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경제적 착취 면죄부 주는 ‘친족상도례’…‘기본권 침해’ 위헌요소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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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경제적 착취 면죄부 주는 ‘친족상도례’…‘기본권 침해’ 위헌요소 많아
  • 이재상 기자
  • 승인 2021.04.22 09:59
  • 수정 2021-04-22 1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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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장애인 A씨, 동거친족에게
3억원 넘는 금전적 피해당했지만
검찰 친족상도례 적용해 불기소

장애인 경제적 착취사건의 20%
피해자 ‘가족-친인척’이 가해자

장애인 경제적 착취, 친족상도례 적용 여전히 타당한가?

장애인을 속여 금품을 갈취하거나 수급비를 횡령하더라도, 가해자가 친족인 경우 실제 처벌까지 이어지기는 매우 어렵다. 이른바 ‘친족상도례’ 규정으로 알려진 형법상의 규정 때문이다. 이와 관련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은 4월 14일 ‘장애인 경제적 착취, 친족상도례 적용 여전히 타당한가?’란 주제의 토론회를 개최했다.  - 이재상 기자

■ 황용현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형법상 친족상도례 규정은 재산범죄의 피해자가 친족 가해자들을 형사처벌할 수 있는 기회를 영원히 갖지 못하게 돼 헌법상 보장되는 재판받을 권리와 재산권 등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어 위헌적 요소가 많다.”며 “특히 장애인인 피해자에 대한 국가의 보호를 외면한 채 가해자를 광범위하게 면책해 주고 있는 상황”이라며 피해사례를 소개했다.

지적장애인 A 씨는 2014년 아버지가 사망한 후 삼촌과 숙모와 함께 살게 됐다. 그 후 3년 동안 A 씨의 삼촌과 숙모는 A 씨의 지적장애를 악용해 상속 재산 등 A 씨 소유의 재산 2억4천여만 원을 갈취했으며, 그것도 모자라 A 씨 명의로 1억 원을 대출받아 가로챘다. 결국 A 씨는 믿었던 동거 친족으로부터 3억 원이 넘는 금전적 피해를 당했다.

A 씨는 부산장애인권익옹호기관 등의 지원을 받아 가해자인 친족을 횡령죄 등으로 고소했지만, 검찰은 가해자들이 ‘동거친족’이라는 이유로 불기소처분을 했다.

이에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은 지난해 장애를 이용한 경제적 착취 사건의 친족상도례 적용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공동대리인단을 구성해 헌법소원을 제기한 상태다.

현행 형법 328조(친족 간의 범행과 고소)에선 가족 간의 문제는 가족 내부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취지로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 간에 발생한 재산범죄에 대해 형을 면제하거나, 고소가 있어야만 공소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이는 권리행사방해·사기죄·공갈죄·횡령죄·배임죄 등에도 준용된다.

‘친족상도례’가 만들어진 1950년대는 권위를 인정받는 대가족의 큰 어른이 가족 사이에 벌어진 재산 다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70년이나 지난 낡은 규정은 현대사회 대가족 해체와 가족 내부의 재산다툼이 빈번해진 사회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특히, 장애인을 포함해 국가와 법률로써 특별한 보호를 받아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들의 경우 동거친족 등으로 인한 재산피해가 장기간 계속적으로 발생할 수 있으며, 이와 같은 위법상태가 영원히 방치될 위험도 존재한다.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의 ‘장애인학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경제적 착취 사례의 20% 내외는 가해자가 친족으로, 타인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비중을 차지했다.

2019년에는 경제적 착취 사례 328건 중 63건(19.2%), 2018년에는 경제적 착취 사례 302건 중 75건(24.8%)에서 가해자가 피해자의 ‘가족 및 친인척’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듯 장애인의 경우 그 친족이 후견인으로 선임되는 경우가 많고 장애인연금, 생계급여 등 수급비 횡령, 장애인 본인의 의사에 반해 명의를 도용해 빚더미에 앉게 하는 등 친족에 의한 경제적 착취가 빈번하게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형법상 ‘친족상도례’ 규정은 장애인인 피해자에 대한 국가의 보호를 외면한 채 가해자를 광범위하게 면책해 주고 있는 것.

황 변호사는 또한 ‘친족상도례’ 조항은 △친고죄 내지 반의사불벌죄 규정을 통해 헌법이 보장한 피해자의 재판절차 진술권을 덜 제한하는 다른 수단이 존재함에도 일률적·필요적으로 형을 면제하고 있다는 점 △이 사건 법률조항에 규정된 친족에 대해 그 외의 다른 친족과 다르게 구분해 필요적으로 형을 면제해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없다는 점 △필요적 형 면제의 대상이 되는 친족의 범위와 적용대상이 되는 범죄가 지나치게 광범위하다는 점 등에서 최소침해성 원칙에도 어긋난다는 점 등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에 반하며, 그로 인해 침해되는 사익은 매우 중대하고 심각한 반면, 보호하고자 하는 공익은 불분명하거나 매우 미미하다는 점에서 법익의 균형성에도 위반됨을 주장했다.

 

‘친족상도례’ 형면제 규정, 위헌판결

받으려면 가족공동체 핵심을 이루는

최소단위인 친족 및 경제적 착취범죄

형태로 장애인 피해자에 대해 이뤄진

재산범죄의 경우 등으로 한정시켜,

피해 최소성-구체성 요건등에 맞춰야

 

■ 차성안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범죄피해자가 불처벌의 문제를 다퉈 헌법재판소의 명시적인 판단이 나온 결정례는 교통사고로 인한 업무상 과실치상죄에 관련해 보험 등에 가입된 경우 불처벌의 특례를 규정한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제4조 제1항에 관한 헌법소원 사건을 예로 들며 이번 형법상 ‘친족상도례’ 헌법소원 사건에 대해 헌법재판이론 차원에서 설명했다.

헌법재판소(헌재)는 2009년 2월 전원재판부 2005헌마764 판결에서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제4조 제1항의 본문 중 업무상 과실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교통사고로 말미암아 피해자로 하여금 중상해에 이르게 한 경우에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규정한 부분은 헌법에 위반된다고 확인했다.

헌재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 불처벌 규정에 관해 ‘업무상 과실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해 중상해를 입은 경우’에 한해 재판절차 진술권 침해를 인정해 ‘과잉금지원칙 위반’이라며 위헌 판단을 내렸다.

‘친족상도례’ 형면제 규정 또한 △가족공동체의 핵심을 이루는 최소단위인 친족의 경우 △장애인학대범죄의 하나인 경제적 착취 범죄 형태로 장애를 가진 피해자에 대해 이뤄진 재산범죄의 경우 등으로 한정시켜, 과잉금지원칙 적용과정에서 피해 최소성과 구체성 요건 등에 맞춰 위헌성 논증으로 해석된다면 헌재에 의해 채택될 가능성도 있다.

차 교수는 “장애인의 경우 헌법에서 특별한 국가의 보호를 명문의 규정을 둬 강조하고 있고(헌법 제34조 제5항), 경제적 착취범죄의 대상의 되는 장애인은 대부분 지적장애인, 정신장애인, 중증장애인들로서 국가가 형벌권을 발동해 처벌하지 않는다면 재산범죄로 인해 생존의 기반이 되는 재산을 뺏기는 일이 생기기 쉽고 또 사후적 구제도 훨씬 곤란하게 돼 관련 기본권인 재산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등의 기본권에 대한 중대한 제한을 가져올 수 있다.”며 “헌재는 이런 점을 고려해 엄격한 심사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논리를 만들어낼 여지도 없지 않다.”고 밝혔다.

 

대부분 장애피해자, 배신한 가족 외

다른 지지체계 전혀 갖고 있지 못해

제대로 처벌하기 어려워서 대응포기

 

■ 이정민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 변호사는 “경제적 착취 등 장애인 학대 피해자는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가해자는 피해자들과 가까운 관계에 있는 친구, 이웃, 선후배, 지인, 고용주,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가족, 친인척 등 피해자가 믿고 의지하던 사람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지난 1월 19일 MBC 뉴스는 아버지가 쓰러져 병원에 입원한 후 지적장애가 있는 어머니와 그 딸의 재산관리를 맡은 작은아버지가 모녀가 살던 아파트를 팔고 작은아버지의 아들이 피해자인 딸에게서 5천만 원을 송금받는 등 모녀를 경제적으로 착취한 사건을 보도했으며, 현재 경찰 수사 중이다.

그런데 이 사례에서도 피해자 모녀의 상황을 알아채고 작은아버지를 고소하도록 지원한 사람이 없었다면 기소가 불가능하다. 지적장애가 있는 피해자들이 피해를 확인하고 적극적으로 가해자를 고소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

더 큰 문제는 특히 지적장애인이 고소를 하거나 가해자에 대한 처벌의사를 밝힌 경우에도 그 의사를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는 것.

이 변호사는 “이렇게 가족, 친족에 의한 경제적 착취 피해를 본 많은 장애인은 믿었던 가족이 나를 배신했다는 점에 크게 상처받고 그나마 가지고 있던 재산이 없어진 상황에 또다시 좌절한다. 또 친족상도례로 이들을 제대로 처벌하기가 너무나도 어렵다는 점에 절망하고 대응을 포기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민사로 해결하라는 이야기는 일견 타당하지만 많은 수의 피해자들은 피해를 인지하고 고소를 하는 데 어려움이 있고 어렵게 고소했는데도 그 의사가 무시되거나 고소능력이 부인되는 상황에 당면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충분한 법률적 지식이나 소송비용은 물론, 나를 배신한 가족 외의 다른 지지체계를 전혀 갖고 있지 못한 대부분의 피해자들에게 민사로 해결하라는 것이 과연 답이 될 수 있을지 의문”임을 밝혔다.

 

1차적 안전망이 돼야 할 친족 등

가족이 발달장애인 경제적 착취의

도구로 삼는 것에 강력한 처벌 필요

 

■ 윤진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사무처장은 “본인의 의사를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가지고 있고, 본인의 의사가 존중받지 못하는 우리 사회에서 발달장애인에 대한 1차적 지원은 친족 등 가족이 담당하고 있다. 사회의 배제로부터 1차적인 안전망이 되어야 할 친족 등 가족이 이를 악용하여 경제적 착취의 도구로 삼는 것에 대해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친족상도례를 가족 간의 경제적 범죄에 대한 적용을 넘어 경제적인 착취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장애인의 재산관리를 대행하는 것이 아닌 지원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 능력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로 확장돼야 하고, 법적 권리 보장을 위한 의사결정 지원제도 도입과 본인의 의사결정에 의한 재산관리 서비스 등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윤 처장은 “발달장애자녀를 둔 부모들의 여전히 자녀보다 하루만 더 살고자 하는 바람은 이제 사회적 지원으로 끊어 내야 한다. 끊어 내지 못한다면 발달장애자녀를 죽이고 부모는 자살하는 참극을 끊어 낼 수 없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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