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칼럼] 자원 없는 자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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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칼럼] 자원 없는 자유는 없다
  • 편집부
  • 승인 2023.11.16 10:16
  • 수정 2023-11-16 10: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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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해/인천녹색당 사무처장

2023년은 재난문자로 시작되었다. 코로나19 이후, 우리는 재난 상황에 놓였다는 두려움에 무뎌졌다. 바로 다음날, 새로운 재난의 알림이 왔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시위로 인해 열차가 무정차 통과한다는 긴급재난문자였다. 새로운 재난의 선포는 정부가 몇 달 전 내놓은 2024년도 예산안에서 장애인의 권리가 삭감되었음을 먼저 예상하게 했다. 


 2024년 장애인 관련 예산은 증가했다. 전체적인 숫자 자체는 커졌지만,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을 왜 어떤 목적으로 지원하는지, 어떤 부문의 예산이 삭감되거나 삭제되었는가이다. 인건비, 지원 대상자의 규모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 증가된다. 지원대상의 규모를 넓게 확장하여 설정하지 않고도, 욕구 및 실태조사를 통해 새롭게 파악되는 인원이 존재하고, 인건비 상승과 지원 수단 등에 대한 집행비용은 증가될 수밖에 없다. 이 거대한 숫자들의 뒤에는 감춰지는 삶들이 있다. 


 2024년 정부 예산안에서 탈시설 시범사업은 정애인자립지원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탈시설을 말하지 않는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데 기본적으로 필요한 지원의 규모는 59억8200만 원이다. 반면 장애인거주시설 예산은 약 6,695억 원으로 탈시설 지원에 비해 112배 크게 편성되었다. 활동지원서비스 예산은 인건비로 책정된 몫의 자연증가분이 반영되고 사실상 제자리걸음에 머물렀다. 예산 편성은 정부가 무엇을 중점에 놓고 정책을 구현하고, 앞으로 나아갈지를 보여준다. 지금의 예산은 납작하게 규모만 놓고 보아도 시설 밖에서의 자유롭고 안전한 삶을 목적으로 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시설 안이 덜 위험하고 지역사회에서 위험이 방치된다면 그 누구도 시설 밖의 다른 삶을 꿈꿀 수 없다.  

이런 양상은 중증장애인 지역 맞춤형 취업지원 예산 편성을 통해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작년도 편성되었던 23억 원의 예산조차 올해에는 없다. 폐기인 것이다. 현재 동료지원가로 일하는 187명의 장애인 노동자 전원은 일자리를 잃게 된다. 실적 부진을 근거로 드는 정부 예산안은 지금 동료지원가들의 노동현실을 감추고 이들의 목소리를 지워내기에 급급하다. 이미 많은 동료지원가들이 미숙련 상태에서 많은 업무를 부담하고, 정해진 실적을 맞추지 못하면 급여를 뱉어내야 하는 현실에 공공의 책무를 물어왔다. 할당을 정해놓고 압박하는 시스템이 지속되는 상황의 대안으로 정부는 장애인 노동자들의 삶을 폐기했다.


 장애인 이동권 예산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교통약자 장거리 이동 지원 예산은 3억5000만 원으로 작년에 비해 1억5천만 원이 줄어들었고, 저상버스 도입 보조 예산은 220억 원 넘게 줄어든 1674억9500만 원으로 책정되었다. 지역사회에서 공공교통을 통해 자유로운 이동이나 일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지원에는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저상버스 도입 보조 예산을 줄인 이유를 공급 부족이라 주장하지만, 의지가 없는 탓이다. 

 2022년과 2023년에 들어, 특권을 주장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정치인들의 목소리가 커졌고 널리 퍼졌다. 지역사회, 혹은 머무르고 싶은 공간에서 살아가며 이동하고, 교육받고, 일할 수 있는 일상을 위한 제반 조건을 사회가 공공의 책임으로 인정하고, 필요한 자원을 마련할 것을 요구한 장애인들의 요구는 또 하나의 재난으로 여겨졌다. 


 자원 없이 자유는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을 자주 떠올리게 된다. 특히 자유를 유독 좋아하는 현 정부가 장애인의 자유를 위한 자원(예산)을 삭제하거나 줄이고, 자기 자신들에 보기 좋은 착한 장애인들만 남겨 놓으려는 의지를 강력하게 드러내고 있어 더욱 그런 것 같다. 


 자유는 방치와 방임이 아니라 사회구성원의 삶들에 대한 공공의 책임을 인정하고 사회적 안전망을 만들어나가는 정치를 통해서 실현될 기회를 얻는다. 그리고 그 자유의 토대에는 자원이 있다. 자원 없이 자유를 민영화한 정부는 노골적으로 정치의 죽음을 선언했다. 이제 남은 건 기후위기처럼 빠르게 다가오는 느린 폭력과 그 폭력에 맞서는 존엄의 요구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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