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 함께 달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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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인물]“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 함께 달려요”
  • 정은경 기자
  • 승인 2023.03.27 14:26
  • 수정 2023-03-27 15: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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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국제하프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휠체어 장애인 서권일과 그의 파트너 강한별
▲ 마라톤 완주 후 골인지점에서 기념촬영을 한 서권일, 강한별 활동가

3월 26일 오전 8시 문학경기장, 제23회 인천국제하프마라톤대회가 열리는 현장에는 다소 쌀쌀한 날씨에도 많은 인파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수백 개의 부스와 2만여 명의 참가자들 속에서도 서권일 씨(민들레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를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휠체어를 타고 참가한 유일한 장애인 참가자였기 때문.

서권일 활동가는 중증뇌병변 장애인이다. 그가 평소 이용하는 전동휠체어를 버리고 수동휠체어를 타고 마라톤대회에 참가하게 된 것은, 처음에는 민들레IL센터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는 강한별 활동가의 ‘꼬득임’ 때문이었다.

“개인적으로 한두 번 마라톤을 한 적이 있는데, 센터 장애인 활동가랑 함께하면 더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권일 팀장님을 제가 꼬셨죠. 같이 뛰자고.”

강한별 활동가는 오늘 서권일 활동가의 휠체어를 뒤에서 밀며 함께 뛸 파트너다.

“저는 처음에는 망설였습니다. 마라톤이라는 것도 처음인데다 전동휠체어를 타면 의미가 없을 것 같고 수동으로는 자신이 없었죠. 근데 한별 님이 선뜻 내가 뒤에서 밀면 되지, 하고 나섰던 거예요. 그래서 그럼 한번 뛰어보자, 했던 거죠.”

그렇게 참가를 결심하고나니 그냥 뛰기만 하는 것 별 의미가 없어 보였다. 사실 마라톤대회에 참가하기로 마음을 굳히는 데는 “우리(장애인)도 당신들(비장애인)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작용했다. 그래서 서권일 활동가는 이 같은 뜻을 담은 현수막을 마라톤 내내 펼치고 가고, 그런 서권일 활동가의 휠체어를 강한별 활동가가 밀고 뛰는 것으로 콘셉트를 잡았다. 현수막에 적을 문구도 정해졌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 혐오는 쓰레기통에!”로.

두 사람이 마라톤대회에 참가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센터의 다른 상근활동가들도 함께 뛰겠다고 나섰다. 그리하여 서권일, 강한별, 전혜정, 정유숙, 홍경아, 이소망 활동가와 서권일 활동가의 활동지원인인 최광숙 지원인까지 7명의 팀이 꾸려졌다.

 

▲ 출발 전 완주를 다짐하는 민들레장애인자립생활센터 식구들.<br>
▲ 출발 전 완주를 다짐하는 민들레장애인자립생활센터 식구들.

 

9시 16분, 문학경기장 내에서 10km 코스 경주자들이 스타트선을 박차고 달려나왔다. 그 사이에 휠체어 위에 함박웃음을 웃고 있는 서권일 활동가와 그의 휠체어를 밀며 힘차게 달리는 강한별 활동가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이 참가할 코스는 10km 코스. 엄마아빠 손을 잡고 뛰는 어린이들도 있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함께 달렸다.

“사실 우리가 민폐가 되면 어쩌나 싶은 생각도 없지 않았죠. 다행히 주로가 넓은 도로여서 그런 문제는 없었고, 함께 달리는 비장애인 참가자들도 힘내라, 반갑다 등등 많은 지지와 응원을 해주셔서 너무 신이 났습니다. 다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 가운데 장애인은 우리뿐이라는 게 아쉬웠죠.”

1시간 45분 25초, 서권일 활동가의 완주 기록이다. 강한별 활동가는 이보다 1초 느린 1시간 45분 26초. 뛰는 내내 ‘평생 받을 응원을 다 받은 느낌’이었지만, 그리고 넓은 도로를 시위를 위한 ‘행진’이 아니라 바람을 느끼며 ‘달렸다’는 남다른 감회도 있었지만 두 활동가에게 아쉬움이 없지는 않다.

처음 대회 참가 신청 시 장애인이라는 말에 주죄 측이 당황한 것에서 미루어알 수 있듯 지역사회 내 크고 작은 행사들이 모두 비장애인 중심으로만 이루어진다는 점, 그리하여 행사 홍보 및 사전 신청 안내에서도 장애인에 대한 안내는 어느 곳에서도 없었다는 점, 경기장에 장애인 편의시설이나 지원 부스가 전무했다는 점은 달리는 내내 마음을 무겁게 한 현실이다.

“하지만 뛰는 내내 너무 신나고 즐거웠습니다. 내년에는 이용자들도 함께 참가해야겠어요. 그래서 우리 장애인들도 지역사회에 함께 사는 시민임을 보여주어야죠.”

뛰는 내내 현수막을 펼치고 있지는 못했지만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이라는 현수막의 문구가 실현되는 사회가 곧 오리라는 간절한 믿음이 세상에 전해지길 바라는 서권일, 강한별 활동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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