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으로의 길, 무장애 길과 맞닿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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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으로의 길, 무장애 길과 맞닿아 있습니다”
  • 편집부
  • 승인 2022.06.23 11:43
  • 수정 2022.06.23 11: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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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근/두리함께(주) 트래블 헬퍼

오늘도 운동화 끈을 단단히 조여 매고 힘차게 집을 나섭니다. 집사람의 격려를 뒤로하고 일터로 출근하는 발걸음은 즐겁고 가볍습니다. 저는 65세의 나이로 트래블 헬퍼가 된 제주에 사는 김영근입니다.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에 트레블 헬퍼라는 직업은 많이 생소했고 또 다른 도전이었습니다. 작년 제주중장년일자리센터에서 있었던 트레블 헬퍼 기초교육과 현장실습을 마치고 올해는 트래블 헬퍼 심화 과정을 거쳐 면접을 통해 사회적기업인 두리함께(주)의 정식 트래블 헬퍼로서 당당히 취업하게 되었습니다.


 트래블 헬퍼란 말 그대로 여행을 돕는 사람, 즉 관광 약자인 장애인과 노약자들의 여행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옆에서 보조해 주고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제주도 올레길 휠체어 코스의 도로 현황과 장애인 화장실의 설치 유무, 그리고 이용할 수 있는 주변 식당과 카페, 기념품점 등을 꼼꼼히 조사해서 드러난 문제점과 개선점을 사진과 함께 보고하는 작업을 했고, 오늘부터는 장애인의 감성으로 여행할 수 있는 관광지들을 찾아내고 발굴하는 일들을 할 예정입니다. 


 짧은 기간 현장에서 살펴본 모습을 말씀드리면 어느 휠체어 코스는 길 곳곳에 도로의 경사도까지 표시해 주는 배려 깊은 코스도 있지만 그 외 코스들은 대부분 실망스러운 곳이 많았습니다. 심지어 휠체어가 다닐 수 없는 코스도 버젓이 휠체어 코스라고 되어 있는 곳도 있었습니다. 식당들이나 카페들의 문턱은 여전히 높았고, 장애인 화장실이 아예 없는 코스도 있었습니다. 있다고 해도 관리가 엉망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나마 이 정도인 것도 얼마나 다행이고 희망스러운가 하며 위로해 보았지만 어떨 때는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하였습니다. 


얼마 전 올레 6코스 휠체어 구간의 화장실 실태를 말씀드린다면 화장실에 기본적인 장애인 화장실 표지판과 비상벨이 없었고, 변기는 불결하고 세면대와 손잡이는 손을 대기도 꺼려질 만큼 더러웠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악취가 얼마나 심한지 잠시 숨을 쉬기도 어려울 정도였고, 고장난 화장실 문은 도저히 닫을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게다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비장애인 화장실은 남녀 구분이 있지만 장애인 화장실은 남녀 공용으로 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장애는 장애가 있어 장애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환경이 장애를 만든다는 말을 서글프게 실감하는 현장이었습니다. 허술하고 형식적인 행정들이 또 다른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장애인에게 여행이란 두려움 그 자체일 것입니다. 물리적 접근성의 제약도 문제이지만 먼저 바라보는 사회의 편견과 선입견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장애인들의 자유로운 여행을 통해서 사회의 잘못된 편견을 적극적으로 깨나가야 할 것이며, 장애인들도 사회의 중요한 경제적 고객으로 존중받고 대접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안전하고 편안한 사회적 인프라 속에서 장애인들의 여행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여행은 누구에게나 평등해야 하며 모두의 당연한 권리이기도 합니다. 조금씩 달라지는 사회적 분위기와 하나둘 늘고 있는 무장애 전문 여행사 같은 사회적기업들의 포기하지 않는 외로운 싸움이 종국엔 장애인들을 여행에 대한 두려움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글쓰기를 마무리하며 드릴 말씀이 있다면 진정한 선진국으로 가는 길의 척도는 이제 장애인들의 무장애 동선 길이와 비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장애인이 편한 길이면 우리가 모두 편안한 길이며 그 길을 함께 걸을 때 우리나라는 건강한 선진국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트레블 헬퍼 같은 전문인들이 대접받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오늘도 즐겁게 하루를 시작합니다. 내 두 어깨에는 우리나라 모든 관광 약자들의 기대와 바람을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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