬비에 옷 적시듯 설득했어요.”(이지현 피디)

별이가 탄생할 때까지 전문가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특수학교 교장, 아동정신과 전문의의 맨투맨 식 자문을 받으며 탄생한 별이는 이전의 에피소드들보다 더 큰 호응을 얻었다. 공중파 뉴스 프로그램은 물론 중앙 일간지, 인터넷 커뮤니티까지 별이의 등장을 톱 이슈로 다뤘다. 별이를 탄생시키기까지 정명 작가는 “설악산 흔들바위가 어깨 위에 올라앉은 듯 외롭고 무서웠다”고 한다. 그러나 별이가 좀 더 많이 등장했으면 좋겠다는 반응이 이어지고, 별이는 이제 어엿한 딩동댕마을의 일원이 되었다.

<안녕, 별아?>가 방송된 후 프로그램 홈페이지 시청자 게시판에 올라온 발달장애 큰아이와 비장애 작은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작은아이가 제 형을 좀 더 이해하게 된 것 같다. 프로그램을 보고 난 뒤 화장실에 들어가 물을 틀어놓고 울었다.’는 시청 후기는 제작팀들에게는 감동과 함께 “없던 사명감이라도 쥐어짜서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했다고 한다.

딱히 그래서는 아니지만 별이의 또 다른 이야기가 방영된다. 12월 13일 방영된 <잘했어, 별아!>다. <안녕, 별아?> 편이 자폐스펙트럼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개론이었다면 <잘했어, 별아> 편은 자폐스펙트럼이 있는 아이와 비장애 아이가 통합학급에서 어울릴 때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실전응용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아이들이 레고블록을 쌓는데 별이가 무너뜨렸을 때 발생하는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지, 장애아동을 어떻게 도와줄 것인지 등의 가이드를 제시한다.

▲ 12월 13일 발행된 <잘했어, 별아!>. 별이의 두번째 이야기로, 통합학급에서 장애-비장애 어린이가 어울려 놀면서 발생할 수 있는 갈등과 이를 해결하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가 환대받고

서로 돌보는 세상을 위하여

<딩동댕 유치원>팀의 도전을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별이의 이야기보다 더 힘들었던 것이 ‘성인지 감수성’을 다루는 것이었어요. 처음에는 스무 편 정도 기획했는데, 그러다 보면 너무 예민한 문제까지 다루어야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견이 있어서 한두 편의 특집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내년 2월쯤 방송될 예정입니다.” 이지현 피디의 말이다. 그의 말대로 사회적 감수성을 주제로 다루는 일은 아슬아슬한 줄타기와 같다. 한 발을 더 나가냐, 살짝 물러서서 반 발씩 나가냐에 따라 지금까지 차곡차곡 쌓아온 프로그램의 평판이 좌우될 수 있다.

그런데도 유아 프로그램에서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는 이유, 그리고 목적을 정명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장애인은 물론 다문화가정 아동, 조손가정 아동 등 사회적 약자들이 더 많이 노출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사는 세상이 당연한 세상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요. 별이가 딩동댕마을에서 친구들과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듯 말이에요.”

장애, 비장애를 막론하고, 피부색이 달라도, 사는 환경이 달라도 모두 같이 사는 세상이 당연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이 당연한 꿈은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

“우리가 어린아이들을 대상하는 <딩동댕 유치원>에 장애, 인권, 평등 같은 사회적 가치를 녹여내는 이유는 지금 우리 방송을 보는 아이들이 자라서 청소년이 되고 어른이 되는 10년, 20년 후에는 손톱 한 마디만큼이라도 세상이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믿음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아이들이 세상을 보는 눈은 기성세대가 틀 지워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 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서 서로를 환대하고 돌보는 세상을 만드는 어른이 된다면, 울며불며 밤을 새운 날들이 조금도 고생스러울 것 같지 않아요.”

환대는 상대를 사회의 일원으로 기꺼이 받아들이고 함께하는 데서 나온다. 그리고 돌봄은 수직적인 관계나 배타적인 것이 아니고 수평적이며 상호적인 것이다. 인터뷰 내내 이지현 피디와 정명 작가는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도 환대받는 사회, 구성원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사회를 ‘당연한 사회’라고 말했다. 편향된 프레임으로 가득한 요즘의 미디어에서 이런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그것도 미래를 책임질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는 데 안도감을 느꼈다.

그리고 오늘 이들에게 주어진 한국장애인인권상 인권실천 부문의 상이 이들만을 격려하고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과 같은 콘텐츠 제작자,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용기 있게 사회적 가치를 이야기하는 <딩동댕 유치원>과 같은 콘텐츠들이 더 많이 나오길 바라는 응원과 기대의 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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