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취재]국립중앙박물관의 '쉬운 전시 체험 프로그램'_발달장애인과 함께 떠나는 신라·가야 토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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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취재]국립중앙박물관의 '쉬운 전시 체험 프로그램'_발달장애인과 함께 떠나는 신라·가야 토기 여행
  • 정은경 기자
  • 승인 2023.08.22 10:10
  • 수정 2023-08-22 17: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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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여름의 한가운데다. 도대체 밖으로 나가 무언가를 한다는 게 엄두가 안 나는 그런 날, 시원한 박물관에 갈 일이 생겼다. 그것도 신라・가야의 토기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영원한 여정, 특별한 동행-상형토기와 토우 장식 토기”전(~10월 9일) 전시 투어를 한다는 소식은 취재보다는 신라・가야의 토기를 볼 수 있다는 사심을 앞서게 했다. 수행기관인 소소한소통의 협조를 얻어 1회차 프로그램을 함께했다. 결론을 말하면 토기는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새 모양 토기, 배 모양 토기 등등 전시유물을 바라보는 흥미 가득한 반짝이는 눈동자와 그들에게 어떻게든 쉬운 말로 유물을 설명해주려는 열정을 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두 시간이었다. 전시는 다음 기회에 보는 걸로!!_정은경 기자
▲ 쉬운 전시 체험 투어를 마치고 나온 참가자들이 밝은 얼굴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아직 햇살이 채 퍼지기도 전인 오전 9시 15분경,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문 앞, 에 아들과 엄마로 보이는 일행이 문이 열리길 기다리고있다.  전시관 개관은 10시, 그러나 이날 이곳에서 진행되는 발달장애인과 함께 하는 '쉬운 전시 체험 프로그램'의 참가자들이 하나 둘씩 모이자 좀 이른 시간에 문이 열렸다.

 

국립중앙박물관, 다양한 배리어프리 장치 설치

‘쉬운 해설을 곁들인 투어 프로그램은 어떨까?’

 

이날 체험 프로그램은 국립중앙박물관이 기획하고 소소한소통이 주관하는,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전시 투어 프로그램이다. 이날 투어 대상 전시는 <영원한 여정, 특별한 동행-상형 토기와 토우 장식 토기>전으로 신라・가야 시대 사람들이 만든 상형 토기와 토우 장식 토기를 재조명하는 전시다. 전시된 토기들은 신라・가야의 장송(葬送) 의례에 쓰였던 것들로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과 내세관을 담고 있다.

토우? 장송? 갈수록 아리송한 설명이다. 이 어려운 이야기를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나누자는 것이 ‘쉬운 전시 체험 프로그램’의 목적이다.

“이 특별 전시를 준비하면서 문화 소외계층을 위한 전시 공간을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를 준비했습니다. 누구나 소외되지 않은 전시 공간을 구현하기 위해서 ‘쉬운 전시 해설’, ‘음성 지원 디지털 점자 정보검색기’, ‘촉각 체험 모형’ 등 여러 장치를 전시실에 설치했고, 전시 디자인도 배리어프리 공간을 구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특히 쉬운 전시 해설 책자를 만들면서 발달장애인이 직접 참여하는 전시 투어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들이 이 전시를 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해설을 곁들인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도 경계를 없애는 또 하나의 장치라는 생각이었죠.” ‘쉬운 전시 체험 프로그램’을 기획한 국립중앙박물관 고고역사부 이상미 학예연구사의 말이다.

수행기관은 쉬운 전시 해설 책자 작업을 함께한 ‘소소한소통’이다. 2017년 창업한 소소한소통은 발달장애인, 정보 약자의 알 권리를 위해 설립된 쉬운 정보 제작 전문 기업이다.

이상미 학예연구사의 제안에 소소한소통은 두 손을 번쩍 들어 환영했다. “때마침 회사 내부에서도 발달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한 전시 투어를 해 보면 어떨까 하는 논의가 오가고 있던 터였습니다. 아무리 쉬운 전시 해설 책자를 만들어도 당사자들이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소용없고, 현장에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만 못 하지 않겠나 싶었던 거죠.” 이 프로그램 운영의 전반을 책임진 이은수 파트장의 말이다.

우연히도 두 기관의 뜻이 하나로 모아진 것이다. 덕분에 일은 빠르게 진행됐다. 처음에 소소한소통(이하 소소)이 국립중앙박물관(이하 박물관)에 제안한 것은 8월 중에 청소년, 성인 각 1회씩의 전시 투어였다. 그런데 박물관에서 9월까지 포함 각 2회씩 총 4회의 투어를 하자고 한 걸음 더 나갔다. 그래서 결정된 일정이 △청소년 대상_1차 8월 3일 오전 9시 30분, 2차 9월 5일 오후 4시 △성인 대상_1차 8월 22일 오후 4시, 2차 9월 19일 오후 4시다. 한 번에 15명 내외를 모집하기로 했다.

 

소소한소통 직원들이 쉬운 도슨트 맡아

한 조에 세 명, 각자에 맞춘 눈높이 설명

 

박물관 상설전시장의 문이 열리자 오늘 전시 투어에 참여할 학생들이 하나둘 보호자들과 함께 모여들었다. 9시 30분. “자, 여러분 이쪽으로 모여주세요.” 하는 소소의 직원들, 오늘의 쉬운 해설을 맡아줄 일일 도슨트들의 목소리를 따라 전시장 로비로 참여자들이 모였다. 소소의 직원들이 한 명 한 명 이름을 확인하고 이름표를 나누어 주었다. 이름표는 각기 다른 색으로 되어 있고, 같은 색 이름표를 한 사람들이 한 조다. 이날은 모두 4개 조 12명이 참석했다.

기자는 이 중 초록색 이름표를 단 조(이후부터 편의상 초록조로 부른다)와 함께 동행하기로 했다. 초록조의 일일 도슨트는 소소의 (신)수연. 조원은 김인수(만14세, 가명)과 박동구(15세, 가명), 조서경(16세, 서경은 교통 관계로 늦게 도착해 사전 모임에는 참석하지 않았다)이다. 여기에 이날 자원봉사로 나온 이다빈이 스태프로 함께했다.

참석 여부를 확인한 참석자들은 같은 색 이름표를 단 조별로 모여 전시 관람 전의 주의 사항을 들었다. “인수님, 동구님, 전시장에 들어가서 전시된 유물을 만지면 안 돼요. 눈으로만 봐야 해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유물을 보고 있을 때는 잠시 기다려야겠죠. 말도 작은 목소리로 하고요.” 수연이 조원인 인수, 동구와 눈을 맞추며 전시장에서 지켜야 할 에티켓에 대해 조근조근 이야기를 하자 인수과 동구도 고개를 끄덕였다.

▲ 드디어 초록조 전시실 입장. 오늘 보게 될 토기가 ‘옛날옛날 아주 오랜 옛날 사람들이 죽을 때 좋은 곳에 가라고 무덤에 함께 묻었던 것들’이라는 내용을 쉬운 말로 설명하고 있다.

곧이어 조별로 전시실로 이동했다. 전시실 입장 전에 늦지 않게 서경도 도착했다. 전시실 입구, 본격적인 전시 관람 전에 박물관 이상미 학예사가 환영 인사와 함께 <영원한 여정, 특별한 동행> 전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을 했다. 참여 학생 12명과 보호자들까지, 서로를 향해 눈인사를 나누고 이 학예사의 말에 귀도 쫑긋해 보았다. 이상미 학예사의 전반적인 설명이 끝나자 이제부터 본격적인 투어, 각 조별로 순차적으로 전시실로 입장!!

가장 먼저 초록조를 맞이한 것은 새 모양을 한 토기였다. 낯을 많이 가리는 서경이 엄마 옆에서 떨어지지 않자 엄마가 슬그머니 자리를 피한다. “내가 없으면 다른 사람들하고 더 잘 어울려요. 멀리서 지켜볼게요.” 서경 엄마의 말이다. 다리가 불편한 서경이라 다소 신경이 쓰이긴 하지만 서경이가 전시에 집중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서경이는 오래 서 있거나 걷기가 불편하다. 그래도 전시작 앞에 서자 눈이 반짝반짝해진다.

“우리가 처음 볼 거는 토기예요. 원래 무덤에 묻혀 있었어요. 사람이 죽으면 무덤에 묻지요? 그때 이 토기들을 죽은 사람과 함께 묻은 겁니다. (중략) 옛날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하늘로 올라간다고 믿었어요. 새는 하늘을 나는 동물이잖아요? 새 모양 토기를 묻어서 새에게 이 사람이 하늘로 올라갈 때 잘 안내해 달라고 부탁하는 거예요.”

장송의 의미를 ‘사람이 죽으면 하늘로 보내 준다’는 쉬운 말로 설명한다. 어려운 말은 하나도 없지만 사실, 이 설명을 다 이해하긴 어렵다. 투어가 끝난 뒤 설명이 어땠냐는 질문에 인수는 “너무 길어서 힘들었다.”고 대답했다. 그래도 인수도 동구도 서경도 열심히 듣는다. 물론 가끔씩 딴짓도 하고 한눈을 팔기도 했지만, 토기 하나하나를 들여다보고 수연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새 모양 토기에 이어 용 모양 토기, 사슴 모양 토기, 배 모양 토기 등등이 차례로 전시돼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서경이 표정이 나빠졌다. “아파… 다리 아파.”

마침 ‘집’이 나온다. 쉼터다. 집 모양으로 만들어진 공간에는 나지막한 의자가 준비되어 있고, 거기에 앉아 보면 전시된 토기들이 자연 속에서 그대로 숨 쉬는 듯한 장면이 연출된다. 다리도 쉬고 신기한 장면도 보고 일석이조다.

▲ 상형토기 여행이 끝나고 아픈 다리를 쉴 수 있던 ‘집’에서 초록조 다섯 명이 쪼로록 앉아 영상을 보고 있다.
▲ 촉각 모형 체험. 방금전 전시실에서 눈으로만 봐야 했던 유물들을 손으로 만져볼 수 있다.
▲ 전시가 끝나고 전시장 입구에서 만난 기념주화 만드는 기계. 동구는 이날 제일 재밌던 활동으로 기념주화 만들기를 꼽았다.

 

쉬운 전시 체험 프로그램, 이제 첫걸음

만지고 체험하는 정리 활동 있었으면

 

이제 전시 투어 반을 본 셈. 이들은 다시 힘을 내 토우 장식 토기까지 내처 보았다. 점점 집중력이 떨어졌지만 세 명이란 적은 숫자 덕분에 한 사람 한 사람 챙겨가며 전시 투어를 이끌어갈 수 있었다. 물론 일일 도슨트의 퀴즈 형식 질문을 섞은 쉬운 해설이 참여 학생들의 산만해지는 주의력을 다시 모으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전시 관람이 끝난 뒤에는 정리 활동이 있었다. 마침 방학이라 북적이는 전시장을 벗어나 별도의 건물에 마련된 교육장에서 이루어졌다. 조별로 나누어 앉아 간단한 다과와 함께 활동지로 오늘 함께 본 전시회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 관람이 끝난 뒤 이루어진 정리 활동, 조별로 나누어 활동지를 채웠다.

사전 모임부터 전시 관람, 정리 활동까지 약 두 시간, 발달장애 청소년들로서는 쉽지 않은 시간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모두 잘 따라와 주었다. 모든 활동이 끝나고 헤어지면서, 처음 만났을 땐 어색해서 서로 쳐다보지도 못했던 초록조원들은 서로 손을 꼭 잡고 인사를 나누었다.

소소가 박물관의 쉬운 전시 체험 프로그램을 주관하게 되면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해외의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경우 정식 개장 전 시간대를 자폐성 장애어린이를 위해 개방해주는 사례가 있다고 한다. 시각, 청각 등의 자극에 예민한 자폐 어린이를 위한 배려가 스며있는 지원이다. 박물관의 이번 쉬운 전시 체험 프로그램이 해외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프로그램과 같은 배려의 첫걸음이길 바라며, 전시 투어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간 당사자 청소년들이 보내온 소감을 곱씹어 본다.

“설명이 너무 길었어요. 체험하는 것도 없고요. 집에 갈 때 나누어 준 반죽(박물관에서 빵 반죽과 같은 소재로 먹어도 되는 일종의 클레이를 기념품으로 나누어주었다.)으로 박물관에서 본 그릇을 함께 만들어보고 싶어요.”(인수)

“전시회 내용은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박물관 나들이도 하고 기념주화도 만들어 보아서 좋았어요. 다음에도 또 가고 싶습니다.”(동구)

“다리가 아팠어요. 전시된 유물들이 신기했어요. 설명을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몇 가지는 기억이 나서 아빠랑 오빠한테 자랑했어요.”(서경)

 

※ 국립중앙박물관 <영원한 여정, 특별한 동행 - 상형토기와 토우장식 토기>전 쉬운 전시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은 소소한소통(전화 070-4296-8213)으로 문의하면 된다. (취재 협조: 국립중앙박물관・소소한소통)

“챙겨주어야 할 사람이 아니라 그냥 친구인 거죠”

이다빈/자원봉사 스태프, 안산경안고 3학년

8월 8일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 <영원한 여정, 특별한 동행>전의 쉬운 전시 체험 프로그램에는 네 명의 비장애인 청소년이 함께했다. 모두 안산경안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다. 이들의 전시 투어 합류는 예정에 없던 일이다. 네 명 중 한 명인 이다빈 학생이 방학을 맞아 뜻있는 일을 찾던 중, 소소한소통의 백정연 대표와 연결되면서 정말 ‘우연히’ 이루어졌다.

경기도 안산에서 서울 용산까지, 방학임에도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 나와야 하는 길임에도 마다하지 않고 자원봉사로 참여한 이다빈 학생은 이 전시 투어 참여가 정말 ‘보람된 경험’이었다고 말한다. “사실 그동안 또래 발달장애인 친구들을 만날 일이 많이 없었어요. 그래서 살짝 겁도 났는데, 오늘 만나고 보니 제가 큰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어요. 그간 저는 장애인 친구들은 ‘챙겨주어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오늘 짧은 시간이지만 두 시간을 함께하고 보니 아니더라고요. 나랑 다른 사고를 하지만 자신만의 사고방식을 갖고 있고, 힘들면 힘들다, 모르면 모르겠다고 당당히 말하는(어조는 어눌할지 모르지만)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챙길 줄도 아는 친구들이더라고요. 장애가 없는 친구들도 나랑 생각하는 게 많이 다를 수 있잖아요. 그러니 챙겨주어야 할 사람이 아니라 그냥 친구인 거죠.”

전시를 보다 다른 관람객들이 오자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 주는 모습을 보면서 다빈은 자신보다 배려심이 더 깊은 면모를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것은 전시 마무리 즈음에 만난 ‘촉각 전시’ 파트였다고. “전시 작품을 석고나 점토로 그대로 모사해 제작한 촉각 전시물은 사실, 작은 발상의 전환으로 발달장애 친구들뿐만 아니라 시각장애인들도 전시를 즐길 수 있게 해주는 방법이었어요. 일상에서의 관점과 사고의 전환이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지요.”

고3, 입시가 내일모레인 다빈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도 좀 더 생각이 깊어졌다고 말한다. 사회과학 전공을 고려하고 있는 다빈은 학업을 하면서도 ‘너무나 당연한 것들을 당연히 할 수 있도록 하는’ 활동을 하고 싶다. 장애인들에게 멋진 사진을 찍어준다든가, 세상이 장애를 보는 눈을 바꿀 수 있는 작은 간담회 등등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겠다는 고3 다빈의 눈은 하트로 반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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