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만난 사람들]13년째 함께 시 써온 장애인 시동아리 ‘도드리’_“시는 마음의 치유를 얻을 수 있는 처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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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만난 사람들]13년째 함께 시 써온 장애인 시동아리 ‘도드리’_“시는 마음의 치유를 얻을 수 있는 처방전”
  • 정은경 기자
  • 승인 2023.09.15 14:30
  • 수정 2023-09-15 20: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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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코 뜰 새 없는 신문편집일. 잠깐의 틈새를 이용해 인터넷을 뒤지다 손병걸이란 이름을 발견했다. 시각장애인 시인으로 유명한 그의 기고문을 읽다 눈이 번쩍 뜨였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발행하는 온라인잡지 이음에 실린 그의 글 중 장애인문학도 일상에서의 발견과 영감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손 시인은 ‘공감지기’(삼산종합사회복지관 글쓰기 동아리)를 언급하고 있었다. 장애인 글쓰기 동아리, 귀가 솔깃해졌다. 복지관으로 전화를 했다. 담당자가 공감지기보다는 ‘도드리’를 취재하는 것이 좋겠다고 추천했다. 올해로 13년 차를 맞는 장애인 시동아리라고 했다. 무슨 일이든 10년을 넘게 이어온다는 것은 무언가가 있다는 말이다. 더군다나 이 가을에 시(詩)라니! ‘도드리’라는 이름으로 13년째 시를 써오고 있는 이들을 만났다. 정은경 기자
▲ 코로나 팬데믹 이후 한 달에 한 번 합평회를 갖는 도드리 회원들. 삼산종합사회복지관에서 오랜만에 단체 사진 찰칵!

“깨톡깨톡~” 하루에도 몇 번씩 카카오톡의 알림음이 울린다. 다른 채팅방들은 모두 무음으로 처리해 놓았는데, 뒤늦게 회원이 된 도드리의 채팅방은 미처 무음 처리를 하지 못한 탓이다. 채팅방 구성원은 기자 포함 모두 열 명, 이 중 한 명이 중복 가입이고, 두 사람은 거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으니 활동을 하는 사람은 여섯 명으로 보는 게 옳다.

하루에도 몇 번씩 ‘깨톡깨톡~’ 음을 나게 하는 건, 그 여섯 명이 짬짬이 올리는 작품(시)들이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고 있는 요즘 회원들은 가을에 관한 시를 특히 많이 올리고 있다.

도드리는 장애인 예닐곱 명(딱 여섯 명이라고 할 수 없는 건 잠시 쉬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함께인 이가 있어서다.)이 모여 시를 나누는 동아리다. 매년 한 권씩 낸 작품집이 벌써 열한 권, 13년 차 동아리이니 그 회원들을 시인이라 불러도 지나치지 않을 듯싶다.

 

복지관 자조 모임으로 출발

열한 권의 시집 낸 시동아리

 

▲ 매년 연말 펴내는 도드리의 동인지들

시동아리 도드리는 인천시 부평구 삼산종합사회복지관 이용인을 중심으로 처음 생겨난 장애인 시동아리다. 삼산종합사회복지관에서 운영하는 글쓰기 동아리 ‘공감지기’ 중 시를 사랑하는 이들이 모여 ‘도드리’란 소모임을 만든 게 2010년. ‘공감지기’가 주로 중년 남성 장애인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던 프로그램이다 보니 ‘도드리’ 역시 처음에는 남성들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당시 처음 도드리 모임을 제안했던 이는 지금의 도드리 회장인 정용기 씨다.

“긴 호흡의 산문보다는 짧지만 내 감정을 진하게 전할 수 있는 시가 좋았습니다. 당시 공감지기를 지도해주시던 분이 시각장애인 시인으로 유명하신 손병걸 선생님이셨는데, 그분의 영향도 있었지요. 시를 좋아하는 사람끼리 모여서 합평회도 갖고 문집도 만들어보자 했던 거죠.”

그렇게 8년 동안 삼산종합사회복지관 내의 자조 모임으로 복지관의 지원을 받으며 활동했다. 매주 모여 서로 쓴 시를 읽고 의견을 주고받으며 수정도 하고, 서로의 일상을 나누기도 한 것. 그렇게 써간 시들이 모여 연말에 한 권의 책으로 엮였다. 2012년 연말이었다.

“처음 시집을 손에 받아들었을 때 기분은 말로 다 못 할 감동이었습니다. 눈물이 다 나올 거 같았어요. 나뿐만 아니라 다른 회원들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정용기 회장의 말이다. 그렇게 첫 시집을 만들고 나니 시에 대한 애정이 더 듬뿍 생겨났다. 매 모임마다 서로 경쟁하듯 시를 써와 발표했고, 이는 또한 서로에 대한 격려가 되어 시동아리 도드리가 더욱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10년을 넘게 함께해 오다 보니 가족 같은 정도 생겼죠. 물론 도중에 건강이 악화돼 더 이상 함께하지 못하게 된 친구들도 있고, 복지관으로부터 독립을 하면서 구성원들도 대폭 바뀌기도 했어요. 하지만 처음 함께했던 이들이나 새로 들어와 식구가 된 이들이나 시에 대한 열망은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올해로 13년째 역사를 이어온 도드리에게는 한 번의 전환기가 있었다. 2년 전인 2021년 삼산종합사회복지관의 자조 모임에서 독립, 순수한 시동아리 도드리가 된 것이다. 그때까지 받아왔던 복지관의 재정지원은 받을 수 없게 되었고, 복지관에서는 모임을 위한 장소만 제공해주기로 했다.

때마침 코로나 펜데믹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화되던 시기여서 대면 모임도 어려워졌다. 그래서 찾은 새로운 소통 방법이 카카오톡이었다. 카카오톡을 통해 수시로 일상과 작품을 나누고 한 달 한 번 복지관에 모여 김청하 지도강사와 함께 합평회를 갖기로 했다.

이때의 가장 큰 변화는 역시 구성원의 성별이 달라진 것이다. 복지관 소속 자조 모임이었을 때는 구성원 모두가 남성이었는데, 독립적인 동아리가 되면서 여성 회원들이 들어왔다. 지금은 남성과 여성 회원이 50:50 정도다. 이렇게 성비가 달라지자 시의 색채도 다채로워졌다. 여성적인 섬세한 감성이 색깔을 더했다고나 할까.

그리고 또 한 가지 변화는 재정이었다. “그 전까지는 연말에 만드는 시집 출간 비용을 복지관에서 지원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독립 후 동아리 운영비는 물론 책 만들 돈이 없는 거예요. 결국 회원들이 십시일반 갹출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용기 회장의 회상이다. 그러나 넉넉지 못한 호주머니 사정을 모를 리 없는 상황, 김청하 강사의 도움으로 인천문화재단에 지원금을 신청했다. 2021년 시집부터는 모임 경비는 회원들의 회비로, 연말 시집 출간비는 인천문화재단의 지원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2023년 여름, 그들의 합평회

▲ 한 달 동안 쓴 시를 함께 읽고 의견을 나누는 합평회

2023년 8월 25일. 폭염과 폭우를 피해 7월 한 달을 건너뛴 탓에 도드리 회원들이 두 달 만에 얼굴을 보는 날이다. 이날 모인 회원은 모두 정용기 회장을 비롯해 김경진, 김민석, 이혜영, 황명희, 박영임 씨까지 모두 여섯 명. 여름 동안 외국 친지 집을 다녀온 김청하 강사와도 오랜만의 만남이다. 서로의 안부를 챙기던 이들이 각자의 시들을 인쇄한 유인물이 나누어지자 곧 진지 모드로 바뀌었다.

이날 시 발표의 시작은 김민석 씨가 끊었다. “빈칸, 김민석. 낯가림에 세상/눈치만 살피다가/어느새 오후 여섯 시에 와 있다……” 자신이 쓴 시를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읽는 목소리에 진심이 담기고, 그가 읽은 시를 듣는 이들 역시 한껏 귀를 기울이고 있다. 낭독을 끝낸 그가 “저는 제목이 맘에 안 드는데 좋은 의견 있으시면 말해줘요.”라고 말하자 “왜요? 딱 좋은 데…… 특히 ‘다시 출발선의 서서//빈칸 같은//살을 채워가고 싶다’는 마지막 연이랑 ‘빈칸’이란 제목이 딱 맞아 떨어지는데……” “아, 여기 ‘출발선의’에서 ‘의’가 아니라 ‘에’죠?” 회원들이 각자의 의견과 소감을 이어갔다.

같은 식으로 각 회원들의 시 발표가 이어지고 합평을 통해 시들은 조금씩 더 예쁘게 다듬어진다. 도드리의 합평회는 두 시간가량 이어졌다. 조금씩 다른 장애를 지녔지만 오랜 시간을 함께한 만큼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는 면이 남다른 시간들이었다. 이들은 또 한 권의 책을 준비하고 있다. 열두 번째 시집을 위해 매일 시를 나누는 도드리의 여섯 시인을 만나보자.

 

도드리 여섯 시인과

그들의 백설공주 김청하 강사

▲ 정용기 회장

정용기. 처음 도드리를 있게 한 사람이다. 12년 전 중년 남성의 글쓰기 모임 공감지기에서 시를 사랑하는 이들의 소모임을 만들고 현재까지 도드리의 회장을 맡아오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로 유명해진 득량도가 고향인 그는 열여덟 살까지 집 밖에 나오지 못했다. 열여덟 살 때 인천으로 온 가족이 이사를 하면서 비로소 세상을 만났다. 스물다섯, 늦은 나이에 한글을 배운 그는 검정고시로 초중고를 마치고 대학까지 마친 열정적인 사람이다.

“검정고시 준비하면서 국어책에 나오는 시를 읽는데 마음이 따듯해졌어요. 그때 시의 매력에 빠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시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도드리를 만든 그는 시의 치유 능력에 주목한다. “우리 도드리 회원들은 몸에 장애가 있지만 시를 쓰면서 아픈 마음을 치료받습니다. 우리들의 시가 마음에 상처가 있는 사람들에게 치료의 시가 되었으면 합니다.”는 정용기 회장의 바람이 모두에게 전달되길 기대해본다.

 

▲ 김경진 씨

김경진. 올해 쉰 살. 이 모임의 막둥이다. 그러다 보니 회원들이 쓴 시를 정서해 카톡 채팅방에 올리는 등 다소 귀찮을 만한 일을 도맡고 있다. 서경 김준이란 필명을 갖고 있다. 만해 한용운이 가장 존경하는 시인이라는 그는, “너를 가득 품은 마음으로/그리울 땐/언제까지나 잊지 못할 사랑으로// 행복할 땐/우리 모두 다// 낡고 시들어도 영원할 추억으로//쓸쓸할 땐/한동안 거기에 사로잡혀 있겠지만//새 꿈 가득 찬 나와 너의 웃음으로”(김경진 작 ‘시를 씁시다’ 전문) 시를 쓰자는 시 지상주의자이기도 하다.

 

▲ 김민석 씨

김민석. 도드리의 돌아온 탕아다. 정용기 회장의 권유로 도드리 초기에 합류했던 그는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랐던 시인 윤동주를 사랑하는 감성이 풍부한 사람이다. 8월 합평회에서 “낯가림에 세상/눈치만 살피다가/어느새 오후 여섯 시에 와 있다”고 자신을 표현한 그는 이순을 코앞에 두고 인생을 관조하고 있다. 2021년 도드리가 삼산종합사회복지관에서 독립하면서 잠시 도드리를 떠났다가 올해 다시 합류한 그는 그래서 더욱 열심이다. 2020년 도드리 아홉 번째 시집에 실렸던 그의 시 한 구절을 다시 그에게 돌려준다. “잘 놀다 왔니?”

 

▲박영임 씨

박영임. 도드리의 궂은 일을 맡아 하는 총무다. 2021년 도드리가 삼산종합사회복지관에서 독립하면서 도드리의 회원이 된 여성 회원이다. 사실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도드리 시인들의 모임을 같이 하고 있었다. 정용기 회장의 활동지원사이기 때문.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나. 정용기 회장과 함께 도드리 모임에 몇 년간 참석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시를 쓰고 있더란다. 도드리가 자신에게는 “합평회를 통해 서로의 시를 읽어보고 고쳐주는 의미 있는 모임”이라는 박영임 씨에게 “시는 일상을 적는 일기이며, 서로의 공감을 나누는 수단”이라고 한다.

 

▲ 이혜영 씨

이혜영. 2021년 도드리에 들어왔다. 도드리 모임 합류는 그녀에게도 ‘도전’이었다고. 부평장애인종합복지관 해밀합창단의 단원이기도 한 이혜영 씨는 ‘몸’ 아닌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시’여서 도드리에 합류했다고 한다. 예전처럼 자주 모이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는 그녀는 하루하루 시 솜씨가 늘어나는 것이 눈에 보이는 사람이기도 하다. 나태주 시인을 좋아한다. 작년에 펴낸 열한 번째 도드리 시집에 실린 그녀의 시 ‘열무김치’를 보면 “철퍼덕/신문들을 깐/바닥에 주저앉아/얼갈이 한 단/열무 두 단/겉잎 제거하고/적당한 길이로/싹뚝싹뚝/(후략)”과 같이 리듬감을 잘 살리고 있다.

 

▲ 황명희 씨

황명희. 올해 예순여섯, 도드리의 왕언니다. 2020년 병원에 입원하고 있을 때 환우였던 김경진 씨의 권유로 도드리에 합류했다. 자신의 시 중 “땅거미 서산에 기울 때면/남편과 나는/공원으로 마실을 간다//살랑거리며/불어오는 미풍을 즐기며 정자에 앉아//얼음 동동 띄운/커피 한잔/나눠 먹으며//(중략)이 하루를 마무리하기 위한/저녁식사를 하러/맛집을 찾아간다”고 노년의 일상을 노래한 ‘눈부신 하루’를 가장 좋아하는 그녀에게 시는 “내 마음의 일기장”이다. 앞으로도 “소박하게 시를 쓰고 같이 시를 읽고 대화할 수 있는 도드리가 오래 계속되길 바라”는 그녀의 소망이 이뤄지길 함께 기도한다.

 

▲ 김청하 시인

그리고 마지막 1인은 2018년부터 이들을 지도해온 김청하 시인이다. 마치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의 백설공주처럼,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백설공주는 숙식이라도 제공받았지만 그녀는 정말 오로지 보람 하나로 그들과 함께하고 있다.) 도드리의 강사를 맡아오고 있다. “강사라도 딱히 시작법을 강의하지는 않습니다. 회원들의 시에서 오탈자나 잘못 쓰인 조사 정도 고쳐준다고나 할까요? 그리고 동아리 활동에 필요한 경비를 마련하기 위한 서류 작업 정도 지원하는 게 제 일입니다.”라고 겸손하게 말하는 김 시인은 도드리의 시를 “자신의 문제와 마음의 치유를 얻을 수 있는 처방전”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그들 시의 가장 큰 장점은 “아이들처럼 깨끗하고 맑은 영혼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회원들의 작품이 세상에 선보일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을 전하는 그는 도드리의 가장 큰 응원군이다.

기사를 쓰는 와중에도 도드리 카카오톡 채팅방엔 두어 개의 시가 올라왔다. 모두 가을을 노래하는 시다. 어느새 가을이다. 이 가을을 시와 함께 맞는 도드리 시인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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