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달 기획]지금, 여기 고려인 장애인, 어떻게 살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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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달 기획]지금, 여기 고려인 장애인, 어떻게 살고 있나
  • 정은경 기자
  • 승인 2023.04.24 17:46
  • 수정 2023-04-29 09: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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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기회에 인천시 연수구 연수동의 함박마을에 갈 일이 있었다. 대략 10여 년 만에 찾은 그곳에는 러시아어 간판을 단 가게들이 즐비했고, 오가는 이들은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더구나 그들의 생김새는 딱 한국인인데도 말이다. 알고 보니 함박마을은 한국에 이주한 고려인들의 집거지 가운데 하나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휠체어에 작은 아이를 태우고 밀고 가는 젊은 엄마를 보았다. 그 아이는 뇌병변장애를 지닌 듯했다. 이 취재는 그 우연한 목격에서 시작됐다. 어느새 우리 사회에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고려인들. 질곡 많은 역사를 지닌 우리 동포임에도 이주민 신분인 그들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는지를 장애인 문제를 통해 살펴본다.

국내 고려인 장애인 실효성 있는 지원 전무…실태조사 선행돼야”

 

2021년 4월 19일,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열린 '420 장애인차별연대 인천공동투쟁단' 기자회견장에 색다른 요구를 들고 올라온 사람이 있다. 사단법인 너머인천고려인문화원의 손정진 대표다. 그는 '고려인도 장애인 등록을 받아 달라'고 외쳤다.

당시 손정진 대표는 "국내에 거주하는 고려인 동포 가운데 절반가량이 장애인 등록이 불가능하다. '장애인복지법'상 거소 신고를 한 사람만이 장애인 등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특히 방문거주(F1) 비자로 엄마아빠를 따라 한국에 들어와 사는, 그래서 거소신고를 할 수 없는 장애아동들의 장애인등록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장애인등록이 안 되니 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없어 (장애)아동(인)의 돌봄은 오롯이 가족의 몫이 된다. 결국 가족 중의 한 명, 주로 엄마(여성)가 일을 할 수 없고, 장애 가족의 의료비 부담도 만만치 않아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할 수밖에 없게 되는 이중의 고통을 겪게 된다.

▲ 전국에 흩어져 있는 고려인장애인 가족들이 지난 2020년 결성한 고려인장애인가족모임은 2022년 들어서야 첫 오프라인 모임을 가졌다.

 

2010년부터 본격적 이주, 약 10만 명 입국

작년부터 미성년 고려인 장애인등록 가능해져

사실 우리는 '고려인'이라는 말도 낯설다. 그러나 그 '고려인'이 낯설지 않은 동네가 인천에 있다. 연수구 연수1동 함박마을이다. 이곳에는 1만여 명의 고려인들이 모여 살고 있다. '대략'이라고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재외동포 비자(F4)를 받고 입국해 거소신고가 된 이들 외에도 방문거주(F1) 비자나 방문취업(H2) 비자를 받고 입국한 가족들이 많아서다. 대부분 재외동포 비자를 받고 들어온 이들의 자녀나 부모인 그들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고려인은 외국인 노동자나 결혼이주자와는 다르다. 우선 그들은 재외동포다. 구소련 지역이었던 러시아를 비롯해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키스스탄, 우크라이나 등의 중앙아시아 지역에 거주하는 한민족 동포다. 이들이 그곳에 가서 살 수밖에 없던 배경에는 굴곡 심한 한국 근대사가 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이들의 선조들은 먹고살기 위해, 또는 독립운동을 위해 ‘조선’을 떠나 두만강을 건너 러시아령 연해주 등의 지역으로 이주해 정착했다. 이후 고려인촌을 이뤄 살던 이들은 1938년 10월 어느날 갑자기 소련 정부에 의해 강제로 중앙아시아로 이주당하고, 정책적으로 모국어 사용을 금지당했다. 지금의 고려인들이 한국어를 하지 못하는 연유다.

고려인이 본격적으로 한국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2010년 ‘고려인동포 합법적 체류자격 및 정착 지원을 위한 특별법’(약칭 고려인동포법)이 제정되면서부터다. 2022년 12월 말 현재 국내에 들어와 있는 고려인의 수를 법무부 외국 국적 동포 국내 거소 현황을 기준으로 살펴보면(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키스스탄, 우크라이나 국적자 기준) 7만5969명이다. 2010년 이후 고려인은 2012년 1만7652명, 2013년 2만1072명, 2014년 2만5319명, 2015년 3만2270명, 2016년 4만7397명 2017년 6만557명, 2018년 7만451명, 2019년 7만4111명으로 매년 꾸준히 늘다가 2020년 코로나 사태 이후 증가세가 둔화되었다.

처음에는 중국 동포나 외국인노동자와 같이 '일'을 하기 위해 단신으로 입국하는 사례가 많았다. 그러나 한국에서 직장을 잡고 안정이 되면서 이들은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현재 국내에 들어와 있는 고려인들은 이들 세 국가의 국적을 가장 많이 갖고 있다)에 있는 식구들을 불러들였다. 처음엔 아내나 남편을, 다음엔 자녀를 그리고 자녀들을 돌봐줄 노령의 부모들도 입국했다. 그러다 보니 한국의 고려인 사회에는 3대가 모여사는 가족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가족 중 뒤늦게 한국에 들어온 미성년 자녀나 노령의 부모들은 대부분 방문거주(F1) 비자나 방문취업(H2) 비자를 받고 들어와 거소 신고가 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실제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고려인의 수는 등록 고려인의 수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너머고려인문화원 등 고려인 지원단체에서는 10만 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한 가지는, 온 가족이 모두 한국에 들어와 살다보니 여타의 외국인 근로자나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서 버는 수입의 상당 부분을 고향의 가족에게 보내는 것과는 달리, 고려인 가족은 정착해 사는 지역사회에서 모든 소비를 하는, 생산-소비의 완벽한 경제 사슬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물론 해외동포 비자로 취업을 하고 거소신고를 하는 만큼 세금도 낸다.

2021년 ‘420 인천공투단’과 연대해 ‘고려인장애인 등록을 요구’한 후 일단 장애인등록 문제는 해결이 됐다. 장애인등록의 문제는 비단 인천만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 광주광역시, 안산시, 김해시, 아산시 등등 고려인들이 많이 모여사는 지역에서 장애인등록을 못해 어려움을 겪는 사례들이 나타났다. 더구나 학령기 어린이·청소년들의 경우 장애에 대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문제뿐만 아니라 부모 등 보호자의 체류자격에 따라 학습이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지는 문제 또한 발생하곤 했다.

이에 법무부에서는 2022년 1월 3일부터 국내에서 초중고교를 다니는 중국 및 고려인 동포의 미성년 자녀들에게 재외동포에 해단하는 F4비자를 부여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거소신고가 가능해지고, 장애인 등록도 가능해졌다. 1년 만에 이뤄낸 성과였다.

 

장애인등록률 예상보다 낮아

국내 장애 고려인 실태 파악 전무

이 같은 조치는 고려인 사회에는 희소식이었다. 2022년 1월 4일 자 경인일보는 뇌병변장애를 가진 아들을 둔 고려인 2세 김안젤라 씨를 취재, 그동안 장애 아동 돌봄서비스 등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음을 전하고 이 조치로 “아들이 장애인 등록을 하면 받을 수 있는 여러 복지서비스가 있다고 들었는데, 앞으로 우리 가족의 삶도 더욱 행복해질 것 같다”는 김 씨의 바람을 전했다.

김 씨의 이 바람은 실현되었을까. 김 씨 개인의 상황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다만 고려인 장애인의 현실이 그렇게 달라지지 않은 것은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2023년 2월 8일 함박마을에 있는 작은도서관인 푸른마을함박도서관. 2명의 어린이들이 치료사의 도움을 받으며 걷기 연습을 하고 있다. 고려인장애인가족모임에서 주선한 재활치료 프로그램이다.

“아이들이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장소가 없는 거예요. 마침 푸른마을 도서관에서 장소를 내 주셔서 정말 고마운 일이죠.”

이 프로그램을 주선한 고려인장애인가족모임의 대표 최마리아의 말이다.

발달장애바우처 지원을 받지 못하는 고려인 가정의 장애아동 2명이 이 프로그램을 이용한다. 이주민자원봉사자가 일주일에 한 번씩 고려인 발달장애아동을 위해 인근 까리따스이주민문화센터에서 봉사를 하던 프로그램인데, 방학 동안 센터가 운영을 하지 않는 바람에 어려움에 처한 것을 푸른도서관에서 장소를 제공한 것. 이 프로그램은 지난 2월을 마지막으로 종료됐다. 자원봉사를 하던 이주민 자원봉사자가 너무 바빠서 시간을 낼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 고려인 장애 어린이들이 발달장애바우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우선적으로는 장애인등록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고려인의 장애인등록이 가능해진 지 1년여. 장애인등록을 강력히 요구했던 만큼 장애인등록률이 높으리라는 것은 예단에 불과하다.

2023년 4월, 인천시 연수구 연수1동 함박마을에 거주하는 고려인장애인가족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고려인 장애인은 모두 30여 명. 이 모임에 참여하지 않는 이들도 있을 테니 연수1동에 거주하는 고려인 장애인의 수는 그 이상일 것이다. 그런데 취재를 통해 파악한 바로는 연수1동의 고려인 장애인 등록인 수는 14명이었다. 50%도 채 안되는 숫자다. 이나마도 연수구 담당 공무원의 도움을 얻어 겨우 파악한 것.

여기서 두 가지 문제가 드러난다. 첫째는 고려인 장애인의 실태가 전혀 파악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장애인등록 불가라는 허들이 제거되었음에도 고려인들이 장애인등록을 하지 않고(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첫째 고려인 장애인의 실태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는 점은 바로 정책의 부재로 이어질 수 있다. 대상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 정책의 수립과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23년 4월 현재까지 고려인 장애인에 대한 실태조사는 어디에도 없다. 고려인 장애인의 수조차 정확히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들을 위한 정책이 수립될 리 만무다. 지난 2021년 인천에서 420인천공투단과 너머인천고려인문화원에서 고려인장애인 등록 문제를 이슈로 내세운 이후, 고려인 장애인 실태에 대한 관심이 일시 고조된 적이 있다. 그리고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등에서 이의 실태조사를 하겠다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실제적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인천장애인차별철폐연대(인천장차연)의 장종인 사무국장은 “고려인 장애인 실태조사는 일개 단체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보건복지부나 인천시 같은 지방자치단체에서 나서야 한다. 정부기관에서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같은 곳에 연구 용역을 주어 객관적이고 포괄적인 데이터를 확보해야 한다. 그것이 힘들다면 2년마다 한번씩 하는 장애인실태조사 때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해외동포(고려인과 중국동포가 대부분이다)와 외국인 항목을 추가해서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라고 말한다.

 

장애인등록에 필요한 비용도 부담

언어소통 안돼 행정적 지원 못받아

둘째, 자신들이 가장 강력한 요구였던 장애인등록이 가능해졌음에도 고려인들이 장애인등록을 하지 않았다는 문제는 어떻게 봐야 하는가. 우선 하지 않은 것인지, 못한 것인지를 구분해야 한다.

다시 한번 고려인장애인가족모임 대표 최마리아의 예를 들어보자. 최마리아의 딸은 한국에 입국한 후 모야모야병을 앓았고, 뇌병변장애를 진단받았다. 모야모야병 때문에 수술을 한 것이 2020년, 당시 병원에서 발급된 진단서를 갖고 2022년 장애인등록이 허용된 이후 등록을 하려니 서류의 유효기한이 지나서 등록을 할 수 없었다.

"다시 진단받을 돈 없었어요. 저랑 딸 둘이 사는데, 내가 돈을 벌어야 해서… 아이가 아팠을 때 내가 일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아직도 장애인등록을 못했습니다. 다음달쯤에 할 거예요."

결국은 문제는 돈이었다. 장애인등록을 위해 필요한 장애 진단을 받는 데 소요되는 비용이 고려인 장애인 가족에게는 부담이 된 것이다. 물론 이는 이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특히나 성인 장애인의 경우, 장애가 있으면 일을 할 수가 없어 진단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고 최마리아는 전한다.

다음으로 언어의 문제가 고려인들에게는 큰 장벽으로 작용한다.

“우리 고려인들은 한국말 못해요. 그러니까 장애인등록을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몰라요. 주민센터에 가도 러시아말 하는 사람 없어서 안내받지 못해요.”

최마리아 가족모임 대표의 말이다. 그녀는 고려인 중에서 나름 우리말을 잘 하는 편. 그래서 근처 초등학교의 이중언어 지원인 일도 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고려인들은 우리말을 하지 못한다.

“고려인들이 모국어를 하지 못하는 건 스탈린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시키면서 모국어 사용을 금지시켰기 때문입니다. 모국어 교육도 못하게 했죠. 그러다 보니 2세, 3세로 내려가면서 모국어를 완전히 잊게 된 겁니다.” 너머인천고려인문화원의 손정진 대표의 말이다.

여기서 중국교포와도 차별화되는 이유가 나온다. 우리말을 못하니 정보도 절대적으로 부족할 수밖에 없다. 비록 50%에도 못 미치는 등록률이지만 함박마을에서 고려인 장애인 등록인 수가 14명이‘나’ 되는 것도 사실은 최마리아 대표가 있어서다(이 기사 취재를 위해 최마리아 대표가 가족모임의 SNS에 장애등록 여부를 물었을 때 회원 100여 가족 중 등록을 했다고 답을 올린 가족은 23가족에 불과했다). 아직은 어설프지만 우리말을 하는 최마리아가 장애인 등록 방법 등을 안내해주는 것이 큰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최마리아의 전언에 의하면 아이가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지났어도 한국어를 못해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만 데리고 있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여기에 더해 담당 관공서-장애인등록을 담당하는 곳은 동 행정복지센터-의 담당자들이 재외교포들의 장애인등록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고 있는 경우도 많다고 최마리아는 전한다.

언어의 문제는 물론 장애등록 문제에만 관련되는 것이 아니다. 고려인의 일상 전체에 의사소통의 어려움은 큰 장벽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이 장애인 가족에게 더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장애 가족을 돌보느라 시간을 쏟다보니 한국어를 배우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어 언어불통의 시간이 더 길어지고, 말이 통하지 않으니 받을 수 있는 지원도 못 받는다는 악순환이 거듭되기 때문이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간단해 보인다. 2021년 420인천공투단 활동을통해 고려인 장애인등록 운동을 함께했던 장종인 인천장총 사무국장은 “행정적인 지원의 문제”라고 지적하며, “행정복지센터 등 관련 기관에 러시아어 통역을 배치하고, 지원 관련 안내 책자를 러시아로 제작하면 되는 일입니다. 고려인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사후 서비스 연계까지 일목요연하게 지원할 수 있는 행정적인 지원이 필요한 거죠.”라고 말한다. 결국은 행정 기관의 의지의 문제라는 말이다.

 

외국인 신분 활동지원 서비스 못 받아

사회통합과 인권 차원에서도 해결 필요

고려인 장애인의 경우 장애인등록을 했다고 해도 내국인(굳이 이런 표현을 써야 한다면)이 받는 모든 지원을 똑같이 받는 것도 아니다. 중증장애인들의 경우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가장 필요한 지원은 활동지원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외국인(해외동포 포함)은 활동지원 서비스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 관련 규정을 살펴보면 외국인으로서 활동지원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은 예외적으로 ‘난민’만으로 규정돼 있다.

학령기 고려인 장애인이 학교를 다니면서 돌봄 서비스를 받았다 하더라도 성인이 됨과 동시에 돌봄 서비스는 끊기고 그를 갈음할 수 있는 활동지원 서비스는 받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중증장애인이 활동지원 서비스를 받지 못할 경우 그 돌봄 부담은 오롯이 가족에게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장애인 복지 예산 중 40%가 활동지원 예산 서비스입니다. 여러 지원 중 가장 돈이 많이 들어가는 부분이죠. 그러다 보니 외국인까지 지원 대상에 포함하면 너무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는 논리에서 외국인(해외동포 포함)에게는 활동 지원 서비스를 막아놓은 것 같은데…. 글쎄요? 외국인, 사실 장애인 지원이 문제가 되는 건 고려인에게 한한 특수한 문제라고 봐요. 외국인 근로자들은 장애가 있으면 아예 입국을 하지 못하니까…. 그렇다면 고려인 장애인 중 활동지원 대상이 되는 중증 장애인이 몇 명이나 될까요? 그 비용이 그렇게 막대할 거라는 생각은 안드는데…. 어쨌든 활동지원 서비스가 안되는 건 장애, 비장애의 문제를 떠나서 인권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인천 장차연 장종인 사무국장의 말이다.

국내 거주 고려인 장애인을 대략 10만 명으로 추산할 때, 일반적인 장애출현율 5%를 적용하면 고려인 장애인의 수는 5천 명, 이 중 중증장애인의 수를 인천시 장애인등록 현황을 기준으로 추산하면(2023년 3월 말 현재 인천시 전체 등록장애인 15만1450명 중 심한 장애 5만3976명으로 약 35.6%) 대략 1800명 정도다. 이들에게 활동지원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을 정도로 대한민국이 경제적으로 빈곤한 나라인지는 의구심이 들 만하다.

고려인 장애인 문제는 크게 두 측면에서 더이상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첫째는 현실적으로 우리 사회가 당면한 인구절벽 문제다. 대한민국의 인구는 2022년 말 기준 5443만 9038명으로 집계됐다. 인구가 가장 많던 2020년 대비, 약 40만 명이 줄어든 수치이고, 2020년에 비해서는 0.39%가 줄어든 수치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2029년에는 4천만 명대로 내려앉을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당연히 따라올 노동인구의 감소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외국인 근로자나 해외동포 등 이주민을 받아들이는 것은 당연한 선택지가 될 것이다. 이때 사회통합을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할 문제가 교육과 장애의 문제가 될 것이라는 건 굳이 전문가를 들먹이지 않아도 예측 가능한 일이다. 유럽의 선례-프랑스의 이민 폭동 등-도 있지 않은가. 이런 차원에서도 고려인 장애인의 문제는 우리 사회가 반드시 풀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둘째는 고려인 장애인 문제가 보다 넓은 차원에서 ‘인권의 문제’와 직결된다는 것이다. 인권이란 국적이나 장애의 유무, 피부의 색깔, 성별에 따라 차별받지 않을 권리다. 우리 사회에서 고려인이 한국 국적이 아니라고 해서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건 다시 논할 필요도 없다.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은 올해도 어김없이 돌아왔다. 늘 그렇듯 무슨무슨 이름 붙은 날이면 으레껏 주변을 돌아보게 마련이다. 장애인의 날을 계기로 어느새 우리 사회의 이웃이 된 고려인들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한번 돌아봐야 할 일이다.

"우리도 한국인, 이 땅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습니다."

  고려인장애인가족모임 대표 최마리아  

 

 

“딸이 2020년에 모야모야병을 진단받고 수술을 받았습니다. 장애인 등록이 가능한 병이었지만 비자 문제로 장애인등록을 못했고, 아무런 지원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 너머고려인문화원 등 한국인 이웃들이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 도움에 대한 보답이 최마리아로서는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고려인 장애인들을 돕는 일이었다. 다행히 다른 이들보다 한국어를 조금 더 잘했고, 그래서 자신이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선뜻 그 해에 조직된 ‘고려인장애인가족모임’의 전국 대표를 맡았다.

고려인장애인가족모임(가족모임)은 이름 그대로 전국에 흩어져 있는 고려인 장애인 가족들의 모임이다. 각 지역마다 동변상련인 이들끼리 모여 서로를 위로하고 돕다가 2020년 전국적인 조직을 결성했다. 가족모임의 현재 회원은 100여 가족.

가족모임의 가장 큰 역할은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이 받을 수 있는 지원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다. 지역별로는 수시로 온·오프라인으로 모이고, 전국적으로 주로 줌을 통해 한 달에 두세 번 정도 모임을 갖는다. 그리고 이와는 별도로 SNS를 통해 상시로 소통한다. 한국어 정보를 한국어를 잘 하는 이들 몇몇이 러시아로 번역해 올려주고, 도움을 요청하면 가능한 방법을 알려준다.

가족모임은 아직 자신들의 목소리를 소리 높여 외칠 정도의 힘을 지니지는 못했다. 하지만 서로와 서로를 잇고, 자신들의 요구를 대표성을 갖고 한국 사회의 지자체 등에 전달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고려인 장애인들의 권익을 도모한다.

한국 사회에 바라는 바를 말해 달라는 최마리아의 피드에 회원 가족 중 한 명이 가족모임 SNS에 올린 댓글은 그들의 소망을 대변하는 듯하다.

“우리는 정말 한국에 머물고 싶습니다. 저는 한국 정부가 장애 아동이 있는 고려인 가정에 관심을 기울여, 그런 가정을 지원하는 사회 프로그램을 만들어주길 고대합니다. 그리고 최소한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들만이라도 한국 시민권을 받을 수 있도록 법제도을 정비해 주세요, 그러면 많은 고려인들이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고향인 이 땅에서 오래오래 살아갈 겁니다, 행복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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