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혐오차별 너머, 평등으로…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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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혐오차별 너머, 평등으로…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방향
  • 이재상 기자
  • 승인 2023.08.23 09:00
  • 수정 2023-08-22 16: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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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 제정과 관련해 21대 국회는 20년 전인 17대·18대 국회에서 반복한 것처럼 소관 상임위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는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의견표명 3주년을 맞아, 이상민․박주민․권인숙․장혜영 국회의원 및 차별금지법제정연대와 공동으로 6월 30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혐오차별 너머, 평등으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한국 정부와 국회, 차별금지법 반드시 제정해야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평등권과

비차별 권리 비로소 실현될 수 있는

시작점이며 더 쌓아 올려야 할 바닥”

 

유엔, 차별금지법 제정지침 작년 발간

 

■클로드 칸(Mr. Claude Cahn)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UN OHCHR) 담당관은 현존하는 국제인권법과 특별절차, 조약 등의 체계 하에서의 원칙을 바탕으로 지난해 12월 발간된 ‘유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지침’을 소개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에서 요구되는 내용은 △한정적이지 않은 광범위한 사유에 따른 모든 형태의 차별과 차별의 양상을 법의 규제를 받는 생활의 전 영역에서 금지할 것 △차별과 불이익을 경험하거나 이에 노출된 사람과 집단의 평등권 실현을 강화하기 위한 건설적인 실천조치의 채택을 명시적으로 허용, 요구 및 규정할 것 △접근성 보장 및 평등 의무를 수립해 공공영역과 민간영역에서 평등권과 차별금지가 실천되도록 할 것 등으로 ‘정당한 사유’ 등의 요소가 포함돼야 한다.

‘정당한 사유’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에서 규정한 명백한 기준에 따라 평가돼야 한다. 이러한 기준에는 정당한 목적과 이러한 목적 달성에 사용된 수단의 적절성, 필요성, 비례성에 대한 확인이 포함된다. 정당한 목적은 차별적 고정관념에 대한 언급으로 결코 정당화될 수 없으며 몇몇 형태의 금지 행동(괴롭힘, 성희롱, 2차 가해 등)은 처음부터 정당화될 수 없다.

‘적극적 조치’(때로는 적극적 우대조치, 특정 조치 또는 일시적 특별조치라고도 불림)는 평등을 강화하거나 이를 달성하고 불이익을 개선할 목적으로 마련된 선별적 조치 등으로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적극적 행동조치를 명시적으로 허용함과 동시에 이를 요구해야 한다. 적극적인 조치로 인해 고립, 분리, 고정관념 또는 낙인이 영구화되거나, 불평등한 기준이나 별도의 기준이 유지되는 결과를 초래해서는 안 된다.

‘접근성’ 관련해선 국가는 타인과 동등하게 물리적 환경, 수송, 정보와 통신, 시설과 용역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할 의무가 있다. 접근성은 적극적이고 사전적 의무로서 개인의 접근요구 여부와 상관없이 존재한다. 이는 무조건적인 의무로 불이행 시 제공자의 부담이 이유가 될 수 없다

‘실질적 차별 구제’에선 차별의 책임이 있는 자에 대한 제재와 차별 피해자의 인정, 배상 및 원상회복 등 보상, 그리고 차별의 사회적인 원인과 결과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사회적 조치 등 차별에 대한 효과적이며 억제력 있고 비례적인 제재를 규정해야 한다. 또한 법원과 차별사건의 판단 책임이 있는 기구가 차별을 시정, 억제 및 예방하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제도적·사회적 조치를 명령할 수 있도록 이들에게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평등·비차별 권리’는 민족적, 인종적, 종교적, 언어적 소수집단의 권리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비차별 권리가 실질적으로 보호되고 실현돼야 하며, 국가가 소수자의 권리를 존중, 보호, 충족할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제정, 집행, 시행이 필수적이다

‘차별적 폭력과 혐오범죄 예방’ 관련해선 국가는 모든 형태의 차별 철폐 책무와 국제법상 의무를 충족하기 위해서 차별적인 폭력과 그 성격상 범죄에 해당되는 편견에 의한 행위를 범죄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형법에 차별적 폭력이나 혐오범죄와 관련된 별도의 조항을 지정하거나 혐오나 적대감이 동기가 된 편견의 인정이 판결의 고려사항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차별과 표현’ 관련해선 국가는 국제법에서 인정되는 모든 사유로 인한 폭력, 차별, 적대, 혐오의 조장을 금지해야 하며, 이러한 사유에는 연령, 장애, 젠더 표현과 성 정체성, 국적, 인종 또는 민족성, 종교, 성적 지향이 포함되나 이에 국한되지 않는다.

금지가 반드시 범죄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는 형사처벌 대상인 표현, 민사적·행정적 처벌 대상인 표현, 그리고 그 외의 대응만으로도 충분한 표현을 구분해야 하며, 혐오 표현을 퇴치하기 위한 조치로 인해 특정인 또는 집단이 여하한 형태의 차별을 당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그 중에서도 혐오 표현은 다양성에 대한 긍정적 메시지를 담은 공보활동 등을 통해서 교육, 인식 제고, 대항 표현과 긍정적인 표현 전파를 위한 피해자 지원 등 건설적 개입으로 다뤄야 한다.

칸 담당관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은 끝이 아닌 시작이며, 천장이 아닌 더 쌓아 올려야 할 바닥”이라며 “궁극적으로 국가가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발판이나 기초로 삼아 평등하고 다양하며 포용적인 사회를 강화 및 달성하기 위한 시스템 전반에 걸친 노력을 할 때 평등권과 비차별 권리가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고 피력했다.

 

한국, 차별금지법 제정 유엔 권고

2007년부터 11차례나 있었지만

그때마다 ‘사회적 합의’ 핑계대며

‘신중하게 고려’ 입장 고수

 

■김진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는 “2007년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의 권고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15년 동안 11번의 유엔 인권기구의 권고가 있었을 정도로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제정은 오랜 기간에 걸쳐 필요성이 강조돼 왔다.”며 정부와 국회의 결단을 촉구했다.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는 지난해 9월 한국 정부의 장애인권리협약 제2-3차 국가보고서에 대한 최종견해를 통해 현재 있는 차별금지 법령, 특히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을 재검토하고, 다중적이고 교차적인 형태의 장애에 기반한 차별과 그것이 연령, 성별, 인종, 민족성, 성 정체성, 성적 지향 또는 어떠한 다른 지위에 기반한 차별과 교차한다는 점을 인식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 다중적이고 교차적인 형태의 차별을 종식시키기 위한 전략을 수립할 것을 권고했다.

김 변호사는 “유엔 인권이사회의 국가별 인권상황 정기검토에서도 2008년 제1차 검토부터 2023년 제4차 검토까지 빠짐없이 같은 권고를 받고 있다. 별도의 조치 없이는 2023년 10월로 예정된 자유권위원회의 제5차 한국 심의에서도 같은 권고를 반복해 받을 것으로 보인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여전히 ‘사회적 합의’를 이야기하며 법의 제정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어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가 언론브리핑에서 강조한 바와 같이 한국에는 최근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옹호하는 움직임이 증가해 왔고, 포괄적 평등법안의 채택은 이미 오래 전에 그 기한을 넘겨 매우 시급한 상황”이라며 “15년 이상 진행된 ‘신중한 고려’가 하루 빨리 마무리돼 출신지역, 인종, 피부색, 성적 지향 및 성 정체성 등 다양한 사유를 포함한 포괄적인 법, 그리고 이러한 사유에 근거한 차별과 증오 범죄에 노출된 모든 사람들에게 차별 없이 적절한 법적 보호와 효과적인 구제를 제공하는 차별금지법의 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별금지법 반대, 개신교 전체

아닌 과잉 대표된 입장에 불과

 

■최형묵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 이사는 “언뜻 보기에 차별금지법 및 지역의 인권조례 등을 반대하는 입장이 개신교 전체의 의견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와 다르다. 그것은 과잉 대표된 입장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입장이 과잉 대표된 것은 개신교 내의 의사결정 구조와 관련 있다. 특정한 직분(목사, 장로)의 고연령층 남성이 공적 의사결정 구조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면서 “여기에 근본주의적 신앙으로 무장한 열성적 신자들이 가세하여 그 목소리가 크게 들릴 뿐이며 그와 다른 기독교인들의 입장을 언론에서도 제대로 조명하지 않은 탓에 일종의 착시현상이 나타나고 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기독교 신앙의 입장에서 보편적 인권의 요구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하는 것은 중요한 신학적 쟁점이 되어 왔다. 근대 계몽주의의 대두 및 정치적 혁명과 더불어 제기된 보편적 인권에 대해 기독교 신앙의 입장에서 처음부터 선뜻 수용하기 어려워했던 국면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계몽주의 자체가 성서 및 신학의 유산을 재해석하는 측면을 지니고 있었고, 또한 종교개혁이 진정한 근대적 주체로서 개인의 발견을 초래한 측면을 지니고 있었다. 그 인식이 분명해지는 가운데 보편적 인권의 요구는 복음의 진실에 부합하는 것으로 점차 여겨지게 됐다.

여기에 ‘세계인권선언’의 탄생 배경이 되었던 세계전쟁과 전체주의의 끔찍한 경험은 기독교 신학에도 결정적인 자극이 되었고, 그 결과 오늘날 기독교 신학은 보편적 인권의 요구를 복음의 구체화로 확고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 최 이사의 설명이다.

흔히 인용되는 많은 성구가 사실은 특정한 성적 지향과는 상관이 없다. 특정한 성행위를 문제시하는 구절이 없지는 않다(레위기 18:22, 로마서 1:18~32, 고린도전서 6:9~11).

그러나 그것은 전반적인 문맥과 당대의 상황을 고려해 해석해야 하고, 또한 오늘의 보편적인 가치관에 비춰 판단해야 한다.

최 이사는 “오늘날과 같은 성적 지향 개념이 존재하지도 않았고, 현대의 과학적, 의학적 지식이 확립되기 이전에 문제시된 특정한 성행위에 대한 언급은 고대의 종교적, 윤리적 관념을 반영하고 있다.”며 “전반적인 문맥을 고려하면 특정한 성적 지향을 문제시한다기보다는 성적 착취 또는 성적 폭력을 문제시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오히려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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