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자료, 소통 ‘도구’일 뿐 ‘목적’이어선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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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 자료, 소통 ‘도구’일 뿐 ‘목적’이어선 안 돼”
  • 차미경 기자
  • 승인 2021.04.26 09: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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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윤/국내유일 발달장애인 자료 삽화가

문해능력이 부족한 발달장애인들의 정보 접근성을 높여주기 위한 ‘읽기 쉬운 자료’에 대해서 본지는 지난해 8월 ‘알다’를 소개하며 알린 바 있다. 글은 쉬운 표현으로 바꾸고, 이해를 돕는 그림을 함께 넣는 방법으로 제작되는 ‘읽기 쉬운 자료’들이 과거보다 주변에서 찾아보기 쉬워졌다. 다양한 자료집을 접했던 기자에게 각기 다른 주제 속에서도 유독 친근한 부분이 있었으니 그림체가 바로 그것이다.

장애인의 달 특집호를 준비하며, 이번에 본지가 만난 특별한 사람은 바로 국내 유일의 ‘발달장애인 자료 삽화가’인 이상윤 작가다. 자신이 그린 그림이 담고 있는 내용을 발달장애인들이 정확히 읽어 낼 때 가장 기쁘다고 말하는 그를 만나보자.  - 차미경 기자

장애친구 덕분에 맺은 장애계 인연

모두가 공유할 그림 그리는 것 목표

 

미대를 졸업한 이상윤 작가가 처음 장애계와 연을 맺은 것은 고등학교 때 단짝 친구 덕분이라고 말했다. “당시에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가 불편한 친구였는데, 저랑은 단짝이었어요. 1993년인가, 그 친구가 을지로에 있는 청음회관에 취직하면서 사당에 원룸을 얻었고, 저는 군대 제대 후 막 사회생활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죠. 그때 그 친구가 먼저 함께 지낼 것을 제안하면서부터 아마 장애계와 인연이 시작됐어요. 워낙 사교적이고 활달했던 친구랑 장애계에서 다양한 활동을 했는데, 그때 포스터나 안내 책자를 만들 때 그림을 그려달라거나 하는 부탁을 해 왔고, 그렇게 조금씩 발을 들이게 된 게 지금까지 이어진 것 같아요.”

미술을 전공했지만, 이상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누군가가 독점하는 형태의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는 자신의 그림을 모든 사람이 공유할 수 있고, 원본이 없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고 했다. 그리고 그러한 신념과 가장 잘 맞아떨어졌던 것이 바로 ‘만화’였다.

“여러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내가 살아온 환경의 사람들이 내 그림을 이용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이러한 제 생각을 가장 잘 담아낼 수 있는 게 만화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당시 TV 만평이라는 프로그램에 만화를 싣기도 했고, 출판만화도 해 봤고, 또 부업으로 장애계에서 요구하는 만화를 그리기도 했었어요.”

 

발달장애인 위한 삽화는 일종의 ‘번역’ 작업

내가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발달장애인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가 중요

 

발달장애인을 위한 자료 삽화가라는 말 자체가 우리에게 아직도 생소하듯이 처음 삽화를 의뢰받았을 때 이상윤 작가 역시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수없이 했었다고 말했다. “쉽게 얘기하자면 발달장애인을 위한 자료 삽화는 ‘번역’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소통’이라는 단어를 쓸 때의 밑바탕에는 ‘공유되는 정보가 있다’라는 전제가 깔리는데,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 공유되는 정보의 차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깊고 넓을 수 있기 때문이죠. 제가 삽화를 그리고 저에게 의뢰하신 분들에게 보여주면, 10명 중 10명 모두가 ‘너무 쉽게 잘 표현했어요’라고 말을 하는데, 그것은 그들이 그에 대한 정보를 알기 때문이에요.”

이 작가는 이어서 좀 더 쉬운 예를 들며, 정보 공유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했다. 예를 들어 ‘사과가 맛있어요’라는 문장을 그림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사과’라는 과일이 가지고 있는 모양에 대해 그림을 보는 사람과 그리는 자신이 같은 정보를 가지고 있을 때 소통이 되는 것이지, 만약 ‘사과’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면, 사과를 먹으며 맛있는 표정을 짓는 그림을 보고 어떠한 메시지도 유추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과거에 시설 모니터링을 위한 그림카드를 만든 적이 있어요. 질문 중 하나가 “밥은 먹었나요?”라는 표현이었는데, 식판에 담긴 음식이 그려진 그림을 보여주며, 장애인들에게 밥을 먹었냐고 질문하니까 모두 안 먹었다고 응답을 하더래요. 그런데 사실 그분들은 밥을 안 먹은 게 아니라, 식판에 밥을 먹어 본 적이 없었던 거에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냥 큰 볼에 밥과 반찬 국까지 모두 담긴 식기로만 식사를 했던 거죠. 그러니까 그분들로서는 ‘그러한 식사’는 해 본 적이 없는 거예요.”

이처럼 어느 환경에서 어떤 경험을 하며, 생활했느냐에 따라 그들이 익히고 있는 정보와 비장애인들이 생각하는 정보는 천지 차이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는 항상 그림을 구상할 때 내가 알고 있는 정보보다 이 자료를 볼 발달장애인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요.”

 

발달장애인을 위한 그림

그림이 아닌 기호로 봐야…

장식으로 ‘색’ 사용하는 것은 지양

 

발달장애인을 위한 그림을 그릴 때 지켜야 할 규칙 같은 것이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상윤 작가는 ‘그림이 아닌 기호’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발달장애인이 보는 자료집 속 그림은 글의 보조도구이기도 하지만 그림 자체가 글자, 기호가 된다고 생각해야 해요. 그래서 이 부분이 참 어려운데요. 제작하는 사람의 시선과 이 자료를 직접 보는 당사자의 시선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죠. 우리가 익히 아는 기호는 대부분 ‘흑백’이잖아요. 그러므로 발달장애인을 위한 그림 역시 ‘흑백’을 기본 실루엣으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좋아요. 거기에 색은 그림을 예쁘게 보이기 위한 도구가 아닌, 추가적인 정보를 주기 위해서만 쓰여야 하죠. 예를 들어 잘 익은 사과를 표현할 땐 ‘빨강’색을, 덜 익은 사과를 표현할 때 ‘파랑’색을 쓴다거나, ‘광역’버스와 ‘시내’버스를 구분하기 위해 색을 쓰는 것처럼요. 하지만 책을 제작하는 분들의 대부분은 색이 없는 실루엣 그림에 부족함을 느끼며 아쉬워하는 경우가 많아요. 어쩌면 당연한 심리일 수도 있지만, 이 자료를 보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계속해서 인지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죠. 우리가 예쁘게 보기 위해 만드는 자료가 아니잖아요. 발달장애인에게 양질의 정보를 전달하기 위함이라는 목적성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림 보고 담고자 한 의도와 맥락

알아줄 때 가작 큰 보람 느껴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10조(의사소통 지원)에 따르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발달장애인의 권리와 의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법령과 각종 복지지원 등 중요한 정책정보를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작성해 배포해야 한다는 법이 통과된 이후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선거 안내 자료집을 처음 제작할 당시 함께 했던 이상윤 작가는 그들이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고 담고자 했던 내용과 의미를 모두 읽어냈을 때 환희에 가까운 기쁨과 보람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사실 그때 그 기억이 제가 지금까지 발달장애인을 위한 자료집 삽화가로 활동할 수 있게 이끌어 준 힘의 근원이에요. 그림에 표현된 눈짓 하나, 손짓 하나 그 맥락을 다 읽어내는 모습에 내가 노력한 만큼 이들이 알아 준다는 생각이 드니 그림을 그릴 때 최선을 안 할 수가 없더라고요. 제 수고가 보상받는 느낌이랄까요. (웃음) 저는 제 그림이 많은 사람에게 공유되었으면 좋겠고, 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왔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 꿈을 한편으로는 실현한 느낌이 들었어요.”

 

발달장애인이 이해할 수 있다면

모두가 이해한단 기준으로 문서 작성돼야

 

우리가 발달장애인을 위한 자료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지만, 아직도 인식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 것 같냐는 기자의 마지막 질문에 이상윤 작가는 ‘발달장애인만을 위한 자료’가 없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 먼저라는 ‘우문현답(愚問賢答)’을 내놨다.

“모든 관공서와 시설에서 만들어지는 문서가 경증의 발달장애인이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진다면 이는 곧 장애와 비장애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이해한다는 개념으로 생각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일례로 우리가 요즘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유니버셜 디자인, 시설’이잖아요. 장애인과 노인을 위해 경사로 등을 추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그들도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든다면 모든 사람이 편리한 것처럼요. 문서와 자료도 그 기준으로 생각됐으면 좋겠어요.”

그러면서 그는 아직도 자신이 10년 전에 그렸던 그림을 사용해도 되냐는 의뢰를 받는다며, 그런 문의를 받을 때마다 자신은 그 부탁을 거절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지금은 발달장애인을 위한 자료에 쓰이는 그림이 양적으로 적기 때문에 창고에 넣어 놓고 필요한 부분을 빼서 쓰는 것이 최선책이겠죠. 하지만 이러한 방법은 얼마 가지 못해 한계에 부딪힐 거예요. 발달장애인 삽화 부분도 하나의 시장이 되어야 해요. 더욱 많은 기관에서 자료집을 만들고 이 자료에 필요한 그림을 그릴 삽화가를 모집하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주는 시장이 형성된다면 자연스럽게 삽화가들도 늘어나고, 그 시장도 활기를 띠게 될 거예요. 그런 변화가 지금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봐요.”

마지막으로 이상윤 작가는 발달장애인 자료가 소통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많은 자료와 문서를 배포한다고 우리의 역할이 끝났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나이가 지긋한 의사분께 발달장애인의 진료를 위한 소통카드를 만들려고 하는데, 어떤 것들을 담았으면 좋겠냐고 자문을 구한 적이 있는데, 그분이 하신 말이 ‘필요 없다’였대요. 자신은 환자들이 어디가 불편한지 다 알 수 있다고요. 이 말은 곧 그분은 환자들의 특성과 작은 동작 표정도 다 읽고 있고, 또 읽을 준비가 미리 되어 있다는 뜻이에요. 이처럼 우리가 그들을 알려고 하는 마음은 없으면서, 그림 몇 장으로 그들과 소통하려고 자료를 만드는 거라면, 이미 시작부터 실패라고 생각해요. 발달장애인을 위한 자료는 말 그대로 발달장애인과 소통을 더욱더 잘 하기 위해 필요한 ‘도구’에 지나지 않아요. 마음이 담기지 않은 대화는 아무런 힘이 없잖아요. 우선 그들에 대해 알고자 하는 의지, 거기서부터 소통이 시작되는 거 아닐까요?”

결국은 ‘도구’ 없이도 소통하는 사회가 우리가 지금 발달장애인을 위한 자료를 만드는 진정한 ‘이유’여야 한다고 말하는 이상윤 작가의 말이 기자의 가슴속 깊이 울림을 줬다. 소통의 사전적 의미인 ‘뜻이 서로 통해 오해가 없음’처럼 서로가 마음으로 먼저 통하는 사회가 되기 위한 노력이 게을러지지 않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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