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유엔장애인권리협약 이행과 자립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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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유엔장애인권리협약 이행과 자립생활
  • 이재상 기자
  • 승인 2023.04.06 17:40
  • 수정 2023-04-06 17: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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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한자연)는 3월 14일과 15일 양일간에 걸쳐 경기 화성 YBM연수원에서 ‘2023 자립생활(IL)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이번 IL 콘퍼런스는 ‘유엔 장애인권리협약(UNCRPD) 이행과 자립생활의 적극적 조치’를 주제로 자립생활센터의 지역사회 전달체계 활성화 방안, 아시아·태평양 자립생활(APNIL) 연대의 필요성, 장애인개인예산제 등 최근 장얘계 이슈를 공유했다.

자립생활센터, 탈시설화 정책 초기부터 역할…국가차원 강화-육성해야

(사진=한자연)

 

자립생활센터, 탈시설 로드맵 내 역할 강화돼야

장애인복지법상 장애인복지시설 종류에 포함을

 

∎서해정 중앙장애인지역사회통합지원센터장은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탈시설 정책에 따라 거주시설 밖에서의 삶을 희망하는 장애인의 선택과 결정을 지지하고 계획을 세우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자립지원 전달체계에 대한 역할을 자립생활센터가 맡아야” 함을 주장했다.

현재 장애인의 자립지원을 담당하고 있는 기관은 지자체별로 차이가 있으나 대표적으로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곳은 ‘장애인자립생활센터’로,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복지전달체계인 동시에 장애인 운동조직의 성격을 지니면서 한국사회에서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사는 데 필요한 장애인 이동권, 활동지원서비스, 보장구 지원 등 제도적 환경을 만들어 왔다.

2021년 12월 기준 전국의 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총 251개소로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 소속 114개소,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소속 96개소,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맹 소속 11개소와 미소속된 센터 등 지속적이고 양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자립생활센터는 주요기능 중 권익옹호, 동료상담, 개인별 자립지원, 탈시설 자립지원과 같은 기본사업의 1개 이상을 수행해야 하며,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자립해 생활하는 데 필요한 서비스인 활동지원서비스, 이동서비스 및 보장구 지원, 주거서비스 지원, 평생교육 및 문해교육 등과 같은 선택사업은 각 자립생활센터의 여건에 따라 특정 서비스를 1개 이상 제공할 수 있다.

현재 거주시설 장애인 자립생활 지원체계 현황에 따르면, 지자체에서는 탈시설 하는 장애인에게 500만~1,000만 원 정도의 초기정착금을 지급하고 있으며, 지역마다 명칭은 다르지만 대게 2~6년 정도의 임시적 주거지이자 자립생활 준비 장소로서 자립생활주택을 제공한다.

또한 일정한 자격기준을 갖추면 활동지원서비스를 지방비로 추가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이 모든 정책은 각 지자체마다 통일되어 있지 않으며 각기 다른 지원대상과 지원내용을 가지고 있다.

이에 중앙정부의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지역 인프라만으로 지원체계를 마련한다는 것은 어려우며 또한 장애인 당사자의 탈시설이 대세인 상황에서 시스템화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서 센터장은 “국내 장애인 탈시설화 정책의 실행 초기부터 지금까지 관련 역할을 수행해 왔던 자립생활센터를 중심으로 국가 수준에서 이를 강화 및 육성해야” 함을 주장했다.

한편 자립생활센터의 경우 장애인복지법 제58조가 규정하는 장애인복지시설(장애인거주시설, 장애인지역사회재활시설, 장애인직업재활시설, 장애인의료재활시설, 장애인생산품 판매시설 등)이 아니라는 점에서, 장애인복지시설의 국비 비용보조 근거조항인 제81조(비용보조)가 적용되지 않음으로 인해 장애인복지시설과 구별돼 재정지원 및 여러 급여기준의 적용, 경력인정 등의 차별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

그는 장애인자립생활센터 법제화 방안으로 △장애인복지법 제58조(장애인복지시설)에 장애인복지시설의 종류에 자립생활센터를 삽입하거나 시행령, 시행규칙에 자립생활센터 지원에 관한 구체적인 조항을 추가 △제81조(비용 보조) 및 해당 시행령과 시행규칙의 개정을 제안했다.

 

한국 IL계, 아·태 자립생활연대 부흥시켜야

 

∎윤재영 삼육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한국의 IL은 역동성이 무기이다. 무에서 유를 이루어낸 수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고, 어떻게 하면 세상이 변하는지도 알고 있다.”며 “한국 IL계가 아·태 자립생활(APNIL)연대를 부흥시켜야” 함을 주장했다.

유앤 장애인권리협약은 제4조 ‘일반 의무’에서 ‘권리의 완전한 실현을 위해 국제적 협력의 틀 내에서 각 당사국은 가용자원이 허용하는 최대한도까지의 조치를 약속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제32조 ‘국제협력’에선 당사국은 협약의 목적과 목표의 실현을 위한 국가 차원의 노력을 지원함에 있어 국제협력과 그에 대한 증진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관련 국제기구 및 지역기구, 장애인단체와 협력해 △정보, 경험, 훈련 프로그램 및 모범사례의 교류 및 공유 등을 통한 역량구축을 촉진하고 지원할 것 △연구 협력과 과학적 및 기술적 지식에 대한 접근을 촉진할 것 △적절한 경우 접근 가능하고 보조적인 기술에 대한 접근과 공유를 촉진하는 것과 기술이전을 포함해 기술적 경제적 지원을 제공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장애인권리협약의 실현을 위한 인천전략은 목표 10에서 ‘하위지역 및 지역 간 협력의 강화’를 포함시켰다.

장애인의 국제적 연대와 협력의 성과는 매우 구체적으로 여러 나라의 최상의 실천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장애인을 위한 이동 편의성과 접근성을 높이기도 하지만, 보다 거시적인 수준에서 더 포용적인 사회를 위한 시민의식을 제고해 공적 자금과 지원을 끌어내기도 한다.

무엇보다 장애인권리협약과 같은 국제적 조약을 만들어냄으로써 국가의 장애인 정책과 전략, 실행계획과 같은 장애의 프레임워크(개발될 수 있는 뼈대 구조)를 변화시키는 성과를 내고 있다.

유럽자립생활네트워크(ENIL)는 1989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유럽 의회에서 18개국 80여 명의 장애인 당사자가 참여한 가운데 ‘스트라스부르 결의안’이 통과되면서 창립됐으며 아·태자립생활센트워크(APNIL)의 출범은 2012년 ‘제3차 아·태 장애인 10년’의 시작인 인천전략(2013-2022년)이 선언된 아·태장애인대회에서 이뤄졌다.

윤 교수는 “제4차 아·태 장애인 10년이 시작돼야 하는 이즈음에, 또한 ‘부산세계장애인대회’를 앞에 두고 APNIL의 부흥은 한국의 장애인자립생활센터 협력 단위들에게 다소 숙명적”임을 피력했다.

 

개인예산제 시행 영국, 예산 압박에

시달리는 일부 지자체는 인터넷 경매로

서비스 제공기관 선정…서비스 질 대신

비용 최소화 선택하는 경우도

 

한국, 무분별한 시장화 방지하기 위해

반(反)시장기제를 반드시 마련하고

서비스 평가도 이용자 대상으로 개선을

 

∎윤삼호 부산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은 “한국은 2000년 이후 장애운동이 활성화되면서 장애인복지 서비스와 인권이 양과 질의 측면에서 크게 개선됐다. 그동안 20여 개의 장애 관련 법률이 제정됐고 법과 제도의 확대에 따라 장애 관련 예산 역시 크게 증가한 것이 사실이지만 한국의 장애인들은 확대된 복지서비스 환경만큼 삶의 질이 개선되었다고 느끼지 않는 것 같다.”며 “대부분의 서비스들이 현물 또는 바우처 방식으로 간접 전달되는 탓일 것”이라며 영국의 개인예산제에 대해 소개했다.

2000년대 이후 영국을 중심으로 개인예산제도가 도입되면서 장애인이 스스로 자신이 욕구에 따라 서비스를 결정하고 선택함으로써 한 개인으로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독립하게 된 반면, 전문가와 가족의 역할은 조력자의 지위로 조정된다. 인류 역사에서 처음으로 장애인이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사람으로 인정되고, 사회적이고 개인적인 책임의 주체가 되고, 동등한 시민권을 가진 개인으로서의 인권이 완성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

2003년 ‘건강 및 사회적돌봄법(Health and Social Care Act)’이 시행되면서 모든 지방정부가 현금급여를 통해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의무화됐으며 이때부터 ‘직접지불제도’를 ‘개인예산제도(individual budget 또는 personal budget)’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2005년 영국 보수당 정부가 2년 간 개인예산제도 시범사업을 거쳐 2007년부터 노동당 정부는 모든 사회서비스를 개인예산제도에 따라 제공하고 있다. 서비스 적격 판정을 받은 이용자가 자기 문제와 필요를 스스로 정의하고 평가하며 서비스 이용자는 자신에게 주어질 현금 사용 계획서를 지방자치단체에 제출한다. 지자체는 평가를 통해 최종 급여 수준을 결정해 현금으로 지급한다.

개인별 예산은 수급 자격을 가진 장애인의 사회적 활동(가령, 학원 수강, 취미활동, 구직활동, 자기개발을 위한 장비 구입 등)에 사용해야 하고, 도박, 부채 상환, 술과 담배 구입, 의약품 구매, 자신과 타인을 위험에 빠지게 하는 행위에는 사용할 수 없다.

개인예산제 운영방식으로는 △지방정부가 장애를 가진 개인의 계좌에 현금을 입금해 당사자가 직접 관리하도록 하는 방식인 ‘직접지불형’ △지방정부가 장애를 가진 개인(또는 보호자나 후견인)이 지정한 서비스 위탁기관(agent)에 현금을 입금해 기관이 현금 사용을 관리하도록 하는 ‘기관위탁형’ △위 두 가지 방식을 혼합한 방식인 ‘혼합형’이 있으며 현재 영국 정부는 20% 수준에 머물고 있는 ‘직접지불형’ 이용자의 확대를 지방정부에 종용하고 있다.

제도 도입 방안에 대해 윤 국장은 “현물 서비스가 압도적인 우리나라의 경우 현행 제도 아래에서 새로운 제도를 실험적으로 적용해 볼 수 있는 영역을 찾아봐야 한다.”면서 그 예를 활동지원급여의 전부 또는 일부를 현금급여 방식으로 전달해 본다거나, 발달장애인지원법에 근거한 개별지원계획을 개인예산제도 방식으로 운영할 것을 제시했다.

현금지급제도와 개인예산제도는 원래 경제적으로 신자유주의, 정치적으로는 영국 보수당의 이해와 맞아떨어지는 기획이었다. 자유시장, 작은 정부, 개인의 자유와 책임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는 이론상 장애인 같은 약자에게는 불리한 사조로 결국 복지국가 모형을 후퇴시킬 수 있다.

실제로, 버밍엄시를 비롯한 영국의 일부 지자체는 인터넷 경매를 통해 서비스 제공기관을 선정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예산 압박에 시달리는 지자체들이 서비스의 질 대신 비용 최소화를 선택한다는 것.

윤 국장은 “한국에서 개인예산제도를 도입할 경우 무분별한 시장화를 방지하기 위한 반(反)시장기제(anti-market mechanism)를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을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이용자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장애인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한 다음 주로 제공기관을 대상으로 서비스 실적 평가를 하지만, 영국 지자체들은 해당 서비스가 이용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평가한다. 즉 ‘얼마나 많은 서비스를 제공했느냐가 아니라 그 서비스가 이용자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가 평가의 핵심이 돼야 한다.”면서 개인예산제도의 취지에 맞게 서비스 평가 방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음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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