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날의 칼, 복지 서비스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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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날의 칼, 복지 서비스의 함정
  • 편집부
  • 승인 2013.0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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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현/ 백석대학교 교수

연말이 되면 뒤를 돌아보고 해가 바뀌면 이런 저런 새로운 것들을 하겠다고 생각해 본다. 물론 얼마 가지 않아 무산되어버리는 게 대부분이지만 그것은 우리 인간이 일상에 젖어 사는 데에서 오는 자연적인 현상일 것이다. 매일 세 끼 밥 먹고 사는 것이 달라질 리 없으니 뭐 그리 큰 변화가 있겠느냐 하겠지만 잠시 생각의 전환이라도 시도해보는 것은 밑질 일이 아니다.
우리는 좋은 시대에 산다. 복지 혜택이 자꾸만 늘어나고, 이번 선거에서도 후보자들은 모두 예산 걱정은 아랑곳없이 복지 혜택을 크게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복지로 인해서 우리 시각장애인들의 역량이 후퇴하는 점은 짚어 봐야 할 노릇이다. 요샌 시각장애인들이 어딜 가든지 꼭 두 사람씩 같이 다닌다. 식사 대접을 하려 해도 꼭 두 배로 돈을 써야 한다. 또 복지관들도 그것을 부추겨 행사가 있을 때마다 보조인들과 꼭 같이 오라는 식으로 안내를 한다. 그러다 보니 전엔 혼자 잘 다니던 사람도 이젠 보조인 없이는 못 다니거나 그럴 것 같은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동뿐만 아니라 가사일도 그렇다. 전엔 잘 하던 요리나 집안 청소도 이젠 보조인에게 모두 맡겨서 어떻게 하는지 감각을 잃어버리게 되어 자기 집에 물건이 어디 있는지, 무슨 물품이 남아 있는지 떨어졌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이를 두고 분명 좋은 일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일터에서도 문제가 된다. 근래에 일반기업체에서 헬스키퍼라는 직업으로 시각장애인들을 채용하고 있다. 의무고용 비율도 맞추고, 기업 내 직원들의 스트레스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는 차원에서다. 이는 시각장애인들의 새로운 직장이라는 점에서 대단히 고무적인 발전이다. 그런데 모 시각장애인 기관에서는 헬스키퍼들에게 출퇴근 시 꼭 보조인의 도움을 받도록 강요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독립보행이 불가능한 사람은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독립보행을 할 수 있는 사람에게도 그런 방향으로 유도를 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유는 혼자 출퇴근하다가 사고를 당하면 기업체에 부담이 되어 다시는 시각장애인을 고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란다.
늘 보조인의 팔에 매달려서 다녀야 하는 사람? 그렇다면 이제 복지관에서 보행교육을 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보조인이 항상 곁에 있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선진국에서는 일반기업체에서 장애인을 고용할 때 스스로 출퇴근할 수 있는지부터 확인한다. 이와 관련해 선진국과 비교되는 점이 또 있다. 선진국의 시각장애인 지도자들은 흰지팡이를 가지고 혼자 다니지만, 우리 지도자들은 늘 누군가의 팔에 매달려 택시를 타고 다닌다는 점이다. 본인들이 길을 다녀보질 않으니 보행에 있어 무엇이 문제이고 개선 방안은 무엇인지 도무지 생각해 볼 기회가 없다. 전엔 혼자 잘 다니던 사람도 뭔가 한 자리하면 꼭 매달려 다니는 사람으로 바뀌어버리고, 음식점에도 꼭 보는 사람이 있어야 간다. 외국 시각장애인 지도자들은 지팡이를 가지고 다니는 것을 부끄러워하지도, 걱정하지도, 귀찮아하지도 않는다. 그네들은 낯선 곳에 가서도 식당이고, 커피숍이며, 술집이고 특별히 안내자들 없이 찾아다닌다. 물론 사회문화적 기반이 다른 데서 오는 차이를 감안해야 하는 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 해도 자립심과 독립적 역량을 지도자들의 당연한 덕목으로 생각하는 그들과 우리는 너무 다르다.
시각장애인이 혼자 보행할 수 있다는 것은 의존적인 삶에서 크게 탈피한다는 가치와 더불어 자존감에도 확실하게 일조한다. 아울러 보는 사람들에게도 긍정적으로 인식이 변화되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런데 모두에게 항상 안내인을 잡고 다니라고 하는 것은 극히 진취적이지 못한 발상이다. 사고는 시각장애인들에게만 발생하지 않는다. 또 통계적으로 시각장애인들이 보는 이들보다 사고를 더 많이 당한다는 얘기도 들어 본 일이 없다. 위험한 만큼 시각장애인들은 더 조심하게 되어 결국 위험의 증가분이 상당 부분 상쇄된다.
복지가 완벽해져서 내 손과 발로는 꼼짝하지 않아도 모든 일상이 처리된다면, 우리는 그것을 최상의 복지라고 생각할까? 만일 그리 된다면 몇 년, 아니 몇 개월 가지 않아서 우리 몸과 마음은 모두 나약하고 쓸모없는 존재로 변할 것이다. 요새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의 사고 능력이 오히려 후퇴하는 면이 없지 않다. 기억할 필요도 없고, 뭔가를 어렵게 찾아봐야 할 일도 적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배우는 일도 줄면서 우리의 인지 기능이 제대로 자극받지 못하여 후퇴 혹은 약화될 수 있다. 최근 급증하는 30~40대의 치매 발병이 이러한 사회현상과 무관치 않은 듯하다.
어려운 병이 든 사람들은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서 대부분 힘든 운동들, 전에는 하지 않았던 활동들을 한다. 기계도 쓰지 않으면 녹이 슬고, 집도 사람이 살지 않으면 망가지듯이 우리 몸과 마음도 쓰지 않으면 망가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복지 서비스가 양날의 칼이라고들 한다. 좋은 반면에 나쁜 점이 있다는 뜻인데 우리들은 무작정 뭔가 많이 받고 많이 얻으면 다 좋은 것으로 생각하는 오류를 범한다.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다지 않는가. 별안간 복잡한 인도를 걷고 횡단보도를 혼자 건너지는 못하더라도 보는 사람 팔 잡고 남산이라도 걷다가 지팡이 휘두르면서 혼자 산책하는 이들을 보면 나도 한번쯤 저런 용기를 내봐야 하지 않을까 하고 자신을 채찍질해보는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란다. 한 걸음이라도 더 걸어보고, 점자도 한 줄 더 써보고, 된장국도 한 번 끓여보고, 세탁기도 한 번 돌려보는 작지만 큰 시도들을 통해서 새로운 자신감을 얻고 새로운 삶의 의미와 재미를 찾는 알찬 한 해 엮어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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