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 꾸미기’로 휠체어에 ‘말’을 담다_‘휠마이리듬’ 전시회 여는 유튜버 구르님 김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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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 꾸미기’로 휠체어에 ‘말’을 담다_‘휠마이리듬’ 전시회 여는 유튜버 구르님 김지우
  • 정은경 기자
  • 승인 2022.11.03 18:00
  • 수정 2022-11-03 18: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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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하고 싶은 말이 많고요, 구릅니다』라는 책을 낸 유튜버 ‘구르님’에게 인터뷰를 요청한 바 있다. 인터뷰를 요청한 이유는 책이 아니었다. 구르님의 유튜브 채널 ‘굴러라 구르님’에서 본 알록달록 휠체어를 탄 모습과 콘셉트를 가지고 꾸미는 휠체어에 시선이 가서였다. 그러나 그는 ‘시간이 없다’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그러다가 얼마 전 그가 ‘휠마이리듬’이란 전시회를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다시 한번 전시회와 관련해서 인터뷰를 제안했고, 붉고 노란 단풍이 무르익는 캠퍼스에서 구르님 김지우를 만났다. _정은경 기자

 “저는 구르님입니다. 유튜브를 시작한 후에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다들 ‘구르님’이라 불러주셔서 이젠 김지우라는 본명이 더 어색해요. 유튜브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했으니까 6년째네요. 유튜브를 시작하고 나서 참 많은 기회가 있었고, 덕분에 다양한 일을 했어요. 연극배우, 모델, 방송인 등등, 책도 썼고요.”


 자기소개로 인터뷰를 시작한 ‘구르님’ 김지우(22)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차분하고 조리 있게 말을 이어갔다. 책에서 느낀 당당함이 그의 말에서도 느껴졌다. 

 

휠체어에 닿는 시선의 전복, 휠 꾸미기
‘이달의 휠체어’, 전문적인 휠꾸 프로젝트

 

 김지우가 ‘구르님’이 된 건 아빠 ‘태균’의 영향이 크다(구르님 지우는 자신의 책에서 부모를 ‘현미’ ‘태균’이라고 이름으로 호칭한다. 이 글에서도 그의 표현을 빌려 쓴다). 그의 아빠 ‘태균’은 지우가 어렸을 때부터 사진과 영상으로 딸의 모습을 기록하는 블로그를 운영해왔다. 그래서 지우는 누군가의 시선으로 자신이 기록되는 것에 익숙했고 즐겼다. 그리고 마침내는 자신의 시선으로 영상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기에 이른 것이다. 이유? “그냥 좋아서”란다. 


 김지우, 아니 이제부터는 구르님이라고 부르자. 그는 이야기가 많은 사람이다. 본캐로서 ‘지우’ 말고도 유튜버, 아마추어 모델, 대학생, 연극배우, 라디오 DJ 등등, 여러 부캐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많은 이야기 중 오늘은 하나에만 집중하기로 하자. 며칠 앞으로 다가온 전시회 <휠마이리듬>의 전시기획자이자 ‘이달의 휠체어’를 이끌어온 ‘휠꾸(휠 꾸미기)’ 기획자 구르님의 말이다. 


 “‘이달의 휠체어’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은 2021년 9월이었어요. 휠체어가 다양했으면 좋겠다, 휠체어로 좀 재밌는 상상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거죠. 한 달에 한 번 새로운 모습의 휠체어를 만들어 보는 프로젝트입니다.”


 휠체어 사용 장애인들에게 휠체어는 타인의 시선을 가장 많이 끄는 ‘물체’다. 그 타인의 시선은 대부분 부정적이고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구르님도 그 시선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 어느 순간, “그래? 나를 쳐다본다고? 그럼 더 튀어보지, 뭐” 하는 오기가 났다. 그래서 휠체어를 남다르게 꾸며 보기로 했다. 2018년 열여덟 살 때였다. 당시 유행하던 캐리어 스티커를 휠에 붙인 게 시작이었다. 유튜브를 막 시작하던 시기였고, 이를 콘텐츠로 만들 수 있겠단 생각도 했다. 


 “반응이 뜨거웠어요. 많은 사람들이 쳐다보는데, 그 시선이 휠체어를 쳐다보는 건지 스티커가 신기해서 쳐다보는 건지 모르겠는 거예요. 신기함이 더 크지 않았을까, 나 혼자 그렇게 생각한 거죠. 특히 어린 아기들이 좋아했어요. 가끔 좀 센 것, 예를 들어 해골 스티커 같은 거를 붙이면 와서 만져보기도 했어요.”


 성인이 되고 나서 휠꾸를 전문적으로 기획해서 장기 콘텐츠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누구도 할 수 없는 자신만의 콘텐츠였다.


 몇 달을 친구들과 함께 ‘꾸닥꾸닥’ 기획을 해 2021년 9월 첫 작품을 자신의 유튜브 채널 ‘굴러라 구르님’에 공개했다. 고궁을 배경으로 예쁜 한복을 입고 전통 문양의 스포크가드를 단 휠체어에 앉아 있는 구르님으로 시작한 영상은 6분여 동안 기획과 제작과정 등을 보여준다. 이 첫 작품은 추석을 맞아 한복과 가마, 그리고 연꽃무늬 수막새에서 영감을 받아 재해석된 휠체어였다. 꾸미기를 좋아했던 우리 선조들에게 휠체어가 있었다면 이렇게 했을 거라는 상상력의 소산이다. 

 

▲ 9월 ‘한복과 꽃가마 휠체어.’ 단아하면서도 똑 떨어지는 이미지의 구르님과 잘 어울리는 첫 작품이다.(사진=장모리/구르님 제공)

 

매달 다른 상상력, 다른 메시지, 다른 휠체어 선봬
장애아동들의 휠꾸 프로젝트 ‘휠체어 위의 우리들’

 

 그렇게 시작한 ‘이달의 휠체어’를 통해 구르님은 ‘말’을 하고 싶었다. “콘셉트를 정할 때 그달 그달의 시의성도 생각하지만 내가 사회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고 싶었습니다. 예를 들어 11월 하이틴 휠체어 편에서는 ‘우리는 같은 교실에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3월 피크닉 휠체어 편에서는 ‘장애여성이 얘기가 많아져야 된다’는 생각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소리 높여 외치지 않아도 모두의 관심을 끌고, 자신의 ‘말’을 재밌게 전하는 방법이 구르님에게는 휠꾸였고, ‘이달의 휠체어’였던 셈이다. 


 여기서 잠깐 그동안 구르님과 팀개굴(구르님과 그의 친구 2명으로 이루어진 휠꾸팀)이 세상에 내보인 11개의 ‘이달의 휠체어’를 살펴본다. 첫 작품인 9월의 ‘한복과 꽃가마 휠체어’는 앞에서도 언급했듯 ‘우리 선조들에게 휠체어가 있었다면…’이라는 상상의 소산물이다. 이어 10월에는 ‘힙합과 거리문화’를 주제로 한 ‘그라피티와 오토바이 휠체어’를, 11월에는 ‘교실’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하이틴 휠체어’를, 그리고 크리스마스가 있는 12월에는 ‘21세기 산타라면 전동썰매를 타지 않을까’라는 발상에서 ‘전동썰매 휠체어’를, 1월에는 ‘사이버펑크 휠체어’를 선보였다.  


 프로젝트 중 하반기에 해당하는 2월부터 7월은 좀 더 메시지가 강한 휠체어가 태어났다. 2월은 첫 작품에 대한 리마인드 형식의 ‘한복과 꽃가마 휠체어’를 선보였다. 장기 프로젝트 중 ‘쉬어가는 달’로 삼은 것. 이후 3월에는 장애여성의 이야기를 담아 ‘디시스터즈’(구르님의 유튜브 채널 코너 중 하나로 장애여성들의 이야기를 담는다)의 하개월(청각장애인 유튜버), 우령(시각장애인 유튜버)과 함께 ‘피크닉 휠체어’를 내놨다. 4월에는 전국장애인차별연대(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투쟁에 지지를 보내며 전장연의 외침을 담은 스티커들로 꾸민 ‘투쟁하는 휠체어’를 만들었고, 그리고 5월과 6월에는 구독자의 신청을 받아 휠체어를 꾸몄다. 

 “5월에는 ‘웨딩 휠체어’를 만들었는데, 5월의 신부 콘셉트였어요. 구독자 중 한 분이 자신이 휠체어를 타는 장애여성인데, 휠체어를 타고 결혼식장에 들어가는 모습을 상상도 할 수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휠체어를 타도 아름다운 신부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아봤습니다. 6월에는 청소년 장애인과 함께 이야기가 있는 공간을 보여주었고요.”


 그리고 7월에는 물놀이를 할 수 있는 휠체어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물놀이 휠체어’ 촬영을 했다. 그러면서 부수적으로 ‘인어공주가 목소리를 포기하지 않고 휠체어를 선택했다면’이란 상상력을 전개한 컷도 찍었다. 그랬다면 인어공주는 사랑하는 이와 부모 모두를 얻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표현하고 싶었다. 

 

▲ 4월 ‘투쟁하는 휠체어.’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더불어 뜨거웠던 지하철출근선전전을 기억하며 준비했다. 이 휠체어는 박경석 의장이 잘 사용하고 있다.(사진=유흐름/구르님 제공)
▲ 5월 ‘신부와 웨딩 휠체어.’ 5월의 신부를 콘셉트로 스포크가드 없이, 5월에 볼 수 있는 가장 예쁜 꽃들로 꾸몄다.(사진=유흐름/구르님 제공)<br>
▲ 5월 ‘신부와 웨딩 휠체어.’ 5월의 신부를 콘셉트로 스포크가드 없이, 5월에 볼 수 있는 가장 예쁜 꽃들로 꾸몄다.(사진=유흐름/구르님 제공)
▲ 7월 ‘물놀이 휠체어.’ 물에 뜨는 휠체어가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다양한 휠체어를 상상하는 콘셈트로, 수영장에서 해변해요 휠체어를 탔다. (사진=유흐름/구르님 제공)


 이렇게 1년의 프로젝트를 마감하면서 구르님은 또 하나의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행했다. 

“‘휠체어 위의 우리들’이란 이름으로 장애어린이들(청소년 포함)이 직접 휠체어를 꾸며보는 프로젝트였죠. SNS를 통해 참여하고 싶은 어린이들을 모집했고, 휠체어업체의 협찬, 세 명의 디자이너의 도움을 받아 진행했죠.”


 ‘휠체어 위의 우리들’ 프로젝트에 참가한 어린이는 모두 여섯 명. 아이들이 처음 모여서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마침내 자신의 손으로 디자인한 휠체어 위에 앉기까지 걸린 시간은 석 달. 그 모습들을 구르님은 영상과 사진으로 기록했다. 

 

11월 11일부터 <휠마이리듬> 전시회 열어
“전시회 통해 우리 이야기가 더 많이 전해지길”

 

▲ <휠마이리듬> 포스터. '이달의 휠체어'와 '휠체어 위의 우리들' 프로젝트의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다. 

 “‘이달의 휠체어’와 ‘휠체어 위의 우리들’의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기획한 게 전시회 <휠마이리듬>입니다. 앞선 두 프로젝트 모두 여러분들의 도움이 있어서 가능했지만 특히 이번 전시회는 (사)유쾌한반란의 지원 덕분에 돈 걱정 안 하고 준비할 수 있었어요.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구르님의 휠꾸 프로젝트의 결정판 전시회 <휠마이리듬>은 11월 11일부터 13일까지 서울 대학로에 자리한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이음갤러리에서 열린다. ‘이달의 휠체어’에 등장했던 여러 테마의 휠체어와 스포크가드, ‘휠체어 위의 우리들’에서 활용했던 학습지와 디자인 필름, 1년간의 준비과정과 결과물을 담은 영상과 사진 등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다. 물론 구르님도 거기 있을 거다. 


 “제 개인 인터뷰는 잘 하지 않는 편입니다. 그런데 전시회와 휠꾸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기꺼이 인터뷰에 응했어요. 좀 더 많은 이들이 전시회에 와서 제 ‘말’은 물론 우리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래서 그것이 우리들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음 합니다.” 

몇 번의 인터뷰 제안을 거절했던 이유, 그리고 이제 인터뷰에 응한 이유를 구르님 김지우는 이렇게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가을풍경 속으로 당당히 바퀴를 ‘굴리며’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의 ‘말’ 속엔 ‘장애인은 우울하지 않아요. 우리도 재밌게 우리의 삶을 가꾸며 살아요. 그리고 우리의 ‘말’을 한다고요’라는 당당한 주장이 들어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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