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선 전문기자의 생활과학 톺아보기] 냄새의 과학이 인생에 주는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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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선 전문기자의 생활과학 톺아보기] 냄새의 과학이 인생에 주는 도전
  • 이창선 기자
  • 승인 2023.03.09 10:45
  • 수정 2023-03-23 1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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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를 추적해 사람을 살리는 방법을 찾았다면 흥미로운가? 의학 역사에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1931년 노르웨이에서 살던 지체장애가 있는 두 자녀의 소변에서 악취가 나는 것을 발견한 어머니가 의사에게 알렸고, 호기심을 가진 그 의사는 오슬로대학 실험실에서 소변을 분석해 문제점을 찾아냈다. 발견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비슷한 문제가 정신병원 환자들에게 많은 것이 확인되면서, ‘페닐케톤뇨증’이란 이름을 붙이는 선천성 대사이상 질환의 실체와 치료 대책이 개발된 것이다. 이 질환은 소변과 혈액에 ‘페닐알라닌’이 지나치게 축적되어 뇌를 손상시키는 질환이다. 페닐알라닌이 축적되는 이유는 아미노산 페닐알라닌을 ‘티로신’으로 바꾸는 효소가 부족해서. 이렇게 효소의 한 종류가 부족하거나 없어서, 그 효소가 매개하는 화학반응이 차단됨으로써 유전질환이 발생한 것이다.

신생아 선별검사에서 고페닐알라닌혈증으로 진단된 신생아에게는 치료를 위해 페닐알라닌을 제거한 특수 분유가 필요하다. 특수 분유는 값이 비싸기 때문에 구입비 지원이 필요하다. 또한 단백질 섭취량이 0.5g/kg 이하인 경우에는 페닐알라닌 섭취 제한을 해도 페닐알라닌치가 상승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영아기, 유아기,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연령대별로 적절한 단백질 섭취량을 전문가에게 관리받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평생에 걸친 식이요법에 지치지 않도록 보호하는 건강교육과 정신적인 지지가 가족과 아픈 아이에게 필요하다. 역사를 돌아보면 1930년대 그 어머니와 의사는 냄새를 방치하지 않고 추적해 이후 수많은 아이의 뇌 손상 예방과 치료에 기여했다. 오늘날에도 보호자들과 연구자들은 이렇게 협력할 수 있다.

냄새, 후각은 돈을 버는 경제에도 활용되는 흥미로운 감각이다. 길버트라는 과학자는 2008년 연구를 통해 향기가 의복 판매를 증가시킨다는 주장을 제시했고, 쇼핑객의 구매를 자극하기 위해 매점을 향으로 채우는 상점들이 다수 나타났다. 길버트의 연구 이전에 코스펠드 등 연구진은 호르몬 옥시토신 냄새가 사람들을 더 신뢰하는 행동을 촉진한다는 연구결과를 2005년에 밝혔다.

과연 후각은 사람에 대한 판단이나 의사결정과 서로 연관이 있을까? 냄새를 맡는 과정에 관여하는 뇌 활동이 기억 및 경험과 연관된 것들이어서 이 주장에 무게를 실어준다. 불쾌하거나 유쾌한 냄새를 맡는 것은 보는 것이나 듣는 것보다 더 강하게 편도체를 활성화하는 데 효과적이란 연구결과들이 있다. 편도체는 정서 반응에 중대한 관여를 하는 대표적인 뇌 부위다. 이런 결과들을 보면 자기 관리를 위해 자신의 체취나 향수 등에 관심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나이가 들수록 중년기에 들어가면서 후각 민감도가 떨어지기 시작하는데, 신기하게도 불쾌한 냄새에 대한 확인만큼은 노화의 영향권에 들지 않는다고 알려졌다. 불쾌한 냄새의 지각은 정서를 유발함과 관련된 편도체의 활성화에서 부정적인 기억을 유발하는 간접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이런 연구들을 응용한다면 우리에게 이런 창의적인 복지사업에 대한 상상이 일어날 수도 있다. 자신의 청결을 스스로 돌보기 어려운 환경에 있는 노인이나 노숙자들에게 씻고, 상쾌한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지원하는 것 말이다.

후각이 이같이 놀라운 영향을 발휘할 수 있는 데에는 냄새 분자들을 붙잡는 과정에서 후각 수용체의 차이와 연관된 유전자들도 한몫한다. 관련 유전자들의 확인은 2004년에 생리학・의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았다. ‘후각 G 단백질’, 생소할 수도 있는 이 유전자가 발견의 시작이었다. 냄새 특성들이 각기 다른데 후각 수용체에서 각기 다르다고 입력을 해 주기에, 엄마는 자기 아이의 체취를 다른 냄새와 구별해 빨리 알고 기억할 수도 있는 것이다. 냄새를 구별해 파악해주는 데 관여하는 정교하고 수많은 유전자들이 있다는 것은 참 고맙다. 자기 몸의 각 부분을 칭찬해 주고 싶을 때, ‘후각 G 단백질’의 이름도 불러주는 것이 좋겠다.

이처럼 후각에 대한 과학 자료들은 뇌를 보호하는 생명을 돌보고 생각과 행동을 이끄는 데 냄새의 확인과 관리가 유용함을 보여주었다. 한편 냄새의 과학을 사회로 더 끌어들여, 사람의 행동에도 냄새가 있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문학에서는 ‘인생의 향기’, ‘말의 향기’라는 제목이 낯설지 않다. 뇌를 손상시키는 ‘페닐케톤뇨증’이 숨겨지지 못한 것은 악취를 간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냄새는 자취다. 인생의 자취, 말의 자취. 우리 사회 언론, 유튜브, 인터넷 검색 공간, 가족과 지인들 간의 대화에 대한 기억, 혼잣말 등에서 어떤 냄새가 나는가? 악취와 향기를 구별하는 데 실패하지 않을 유전자가 있는가? 악취라면 대처하고 있는가? 냄새의 과학은 우리를 격려한다. 구별하고 대처할 것을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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