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오고야 만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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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오고야 만 그날!
  • 편집부
  • 승인 2022.08.19 11:13
  • 수정 2022-08-19 18: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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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맘

 

마침내 그날이 오고야 말았죠. 발달장애 여자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누구나 두려워하는 그날이요!

저도 사실 너무 무서웠습니다. 백설공주의 봉긋 솟아오르는 가슴을 볼 때마다 그날이 머지않았음을 느끼며 두려워하기 시작했죠. ‘가슴아 제발 작아져라 작아져라~~.’ 소원을 빌면서 가슴을 슬쩍슬쩍 누르기도 했어요.

너무 두려운 나머지 병원에 가서 의사한테 생리를 안 할 수 있는 시술을 해 달라고까지 한 못난 어미입니다. 의사들은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 치며 저를 비웃었지만 아마 발달장애 여아를 가지신 엄마들은 제 맘을 조금은 이해하실 거에요.

생리 때문에 아예 자궁적출술을 했다는 소문도 들리고 피 묻은 생리대를 빼 들고서 팔락거리면서 학교 복도를 돌아다닌다는 괴담까지…. 휴, 이건 뭐, 저한테는 한여름의 공포영화보다 더한 ‘피바다 납량특집극’이었어요.

그런데 몇 년간의 제 고민이 무색하리만큼 공주의 첫 생리는 너무나 쉽게(?) 한방에(?) 해결되었습니다! 특수샘이 살짝 귀띔해 주신 팬티형 생리대 덕분이었죠. 설마 했는데, 이건 정말 신세계였어요! 공주가 싫다면 어쩌지 하는 기우와 달리 가볍고 마치 팬티를 입는 것같이 느낌도 부드러워서 감각이 예민한 공주도 쉽게 입을 수 있었답니다. 팬티 입는 거랑 똑같으니 거부감도 없고 그냥 입기만 하면 되니 따로 붙이기 펴기 떼기 접기 등등 힘든 생리대 교육도 필요 없을 지경이었죠. 뛰고 구르고 해도, 드러누워도, 뭐 거의 샐 일 없더라고요. 심지어 8시간 사용 가능해서 학교에서 점심시간에 한 번만 갈아입으면 되니 자주 교체할 일 없어서 편하고요.

이렇게 백설공주의 첫 생리대 시험은 특수샘 덕분에 쉽게 고비를 넘겼답니다. 그날은 짠순이 엄마인 제가 큰맘 먹고 뷔페광 공주를 뷔페에 데려갔고 이모에 사촌동생까지 불러다 케이크에 선물에 파티까지 열었죠. 그 전 달에 공주 생일파티도 안 한 제가요. 짠순이 엄마가 이렇게 지갑 출혈도 마다않고 공주가 어리둥절할 만큼 거한 외식과 파티를 열어준 까닭은 피를 보고 무섭고 힘들었는지 변기에 앉아서 고개를 푹 숙이고 눈물을 비치는 공주에게 첫 생리를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건’으로 바꿔주고 싶어서였죠. 앞으로 어쩌면 평생 생리 때문에 힘들어할 텐데, 첫 기억만이라도 기쁨으로 간직할 수 있게, 그래서 다음부터는 거부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하려는 작전이었죠.

다행히 제 공작은 적중해서 공주는 그날 급뷔페, 급파티, 급선물 공세에 혹해서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세상 행복하게 웃는 공주가 되었답니다. 그리고 그다음 달부터 생리할 때는 더 이상 무서워하지도 울지도 않고 웃으며 당당하게 스스로 생리대를 갈아입게 되었답니다.

발달장애 여자아이를 키우시는 어머님들! 다들 너무 걱정하시는 거 같아서 제 경험을 공유해 봅니다. 불과 1년 전에 피바다 공포에 떨던 제 모습이 떠올라서 슬며시 웃음이 납니다. 모두 행복한 ‘그날’이 될 때까지 아자 아자!!

(이 글은 ‘백설공주맘’이라는 아이디로 SNS 활동을 하는, 사춘기에 접어든 발달장애 여성 청소년을 둔 어머니의 글이다. ‘백설공주맘’은 자신의 경험을 같은 또래의 발달장애 여자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들과 나눔으로써 작은 도움이라도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장애인생활신문> 지면에 싣는 것을 허락했다. 단, 익명으로 해 줄 것을 부탁해 SNS 아이디로 기명을 대신하고 인물 사진 대신 SNS 계정의 프로필 사진을 게재함을 밝힌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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