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타고 방방곡곡]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정원에 삽니다’...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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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타고 방방곡곡]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정원에 삽니다’...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
  • 편집부
  • 승인 2023.10.07 09:00
  • 수정 2023-10-10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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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가 10월 말에 막을 내린다. 화려한 봄꽃으로 시작해 열정의 여름을 지나 가을 색으로 물드는 10월의 마지막 밤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는 ‘정원에 삽니다’를 모티브로 각국의 정원을 축소해서 전시하고 있다. 접근성도 2013년 제1회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 때 비하면 월등해서 나무랄 곳이 많지 않다. 이번 박람회는 정원에서 하룻밤 숙박할 수 있는 ‘쉴랑게 가든스테이’도 마련돼 있어 잠자리 걱정을 덜어 쉼의 정석을 모두 보여준다.

순천역에서 내려 윗장부터 들러 아점을 해결하기로 했다. 윗장은 국밥거리로 유명하다. 국밥 한 그릇을 시키면 머릿고기가 서비스로 제공된다. 서비스라고 하지만 주메뉴인 국밥과 맛과 양이 동급이어서 푸짐하고 든든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 윗장 국밥집 대부분은 문턱 없는 식당이어서 접근성 걱정 없이 어느 집이 맛있을지 고민만 하면 된다.

국밥을 다 먹고 순천만국가정원(이하 ‘정원’)으로 향했다. 정원과 거리는 2km 남짓, 전동휠체어로 산책 삼아 걸어가도 되지만 정원을 빨리 보고 싶어 장애인콜택시(장콜)를 불러 후딱 가기로 했다. 순천의 장콜은 연결도 광속이다. 게다가 휠체어 탄 사람 두 명이 함께 탈 수 있는 카니발 장콜을 운행한다. 다만, 휠체어 탄 사람 두 명이 함께 승차 가능한 날짜는 올해 말까지라고 한다.

▲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가 10월 말에 막을 내린다. 하늘이 멋진 날은 정원을 거닐기도 좋다.
▲ 누구나 하룻밤 쉴 수 있는 ‘쉴랑게 가든스테이’

 

아이유의 ‘개여울’ 들으며 걷는 개울길

정원은 어느새 가을 색으로 변해가고 있다. 자연은 참 오묘하다. 시간은 쉬지 않는 설국열차처럼 제 갈 길만 달려가고 그 속에 인간은 스치듯 지나가는 이방인 같다.

발길이 먼저 닿은 곳은 개울길이다. 도심이 삼켜버린 개울을 정원에 오면 만날 수 있다. 참 반가웠다. 구불구불 개울 따라 흙길을 걸으면 휠체어 바퀴를 타고 온몸에 땅의 기운이 진동처럼 전해진다.

▲ 가장 먼저 발길이 닿은 개울길. 아이유가 부르는 ‘개여울’을 들으며 걸었다.

개여울 길을 걸을 때 생각나는 시가 있다. 김소월 시인의 ‘개여울’이다. 개여울은 시를 읊조려도 좋지만 시에 음을 입혀 아름다운 곡으로 널리 불린 가요 ‘개여울’도 좋다. 개울길을 걸으며 아이유가 부르는 ‘개여울’을 들으며 가사를 음미해 본다. 물방울이 모여 실개천이 되고 강물이 되는 것처럼 개여울은 생명이 모여들어 움트고 우주가 된다.

정원의 개울길은 맨발로 걷는 이들이 많다. 맨발로 걷다 개울에 발을 담그고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의자도 마련돼 있어 관람객뿐만 아니라 인근 주민들도 정원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연간 회원권을 끊어 개울가에 소풍 나오기도 한다. 휠체어 탄 난 개울물로 내려갈 순 없지만 마음은 개울물에 발을 담가 경직된 몸과 마음을 풀어내고 이완되고 있다.

개울의 원천은 순천 이사천의 맑은 물이 흘러 이어진다. 개울길은 왕버들 사이로 흐르는 시냇물과 어싱길, 계절마다 다른 색을 피워내는 아름다운 꽃밭과 잔디광장을 즐길 수 있다. 개울가에 귀를 가까이 대고 소리에 귀 기울이면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에 오감이 자연을 향해 깨어난다.

개울길에는 화구를 들고 나와 개울 풍경을 그리는 화가도 있다. 나도 화가라면 당장 스케치북을 펼쳐 놓고 붓을 놀릴 것 같다. 이런 근사한 풍경을 볼 때 내가 화가 아니라는 것이 속상할 때 있지만 붓 대신 사진으로 개울길을 박제해 마음속에 저장한다.

 

하늘에서 보면 ‘8’자가 선명한 시크릿가든

개울길을 빠져나와 비밀의 정원으로 발길을 이어갔다 ‘시크릿가든’은 이번 박람회에 새로 만들어진 정원이다. 원형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유리 식물원과 연결된 미래정원까지 하늘에서 보면 숫자 8이 정원 한가운데 놓여 있다.

식물원은 유리 온실로 열대식물이 하늘까지 누가 먼저 닿을 수 있는지 경쟁이라도 하는 듯하다. 식물원은 2층 구조로 승강기가 있어 식물원 구석구석을 둘러볼 수 있다. 2층에는 식물원을 관통하는 길이 연결돼 있고 아래층을 내려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2층까지 다 둘러보고 나면 카페를 지나 나선형의 길을 따라 미래의 정원으로 내려간다. 나선형 길 담벼락엔 정원을 옮겨 놓은 화분들이 순천의 태양 빛으로 샤워를 하고 있다. 식물로 만든 조각품과 길 바깥쪽으로 떨어지는 물줄기는 폭포 안 동굴에 숨어든 것 같다.

1층으로 다 내려오면 미래의 정원이 있는 지하 1층으로 승강기를 타고 내려가야 한다. 시크릿가든은 지상과 지하를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다. 식물극장은 미디어아트를 활용한 식물의 성장 과정을 연출했다. 미디어아트홀은 밤을 활용하는 동식물들이 3D로 움직이고 터치하면 사라진다는 콘셉트로 인간의 간섭이 자연에 얼마나 해가 되는지를 실감 나게 연출하고 있다. 빙하정원은 영하 17도까지 급속하게 떨어진 곳을 통과하는 전시관이다. 갑자기 영하로 떨어지는 기온은 전동휠체어 배터리에도 무리가 가고 장애가 있는 손상된 몸에도 무리를 주기 때문에 패스했다.

▲이번 박람회에서 새로 만들어진 ‘시크릿가든’. 나선형 길이 멋지다. 유리창에 번진 빗방울이 더 예술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꿈을 타고 물길 거슬러 오르다

시크릿가든을 나와 정원 드림호를 타기 위해 호수정원 나루터로 향했다. 드림호는 호수정원을 빠져나가 비상계류 정류장, 꿈의 다리, 출렁다리, 동천테라스 나루터까지 2.5㎞ 정도 동천을 거슬러 올라가는 뱃길이다. 드림호는 1호, 2호에 휠체어 탄 승객이 승선할 수 있는 유람선으로 경사로를 설치해 준다. 드림호를 타고 호수정원 한 바퀴를 빙 둘러 부드럽게 정원 물길을 가르며 빠져나간다.

호수정원은 순천만국가정원 내부 공간 중 가장 고도가 높은 봉화언덕(16m)을 물 위에서 감상할 수 있다. 호수정원 나루터를 출발해 동천으로 빠져나가는 첫 번째 갑문은 영롱한 빛의 광섬유가 커튼처럼 머리 위에서 흩날린다. 드림호가 동천으로 나오면 가장 먼저 꿈의 다리를 통과한다. 꿈의 다리 아래로 배를 타고 지나가니 새롭다. 천변 양쪽으로 난 자전거 길을 따라 산책하는 사람들의 풍경이 여유롭게 느껴진다.

조금 더 동천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출렁다리도 만나다. 출렁다리는 보행교여서 안전하게 다리를 건너며 동천을 여행할 수 있다. 조금 더 올라가면 동천테라스 나루터에서 하차할 수 있지만 휠체어 탄 여행객은 선착장 접근 구조물이 마련돼 있지 않아 내릴 수 없어서 아쉬웠다. 드림호를 타고 동천을 한 바퀴 빙 돌면서 이대로 순천만 습지까지 뱃길이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한국정원. 4대 궁궐의 정원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4대 궁궐의 정원을 옮겨 놓은 한국정원

나루터를 빠져나와 한국정원으로 발길을 이었다. 한국정원은 스카이큐브 정원역 근처에 있는데, 조선시대 궁궐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처럼 고즈넉하고 아름답다. 조선시대 한양에 있는 4개의 궁궐 정원을 그대로 옮겨 놓아 궁궐 여행을 하는 것 같다. 궁궐로 들어가는 문 옆으로 경사로가 잘 마련돼 있고 궐에 들어가자마자 익숙한 건물이 보인다.

한국정원은 조선시대 후원을 기본으로 조성된 곳이어서 창덕궁의 부용지와 부용정, 경복궁 교태전의 후원문, 아미산 화계, 길상 문양의 전통 꽃담을 볼 수 있다. 창덕궁 후원은 입이 아플 정도로 칭찬해도 모자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니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하다. 어수문과 만월문, 불로문은 왕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문이어서 궁궐 정원의 특징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는 ‘정원에 삽니다’ 말이 현실이 되는 곳이다. 한국정원에는 소망의 정원도 있다. 소망정원은 옛 민간 신앙을 모티브로 조성돼 나무 하나 돌 하나 소중히 여길 만큼 조상들이 자연을 신성시한 걸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소망정원에는 소원성취 두꺼비도 있다. 소원성취를 빌 때는 동전을 두꺼비 앞에 던져야 하지만 두꺼비 앞에 동전이 들어가는 것은 쉽지 않다. 두꺼비 앞에 모인 동전은 연말에 모두 수거해서 좋은 일에 쓰인다고 해서 동전 몇 개 던졌지만 두꺼비 옆으로만 떨어졌다. 뭐, 아무렴 어떤가. 내가 던진 동전이 좋은 일에 쓰인다니 이미 소원은 이루어진 셈이다.

 

순천만국가정원은 다시 10년을 꿈꾼다

 

한국정원을 나오면 스카이큐브역이다. 스카이큐브는 순천만 습지 문학관역까지 운행하는 이동수단이다. 스카이큐브를 탈 때는 정전기 방지 매트를 깔고 타면 전동휠체어 탄 사람도 이용할 수 있다. 문학관역도 경사로를 설치해 습지까지 접근성 걱정 없이 둘러볼 수 있는 환경을 구축했다.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는 10년 만에 다시 개최되는 국제적인 행사다. 변화를 거듭한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는 누구나 접근 가능한 무장애 여행지로 탈바꿈했다. 박람회가 끝나도 정원의 자원은 그대로 남아 앞으로의 10년을 다시 꿈꾼다. 누구나 접근 가능한 ‘정원에 삽니다’로 무장애 여행의 보편성을 추구하는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 소통의 흐름이 물 흐르듯 장벽 없이 자연스러워지면 자유 여행이 고립이 되지 않을 거다. 그래서 무장애 순천 여행 가치는 더욱 빛난다.

 


[무장애 여행정보]

 

▲ 윗장거리의 국밥. 푸짐하고 든든한 한 끼 식사다.

◆ 가는 길

-순천역까지는 KTX 이용

-순천역↔순천만국가정원

전남광역이동지원센터 장애인콜택시 즉시콜(전화 1899-1110) 이용

 

 

◆ 접근 가능한 식당

-윗장 국밥거리 다수

-순천국제정원박람회장 내 다수

 

◆ 접근 가능한 화장실

-순천역

-순천국제정원박람회장 내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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