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빨리’와 자본주의, 그리고 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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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빨리’와 자본주의, 그리고 장애인…
  • 편집부
  • 승인 2009.0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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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일/경기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우리가 빨리빨리를 외치지 않았다면 디지털 강국이 될 수 있었을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입니다.” 이것은 요즘 TV에 한창 나오는 공익광고의 문구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IT산업의 기술경쟁력이 세계최고 기술보유국 대비 90% 수준이라는 조사결과도 나와 가뜩이나 움츠려든 우리의 마음과 어깨를 펼쳐주려고 한다.


 광고의 의도대로 아무리 경제가 어려워도 우리 국민의 잠재력을 믿고 언젠가는 반드시 좋아질 것이라고 막연하게나마 기대하고 싶은 마음도 사실이나 종종 그래 왔듯이 이번에도 필자는 삐딱함이 앞선다. 위의 광고 문구는 결국 빨리빨리를 외쳤기 때문에 우리가 그나마 이 정도의 디지털 강국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인데 이 ‘빨리빨리’라는 말이 계속 귀에 거슬린다. 특히 장애인과 관련해서는.


 왜 그럴까? 그것은 '빨리빨리'라는 말은 투입-산출의 최적성을 지향하는 자본주의의 본질적 특성을 단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즉 그 사람의 능력에 맞게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시간이나 조건 하에서 이미 기본 목표량은 정해지고 그 이상의 최대한의 생산성과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자본주의가 바라는 인간인 것이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속성은 인간의 경제활동뿐만 아니라 생활양식의 전반에 걸쳐 부지불식간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문제는 모든 인간은 서로 같지 않으며 모두가 고효율의 생산성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을 이 사회가 좀처럼 용인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산성 지향의 사회에서 특히 장애인은 필연적으로 사회적 배제를 경험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게 된다.  


 1990년대 초 세기말 어지러운 혼란을 배경으로 한 중국의 무협영화 ‘무인 곽원갑’을 보면 주인공인 이연걸이 세속의 연을 끊고 한적한 시골에서 유유자적하고자 한 장면이 나온다. 기거하고 있던 집의 논농사 일을 도와주려고 하지만 건장한 이연결의 모내기 솜씨는 시각장애인 손녀의 그것보다 훨씬 못하여 결국 그 손녀가 다시 마무리하게 된다.

필자는 이 장면을 보면서 통쾌함마저 느꼈는데 그것은 나름대로의 능력을 갖고 지역사회에서 그 나름대로의 역할과 자존감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 장애인의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필자는 최근 오랫동안 사용해오던 휴대폰을 치우고 인터넷과 고화소를 자랑하는 최신형 휴대폰을 구입하여 일 틈틈이 심지어 화장실에 앉아 있는 동안도 그 작은 화면을 바라보면서 신문을 보거나 이메일을 열어보거나 한다.

처음엔 굉장히 신기하고 시간활용에 매우 긍정적이라고 생각하였으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잠시 쉬는 시간조차도 스스로 포기하고 얼마가 될지 모르는 효율성을 추구하고 있으니 이처럼 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도 자본주의에 철저히 길들여져 있는 내 모습에 허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세상에는 비용과 효과만으로 따질 수 없는 다양한 모습들이 있다. 물론 자본주의사회에 살면서 이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기란 어렵다. 이를 장애인 문제와 결부지어 보면 장애인복지 분야에서도 개별 장애인에 따른 다양한 전략이 필요하게 된다. 곧 투자론을 적용할 수 있는 장애인도, 그렇지 않은 장애인도 현실적으로 존재함을 직시해야 한다.

특히 후자의 경우 인간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기본으로 한다면 무관심보다 차라리 온정주의적 배려가 차선책이 되리라고 본다. 이마저도 찾아보기 어려운 사회라면 겉보기엔 빨리빨리 잘 돌아가도 과연 그 사회를 선진사회라고, ‘진정한 의미=인간 존중’의 디지털 강국이라 부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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