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힐링’ 하모니 ‘꿈너머꿈 리코더 앙상블’ _ “좀 서툴면 어때요? 좋으면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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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힐링’ 하모니 ‘꿈너머꿈 리코더 앙상블’ _ “좀 서툴면 어때요? 좋으면 됐죠”
  • 차미경 기자
  • 승인 2023.09.15 09:00
  • 수정 2023-11-06 17: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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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 계양구 계산1동 행정복지센터 3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익숙한 7080 노래의 멜로디가 발을 이끈다. 목요일 저녁 7시 30분 ‘꿈너머꿈 리코더 앙상블’의 연습이 있는 날이다. 연주 도중 음 이탈이 생겨도, 화음이 안 맞아도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단순한 동호회를 넘어서 각자가 짊어진 삶의 무게를 나누고, 그 안에서 웃음과 용기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좋아서 하고, 함께해서 더 좋다는 ‘꿈너머꿈 리코더 앙상블’이 만들어 내는 ‘하모니’에 귀 기울여 보자. 그들의 말대로 조금 서툴지만 어느샌가 마음이 편안해지는 마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꿈너머꿈 리코더 앙상블’ 단원들 (왼쪽부터) 조재식, 박금이, 곽순복, 신예지, 이진 단장, 신경심, 이현재 씨.(이날 또 다른 단원인 이창선, 박상현 단원은 개인 사정으로 함께하지 못했다.)
‘꿈너머꿈 리코더 앙상블’ 단원들 (왼쪽부터) 조재식, 박금이, 곽순복, 신예지, 이진 단장, 신경심, 이현재 씨.(이날 또 다른 단원인 이창선, 박상현 단원은 개인 사정으로 함께하지 못했다.)

통합교육에 관심이 있는 특수교사와 일반교사 등이 모여 만든 단체인 공익사단법인 ‘꿈너머꿈’은 통합교육 연구와 교재 개발, 연수프로그램 개발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꿈너머꿈 리코더 앙상블’은 학령기가 지난 성인 장애인과 그 가족들을 위한 프로그램 중 하나다.

‘꿈너머꿈 리코더 앙상블’을 이끄는 이진 교사(이하 단장)는 ‘꿈너머꿈’ 단장이자 현재 일반초등학교 4학년 담임을 맡은 현직 교사다.

 

부는 힘만 있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리코더의 매력’에 빠지다

 

‘꿈너머꿈 리코더 앙상블’이 처음부터 리코더를 다뤘던 것은 아니다. 2017년 처음 창단했을 때는 ‘꿈너머꿈 오케스트라’란 이름으로 시작했었다. 클라리넷과 피아노 바이올린 등 클래식 악기를 연주했던 오케스트라에서 알토 리코더로 변경한 것은 더 많은 사람이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진 단장은 “리코더는 후~ 불 줄만 알면 누구나 소리를 낼 수 있잖아요. 그것이 이 악기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에요.” 클래식 악기의 경우 장애와 기능 정도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진입장벽이 높은 악기다. 누구나 함께 모여 즐겁게 해보자는 처음 취지와는 다르게 진행되는 과정을 보며 이진 단장은 변화를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알토 리코더는 가격도 저렴해요. 만원에서부터 비싸다고 해도 3만 원 정도죠. 그리고 우리 모두 초등학교 다닐 때 한 번쯤은 리코더를 배워 봤잖아요. 연주는 아니어도 어떻게 하면 소리를 낼 수 있는지는 누구나 알고 있고요. 우리에게 익숙한 리코더는 소프라노 리코더인데, 꿈너머꿈에서 다루는 알토 리코더는 음역이 넓어서 앙상블을 하기에 좋아요. 우리나라에서는 초등학생이나 중학생들만 수업용으로 연주하는 악기로 리코더를 알고 있는데, 유럽 등에서는 그렇지 않아요. 전문적으로 리코더를 연주하는 연주가들도 많고요. 오케스트라에서 리코더 앙상블로 바뀐 뒤 장애인 당사자나 가족분들도 덜 부담스럽고 재미있다고 만족해하세요.”

 

‘꿈너머꿈 리코더 앙상블’에는 리코더 연주뿐 아니라 다양한 악기를 다루는 단원도 함께 한다. 신예지 씨는 ‘윈드차임’을 연주하며 앙상블의 연주곡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꿈너머꿈 리코더 앙상블’에는 리코더 연주뿐 아니라 다양한 악기를 다루는 단원도 함께 한다. 신예지 씨는 ‘윈드차임’을 연주하며 앙상블의 연주곡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꿈너머꿈 리코더 앙상블’에는 꼭 리코더 연주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상대적으로 손가락 기능이 약한 신예지 씨의 경우 ‘윈드차임’이라는 악기를 연주한다. 타악기의 일종인 윈드차임은 짤막한 철 막대 여러 개가 나무 막대에 연이어 매달렸는데, 환상적인 소리를 연출하기로 정평이 난 악기이다. 곡의 시작과 끝에 맞춰 예지 씨 손가락이 막대를 지나치면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소리가 한층 연주를 완벽하게 만들어 준다.

이 외에 큰 실로폰과 같은 ‘메탈로폰’을 연주하는 단원도 있다. 이처럼 ‘꿈너머꿈 리코더 앙상블’ 단원들은 개인의 특성과 성향에 맞는 악기들을 선택해 참여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더욱 풍성한 하모니를 만들어 내고 있다.

 

꿈너머꿈 리코더 앙상블의 ‘기둥’ 이진 단장

 

‘꿈너머꿈 리코더 앙상블’의 단원이자 기둥 같은 존재인 이진 단장
‘꿈너머꿈 리코더 앙상블’의 단원이자 기둥 같은 존재인 이진 단장

시간이 날 때마다 프로그램을 이용해 알토 리코더 전용 악보를 만들고, 단원들이 좋아할 만한 곡을 찾기 위해 플레이 리스트를 작성한다. 기타와 원드차임 등 다른 악기를 다루는 단원을 위해 별도의 악보를 만드는 것 또한, 이진 단장의 일이다. 이 모든 일을 아무런 보수 없이 해내고 있는 그는 그 이유에 대해 “좋으니까요”라고 답했다.

“어머님들이 제게 ‘감사하다’고 말씀하실 때마다 항상 그런 말씀 마시라고 해요. 저는 봉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동호회의 회원일 뿐이라고요.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감사의 인사를 받을 일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어머님들께도 항상 ‘이렇게 하는 게 좋은 걸 어떡해요’라고 말해요.”(웃음)

이진 단장은 한사코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하지만 리코더 앙상블 단원들은 알고 있다. 그의 애정만큼이나 노력이 없었다면 결코 지금까지 올 수 없었던 것을 말이다. 신예지 씨의 어머니인 곽순복 씨 역시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이진 단장의 칭찬을 입이 닳도록 이야기했다. “사실 부모들이 제일 잘 알고 있잖아요.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들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것이 얼마나 지구력을 필요로 하는 것인지. 그런데 부모도 아니고 그렇다고 일정한 보수를 받는 것도 아니면서 이렇게 열과 성을 다하고, 또 아이들을 진심으로 이끌어주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무엇보다 하나의 임무가 아니라, 함께 하는 마음으로 우리 아이들과 단원들을 이끌어주는 모습에 항상 감사하고 또 감동하고 있어요.”

모두가 즐거운 게 1순위라고 말하는 이진 단장에게도 아쉬운 부분은 있다. “아무래도 다양한 체험을 못 한다는 게 제일 아쉽죠. 공익사단법인 꿈너머꿈의 예산으로 운영되다 보니 많은 것들을 하는 데 한계가 있기 마련이에요. 단원들이 음악을 워낙 좋아하니까 클래식이나 재즈 등 다양한 공연을 함께 관람하는 등의 경험과 추억을 쌓게 해주고 싶은데, 그렇지 못한 부분이 있죠. 하지만 반대로 전문 강사를 모시고 제대로 예산을 받아서 운영하려면 성과를 내야 하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는데, 그러면 지금의 즐거움은 조금 사라지고 딱딱한 분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없는 건 아니에요. 그 가운데에서 중심을 잡고 운영해 나가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어요.”

 

목표는 하나, 모두가 “즐겁다”고 느끼는 것

 

오케스트라에서 리코더로, 기나긴 코로나19로 줌(ZOOM)으로만 소통하면서도 6년이란 긴 세월을 함께 걸어온 이유는 단 하나다. ‘함께 하면 즐겁기 때문’이다.

이진 단장 역시 ‘꿈너머꿈 리코더 앙상블’이 추구하는 것과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답으로 ‘즐거움’을 꼽았다. “얼마 전에는 다 같이 재즈공연을 관람하고 왔어요. 다녀와서 관람 소감도 서로 나누고 우리도 재즈곡을 리코더로 연주해 볼까, 악보를 만들어 볼까 하는 생각을 하는 시간이 너무 즐거워요. 사실 장애인 가족에게 문화생활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잖아요. 그러한 어려운 부분들이 우리 ‘꿈너머꿈 리코더 앙상블’에서는 실현이 되고, 그로 인해 생활의 활력이 되길 바랄 뿐이에요.”

‘꿈너머꿈 리코더 앙상블’ 단원들은 시간을 내서 공연을 관람하는 등 문화생활도 함께 즐기고 있다. 사진은 지난 7월 23일 인천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진행된 ‘지브리vs마블 OST 이지연 재즈오케스트라 콘서트’ 관람 후 기념사진을 찍은 모습.
‘꿈너머꿈 리코더 앙상블’ 단원들은 시간을 내서 공연을 관람하는 등 문화생활도 함께 즐기고 있다. 사진은 지난 7월 23일 인천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진행된 ‘지브리vs마블 OST 이지연 재즈오케스트라 콘서트’ 관람 후 기념사진을 찍은 모습.

사실 ‘꿈너머꿈 리코더 앙상블’에 대한 취재 의뢰를 받고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던 기자에게 이진 단장은 지속해서 먼저 연락을 취하고, 일정을 물어왔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적극적인 이유를 취재 막바지에서야 알게 됐다. 기사를 통해 다양한 동호회가 만들어지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학령기가 지난 성인 장애인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는 문제는 제가 처음 교사생활을 시작했을 때도, 특수교육대학원에서 특수교육을 전공했을 때도, 그리고 오늘, 이 시점에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요. 물론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고는 있지만 턱없이 부족하죠. 그래서 저는 이 기사를 보고 많은 분이 부담 없이 이런 작은 동호회를 만들고 활동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어요. 우리도 인원이 많지 않고, 예산이 풍부하지 않지만, 정기적으로 만나서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미래를 응원하며, 현재를 즐겁게 보내고 있잖아요. 제가 오랜 시간 동안 지켜본 결과 부모님, 형제 등 가족이 건강해야 결국 장애인 당사자가 행복해진다는 거예요. 오늘 우리의 이야기가 꼭 어디에서가 촛불이 되길 희망해요.”

‘꿈너머꿈 리코더 앙상블’이 최근 연습에 매진하고 있는 전영록의 <애심>이라는 곡 연주를 기자에게 들려주는 것으로 이날 취재는 마무리됐다. ‘언제나 빛나는 보석이 되어 영원히 변치 않을 원앙이 되자’라는 곡 가사처럼 이진 단장을 비롯해 단원 모두가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처럼 웃는 ‘즐거운’ 날들만 함께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꿈너머꿈 리코더 앙상블 단원인 심경심(왼쪽) 씨와 이현재 씨

 “꿈너머꿈은 저희에게 ‘힐링’ 그 자체예요”

 

이현재(발달장애인) 씨와 어머니 신경심 씨

지난 2017년 오케스트라 창단으로 시작한 ‘꿈너머꿈’의 초기 단원인 이현재(27세 발달장애, 사진 오른쪽) 씨와 그의 어머니 신경심(54, 사진 왼쪽) 씨는 그 누구보다 ‘꿈너머꿈’에 대한 애정이 깊다.

“처음 오케스트라 창단했을 때 우리 현재는 클라리넷을 연주했어요. 저 역시 현재와 함께 악기를 배웠고요. 하지만 발달장애인들은 장애 정도에 따라 기능과 인지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모든 아이가 클래식 악기를 다룬다는 게 쉽진 않았죠. 물론 우리 현재도 그중 한 명이었고요. 합주가 힘들어 그만두려고 하는 찰나에 이진 선생님께서 다시 한번 손을 잡아주셨죠.”

클래식 악기를 다루는 것이 어려워 도중에 포기하는 장애인과 가족들을 위해 더욱 다루기 쉬운 ‘알토 리코더’를 해보자고 권한 것이 바로 이진 교사였다. 부는 힘만 있으면 소리를 낼 수 있는 악기다 보니 스트레스받지 않고, 편하게 할 수 있지 않냐는 마음으로 지금의 ‘리코더 앙상블’을 2017년 끝자락에 만들게 됐고, 그렇게 마음이 맞는 다섯 가족이 함께 다시 시작했다.

“세월은 길지만, 그간 코로나19 기간을 보내다 보니 대부분 줌(ZOOM)으로 수업을 했어요. 근데, 발달장애아이들에게 줌 수업은 쉽지 않죠. 또 한 번 우여곡절이 있었고, 또 구성원이 바뀌게 됐지만, 코로나19 엔데믹이 됐으니 이제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려고 해요.”

신경심 씨에게 ‘꿈너머꿈’은 힐링 그 자체라고 말했다. “이진 선생님의 노력이 정말 크죠. 장애인들과 음악적 전문성이 부족한 가족들을 위해 악보를 보고 쉽게 편집해주시고, 또 곡도 7080 노래 위주로 선택해 주셔서 음악을 함께 듣고 이해하는 시간 자체가 수업이라기보다 힐링의 시간이라고 느껴져요. 무엇보다 현재는 워낙 음악을 좋아하다 보니 다양한 악기를 다룰 줄 아는데 그 중 기타 연주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씀드렸더니, 이진 선생님께서 악보에 기타 코드까지 직접 다 적어주셔서 현재가 즐겁게 임할 수 있게 해주시기도 하고요. 덕분에 현재는 지금 장애인식 개선 파트너 강사로 기타연주를 하고 있어요. 자존감도 높아지고, 항상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죠.”

이처럼 ‘꿈너머꿈’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봤다는 신경심 씨는 이러한 자조 모임과 동호회 활동이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과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배울 수 있는 평생교육시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발달장애아이들을 지켜보면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평생교육 바우처도 확대되고 해서 우리 아이들에게 음악을 배울 기회를 줘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막상 아이들이 다닐 수 있는 학원을 찾는 게 쉽지 않아요. 평생교육기관으로 등록이 되어 있는 학원에서만 바우처를 이용할 수 있는데, 다양한 과목의 학원을 고를 수 없죠. 또 있다고 하더라도 비장애인을 위주로 하는 수업패턴과 수강료가 책정돼 있기도 하고, 특수교육 학생들을 경험해 보지 않은 선생님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아이들을 케어하거나 수업을 이끌어가시는 것도 힘들어하고요. 평생교육기관이 확대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골라서 할 수 있는 환경이 됐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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