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날 특집]‘인연’으로 만나 함께여서 더 좋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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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날 특집]‘인연’으로 만나 함께여서 더 좋은 사람들
  • 차미경 기자
  • 승인 2023.04.10 09:10
  • 수정 2023-04-10 15: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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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생활신문’은 4월 20일 장애인의날을 맞아 장애인 당사자와 가족, 친구, 선생님, 이웃 등 혼자가 아닌 함께일 때 조금 더 나은 세상이 된다고 믿는 사람들을 만나봤다. 일부 사람들은 이들의 관계를 ‘봉사자’, ‘수혜자’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이들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냥 ‘인연’이라고 말한다. 서로가 있어 더욱 ‘살맛 나는 세상’이라고 말하는 그들을 만나 보자.

“서로의 웃음소리만 들어도 행복해요”

김희자 자원봉사자와 유정선 중증시각장애인

아직도 5년 전 처음 김희자 씨와 만났을 때 “안녕하세요~”라고 밝게 인사를 건네오던 그 목소리를 잊지 못한다는 유정선 씨<사진 앞>는 한 달에 한 번, 김희자 자원봉사자와의 만나는 날이 너무 행복하다고 말한다.

김희자 씨는 연수구자원봉사센터 소속 이‧미용 봉사자로 매월 마지막 주 월요일 연수구 내 4~6명의 장애인에게 미용 봉사를 진행하고 있다. “가지고 있는 기술이 ‘가위질’이다 보니(웃음) 어렵지 않게 활동을 시작하게 됐어요. 정선 언니랑은 5년 전 처음 활동을 시작할 때부터 연이 닿았는데, 지금은 정말 가족 같은 사이가 된 것 같아요.”

유정선 씨는 전맹 시각장애인으로 외부활동의 제약이 많다 보니, 미용실을 찾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완벽하게 구현해주는 희자 씨가 마음에 무척 든다며, 자신이 죽을 때까지 함께해야 한다고, 웃으며 말할 정도로 희자 씨에 대한 애정이 가득해 보였다.

유정선 씨는 “제가 키가 작고 목이 짧다 보니 커트 머리를 선호하는 편인데, 제가 원하는 대로 아주 잘 잘라줘요. 일요일마다 성당을 가는데, 희자 씨가 미용을 해주고 간 주에 성당을 가면 만나는 사람마다 “어머~ 머리 예쁘게 잘랐네!”라고 말해주니, 못 잘랐다고 타박도 못 한다니까요.(웃음)”

‘새로 산 옷 색이 예쁘다.’, ‘이사를 하려고 하는데 고민이다’ 등 커트하는 동안 두 사람은 정말 동네 친한 언니 동생처럼 일상적인 수다를 이어간다.

희자 씨는 “언니가 말을 너무 재미있게 해요. 언니가 툭툭 뱉는 말에 정말 많이 웃게 돼요. 남들이 보기에는 제가 봉사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이런 즐거움, 행복을 어디서 얻을 수 있겠어요. 오히려 제가 복을 받은 거죠.”

정선 씨 역시 희자 씨는 정말 끝까지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라며, 이 인연이 오래도록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다른 사람에게도 이·미용 봉사를 받아본 적 있지만, 희자 씨만큼 잘 맞았던 사람이 없어요. 연수구자원봉사센터에 매달 미리 전화로 날짜를 안내해주시는데, 그 전화를 받는 순간부터 기다려지고 설레요. 제 생활 속에서 몇 없는 즐겁고 행복한 날이죠.”

처음 시작은 봉사자와 서비스 이용자로 만났지만, 지금은 자매처럼 서로 의지하고 서로의 행복을 바라는 사이가 된 희자 씨와 정선 씨의 인연이 두 사람의 바람대로 오래오래 이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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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내적인 힘을 길러주는 것이

가족의 역할인 것 같아요”

정향조 청각장애 딸 어머니

 

정향조 씨는 청각장애 딸을 키우면서 보내온 지난 40여 년을, 매일매일 힘들었지만 희망적이었고 즐거웠으며 행복했다고 회상했다.

그녀의 딸은 한쪽 귀는 전혀 소리를 듣지 못하고, 다른 한쪽 귀는 60~80데시벨 정도의 소리만 들을 수 있는 청각장애인이다.

“딸이 돌이 막 지났을 때였어요. 사실 전 첫째 애다 보니 아이가 듣지 못한다는 것을 잘 인지하지 못 했던 게 사실이에요. 그냥 조금 늦나 보다고만 생각했죠. 그런데 우리 동네에 청각장애가 있는 조카를 둔 이웃이 살았는데, 그분 눈에는 저희 아이의 다른 점이 눈에 들어왔던 것 같아요. 조심스레 저한테 병원에 가보라고 권했죠. 그리고, 검사 끝에 청각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슬프거나 놀라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녀는 엄마이기에 빨리 다음 길을 찾아야 했다. 받아들이는 것만이 당시 자신이 해야 하는 첫 번째 일이자 최고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바로 청각장애인들을 교육하는 학교를 알아봤어요. 3~4살 되는 아이를 데리고, 전철과 버스를 타면서 당시 서울 성북구에 있는 ○○학교를 다니며,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찾기 시작했죠.”

이날 정향조 씨는 1984년부터 작성해온 일명 ‘엄마 공책’을 들고 나왔다. 노트에는 ○○학교에서 들었던 아이를 교육하는 방법 등의 수업 내용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매일 수업을 듣고 집에 와서 아이에게 적용했어요. 정말 수천 번, 수억 번 반복하는 나날이었죠. TV와 냉장고 등에 낱말카드를 붙여놓고 매일매일 반복해서 아이에게 읽어줬어요.”

그녀는 아직도 아이가 처음으로 “음마(엄마)”, “바빠(아빠)”라고 말하던 날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이후 딸이 유치원에 들어갔을 때는 유치원 바로 앞에 방을 얻어두고, 담임 선생님께 부탁해 다음 날 수업 내용을 미리 듣고 전날 아이에게 반복해서 설명해주는 일을 1년 동안 쉬지 않고 했다.

그녀는 자신의 이러한 노력을 아이의 장애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절대 아니라고 했다. “자존감을 키워주고 싶었어요. 아직 어렸을 때니까 아이가 좌절보다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했던 노력이었죠.”

실제로 정향조 씨는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도 무조건 위로하거나, 칭찬하기보다는 건강한 마음으로 성장하는 데 초점을 뒀다. “아이에게 항상 말했어요. 네가 잘 못 듣는다고 친구가 답답해 하거나, 발음이 조금 부족하다고 말하는 거에 대해서 상처받지 마라, 그건 사실이다. 사실은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지, 상처받을 것이 아니라고요”

이러한 그녀의 교육방법 덕분에 그녀의 딸은 아주 단단하고,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했다. 대학에 진학해 국문학과 복지학을 전공하고, 회사에 다닐 때는 물론, 결혼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스러운 딸을 출산했을 때에도 항상 자신과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과 함께 해 줄 가족을 믿으며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결정하고 받아들이며 걸어가고 있다.

정향조 씨는 자신과 딸을 포함한 현재 그녀의 가족들이 이처럼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에는 가족 모두가 자신의 자리에서 흔들리지 않고, 배려하고 사랑하며, 함께 힘을 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실 저도 아이를 키우며 장애 아이를 둔 가족들을 자연스럽게 접할 일이 많았어요. 그리고. 적지 않은 가족들이 힘든 시간을 이겨내지 못하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도 많이 봤죠. 또 지금 이 순간에도 힘든 시간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하는 가족들도 분명 있을 거예요. 전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요. 받아들이는 것부터 하자고요. 벌어진 일에 누구의 책임을 더 묻고, 비난하고, 상처 주지 말자고요. 행복하게 살기만도 짧은 인생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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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여서 더 많이 배우고, 느끼고 있어요”

한영대학교 신학과 새내기 동기 중증시각장애 양준호/최나희 씨

 

 

준호 씨<사진 오른쪽>와 나희 씨는 23학번 대학 새내기다. 현재 한영대학교 신학과에 재학 중인 두 사람은 대학 생활을 이어가는 데 실과 바늘처럼 함께 하고 있다.

“혜광학교를 졸업한 후 장애인으로서 다양한 혜택을 받아온 것에 감사하며, 나도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고 싶다는 생각에 신학대학 진학을 결정하게 됐어요. 나희 누나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다니던 교회에서 만났는데, 제 계획을 들은 후 함께 공부하자며 저의 도전에 동참해줬고요.”

“원래는 대학에 진학할 계획이 전혀 없었어요. 당시 직장생활을 하는 중이었는데, 개인적으로 회의도 느끼고 힘든 시간을 보내던 중 준호가 신학대에 입학한다는 얘기를 듣고 어쩌면 전환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함께 하게 됐어요.”

나희 씨는 오랜 시간 준호 씨를 봐왔기 때문에 대학 생활이 어렵지 않을 거로 생각했지만, 막상 현장에 서 보니 자신의 마음과 의도와는 달리 부족하고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고 말했다. “우선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여긴 식판에 먹는 게 아니라 둥글고 큰 접시에 음식을 담아 먹는 방식인데, 준호는 반찬과 밥의 위치가 정확하게 설명되지 않으면 먹는 데 불편함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내가 좀 더 세심하게 신경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나희 씨는 자신이 충분히 도와주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하지만, 준호 씨는 나희 씨가 정말 많은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학교에 사실 장애인편의시설이 잘 구축되어 있지 않아요. 장애인화장실도 따로 없고요. 그러다 보니, 나희 누나가, 제가 화장실을 가야 할 때 화장실 안까지 함께 이동해주기도 하거든요. 그럼 상황을 잘 모르는 남자들이 당황한 눈으로 바라보기도 하는데, 누나가 불편한 티를 안 내요. 또 저를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장애인지원센터를 오고가주는 등 정말 많이 도와주고 있어요.”

무엇보다 함께 수업을 듣는 동기들 역시 두 사람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장애에 관한 생각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나희 누나가 동기들과 함께 어울릴 기회를 많이 마련해 주고 있어요. 2주 뒤쯤이면 중간고사 기간인데 저희 외에 2명의 친구가 함께 도서관에서 공부할 계획이에요.”

준호 씨는 사실 입학을 결정하고 난 후에도 개강하기 전까지 걱정을 많이 했었다고 말했다. 혜광학교는 시각장애인들끼리만 이루어진 사회였기 때문에 비장애인과 함께하는 사회는 준호 씨에게는 처음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걱정 많이 했죠. 몇 번을 학교에 전화해서 편의시설과 장애학생 지원 시스템에 관해 물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한 달 정도 생활을 해 보니, 결국 이곳도 다르지 않구나,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제가 이렇게 이른 시간 안에 적응할 수 있었던 데에는 나희 누나의 역할이 컸고요. 이번 기회에 고맙다고 꼭 다시 말하고 싶어요.”

이에 나희 씨는 오히려 준호 씨 덕분에 자신이 대학 생활을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공을 미뤘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사실 제가 심리적으로 힘들 때 입학을 결심한 거라 막상 결정하고도 마음이 흔들렸어요. 그럴 때마다 준호가 ‘함께 열심히 다니자’고 응원하고 힘을 줬거든요. 오히려 제가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두 사람은 이번 중간고사가 끝나면 친한 과 동기들과 함께 한강을 찾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많이 웃고, 즐기며 그 어느 때보다 화사한 봄을 보낼 그들의 내일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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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와 부모는

아이 미래 함께 그려가는 조력자 아닐까요”

이유리 자폐아이 어머니와 김유리 햇살나무발달센터 원장

기자가 만난 장애아이를 둔 많은 부모님들은 자녀의 장애를 처음 알았을 때, 말 그대로 ‘멘붕’이었다고 말한다. 특히 아이의 교육 부분에 대해서는 정보를 얻는 것 자체가 미션을 수행하는 것 같았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현재 삼 남매를 키우고 있는 이유리 씨<사진 왼쪽> 역시 첫째 아이가 처음 ‘자폐’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려웠지만, 스스로도 운이 좋았다고 말할 정도로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서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물론 지금까지 좋은 선생님만 만났던 건 아니에요. 6살 때 처음 입학한 병설유치원 특수반은 하루에 30분씩 딱 이틀 등교하고 그만뒀어요. 우리 아이를 딱 30분씩 이틀 본 당시 담임 선생님이 저에게 특수학교로 가야 할 아이라고 말했죠. 그날 아이를 데리고 교문 밖을 나서는 순간 주저앉아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상처를 준 사람만큼 용기를 주었던 사람들도 많았기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한 유리 씨는 이날 함께 만난 햇살나무발달센터 김유리 원장도 좋은 인연 중 한 명이라고 소개했다.

자폐로 인해 의사소통이 안 되는 아이를 위해 보완대체의사소통인 AAC를 알아보던 중 센터를 방문하게 됐다는 유리 씨는 그간 많은 센터를 다녀 봤지만 이곳은 특별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센터는 와서 배우라고 하지, 가르쳐 주지 않아요. 그냥 엄마는 아이를 센터에 맡기고 잘 가르쳐주겠거니 믿을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런데 김유리 원장님은 달랐어요. 엄마가 함께 아이의 성장을 위해서 동참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줬어요. 사실 저도 세 아이를 키우면서 힘들다 보니 과거에는 학원이나 센터에 그냥 의지만 하고 있었는데, 원장님을 만나면서 나도 배워야겠다, 배워서 우리 아이에게 좀 더 가르쳐 줘야겠다는 열정이 생기더라고요.”

김유리 원장은 이에 대해 부모님의 도움과 협력 없이는 절대 긍정적인 효과를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는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센터에 오는 시간은 고작해야 하루에 1~2시간, 일주일에 한두 번이에요. 아이의 반응을 관찰하고 센터에서 배우고 익힌 것을 집에서도 수업이 반복돼야 당연히 효과도 높아지죠. 그러기 때문에 저는 어머님과 선생님, 아이 모두가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두 사람은 입을 모아 ‘아이의 가능성을 볼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양육자이고, 선생님이라고 말한다. “무엇보다 원장님께 감사한 부분이에요. 우리 아이들은 엄청 늦고, 엄청 기다려줘야 해요. 근데, 정말 거짓말이 아니라 변화하고 발전해요. 그게 아주 미세한 것이라고 해도 그 가치만은 정말 크거든요. 이렇게 우리 아이들이 변화할 수 있다고 믿고 지도해주는 선생님들이 많이 계셨으면 좋겠어요.”

김 원장은 장애아이를 둔 부모님들이 울타리를 너무 높게 쌓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우리 아이들이 결국에는 사회에 나와서 비장애인들과 함께 살아가게 돼요. 걱정스러운 마음, 조심스러운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스스로 할 수 있다고 믿고, 그 길을 도와주셨음 좋겠어요.”

선생님과 학부모는 아이의 미래를 함께 그려가는 조력자라고 말하는 그들은 아이들 모두가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이 봄날의 꽃처럼 활짝 필 수 있는 세상이 되길 희망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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