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타고 방방곡곡] 철원 비무장지대 다크투어_ 유라시아 횡단열차를 꿈꾸며 둘러본 분단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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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타고 방방곡곡] 철원 비무장지대 다크투어_ 유라시아 횡단열차를 꿈꾸며 둘러본 분단의 현장
  • 편집부
  • 승인 2023.05.04 17:00
  • 수정 2023-05-04 0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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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타고 비무장지대를 여행한다고? 다들 의아해했다. 그러나 휠체어 탄 사람도 비무장지대 여행이 가능하다. 비무장지대 안보 여행지는 편의시설 등 접근성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허리를 중심으로 비무장지대는 동부전선, 서부전선, 중부전선 등 여러 곳이 있다. 이번 여행은 중부전선인 철원 비무장지대로 무장애 여행을 떠나 본다. 평화전망대에서 시작해 녹슨 철마가 철길을 지키는 월정리역, 전쟁의 상흔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노동당사까지 철원의 비무장지대는 분단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전윤선_
무장애여행 칼럼니스트

철원은 북한과 가장 가까운 지역이어서 오지 중에 오지로 여겨지는 곳이다. 지역 주민보다 군인이 더 많다는 웃픈 농담도 오가는 곳도 철원이다. 그렇다 보니 철원은 자연유산과 안보 여행지가 많다. 철원으로 떠나는 안보 무장애 여행을 하려면 신분을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DMZ 여행을 하려면 먼저 두루미평화타운에서 접수를 해야 한다. 접수를 마치고 오전 10시가 되면 모든 차량(관람객 자차 이용) 지붕에 긴급 경광등을 달고 관계자의 차량을 뒤따라 이동한다. 10분 정도 이동하면 첫 번째 검문소가 나온다. 검문소에서 무장한 군인들이 신분증에 사진과 여행객의 얼굴을 대조하며 확인하는 절차를 마치면 통과!

 

신분 확인은 필수, 모노레일 타고 고!

철원평화전망대에선 땅굴체험도 가능

 

그 후로 또다시 5분 정도 달리면 철원평화전망대에 도착한다. 철원평화전망대까지는 짧은 구간의 모노레일이 운행된다. 모노레일은 휠체어 탄 여행객도 탑승 가능해 주변의 풍경을 감상하며 올라간다. 모노레일에서 내리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철원평야와 강산저수지다.

평야가 어찌나 넓은지 지평선 끝이 어딜까 궁금해진다. 한국전쟁 당시 철원평야를 사수하려고 수많은 남북한의 군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럼에도 결국 철원평야는 남한 땅이 돼 김일성이 피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때를 기억이라도 하듯 DMZ 군사분계선에는 아직도 서슬 퍼런 철조망이 당시의 아픔을 잇고 있다. 철조망 너머로 북한 땅을 눈으로 볼 수 있고, 소리를 지르면 건너편 땅에서도 들릴 것 같다.

▲ DMZ 여행을 하려면 먼저 두루미평화타운에서 접수를 해야 한다.

전망대 안의 전시관 안으로 들어서면 나라를 구한 6사단 청성부대의 활약이 전시돼 있다. 청성부대는 한국전쟁 당시 북한의 초선지구 전투와 춘천 홍천지구 전투 등 많은 전투에 참여해 승리를 거뒀다.

남침을 위한 땅굴의 흔적도 전시돼 있다. 제2땅굴은 실제의 모형을 본떠 만들어 땅굴을 직접 체험할 수 있게 했다. 땅굴이라도 휠체어를 타고 지나가기에 충분한 공간이다. 이렇게 큰 땅굴이 여러 곳에서 발견됐으니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북한의 땅굴이 등장하는 영화 <강철비>가 떠올랐다. 영화는 북한의 권력 1호와 정예요원 ‘엄철우’가 남한으로 피신하면서 벌어지는 일촉즉발 한반도 최대 위기를 그린다. 이때 북한의 쿠데타 세력들이 땅굴을 통해 남침 계획한다. 영화에서 땅굴은 탱크나 차량도 다닐 정도로 엄청나게 큰 규모였지만 실제 제2땅굴은 그렇지 않았다.

1층 전시관을 다 둘러보고 2층 전시관을 둘러보려면 위험한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야 해서 포기하고 밖에 전망대 주변을 둘러봤다. 전시관 바로 옆에는 1971년 봄,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하사한 필승교회가 있다. 교회는 작고 소박한 건물이다. 사진을 찍고 있는데 간부급 군인이 나와 필승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준다. 지금도 일요일이면 병사들이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교회에 온 병사들에게 초코파이를 주냐고 물으니 지금은 샌드위치나 빵 등 초코파이보다 더 좋은 것을 줘야 예배를 보러 온다고 한다.

바로 아래에는 성모마리아상이 철원평야를 지그시 내려다보고 있다. 그 아래에는 사찰도 있어 3대 종교가 한곳에 다 모여 있다. 거대 종교가 모든 사람을 다 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지 못해 소수 종교시설도 필요하다고 한다. 새로운 종교가 만들어지는 것은 거대 종교라고 해도 모든 사람을 다 품지 못해서일 것이다. 어쩌면 사람 숫자만큼 종교도 다양하지 않을까.

▲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 철책에 근접한 최북단 역인 월정리역. 더 이상 기차가 다니지 않는 간이역이다.

 

월정리역의 ‘철마는 달리고 싶다’

서울에서 러시아까지 철길 열리길

 

관계자 차를 선두로 월정리역으로 갔다. 월정리역으로 가는 동안도 훈련하는 차량이 줄지어 이동한다. 군인들이 탄 차량이 수없이 오가는 것을 목격하니 군사분계선이라는 긴장감이 실감난다.

월정리역은 하얀 간이역 건물에 ‘月井里駅’(월정리역) 간판이 세월의 무게를 이고 있다. 월정리역은 서울에서 원산으로 달리던 경원선 철마가 잠시 쉬어가던 곳이다. 현재는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 철책에 근접한 최북단 종착 지점에 위치하고 있어 철원 안보 관광의 대표적인 경유지다.

▲ 유엔군의 폭격으로 부서진 인민군 화물열차의 녹슨 잔해를 둘러보는 필자

월정리역은 보는 것만으로도 분단의 아픔이 느껴진다. 역 뒤쪽으로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간판 아래 한국전쟁 당시 월정리역에서 마지막 기적을 울렸던 객차의 잔해가 녹슨 채로 철길 위에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다. 유엔군의 폭격으로 부서진 인민군의 화물열차도 앙상한 골격을 드러낸 채 누워 있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철마는 야속하게도 제자리에서 꼼짝할 수 없다.

경원선은 한일합방 이후 일제가 조선인들을 강제동원하고 그것도 모자라 당시 러시아의 시월혁명으로 추방된 러시아인들을 고용해 1914년 8월 개통한 철도다. 철원역은 강원도 내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역이기도 하다. 서울-원산 간 227km를 연결하는 산업철도로 철원에서 생산된 곡물 등 생물자원을 수송하는 간선철도 역할을 했다.

분단 이후 지금까지 철마는 녹슬며 버텨 왔지만 앞으로 시간이 더 지나면 그 녹슨 잔해마저도 사라질 것 같아 안타깝다. 철마가 시간 속에 사라지기 전에 철길이라도 다시 열리길 간절히 바란다. 그리하여 원산을 거쳐 중국과 러시아를 지나 유럽까지 기차 여행할 수 있는 날을 꿈꿔 본다. 그때도 난 휠체어를 타고 이 철도를 따라 대륙을 여행할 거다.

월정리역 정면은 계단뿐이다. 하지만 휠체어 탄 여행객은 역 뒤쪽으로 가면 역 안까지 샅샅이 둘러볼 수 있다. 월정리역 주변에도 군인들이 상시 지켜보고 있어 수상한 행동은 바로 제지된다.

▲ 전쟁의 상흔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철원 노동당사

 

노동당사에서 ‘발해’ 아닌 ‘통일’을 꿈꾸다

철원역, 소이산 모노레일 역으로 거듭나

 

다시 선두 차를 필두로 출발했다. 10분쯤 달려 마지막 검문소에서 신분증을 돌려받고 나오면 노동당사 건물이 있는 철원역사문화공원이다. 노동당사는 1946년 북한 노동당이 철원과 인근 지역을 관할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지역 주민의 노동력과 자금을 강제로 동원해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주민들을 통제하고 사상운동을 억압했던 곳이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모든 건물이 파괴됐지만 철근 구조에 벽돌과 시멘트로 벽을 쌓아 매우 견고하게 지어져서인지 건물의 형태는 남아 전쟁의 참상을 증명하고 있다. 노동당사가 유명해진 것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3집 타이틀곡 ‘발해를 꿈꾸며’ 뮤직비디오 배경으로 등장하면서다. 노동당사 왼쪽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지만 경사가 급해 앞에서만 보다가 바로 앞 철원역사문화공원으로 발길을 이어갔다.

철원역사문화공원은 철원의 근대 역사를 재현해 만든 역사문화 공간이다. 철원 경제발전의 원동력이었던 옛 철원역은 소이산 모노레일 역으로 거듭났다.

▲ 철원역 앞의 오정탑. 정오를 알리거나 화재 등을 알리는 용도였다.

철원평야 한가운데 있던 철원역은 1912년 서울과 원산을 잇는 경원선의 연천-철원 간 개통으로 문을 열었다. 1931년에는 금강산전기철도의 개통과 함께 철원지역의 발전을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경원선을 통해 서울 용산에서 철원역까지 2시간, 철원역에서 내금강까지 4시간 반이 걸리면서 철원은 강원 북부의 교통, 물류, 산업의 중심지가 됐다. 당시 철원은 원주, 춘천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원도 3대 도시의 위상을 갖춘 곳이었다.

전동휠체어를 타는 사람이 철원역에서 모노레일을 타기 위해서는 역사에 비치된 수동휠체어로 갈아타야 한다. 나는 수동휠체어로 바꿔탈 수 없는 장애여서 모노레일 타는 건 포기하고 역사문화공원만 둘러보기로 했다. 역사문화공원에는 사진관, 여관, 방앗간, 은행 등 옛 철원지역 읍내를 재현해 놨다. 카페와 식당도 모두 접근성은 좋다.

철원역 앞에는 커다란 철탑이 위엄 있게 서 있다. 철탑의 용도는 철원 곳곳에 낮 12시를 알리는 ‘오정포’다. 시계가 많이 보급되지 않았던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는 정오인 낮 12시가 되면 포를 쏴 시간을 알렸다. 이것을 오정포(午正砲) 혹은 오포(午砲)라고 불렀다. 조선시대 한양 보신각종을 울려 시간을 알렸던 것처럼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는 포를 이용해 시간을 알리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포 대신 사이렌 소리를 이용했다. 시간 알리는 것 이외에도 화재 발생과 비행기 공습 등 위험한 사항을 알리는 용도로도 사용됐다. 일반적으로 오정포 옆에는 소방서 차고가 있어 소방서에서 관리하며 다양한 소리로 상황에 맞게 소식을 알렸다.

분단은 오천 년 한반도 역사의 가장 큰 아픔이다. 그럼에도 사람이 오갈 수 없는 비무장지대는 아이러니하게도 동식물들이 살기 좋은 자연환경으로 변해 생태계의 보고로 남아 있다. 이념의 갈등으로 서로를 증오하며 죽고 죽이던 한국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는 철원 중부전선 DMZ는 여전히 휴전의 시간에서 멈춰 있다. 닿을 수 없을 것만 같던 DMZ가 이젠 안보관광지가 되었다. 고통은 때론 사람을 강하게도 만든다. 삶의 질곡에서 그것을 배우며 통일된 대한민국의 미래를 예측해 본다. 어스름한 하늘이 붉어지면서 철원평야 들판이 고요해진다.

▲ 철원역에서 출발하는 소이산 모노레일.

[무장애 여행정보]

 

[가는 길]

DMZ 두루미평화타운에서 안보 여행을 신청하고 철원평화전망대→월정리역→노동당사까지 자차로 이동한다.

 

⦁철원장애인콜택시

강원도교통약자이동지원센터 즉시콜 1577-2014

 

⦁접근 가능한 식당

-철원역사문화공원 내 다수

-철원역사문화공원 장터촌: 4월부터 11월까지 매주 금·토·일 열리며 먹거리와 농산물을 판매한다

 

⦁접근 가능한 화장실

철원평화전망대, 철원역사문화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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