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선 전문기자의 생활과학 톺아보기]꼭 필요한 '사라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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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선 전문기자의 생활과학 톺아보기]꼭 필요한 '사라짐'
  • 이창선 기자
  • 승인 2023.08.31 10:43
  • 수정 2023-08-31 1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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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가 사라지는 목적은 오직 몸 안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사라지지 않고, 자신이 죽어야 할 시점을 무시한 세포가 바로 ‘암세포’이다. 암세포는 세포의 죽음을 유도하는 세포의 신호에 반응하지 않기에, 결국 무질서하게 자라서 조절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

때가 되어 자신을 사멸하는 계획적인 세포의 죽음을 ‘세포자멸사’(apoptosis)라고 부른다. 아포프토시스(apoptosis)란 말에는 ‘떨어진다’는 뜻이 담겨 있다. 가을에 나무에서 낙엽이 떨어지는 모습에 세포가 때가 되어 떨어지는 현상을 담은 말이다. 스스로 사멸하는 세포는 카스파아제(caspase)라는 단백질 분해효소를 활성화시켜 자신을 분해한다. 정상 상태에서는 비활성화되어 있는 이 카스파아제의 활성화가 바로 세포의 죽음을 결정하는 ‘신호’이다.

그럼 어떻게 세포는 아무 때나 사멸하지 않을 수 있을까? 바로 ’생존 신호‘를 꾸준히 받기 때문이다. 성장인자, 특정 호르몬, 세포 주변 기질, 이웃 세포와의 접촉 등이 생존 신호이다. 이렇게 세포 외부에서 오는 생존 신호는 세포 안에 있는 죽음의 신호인 카스파아제 활성 단계를 억제하여 세포를 죽음으로부터 보호한다. 이처럼 놀랍게도 우리 몸 안에는 ‘죽음의 신호’와 ‘생존 신호’가 있어 어떤 신호들은 세포자멸사를 막고, 어떤 신호들은 세포자멸사를 유도한다.

세포자멸사가 건강 유지에 필수인 사례는 다양하다. 첫째, 방사선에 노출되거나 독성 물질에 손상되어 돌이킬 수 없게 병든 세포가 있을 때, 해로운 돌연변이 세포가 되었을 때, 해로운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가 생겼을 때, 그 세포들은 암으로 진행되기 전에 세포자멸사의 길을 가서 몸을 보호한다. 만약 사라지지 않는다면 암의 원인이 된다. 둘째, 여성과 남성의 몸을 다르게 하는 과정에서도 세포자멸사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성의 몸 안에서 남성 생식기관을 형성하는 배아 상태의 관이 발달과정에서 자멸하는 것이다. 셋째, 세포자멸사를 통해 각 조직에서 최적의 세포 수를 유지한다. 새로운 세포 생성과 세포 자멸 간의 균형은 중요하다.

그런데 세포가 사라지는 이유에는 태어날 때부터 계획된 자연스러운 죽음(아포프토시스)이 아닌, 뜻하지 않은 사고사도 있다. 세포의 사고사를 ‘세포괴사’(necrosis)라고 한다. 네크로시스(necrosis)라는 말은 ‘죽게 되다’란 뜻이다. 예를 들어, 심장 근육세포에 산소를 공급하는 혈관이 막혀 산소가 고갈되면 심장 근육세포에 ‘세포괴사’가 일어나 심장마비를 겪게 된다. 이처럼 외상이나 산소 부족 등의 여러 이유로 계획 없이 세포가 죽게 되는 일도 있다. 세포괴사는 불행히도 평소처럼 Na+를 세포 밖으로 내보내지 못해 삼투현상으로 세포 내에 물이 많아져서 세포가 ‘터지게’ 되는 것이다. 이는 세포자멸사처럼 ‘분해’되는 것과 전혀 다르다.

흥미롭게도 세포가 때가 되어 계획된 죽음의 절차를 따를 때(아포프토시스)와 갑자기 사고사로 죽을 때(네크로시스)는 주위 세포들에 미치는 여파가 전혀 다르다. 네크로시스, 세포괴사는 ‘나도 죽고 너도 죽자’식이다. 세포괴사 때는 터져 죽은 세포의 내용물이 주변 조직으로 들어가 다른 세포들에도 손상을 입히는 염증반응을 일으켜, 다른 세포들도 같이 터져 죽게 된다. 그러나 ‘때가 되어 떨어지는’ 아포프토시스, 세포자멸사는 개별적인 한 세포의 ‘사라짐’에만 목적이 있기에 주변 세포를 해치지 않는다.

이처럼 몸 안의 세포가 사라지는 목적과 과정을 보면, 하버드대 교수였던 헨리 나우웬이 전한 ‘죽음, 가장 큰 선물’이란 책이 생각난다. 죽음을 잘 맞이함과 죽음을 앞둔 사람을 돌봄에 대한 조언을 주는 이 책에는 죽음 앞에서 해야 할 소중한 질문이 들어 있다. ‘내가 가족과 친구들 곁을 떠난 후에도 계속 열매를 맺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이다. 이 질문이 ‘내가 아직 얼마나 성취할 수 있으며, 내가 아직 얼마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가?’보다 왜 더 소중한지 알려준다. 때가 되어 사라지는 아포프토시스는 다른 세포들의 건강을 돕는 열매를 맺는다. 건강한 세포에게는 존재함도 사라짐도 모두 사랑의 방식이다. 사람은 몸이 사라져도 우리가 ‘어떤 사람’이었느냐로 우리를 기억하는 사회에서 살아 있고 부활한다. 그러니 네크로시스는 없게 하자. 유가족들을 ‘터지게 하는’ 자살이 없는 우리 사회, 열매를 맺지 못할 행위를 거듭하며 다른 이들을 괴롭힘이 없는 우리 사회, 암세포가 되지 않고 때가 되면 사라져 자신의 영향력, 권세를 홀로 틀어쥠이 없는 우리 사회가 건강하다고 세포들은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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