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 정신건강복지법, ‘보호의무자제도’ 폐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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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칼럼] 정신건강복지법, ‘보호의무자제도’ 폐지하라
  • 편집부
  • 승인 2024.04.04 10:34
  • 수정 2024-04-04 17:36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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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정책위원장

많은 이들이 ‘부양의무자제도’는 들어봤더라도 ‘보호의무자제도’는 생소할 것이다. 전자는 현 기초생활보장법상 핵심적 단어이고 후자는 현 정신건강복지법상 가장 핵심적 단어이다. 둘 다 당사자의 가족을 지칭한다고 보면 된다.

조현병 같은 중증정신질환자라고 해서 항상 자해나 타해의 위험이 있지는 않다. 다만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고 방치된 상태에서 피해망상과 환청 등이 심해지는 ‘급성기’에는 그런 위험성이 커지는 것이 사실이다. 세계적으로 의료 영역에서 설령 당사자가 원치 않아도 국가가 주도적으로 격리나 치료의 강제력을 행사하는 경우는 두 가지이다. 초창기 코로나19처럼 ‘전파력과 감염 시 위험성이 큰 감염질환’ 그리고 방치하면 자해든 타해든 위험성이 있을 수 있는 ‘중증정신질환’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코로나19 때 국가가 비교적 잘 대처했지만, 이상하게도 중증정신질환자에 대한 강제력 행사에 있어서 국가는 뒤로 쏙 빠진 채 뒷짐만 지고 정신질환자의 ‘가족’(보호의무자)에게 떠넘기는 법을 만들고 유지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니 국민도 ‘정신질환은 급성기 때 경찰이 아닌 가족이 직접 강제력을 행사해서 이송하고 입원시켜야 한다’라는 생각을 당연시하곤 한다.

우리는 기억한다. 2019년 진주 안인득 사건이나 작년 서현역 사건 때 분명 위험 징후가 있어서 강제로라도 입원치료가 필요하다는 이웃과 가족과 정신과 의사의 경고를 냈다. 그러나 그들은 마냥 방치되었고 정작 ‘사건’이 벌어진 이후에야 치료가 시작되었다. 그 두 사건 외에도 정신질환과 관련된 안타까운 타해 사건 때는 대부분 사전 위험 징후가 관찰됐었다. 만일 당신의 가족이 중증정신질환을 앓고 있고, 자타해 위험성이 있는 상태이지만 설득해도 병원 방문조차 거부하는 상황이라면 다음 중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첫 번째, 112나 119에 신고해서 “내 가족이 정신질환으로 위험성이 있는 상태인데 병원에 가지 않으려 하니 제발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요청하기? 현실에서는 소용이 없다. 경찰은 안전의 전문가이지만 정신질환의 전문가는 아니라서 위험성 여부를 평가하기 힘들며 선의로 강제 이송했다가 추후 민원이나 소송의 우려에 매우 보수적으로 위험성 평가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119구급대원은 경찰과 달리 현행법상 당사자가 거부하면 강제로 병원에 데려갈 권한 자체가 없다. 결국 어떤 심각한 자타해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실제로 정신의료기관 강제입원 관련 통계를 보면 경찰 등 공공이 이송한 경우는 10% 내외에 그친다.

두 번째, 경찰과 119의 도움을 받을 수 없으니 보호의무자인 가족이 직접 혹은 소위 사설이송단을 불러 강제로 정신의료기관에 이송해서 입원시키기? 대법원의 일관된 판례에 따르면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보호입원)을 위해 가족이나 사설이송단이 강제로 병원에 데려가는 것은 그 자체로 불법감금죄이고 실제 징역형을 선고받은 중범죄이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보호입원을 위해 경찰이 직접 이송하지 않는 경우 합법적인 사적 강제이송을 하기 위한 선행조건은 ‘현재 환자가 강제로라도 입원이 필요한 상태라는 정신과 전문의의 진단소견서가 필수’이다. 하지만 그런 진단소견서를 받으려면 정신과 전문의가 일단 진찰해 봐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병원 방문조차 거부하는데 무슨 수로 이송하기 전에 진찰받게 할 수 있는가? 정신과 전문의가 왕진온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실제로 가족이 요청해도 왕진을 오지 않는다.) 당신은 정신질환을 앓는 가족을 위해서 징역을 살 수 있는가? 설령 다행히 정신질환자가 퇴원 후 자신을 불법감금죄로 고소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나를 강제로 끌고 가서 가둔 사람’이라는 원망을 받곤 한다. 그 원망이 큰 경우는 퇴원 후 환자가 가족에게 보복하는 사례도 있다. 실제로 통계를 보면 한국의 ‘존속살해’ 중 정신질환자가 일으키는 비율이 외국에 비해서 훨씬 높은 이유이다.

세 번째, 어차피 경찰과 119의 도움은 받지 못할 테고 그렇다고 불법감금죄를 저지를 수도 없으니, 일단 자리를 피해서 자신의 안전이라도 챙기기? 그렇게 하면 일단 자신의 안전은 지킬 수 있지만, 혹여라도 그 후 정신질환자가 타인을 해친 경우 “보호의무자는 정신질환자가 타인을 해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라는 정신건강복지법 조항과 그것을 근거로 “따라서 보호의무자는 민법상 감독의무자로 볼 수 있다.”라는 논리로 법원에서 피해자에 대한 거액의 손해배상 책임을 가족이 대신 지라는 판결을 받아왔다. 이런 배상 책임은 설령 정신질환자가 성인이고 그 보호의무자인 부모가 70대 노인이어도 예외가 되지 못한다.

정신질환자의 가족은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신질환자의 가족은 경찰도, 정신과 전문의도, 판사도 아니다. 최소한 강제적 조치(이송, 진찰, 치료 등)가 필요한 경우 다른 나라처럼 당연히 국가가 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보호의무자제도’의 폐지가 필수적이다. 총선 후 새로 구성될 국회에 절절한 심경으로 요청한다. 보호의무자제도를 폐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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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 2024-04-06 17:46:05
국가가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퍅임 필요하고 입원역시 국가 해야한다
또한 향후 정신질환의 생활할수있도록해야한다
급성기 입원 시키려 병원에 연학하면 예약하고 의사진료 받고 입원 가능하다고
세상이런 경우가어디있나 병원도안가는 ㄱ환우를 예약하여 의사진료후 입원할수있게하는것 없애야한다 응급은 즉시 입원해야한다
아니면 의사 왕진제도 법륳화 필요하다

우리도살자 2024-04-06 11:33:31
중증 정신질환은 다른 질환과 달리 환자 본인의 인간 존엄성도 무너지고 생존까지도 위협받을 뿐 아니라 온 가족이 함께 고통받는 질환입니다.
중증 정신질환 문제를 개별 가정 차원이 아닌 국가 돌봄 차원으로 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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