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선 전문기자의 성격장애 발견과 예방 시리즈] ⓹ 경계성 성격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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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선 전문기자의 성격장애 발견과 예방 시리즈] ⓹ 경계성 성격장애
  • 이창선 기자
  • 승인 2023.09.03 10:00
  • 수정 2023-11-16 13: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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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은 성격에도 장애가 있음을 알려준다. 어린 시절부터 서서히 형성되어, 성인기에 성격으로 굳어진 행동과 마음 특성으로 인해 계속 삶과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며 고통스러운 이들이 있다. 정신의학에서는 이들을 인격장애(Personality Disorders)라고 하지만, 어감 때문에 성격장애라고 바꿔 말한다. 다수의 성격장애는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못 느끼지만 주위 사람들을 매우 괴롭게 하며, 대인관계나 생활에 문제가 생겨 우울·불안장애 등 여러 심각한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성격장애의 예방과 치료는 중요하며, 성격장애를 이해하는 이들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기에, 각 성격장애들의 특징과 주요 원인을 알리고자 총 10회에 걸친 시리즈를 연재한다.
본 시리즈 기획특집 기사를 집필하는 이창선 전문기자는 심리학과 치료약학 전공자로서 성격심리학, 이상·임상심리학, 심리검사 해석 및 성격장애 관련 연수, 정신의학 문헌 분석, DSM-5와 ICD-10, 성격장애 학술자료 분석을 기반으로 기사 내용을 제시한다. _편집자

 

경계성이란?

 

정신의학에서 정신기능을 평가하는 주요 기준에 ‘정신증’(psychosis)과 ‘신경증’(neurosis)이 있다. 정신증은 망상이나 환청처럼 현실검증력이 지속적으로 저하되고 사회 적응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상태이다. 이와 달리 신경증은 불안 등의 문제로 사회 적응에 경미한 문제가 있지만 현실검증력은 정상이다. 신경증에서 상태가 점점 나빠지면 정신증으로 진전된다.

성격장애에서 ‘경계성’이란 이름은 ‘정신증’ 및 ‘신경증’에 속한 증상을 보이기에, 어느 한 편으로 분류하기 어려운 중간을 뜻한다. 즉 일시적으로 현실검증력이 저하되었지만, 망상이나 환각 증상이 지속되지는 않고, 충동과 감정 조절이 심각하게 어려운 이들이다. 이런 특성이 있는 이들이 성격구조에 독특한 결함이 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진단 도구인 DSM-III-R에서 ‘경계성 성격장애’라는 용어가 태어났다.

 

악순환과 흑백논리의 고통

 

경계성 성격장애의 대표적인 특징은 사고와 감정과 행동 및 자아상이 현저하게 불안정하고, 충동성이 심하며, 강렬한 애정과 분노가 교차하는 매우 불안정한 대인관계이다. 자아상이 불안정하여 예측하기 힘든 돌출 행동이 일어난다. 자아상과 충동과 관계의 불안정함은 서로 연결된 현상들이다.

이들은 학생이거나, 어떤 직업이 있고, 몇몇 소속된 곳이 있다고 해도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발견할 수 없다. ‘난 누구인가?’ 오랫동안 자신에게 맞는 느낌의 자아상을 발견하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현저하게 불안정한 정체감 혼란의 악순환이 이어진다. 이들의 자기에 대한 느낌은 비극적일 정도로 매우 일관성이 없다. 특히 자신에게 의미 있는 대인관계나 돌봄이 결핍되었다고 느낄 때 이런 경험을 더 한다.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하기에 끈기 있는 노력을 못 하며, 도전을 극복하지 못한다. 이들은 충동적으로 섹스, 쇼핑, 음식, 약물남용으로 뛰어든다. 가장 심한 경우는 자해행동을 통해 일시적이나마 기분이 좀 더 나아지고 차분해지는 것이다. 또 이들은 공허감이 너무 강해 혼자 있는 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혼자 있는 것에 공포를 느끼며, 자신에게 필요한 관계들을 파괴해 가는 모습이 경계성 성격장애의 아픈 현실이다.

경계성 성격장애는 ‘전부가 아니면 아예 없는’ 흑백이 뚜렷한 생각과 선택을 한다. 예를 들어 일반적으로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완벽하지 않음을 받아들이고 사랑한다. 그러나 경계성 성격장애에서는 오직 ‘순전히 좋고 사랑하는 사람’과 ‘정반대의 나쁜 사람’으로 구별할 뿐이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사소한 실수만 해도 한순간에 증오나 경멸의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이렇게 흑백의 구별로 자신도 보기에 혼란스럽다. 예로서, 한순간은 자신이 가장 멋지다고 여기지만 다음 순간은 극단적인 평가절하로 무너진다. 잠시의 다행감을 느끼다가도 불안과 짜증, 죄책감의 극단으로 자신을 밀어 넣는 악순환을 겪는다.

무슨 일이 생기기도 전에 자기가 거부당할 것을 예상하기 시작하며 이들의 생각과 감정, 행동에는 심한 동요가 일어난다. 이들에게는 타인이 자신을 버리고 떠남이 가장 두렵다. “당신을 곁에 두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하겠어!” 이로 인해 늘 함께 있어 주길 바라거나 강렬한 애정 표현을 요구한다. 이런 요구가 만족되지 않으면 상대를 극단적으로 평가절하함을 강렬히 보여준다. 버림받음을 피하기 위해 미친 듯이 노력하고, 충동적으로 자해나 자살 행동을 하기도 한다. 이들이 타인에게 공감을 잘하고 남을 도와주는 동기는 상대도 보답으로써 내 욕구를 채워 주기 위해 곁에 있어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뿐이다.

 

경계성 성격장애 진행 과정

 

DSM-5 연구자들에 의하면, 비록 감정이나 충동이 강렬하고 대인관계가 격렬하게 불안정한 성향은 계속 지속되는 경우가 흔하지만, 치료를 받으면 치료 시작 1년 후부터 호전을 보인다는 보고들이 있다. 또한 정신과 외래를 다닌 이들에 대한 추적 조사에 의하면, 10년 후에는 이들의 절반이 경계성 성격장애 진단기준에 부합하지 않았다.

또한 30~40대 시기에는 대인관계와 직업 기능에서 안정감을 보인다는 보고들도 있다. 그러나 반사회적 행동이나 공격성, 약물남용, 자살 시도가 이전에 있었던 경우는 예후가 좋지 않다. 경계성 성격장애의 자살 위험성은 청년기에 가장 높고, 나이가 들수록 감소한다고 알려졌다. 이들의 자살 가능성이 높은 때는 기분장애가 나타날 때이다.

 

어떻게 이렇게 되었을까?

 

불안정한 자아상과 관계의 기저에는 한 사람에게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동시에 있음을 인식할 수 없는 분열적인 사고가 있다. 컨버그 등의 정신분석 연구자에 의하면, 어린 시절에 신체적, 정서적인 학대, 방임, 적대적인 갈등을 겪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보살펴 주는 부모’와 ‘나쁜 부모’를 구분해 가려 애쓴다. 이로써 한 사람에게 좋은 면과 나쁜 면이 함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게 되어간다. 자신이 버림받는 두려움을 강렬하게 경험한 유아가, 성인이 되어서도 유아기 때의 위기를 반복해 다시 경험하는 것을 경계성 성격장애로 본다.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이들의 과거 경험 연구들을 보면, 어린이가 독립적인 정체성을 형성하려는 초기 시도를 양육자가 처벌하거나 방해하며 가족 간에 친밀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랐거나, 일관성이 없고 예측 불가능한 양육을 받았거나, 18세 전에 부모를 잃은 경험 등이 있다. 또한 양육에 무책임한 반사회성 성격장애의 자녀들에게 경계성 성격장애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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