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과 ‘울림 깊은 음악’ 만들어가는 마에스트로_박기화 혜광브라인드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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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과 ‘울림 깊은 음악’ 만들어가는 마에스트로_박기화 혜광브라인드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 정은경 기자
  • 승인 2022.12.15 11:00
  • 수정 2022-12-15 11: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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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특수학교인 인천혜광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창단돼 올해 창단 10주년을 맞은 혜광브라인드오케스트라의 박기화 상임지휘자를 만나러 가는 날은 올겨울 들어 가장 소담스럽게 눈이 내린 날이었다. 아침부터 훨훨 내리는 눈을 보며 섬 취재(그는 영종도에 있는 인천국제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를 걱정했으나 다행히 약속 시간이 가까워지자 눈이 걷히고 파란 하늘이 드러났다. 영종도 백운산 기슭에 자리한 인천국제고등학교 음악실에서 박기화 지휘자를 만났다.

검은 연미복을 입고 포디움 위에 선 지휘자 박기화는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지닌 사람이다. 그러나 첫 만남에서 “아이고, 이 먼 길을 저를 만나러 와주시다니…” 하며 기자의 차가운 손을 덥석 잡고 인사를 건네고, 혜광브라인드오케스트라(이하 혜광)와의 지난 이야기를 털어놓는 그는 따듯하고 소탈한 사람이었다.

 

첫 만남, 그 따듯한 위안과 깨달음

꿈결처럼 흘러간 ‘착한’ 이들과 십년

 

그는 혜광의 십 년을 그린 영화 <동행: 10년의 발자취>를 봤다는 기자 말에 “너무 대담 위주로 편집이 됐어요. 우리 단원들의 연습, 실황 등이 더 많이 담겼으면 좋았을 텐데…” 하면서 아쉬움을 전했다. 지휘자로서, 단원들의 음악적 아버지로서 단원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더 진솔하게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박기화 지휘자가 혜광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12년 인천예고에 재직하던 때였다. 당시 학부형이었던 인천시향 단원 임종구 씨가 이러저러한 오케스트라가 있는데 한번 해보지 않겠느냐고 말을 건네왔던 것. 처음에는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름 자신이 시각장애인들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거란 생각에 흔쾌히 ‘해보마’ 했다.

처음 단원들을 만나던 날, 그는 작은 충격을 받았다. 아니 위안을 받았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단원들이 연습실에 들어서는 모습을 보며 내가 이 단원들을 가르치고 그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생각이 가뭇없이 사라졌습니다. 오히려 나는 단원들의 모습에 위안을 받고 있었습니다.”

단원들이 들어오는데 초등학생 꼬마가 앞에 서서 선생님 손을 잡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 학생은 저시력자였고 선생님은 전맹인이었던 것. 선생님의 뒤를 이어서 단원들이 서로 팔을 꼭 잡고 들어오는데, 갑자기 감동이 밀려왔다. ‘이들은 사제라는 관계보다 사람과 사람, 서로를 의지하고 믿는 게 더 중요한 관계구나.’라는 깨달음과 함께.

사실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모인 사회는 생각처럼 따듯하지 않다. 특히 오케스트라의 경우, 합주를 통해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 내지만 지휘자와 단원, 단원과 단원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치열한 경쟁이 숨어 있다. 각자의 음악색이 다르고 지향하는 바가 달라서다. 그러다 보니 서로를 의지하고 믿는다기보다는 은연중에 경계하는 경우가 더 많다. 대학에서 공부할 때도, 외국에 나가 공부할 때도, 오케스트라에서 연주를 할 때도 늘 이런 상황 속에 놓여 있었던 박기화 지휘자에겐 서로가 단점을 보완하며 한 몸처럼 움직이는 혜광의 단원들은 그 자체로 ‘기적’이고 ‘위안’이었다.

하지만 박기화는 단원들과의 첫인사를 우스갯소리로 시작했다. “여러분이 내 얼굴을 못 봐서 너무 억울하네요. 여러분들이 내 목소리만 듣고 거칠고 험악하다고 생각할까 봐…. 나, 잘 생겼어요. 그리고 마음은 엄청 따듯한 사람이라고요.”

그렇게 시작한 혜광과의 동행이 어느새 10년이 됐다. 물론 어려움도 있었지만 ‘착한’ 사람들과의 시간은 꿈결처럼 흘러간다.

“우리 단원들은 참 착해요. 목소리로 사람을 읽고 이해하는데, 정안인들보다 훨씬 이해도도 깊고, 순수하죠. 그래서 단원들과 있다 보면 나도 저절로 착해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점점 더 착해져야 할 것 같고요.”

‘착한’ 혜광의 단원들은 앞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은 정안자들이 찾아내지 못하는 울림을 가슴에 품고 음악을 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받는 타인의 도움을 음악을 통해 사회에 갚는다는 생각을 하며 악기를 든다. 그래서 그들의 음악은 더 따듯하게 마음에 와닿고, 그런 소리를 함께 찾아주는 박 지휘자는 점점 더 착하게 성장하고 있다. 지천명을 넘은 나이지만 박기화는 그렇게 인간적으로도 음악적으로도 성장하고 있다.

보면대 없는 오케스트라, 말로 지휘하는 지휘자

장애 특성과 능력에 맞게 연주하는 맞춤형 편성

 

혜광에는 정원이 없다. 첫 창단 때는 80명가량이 무대에 올랐고, 요즘 연주회 때는 55명 편성으로 들어간다.

“창단 연주회 때는 혜광학교 학생들뿐만 아니라 강사와 학부모들까지 원하는 사람은 모두 단원으로 참가할 수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정안인들도 있었죠. 창단 연주가 끝나고 처음 오케스트라 설립의 취지를 살리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각장애인들도 현(string)을 할 수 있다, 안 되는 건 없다는 것을 보여주자는 거죠. 그러기 위해서 강사나 학부모들의 참여를 가능한 한 배제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정안인들은 점차 오케스트라에서 빠지면서 자연스럽게 시각장애인이 중심이 되는 오케스트라가 꾸려졌다. 그리고는 보면대를 없앴다. 지휘자 박기화의 첫 번째 선택이었다. 단원들이 앞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곧 지휘자의 지휘봉을 볼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물론 악보도 볼 수 없다. 그들에게는 오로지 ‘소리’만이 있을 뿐이다.

“모든 걸 소리를 통해 전달합니다. 모든 연주가 암보를 통해 이루어지고, 내 지휘는 단원들 개개인의 이니어를 통해 전달되죠. 그러다 보니 새 곡을 시작할 때는 지휘자가 말이 많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니어를 통해 각 파트별로 쉴 새 없이 ‘이렇게 해라’, ‘지금 들어와라’, ‘이 마디부터 크레셴도다’ 등등 쉴새 없이 지시를 해줘야 합니다. 그러다 연습이 쌓이면 점점 지휘자는 말이 없어지고 단원들이 서로의 소리를 들으며 약속대로 음을 맞춰갑니다. 지휘자는 가끔 포인트만을 짚어주면 되죠.”

혜광의 연주회 때 포디움(지휘대)에 서서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지휘를 하는 그의 모습은 단원이 아닌 관객을 위한 것이다. 팔로 하는 지휘와 입으로 하는 지휘를 동시에 하는 지휘자 박기화에게 연주회는 그래서 더 힘이 든다. 두 배의 에너지가 드는 무대인 것이다. 가끔 프로 오케스트라와 연주할 때도 자신도 모르게 입으로 소리를 내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지기도 한다는 그는 포디움이 운명인 천생 지휘자다.

혜광의 편성은 단원들의 능력과 장애 특성에 맞게 자유롭게 바뀐다. 무대에는 오르되 곡에 따라 연주에 참가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혜광의 연주회를 보다 보면 손에 악기를 든 채 가만히 앉아 있는 단원들을 간혹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다음 곡에서는 그 단원도 악기를 연주한다. 단원 맞춤형 공연이라고나 할까. 역시 박기화 지휘자의 작품이다.

“우리는 프로 연주자를 길러내는 프로 오케스트라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연주실력이 떨어진다는 말은 아니에요. 음악을 하고 싶은 시각장애인들이 모여 음악으로 서로를 도닥이고 세상에 빛을 비추는 그런 연주단체입니다. 그러니 프로 오케스트라와 편성과 연주 방식이 다른 건 당연하죠. 누가 능력이 안 된다고 내치기보다는 그에 맞는 곡을 선정하고, 함께 가는 것, 우리 동행의 또 다른 의미입니다.”

 

첫 암전 연주, 울컥한 지휘자

혜광과 십년…삶의 태도 바꾸다

 

십 년 동안 정기연주회만 10여 차례, 초청연주까지 헤아리면 더 많은 연주회를 했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연주를 꼽아 달라는 주문에 박기화 지휘자는 단연 창단 이듬해에 했던 제2회 정기연주회를 꼽았다. 박기화 지휘자와 혜광의 첫 번째 정기연주회였다.

“공연을 준비하면서 한 곡 정도는 암전을 하고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두 번째 정기연주회 때 처음 암전을 하고 연주를 했습니다. 첫 곡이 끝나고 공연장 불을 모두 끄고, 저는 무대 한쪽으로 물러나 인이어를 통해 곡을 리드했죠. 그런데 어느 순간 울컥하는 거예요. 잠시 동안 아무 지시도 못 했어요.”

어둠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연주를 해 나가는 단원들과, 익숙하지 않은 암전 무대에 살짝 당황했으나 진지하게 연주를 듣고 있는 청중들의 모습에서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 몰려왔다. 때마침 연주곡은 ‘어메이징 그레이스’였다. 곡 자체의 엄숙한 분위기가 더해져 연주가 끝나고 불이 켜지자 눈물을 훔치는 청중들의 모습이 곳곳에서 보였다.

그날 이후 암전 연주는 혜광 연주회의 시그니처가 됐다. 매 연주회마다 한두 곡씩 암전 연주를 함으로써 정안인인 청중들에게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체험하게 하고, 오롯이 청각에만 집중해 음악을 들음으로써 정성을 다해 연주를 하는 단원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박기화 지휘자의 ‘신의 한 수’였던 셈이다.

“사람들은 제게 혜광을 십 년이나 끌어온 게 대단하다고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아요. 혜광을 만나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 굉장히 강퍅한 사람이 돼 있을지 모릅니다.”

보통 음악을 하는 사람들, 특히 클래식을 하는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불안한 경우가 많다고 그는 말한다. 거기에는 클래식 음악의 구성이 큰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게 그의 견해다.

“교향곡을 한번 보죠. 보통 4악장 구성인데, 이 4악장 속에 삶의 희로애락을 다 녹여야 해요. 1악장은 보통 빠르게 시작하죠. 그리고는 느린 2악장이 이어지고 빠르고 우아한 3악장을 거쳐 빠르고 화려한 피날레인 4악장으로 마무리되는 교향곡은 그 자체로 감정의 오르내림을 요구해요. 그러다 보니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늘 불안에 시달리지 않나, 저는 생각해요.”

그런데 혜광의 단원들은 다르다.

“이 친구들과 연주를 하다 보면 고요함을 느낍니다. 부산하지 않고 차분해요. 감정의 기복도 심하지 않고 집중력도 뛰어나죠. 그러다 보니 저도 차분해지는 거예요. 세상의 온갖 번잡스러움이, 이들과 함께 음악을 하다 보면 사라져요.”

그래서 그는 혜광을 ‘큰 호수’라고 표현한다. 웬만한 바람으로는 파랑이 일지 않는. 지휘자 박기화의 지난 십 년은 그 큰 호수 속에 ‘풍덩’ 뛰어들어 함께 온화해지고 편안해진 세월이다.

“삶을 관조할 수 있게 됐어요. 남을 이겨야 내가 사는 ‘경쟁’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조화’를 몸에 익혔다고나 할까요. 그리고 삶이 풍부해졌죠. 안달할 게 없으니 느긋해지고, 느긋해지니 빨리빨리 살다 놓치는 삶의 작은 단면들도 볼 수 있고 누릴 수 있게 된 겁니다.”

삶의 태도와 함께 추구하는 음악도 달라졌다. 클라리넷 주자로 음악을 시작한 그는 스물네 살 때 처음 지휘를 시작했다. 지금은 없어진 인천의 청소년교향악단에서였다. 그 후 로마에서 지휘를 전공하고 귀국해서는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연주를 녹음한 것으로 유명해진 ‘밀레니엄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금의 대표 이재환과 함께 창단, 지금까지 밀레니엄과 연주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인천예고를 거쳐 지금은 인천국제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오케스트라를 창단할 만큼 ‘클래식’에 진지했던 그가, 마니아들만을 위한 ‘진지한’ 음악이 아닌 대중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즐거운’ 음악을 하게 된 것 역시 혜광과의 만남 덕분이었다.

“암보로만 연주를 해야 하는 우리 단원들에게 교향곡 같은 대작 연주는 힘든 일이죠. 그러다 보니 단원들이 편안하면서도 공감할 수 있는 레퍼토리를 짜게 됐고, 자연히 관객들도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연이 되더라고요.”

클래식과 영화음악, 크로스오버 곡들까지 다양한 레퍼토리 구성은 혜광뿐만 아니라 밀레니엄과의 공연에도 적용된다. 모두가 함께 즐기고 행복할 수 있는 음악, 지휘자 박기화가 추구하는 음악이다.

혜광의 지휘자 박기화로서의 소망은 단 하나다. “단원들과 평생 음악을 함께하는 것.” 개인적인 사정이나 건강상의 사유로 오케스트라에서 빠질 수밖에 없는 단원들을 보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지만, 허락만 된다면 앞으로 십 년, 그리고 또 십 년을 오케스트라 단원과 지휘자로서, 든든한 동행으로서 함께 걸어가길 간절하게 바랄 뿐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 나오는 길, 박기화 ‘선생님’은 잠깐 교장실에 들르자고 했다. 학교에 왔으니 학교의 어른인 교장 선생님께는 인사를 하고 가야 한다고. 교장실에서 만난 윤건선 인천국제고 교장은 교사 박기화를 이렇게 평가했다. “음악으로 아이들을 품어주고, 아이들의 마음을 맑게 해주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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